[곽용태] 알츠하이머병에서 행동장애 증상군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17
[곽용태] 알츠하이머병에서 행동장애 증상군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17
  • DementiaNews
  • 승인 2017.08.14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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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용태
효자병원 신경과장/연세대 외래교수

우울증이 오면 과외해야 하나요?

  
저도 의사이지만 의사들이 평상시 대화 할 때 안 좋은 습관 중에 하나가 범주화(categorization) 입니다. 특히 이것이 사람의 특성을 가리킬 때는 매우 위험한 것이지요. 예를 들어 의사들은 이야기 도중 “저 친구는 강박적이야” 라고 이야기를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의사가 아닌 친구들은 같은 이야기를 “저 친구는 너무 꼼꼼해, 아니면 깐깐한 성격이야” 등등으로 이야기하지요. 무슨 차이가 있을 가요? 꼼꼼하다, 깐깐하다…… 등의 수식어는 비교적 중립적이고 개방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지칭 대상을 폭 넓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둡니다. 반면 “강박적”이라는 이야기는 명확하게 그 의미가 정의되어 있고 심지어는 병명으로 진단 기준이 있는 것이지요. 즉 범주화는 사물을 정확하게 정의함으로써 그 문맥과 인과 관계 등을 명확하게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반면 그 명확성으로 일단 말을 하는 순간 그 대상은 그 의미 안에 갇히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환자를 진료할 때는 유용한 수단이 되지만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는 창의적인 접근에 도움이 안될 수도 있습니다.

학문에도 마찬가지 일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치매 환자에서 나타나는 증상은  인지기능장애, 행동장애, 일상생활 수행능력의 장애, 그리고 행동장애 안에 우울증을 포함한 정동(affection) 장애로 범주화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인지기능 장애와 정동장애로 범주화 하면 이 둘은 아주 별개의 병이나 병리기전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하게 됩니다. 또 실지로 인지기능과 정동은 다른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울증은 사물을 느끼는 방식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도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자기자신, 주변의 세상,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Beck's triad)들이 통제되지 않고 계속 의식 위로 올라오는 것이 우울증의 병인이라는 가설이 있습니다.1 즉 우울증이라는 것 자체도 배우고 학습된 것이라는 우울증의 인지이론 입니다. 이 이론은 부정적인 사고(인지기능)의 틀이 우울증의 시작과 재발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이 이론은 우울증은 각 개개인에게 있는 인지기능의 취약성(vulnerability)과 스트레스유발인자(stress, 개인적인 불행, 사회적, 환경적 요소 등)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전통적인 주요 우울증 이론과 달리 우울증이라는 것은 정상 정서와 전혀 다른 것(질적으로)이 아니고 정도 차이에(양적으로) 따른 것이라는 연속접근법(continuum approach)적인 생각입니다. 즉 이 둘 사이의 균형이 무너지면 어떤 사람도 우울증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우울증이라는 것이 현재 정신과 진단기준에 나오는 것 같이 이분법적 접근에 의하여 진단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이론이 처음 주장 되었을 때에 비하여 우울증에 대한 약물학적, 뇌진단 검사 등에서 획기적인 발전이 진행되었고, 이에 따라서 우울증의 인지 모델도 재변화 됩니다.

항우울제의 발견은 세포 수준의 신경물질 이상이 우울증과 연관되어 있음을 시사하며 유전적이든 환경적이든 신경세포 시냅스에서 단가아민(monoamine)의 결핍이 우울증의 병태생리라는 가설의 주요 근거가 되었습니다(단가아민 고갈 가설). 하지만 세포 수준에서 신경물질의 변화가 어떻게 우울증을 일으키고 또 이것을 교정하면 실지로 심리학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우울증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해주지 못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신경세포 접합부(시냅스)의 신경물질 이상이 사람을 우울하게 하고 이 이상을 교정하면 우울증이 좋아질까요? 단가아민 고갈가설에서는 항우울제의 최종 약리 작용 부위가 우울증과 관련된 해부학적 부위의 개선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고 추론합니다. 하지만 항우울제의 최종 약리 작용부위가 실지로 우울증과 관련된 해부학적인 조직이나 세포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기에는 몇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첫번째로 즉각적으로 기분을 향상 시키는 약들이 일시적으로는 기분을 좋게 할 수 있지만 임상적으로 우울증 약물로서는 효과가 없고 두번째로 우울증이 없는 사람에게는 기존의 항우울제를 복용한다고 해서 기분이 좋아지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왜 세포학적 변화는 약물 투약하면 바로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임상적으로 우울증이 호전되기까지는 상당 기간의 시간 경과가 필요한지 등 이 가설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울증 인지가설에서는 어떤 원인이든 시냅스내의 신경 물질의 변화가 오면(예를 들어 단가아민고갈) 외부에서 오는 사회적, 감정적 자극이 상부로 작용하는(bottom up processing)데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어 부정적인 인지를 형성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부정적인 편견(biases)과 인지의 틀(schema)이 형성되면 아래로 향하는(top-down process) 작용을 하여 외부자극에 대해서 부정적인 기대 및 예측을 하게 됩니다. 항우울제는 위로 올라가는(bottom up processing) 감각을 교정함으로써 부정적인 인지와 편견, 틀을 완화하게 됩니다. 비록 이러한 인지적 변화는 세포수준의 변화처럼 아주 빠르게 나타나지는 않지만 점차 외부 자극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받아 들일 수 있게 해줍니다. 즉 이 이론에서는 항우울제가 우울증의 근본적인 해부학적 병변을 교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항우울제는 우울증의 근본적인 치료제 이기 보다는 부정적인 편견이나 인지의 틀을 교정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울증에서 항우울제만 사용하게 될 경우 재발율이 높게 되며 근본적으로는 약물 치료와 더불어 인지치료가 병행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이론은 왜 항우울제 복용이 세포학적인 변화는 즉각적으로 일어나는데도 불구하고 왜 일정 시간이 지나야 우울증이 치료되는지를 잘 설명할 수 있습니다. 즉 항우울제의 복용과 효과와의 시간 차이는 약물 복용 후 외부에서 들어오는 감각의 변화가 오고, 이 감각의 변화에 따른 인지편향이 개선되는데 까지 걸리는 시간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이 이론은 아주 매력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아주 불편합니다. 감정이 어떤 종류의 자극에 대한 편향과 그 편향에 대한 학습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면, 만약 이 학습의 과정을 특정 방향으로 조정한다면 우울증과 같은 정동 장애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이론적으로는 약물이 없어도). 확대 해석한다면 학습을 통하여 사람의 감정을 조절함으로써 인위적인 행복의 섬도 만들 수 있는 것이지요. 실지로 우리는 지상 낙원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아주 가까운 곳에 살고 있지요. 즉 이 이론은 앞에 칼럼에서 언급한 목사님이 손잡아 주면 나을 수 있는 신경증(neurosis)의 개념이 있습니다. 최근 치매 환자 우울증에 대한 인지중재치료가 활발하게 시도되고 있는데 그 기본적인 철학은 위에서 이야기한 우울증의 인지가설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은 과거부터 정신병(psychosis)에 가깝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특정 부류의 사람은 목사님이 손을 잡아 주어도 좋아지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종류의 우울증은 아무리 인지치료를 해도 좋아지지 않는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즉 정신 증상의 문제점은 똑 같은 증상처럼 보여도 뿌리가 다를 수 있는 것이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좀더 많은 증례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노인이나 치매의 우울증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많지 않지요.

저는 지갑에 중학생인 딸의 사진을 넣고 다닙니다. 괴롭고, 힘들고, 안 좋은 일이 있어 마음이 우울하면 이 사진을 꺼내 봅니다. “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좀더 힘을 내야지, 아마 모든 것이 좋아질 거야”  반면 너무 기쁘고, 좋은 일이 있고, 일을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 때도 같은 사진을 꺼내 봅니다. 그리고는 한숨 푹 쉽니다. “아직도 돈 많이 벌어야 하는데…  무슨 친구 만나서 놀 생각이나 하나,,,,,,,  가서 일해야지”. 너무 우울해도, 너무 좋아도 똑 같은 사진을 꺼내 보고 스스로를 세뇌하며 살아가야 하는 50대 늦둥이 딸을 가진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Reference
1. Depression and cognition. Kwak YT, Yang YS, Koo MS. Dementia and Neurocognitive Disorders 2016;15(4): 103-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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