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용태] 알츠하이머병에서 행동장애 증상군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19
[곽용태] 알츠하이머병에서 행동장애 증상군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19
  • DementiaNews
  • 승인 2017.08.2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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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용태
효자병원 신경과장/연세대 외래교수

동막골 이야기

2005년 개봉한 웰컴투 동막골 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에는 많은 명장면이 있지만 저는 정박아 연기를 열연한 강혜정과 정박아라도 드넓은 자연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시골 사람들의 여유와 목가적인 장면이 가장 인상에 남습니다. 즉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더라도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각자 역할 대로 살아가는 공동체의 모습이 부럽기까지 합니다. 약간 모자란 아이나, 치매가 있는 노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 주면서 서로 더불어 살아가는 장면은 종종 문학이나 예술에서 나타나지요. 하지만 현실 세계나 역사를 보면 그렇게 낭만적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 기록은 없지만 17-18세기 유럽의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정신이상이나 정신박약 환자에게 가해지는 인권유린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과거 시골은 도시보다 경제적으로 더 여유가 없고 전통적 가치관이 경직되어 있어 조금이라도 그 사회의 기준을 넘어서면 대부분 가혹한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시골보다는 환경이 좋았고 중세부터 보호소 형태로 노인이나 정신이상 환자들을 수용하는 기관이 있었지만 이 역시 많은 인권 유린이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정신질환이나 치매를 치료할 수 있는 약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질환에 걸린 환자는 주로 도시 외곽이나 시골에 있는 정신병원(asylum)에 입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일 이라고는 설사제를 먹이거나(과거에는 정신병의 원인이 대장에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온욕(hot bath)을 하거나, 심해지면 같이 엉겨 붙어서 육체적으로 제압하고 강박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오죽하면 1800년 유명한 독일 정신과 의사인 Johann Christian Reil은 정신과를 전공하려면 총명함, 통찰력과 더불어 환자를 제압할 수 있는 체력과 시골에서 살 수 있는 단순함을 꼽았겠습니까. 하지만 오랜 기간 이러한 형태의 병원을 운영하면서 정신병원이 단지 정신과 환자들을 사회에 격리 시키는 역할 만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병원(병동) 자체가 정신병치료에 일정한 효과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최근에 들어와서 치매 환자가 급격하게 증가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점점 더 좁은 도시에 모여 살지만 실지로 가족의 구성원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시골 작은 집에서 여러 명의 아들이 부인, 자식과 더불어 부모님과 같이 살았기 때문에 부모님이 치매가 생겨도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들락날락하는 가족들이 교대로 보아드리면 되고 또 안 되면 옆집에도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핵가족화 되어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이러한 돌봄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요. 따라서 이들을 일정 시간 혹은 거주하면서 봐야하는 요양원이나 치매치료 병동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신과에서 운영하는 폐쇄병동 형태의 치료 공간은 주로 젊은 정신병 환자를 대상으로 해왔기 때문에 치매 환자에게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여기서 간단한 문제를 내겠습니다. 폐쇄병동의 정의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폐쇄병동과 관련된 부정적인 영화나 소설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폐쇄병동 = 악, 개방병동 = 선 이라는 등식이 머릿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지로 폐쇄병동의 정의가 무엇인지, 그 병동의 장단점이 어떤 것이 있는지는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제가 자문했던 정신과 의사들도 예외는 아니더군요). 과연 그러면 폐쇄병동은 무엇일까요? 폐쇄병동을 간단히 정의하면 첫째 안에서 밖으로 나갈 때 쉽지 않다. 둘째 밖에서 안으로 들어 갈 때 쉽지 않다 입니다. 즉 양방향으로의 이동이 제한되는 곳이지요. 전형적인 정신과 폐쇄병동의 경우 들어갈 때 나갈 때 모두 엄격한 절차를 거치게 됩니다. 폐쇄병동의 단점으로는 환자가 치료된다는 느낌 보다는 수용된다는 기분이 들며(감옥 같다?) 치료병실 내에서 치료자와 환자 사이에 힘의 불균형에서 오는 불안감 및 우울증을 느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반면 장점으로는 원치 않는 방문자를 안 볼 수 있으므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으며 치료자로서는 환자의 무단 이탈 등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어 치료에만 전념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젊은 날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을 다닙니다. 여러분은 주로 어디로 가셨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섬을 선호 하였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모두 알다시피 섬은 들어가고 나가는 것이 쉽지 않은 곳이지요. 그리고 섬에 가면 왜 꼭 배가 빨리 끊기는지 그리고 왜 꼭 여관방은 하나만 있는지 이것도 불가사의합니다(이유를 아시는 분은 개인적으로 메일 부탁합니다).

알츠하이머병 치매의 경우는 다른 정신 질환자에 비하여 병식이 떨어지기 때문에 개방병동이냐 혹은 폐쇄병동이냐 하는 병동 형태보다는 오히려 초기에 나타나는 이별 불안이 심한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아이를 처음 학교에 보낼 때 아이가 부모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행동이나 감정이 치매 환자에서도 심하게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일반정신과 환자 보다는 낙상 등을 포함한 안전사고가 많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개방 병동에서 오히려 더 다양한 물리적 제한이나 약물 과다 사용이 이루어 질 수 있고 이는 다시 환자를 자극 더 많은 병동 내 사고를 유발 할 수가 있습니다.1

이런 문제 때문에 제가 근무하는 병원에서는 심한 행동장애를 동반하는 치매 환자의 경우 치매 전문치료 병동을 운영합니다. 현재까지 치매 전문 치료병동의 개념이 정립되어 있지는 않지만 저는 3가지 원칙을 가지고 병동을 운영합니다. 첫 번째로는 치매 환자의 경우 젊은 정신질환 환자에 비하여 병식이 떨어지고 그 이동 정도가 많지 않기 때문에 정신과의 고전적 폐쇄병동보다는 쉽게(그러나 치매 환자에게는 어려운) 밖으로 나갈 수 있고 들어올 때는 제한 없이 들어 올 수 있도록 함으로써 환자나 환자보호자에게 수용된다는 느낌을 줄여 줍니다. 이러한 비교적 안전한 공간을 확보함으로써 신체적 강박이나 약물 사용을 최대한으로 줄입니다. 두 번째로는 환자의 병실이나 치매병동을 환자의 인지기능 등 상태에 맞추어 재배치함으로써 병실이나 병동자체를 치료 환경이 될 수 있는 환경치료개념을 도입합니다. 마지막으로 심한 행동장애로 자타해가 의심될 경우 신체적 구속이나 과도한 약물 보다는 치료자가 지속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관찰실을 이용하여 환자 스스로 개선할 수 있도록 합니다. 결과적으로 치매 전문 치료 병동에 입원한 환자에서 일반 병동에 입원한 환자에 비하여 재원기간이나 여러 치매 척도가 개선되는 효과를 보였습니다.2 하지만 제가 아직도 잘 모르는 것이 과연 치매 환자들에게 적절한 공간이 어느 정도 인가 하는 것입니다. 정신과 환자의 경우 정신보건법으로 일인당 4.5m2 의 공간 확보가 법으로 규정되었지만 이 규정이 어떤 근거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희 병원의 경우 1인당 25.5 m2 을 확보하여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아마도 이를 알기 위해서는 치매환자에서 공감각과 이에 따른 정서적 특징, 배회의 양상 등 다양한 자료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현재 이에 대한 과학적인 자료를 모으는 중입니다.

자 동막골로 다시 갈까요?

배우 강혜정이 뛰어 다니던 너른 초원과 강, 그리고 하늘에 떠있는 밝은 태양, 이것이 어떤 환자에게는 돌아봐도 숨을 데도 없고, 주변에는 잘 모르는 동물들이 번뜩이는 눈으로 자신을 맴돌고 있으며, 덥고 뜨거운 태양이 목과 가슴을 압박하는 던져진 공간 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스크린에서 보는 시선보다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시선에선 보면 다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은 최고의 폐쇄된 치료 공간이 어디라고 생각합니까? 그건 신화적으로는 에덴 동산이고, 생물학적으로 어머니 자궁 안입니다. 가장 편안하고 쉴 수가 있는. 그래서 환자들이 나이가 들고 힘이 들면 들수록 더 어머니를 찾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오늘은 어머니를 뵈러 가야 겠네요.

후기; 이글을 쓰고 나서 최신 연구논문에서 알츠하이머 유전자를 이식 받은 쥐에서 최고의 환경에 노출된 쥐들이 표준적 환경에 노출된 쥐보다 알츠하이머병의 병리가 빨리 진행된다는 보고가 나왔네요.3 즉 최고의 환경이라는 것은 환자의 눈높이에 맞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 같습니다. 이 쥐들이 동막골에 오면 아주 빨리 치매가 진행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Reference

Bredthauer D, Becker C, Eichner B, Koczy P, Nikolaus T. Factors relating to the use of physical restraints in psychogeriatric care: a paradigm for elder abuse. Z Gerontol Geriatr. 2005 Feb;38(1):10-8치매전문치료병동이 알쯔하이머병 환자치료에 미치는 영향. 곽용태, 한일우, 양영순 용인정신의학보. 2011 18 1Stuart KE, King AE, Fernandez-Martos CM, Summers MJ, Vickers JC. Environmental novelty exacerbates stress hormones and Aβ pathology in an Alzheimer's model. Sci Rep . 2017 Jun 5;7(1):2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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