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최우수상] 낫 가는 여인①
[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최우수상] 낫 가는 여인①
  • 양승복 작가
  • 승인 2021.09.23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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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복 작가
양승복 작가

수상 소감

장마에 한줄기 햇살 같은 기쁜 소식에 잠이 달아났습니다.

한밤에 일어나 다시 낫 가는 여인을 읽고, 그 반달 같은 눈 미소가 그리웠습니다. 

요양원에서 일하며, 어르신들이 갖고 있는 사연들과 접하며 인생을 다시 배우게 되었습니다.

사연들은 우리나라의 근대 역사이기도 하고, 우리 아버지의 고된 무게의 짐은 우리나라의 기둥이 되고, 우리 어머니의 각박한 삶은 우리들의 젖줄이 되어 이만큼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한분 한분이 소중하고,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그분을 만나 많이 행복했었기에 조마님이 주시는 상으로 느껴집니다.

아마 하늘에서 합죽하게 웃고 계실 것 같네요.

한 많은 여인의 삶을 최우수상으로 선정해 주신 심사 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낫 가는 여인

비단같이 흐르는 햇살이 눈부시다, 떨어지는 꽃잎은 바람 타고 춤을 춘다. 꽃잎세상이다. 마치 왈츠를 추듯이 하늘을 무대로 우아하게 돌고 돈다. 내가 근무하는 요양원 어르신 한분이 “이렇게 예쁜 세상이 있다니 너무 좋다”라고 하신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사시는 분이 아니어서 울컥하게 가슴을 울렸다. 나는 어르신을 껴안으며“어르신이 더 예쁘세요.”라고 했다. 빙그레 웃으며 하늘로 옮기는 눈빛에서 한 많은 사연이 서리서리 맺힌 고단함이 느껴졌다. 한 숨을 길게 들이 신 어르신은 비단 옷고름 풀어내듯 어느 봄날을 회상하신다.
 
예전에 봄바람이 유난히 어지럽게 불던 사월의 어느 날이었지. 남편은 소를 몰고 나가 논을 갈고 점심을 먹으러 들어왔어. 누가 찾으면 없다고 하라며 윗방으로 올라갔지. 그 뒤를 따라 반장하고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남자 서너 명이 마당에 서서 남편이름을 불렀어. 없다고 해도 들어오는 거 봤다며 신발도 있으니 나오라고 다그쳤어. 남편은 점심도 못 먹고 따라 나간 후 돌아오지 않았어.

그렇게 그가 넘어간 뒷산을 바라보며 한여름을 밭고랑에 앉아 등줄기에 흐르는 땀보다 많은 눈물을 흘리고. 겨울은 얼음장같이 얼어붙은 가슴을 부여안고 베개를 적시며 지냈지. 다시 봄을 맞으며 환한 봄이 싫었지. 구석구석에 어두운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는데, 잔설이 봄바람을 잡고 늘어지는 찬바람만이 내 살 속으로 파고들었지. 그래도 남편이 곱다하던 누비 적삼은 반닫이에서 꺼내보지도 못했어. 고우면 안 되는 날들이었고, 햇살이 아름다우면 안 되는 날들이 흐르는 동안 뱃속의 아이는 태어났지.

귀여운 둘째 딸. 분신처럼 심어놓은 씨앗을 남편도 모르고 나도 몰랐지. 내 삶이 되어 버린 불쌍한 유복자. 살아보니 모든 것은 다 정해진 인연 따라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었어. 내 인연도 거기까지였다면 유복자 딸은 남편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일곱 살이 된 큰딸을 그늘삼아 봄 햇살이 아름다운지, 여름이 뜨거운지,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는지도 모르는 삶을 살게 되었어.
 
생각해 보면 나는 평생 낫을 갈며 살았던 거야. 내 남편을 데리고 나가 혼자 돌아온 반장을 향해 나는 늘 낫을 갈았거든. 그렇게 가기 싫다는 사람을 데리고 갔으면 같이 와야지, 저 혼자만 살아서 활보하는 꼴을 보면 손발이 떨렸어. 한양 조 씨 양반가에 태어나 곱다 소리를 한 몸에 받으며 귀하게 자랐지. 그런데 남편을 그렇게 보내고, 딸 만 둘 데리고 사는 우리 집을 누구라도 허투루 대할까봐 나는 밤에도 낫을 머리맡에 두고 살았지. 지금 생각하니 내 외로운 팔자가 싫어 상대 없는 세상을 향해 낫을 휘두르고 살지 않았을까?

나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반장을 향한 미운 마음이라는 명분을 세웠지만, 사실은 내 고단한 삶을 향해 날을 세웠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 아이들이 출가하고도 낫 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지. 그 낫이 나를 향해 있는 것을 알 수 없었어. 날을 세우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삶인지 알지 못했지. 그래서 나는 남들이 넘보지 못하는 내 존재를 만들었어. 아이들에게 쌀밥을 먹이고, 살림을 늘려 양식을 꾸어주는 집이 되었지.
 
딸들이 출가하여 자기들 삶을 꾸리고 사느라 어미 존재가 희미해져 갈 무렵, 마음을 열어 보지 못하고 살아 온 내 영혼은 시름시름 시들어 가고 있었지. 하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알 수 없었어. 낫을 갈며 사느라 몰랐던 고독이 문살을 헤집고 찾아 왔지. 고독은 마음의 빗장을 열고 자유를 찾아 떠나도록 내 손을 잡아끌었어.

나는 빗장을 열고 나가 산과 들을 헤매고 다녔어. 무엇을 찾으러 다녔는지 버선발이 흙발이 되도록 헤매고 다녔지. 평생 가슴에 멍울로 새겨진 억울한 한을 따져 보고 싶어 반장을 찾아 나선 것일까. 산 너머 간 내 남편을 찾으러 간 것인가.

세상을 향해 날아오른 나는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된 거지. 살면서 막내딸이 유복자인 것이 불쌍해 가슴에 사무쳤지만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어. 동여 맨 마음이 무너져 내릴 것 만 같았거든.

평생 가슴 깊이 간직한 그리움이 꾸물거리고 올라오며 나는 산에다 들에다 소리치며 절규했어. 하늘을 향해 소리 지르고 원망 하며 걷고 또 걸었어.
 
놀란 딸들은 엄마를 잃을까 우리 집으로 몰려 왔어. 식구들이 문을 잠그고, 망을  보며 지켜도 작은 몸 하나 당하지 못했다는 거야. 큰딸은 나를 데리고 집으로 왔지. 

나는 살던 곳을 기억하고 있었어. 남편을 보내고도 몇 십 년을 살던 동네를 잊을 수 없었지. 늘 그 동네 이름을 중얼거리며 큰 딸 집에서 다리가 기억하는 대로 우리 집을 찾아 갔지.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을 찾아 온 들판을 헤매고 다녔어. 

찾아다니던 어린 딸들은 어디가고, 어느새 어른이 되어 버린 딸들이 나를 붙들고 울었어. 내 머릿속은 더 혼란스러워졌어. 나는 망연자실하여 멍하게 앉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지.
 
사람은 얼굴에만 주름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네. 내 머릿속에 쭈글쭈글 주름이 생겨 기억이 회로를 잃고 만 거지. 얼마나 마음을 동여매고 살아왔는지 알 수 있지. 마음을 트고 감정의 빛을 부드럽게 받아들이지 못한 내 삶. 낫을 갈며 가슴에 돌덩이 하나를 품고 사는 인생은 나를 엉망으로 만들었던 모양이야.
 
늙은 어미만 바라보고 살기에는 아직은 바쁜 큰딸. 나를 데리고 밭을 매기도 하고, 밥도 하고 같이 자고 했지. 극진하게 위하고 귀찮게 감시 하고 꼼짝 못하게 했어.

같이 방에 앉아 텔레비전 보다가 여자들이 모여 손가락질 하며 웃고 떠드는 소리가 나보고 욕 하는 것 같아 물을 떠다 냅다 뿌려 버렸어. “이놈의 망할 년들” 이라고 욕하고 삿대질 하며 들어가라고 소리를 질러댔지. 평생을 욕먹지 않고 살려고 노력했는데 화가 많이 났지. 그런데 큰딸은 나를 안고 통곡하며 울었어. 그러면 딸도 같은 편인 거 같아 화가 더 났어. 나는 사람이 오면 부엌에 가서 밥상을 차려 대접도 했지. 이렇게 정성을 들이며 사는데 사람들은 치매라고 수군거리며 가까이 오지 않았어.

큰딸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 나만 감시했어. 그래도 빠져 나와 나만의 세상을 향해 떠돌아 다녔지. 그런데 사람들은 용케도 찾아내 딸은 나를 타박하고 혀를 차고 울며 서러워했어.
 
나는 근동 파출소 단골손님이었지. 사람들은 나를 만나면 거기로 데리고 갔어. 파출소 사람들은 모두가 친절했어. 따뜻한 물도 주고 재미있는 말로 웃겨 주곤 했어. 아들이 있으면 이만할까 하며 잠시 상념에 들기도 했지. 큰 딸이 오면 하염없이 그 사람들에게 굽신 거리고, 하소연도 하면서 내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돌아왔지.

마음 쓸 것도 없고, 눈치 볼 것도 없이 자유를 향해 마음을 풀어 놓았어. 딸들은 그 자유를 위험하다며 구속하고 감시하고 했지. 내 편은 아무도 없었어.
그러던 어느 날. 옷가지를 싸서 나를 차에 태우고 멀리 여행을 떠났어. 그리고 나를 모르는 곳에 두고 모두 가버렸어. 그래서 다시 혼자가 되어 버렸네. 
 
-조마님은 들어오실 때 치매 증상이 심한 편으로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따님들은 울며 불쌍한 어머니를 부탁했다, 조마님은 만만하지 않는 성품으로 누구 말도 듣지 않는 강하고 곶은 성품이었다. 대소변은 스스로 잘 하셨으며, 본인가족은 알아보시고, 떼어 놓으려 하는 눈치를 알고 많이 불안해 하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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