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우수상] 네 잎 클로버②
[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우수상] 네 잎 클로버②
  • 이아영 작가
  • 승인 2021.09.30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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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영 작가
이아영 작가

모두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각자가 지니고 있는 추억이 다양했다. 그 추억 속에서 함께한 인물을 이야기해보라 한다면 대부분이 그렇듯 부모님을 꼽을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흔한 대부분에 속하지 못했다. 내 어린시절의 대부분이라 함은 우리 할머니였기 때문이었다.

세상의 빛을 바라본 지 1년도 안됐을 무렵, 맞벌이 부부라는 비일비재한 이유로 나는 자연스레 할머니 손에 맡겨졌다. 시원한 도시 향이 배긴 캐주얼한 향기보단 구수한 소똥 냄새와 진동하는 풀잎 내음이 익숙했다. 익숙해진 탓에 엄마와 함께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면, 창 밖으로 보이는 수많은 고층 빌딩들의 불빛이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 할머니는 엄마아빠의 빈자리가 무색해질만큼 내 어린시절의 추억을 그려나갔다. 집 앞 개울가로 나가 어릴 적 흔히 하던 물수제비놀이도 하고, 개울가 옆 펼쳐진 들판으로 가서 맘껏 뛰놀기도 하는 등… 그렇게 쉼없이 뛰놀다 집에 들어오면, 할머니는 지친 기색도 없이 바로 배가 꺼진 나에게 포동포동한 찐 만두와 시원한 식혜를 만들어 주었다. 모락모락 연기가 마구 남에도 나는 허겁지겁 금세 다 먹어치웠다. 그런 나를 보고서 할머니는 누런 이와 반짝이는 금니를 드러내 보이며 활짝 웃어 보였다. 그리고 덩달아 나 또한 환하게 웃어 보였다. 할머니가 해 준 식혜와 찐 만두는 줄곧 기억에 남았다.

하루는 들판에서 네 잎 클로버 찾기를 할 때였다. 수없이 펼쳐진 클로버들 사이에서 네 잎 클로버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쭈그려 마주 앉아 열렬히 찾다가도 우리는 금세 서로 먼저 찾겠다고 등을 내보이며 참 열심이었다. 길고 긴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보이지 않자, 네 잎 클로버에 성질이 난 나는 저린 다리를 펴고 주저앉아 고개를 푹 숙여 땅이 꺼질 듯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개의치 않고 나와 점점 멀어져 계속해서 찾아갔다. 한참 멀리 갔던 할머니는 나의 투정 어린 외침에 그제야 꾸역꾸역 돌아오곤 했다.

“이눔아, 거 얼마나 찾았다구 주저앉은겨? 네 잎 클로버가 그렇게 쉽게 나올 줄 알았어? 아이쿠 한심타 이놈아. 금방 내리 앉으면 나타날 것도 안 나타나 알어?”

할머니는 매번 주저 앉는 나에게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철 없던 그 시절엔 할머니가 나 몰래 일부로 네 잎 클로버를 숨겨놓은 것은 아닐까란 생각까지도 했었다. 모두 부질없는 탓이었지만. 그러면 할머니는 주저 앉은 나를 다시금 일으켜 세웠다. 이번엔 반대편 들판으로 가서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온몸으로 싫은 티를 내어도 할머니는 꿋꿋이 나를 이끌고 반대편으로 넘어갔다. 또다시 쭈그려 앉아 찾기를 반복했다.

“할미도 죽겄어. 허리두 다리두 성한 곳이 없어. 근데두 널 위해 찾는거여. 알어? 누구나 첨엔 참도 열심이지. 행운의 클로버 희귀한 고것하나 자신이 갖겠다구. 그런데 점점 찾다가 한 명씩 자기 합리화를 해부려. 기케 찾아두 없거든. 원래 네 잎 클로버는 사람들의 환상과 행복을 위해 구냥 만들어진 구설일 뿐이라구. 아님 두 잎 클로버를 합쳐 네 잎 클로버 흉내를 내곤 하지. 자긴 행운을 찾은 사람인 걸 과시하기 위해. 것도 합리화를 하는 것이제? 그치만 달러. 두 눈을 부릅뜨고 찾아서 찾아낸 사람도 있으니께. 그것이 저들은 딱 거까지인 거야. 거까지인 사람이 되는거여. 끝까지 찾아낸 사람이랑 못 찾고 합리화 하는 사람이랑 인생의 끝도 같을 거 같어? 아녀. 다르제. 할미가 뭔말을 하는 지 알건?”

내내 힘들다는 생각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를 흘려 보냈다 생각한 말은 흘러지지 않고 내 마음속에 단단히 자리하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힘에 부쳐 모든 것을 그만 두고 싶을 때 자주 꺼내보는 할머니의 말이었다. 이 말을 곱씹을 때마다 알 수 있었다. 할머니는 꾸준히 날 위하고 있었단 걸.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이 한결같을 수는 없었다. 초등학교를 입학한 지 3년 정도가 지났을 무렵, 나는 그만 잔잔히 흐르는 개울가와 드넓게 펼쳐진 들판 사이 풍기는 소 똥 냄새를 기억 저편으로 넘겨야 했다. 익숙했던 그 내음은 자연스럽게 세련된 도시 냄새에 익숙해져갔다. 할머니 집에 들르는 횟수는 한 해에 손에 꼽을 수 있었고, 흔히 명절에 내려가는 정도가 다였다. 그럼에 할머니와 나 사이의 거리 또한 천연덕스럽게 멀어지고 있었다.

“어이구, 우리 공주님 왔어?”

오랜만에 만난 우리 둘은 예전과 달랐다. 짧은 인사가 끝난 후엔, 지정석이 있던 듯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먹먹한 공기만이 우리 주위를 감쌌다. 엄마 아빠와 친척들의 시끌벅적한 말 소리가 겨우 그 공기를 메웠다. 나도 자라나고 변한 성격 탓에 좀처럼 할머니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왜인지 지금 생각해 봐도 헷갈리는 감정이었다. 그 감정 속 대충 꼽아보자면, 아마 부끄러움 반, 어른들에게 각인된 붙임성없는 성격이라 생각되었다. 반대로 할머니 또한 나에게 다가서려 하지 않았다. 그 또한 날 위한 것이었음을 난 너무 늦게 깨달았던 것이었다. 할머니는 그저 묵묵히 부엌에서 굽은 허리를 펴지도 못하고 식혜와 찐 만두를 해왔다. 그 맛은 전과 같은 변함없는 맛이었다. 

할머니의 기력은 예전 같지 않았다. 금방 쇠약해져 갔다. 엄마 아빠의 대화를 얼핏 듣기로는 허리, 다리가 모두 성치 않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심각했던 건 ‘치매’ 라는 두 글자였다. 나는 무슨 일이냐 대뜸 물어보지 못했다. 나는 할머니를 크게 신경 쓰는 그런 아이가 아니었기에. 그저 뒤에서 몰래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자신이 처음으로 초라해짐을 깨달은 날이었다. 

이후로 할머니는 생각보다 빠르게 ‘치매’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한 발짝 다가가면 될 것을 어른들의 이상한 눈초리를 받기 싫어 망설일 뿐이었다. 할머니의 수많은 이야기를 담은 기억도 재빠르게 치매가 앗아가고 있었다. 

“아유 이뻐라. 누구여? 참말로 이쁘게 생겼구만. 내 손녀딸 하구 싶구만.”

하고 많은 기억 속에 치매는 나란 존재도 같이 앗아간 모양이었다. 할머니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몇 번이나 엄마가 나를 설명하고 나서야 비로소 할머니는 나를 납득했다. 그제야 괜한 쓰라림이 아려왔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기억도 기억이지만, 많이 병약해진 덕에 작은 방에 홀로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는 그런 할머니를 흘깃 보는 정도가 다였다. 그러다 공교롭게 거실에 모여있는 가족들의 말소리가 내 발을 붙잡았다. 나는 또 벽 뒤에 몰래 숨어 엿듣게 되었다. 내용은 뭔가 하니 할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느냐에 관한 얘기였다. 아마 보내는 쪽으로 요점이 기울어진 듯했다. 내 아무리 아무것도 못한다 해도 이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마지막을 아는 사람도 뭣도 없는 요양원에 보내는 것은 아니었다. 요양원에 혼자 있을 할머니가 그려졌다. 참지 못할 울컥함이 밀려왔다. 나도 모르게 입술을 씹고 또 씹고 있었다. 하지만 아닌 건 아니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가족들 사이로 파고 들었다.

“아뇨 할머니 요양원에 보내지 마요.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치매가 뭐라고 그 정도도 우리가 못 돌봐 드려요? 가뜩이나 할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시고 외로우셨을 할머니일텐데 거길 또 보내서 외롭게 할 순 없잖아 그치 아빠. 이건 아니야. 안돼요.”

“어머 얘가 갑자기 왜 이럴까? 안 하던 짓을 하네? 이건 어른들끼리의 이야기야. 평소에 할머니한테 관심도 없던 애가 왜 이래? 가만히 방에 들어가 있어. 밥 먹을  때 부를 테니까 그 때 나와.”

“허허허. 할머니가 아프니까 이제야 철든 거야? 아픈 할머니가 안쓰럽긴 했나 봐요. 진작 좀 들지. 왜 이제야 알았대? 할머니가 너한테 얼마나 서운해 하셨는데~ 어렸을 때의 너가 그립다면서. 어렸을 땐 그렇게 할머니만 쫄래쫄래 강아지마냥 쫓아다니더니 커가면서 안 그런다구 할머니가 얼마나 섭섭해 하셨는지 몰라~ 동서, 너무 뭐라 하지마 저도 깨달은 게 있나본데. 그래도 이건 어른들끼리의 대화니 넌 들어가 있으렴.”

엄마와 큰엄마가 너스레를 떨며 한 마디씩 던졌다. 그저 흘러가는 말이었겠지만 그 한마디가 나에겐 굉장한 비수를 꽂았다. 너무나도 큰 죄책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어마어마하게 큼지막한 돌로 머리를 세차게 얻어 맞은 것 같았다. 할머니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평온하게 눈을 감고 쌔근쌔근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런 할머니의 얼굴을 보니 금세 코 끝이 얼얼해졌다. 하지만 혹여나 곤히 잠든 할머니가 깰까 또는 밖에 있는 어른들이 들을까 올라오는 울컥함을 꾹 삼켜냈다. 

서울로 올라와서도 온통 머릿속은 할머니로 가득했다. 떨칠 수 없는 죄책감에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이미지가 뭐라고 그냥 한 발짝 다가가면 되는 것을. 할머니는 언제나 나를 위하고 있던 것이었다. 걸음을 내딛지 않는 나에게 재촉하지 않은 채 시간을 준 것이었다. 속으론 조급해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상심이 컸을 할머니가 그려져 매우 괴로웠다. 

초승달이 길게 서린 밤, 은근한 공기 속에 연예인들의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는 티비 프로그램 소리만이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티비 소리와 맞먹는 크나큰 핸드폰 벨소리가 집안을 일깨웠다. 엄마는 전화기를 붙잡고 차분하게 말을 이어 나가다 목소리를 높였다. 할머니의 시간이 머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우리 가족은 차가운 공기를 뚫으며 분주히 준비했다. 분주한 준비 속 아무도 입을 떼진 않았다. 허겁지겁 차에 올라타 고층 빌딩들을 신속하게 지나쳤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그때만큼은 엄마 아빠도 아무말을 하지 않았다. 창 밖으로 보이는 달빛은 너무나도 어지러웠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곧장 들판으로 갔다. 핸드폰 후레쉬를 켜고 미친듯이 네 잎 클로버를 찾았다. 눈에 맺힌 무언가 때문에 앞이 뿌옇게 차올랐지만, 찾기를 멈추지 않았다. 새어 나오는 울음을 터트리며 마구 찾아냈다. 지체할 시간이 없어 이리저리 모든 들판을 휘저었다. 속으로 한번만을 외치고 있을 무렵, 거짓말처럼 큰 나무 근처에서 도통 보이지 않던 네 잎 클로버가 있었다. 더한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그리고 당장 그것을 들고 할머니가 있는 곳으로 단숨에 달려갔다.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는 할머니는 겨우 숨을 붙이고 있었다. 나는 할머니를 붙잡은 채 목놓아 외쳤다. 

“할머니! 할미! 나야. 나 할미 손녀! 할미 내가 뭐 가져 왔는지 알아? 기억나 할미? 네 잎 클로버야 할미! 내가 찾았어 보여? 할미 말대로 포기하지 않았어. 제발 할미… 내가 다 미안해. 너무 미안했어. 아니 죄송해. 너무 늦게 깨달아서 진짜 미안해. 할미 한번만… 응? 할미… 할미…”

“뭐시여 우리 공주… 참말로 이쁘다. 잘했어 내새끼. 해낼 줄 알았어… 내새끼 인생 끝은 참말로 행복할끼야… 내한텐 내새끼가 네 잎 클로버야… 할미는 그걸로 됐단 거여…”
 할머니는 그렇게 무거운 눈꺼풀을 지그시 감았고, 힘겹게 내몰아내던 숨도 그만 그쳤다. 붙잡고 있던 할머니의 손도 서늘함만이 자리했다. 그래도 아주 잠시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흩어진 기억의 조각에서 나를 찾아내주어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래서인지 더욱 알 수 없는 뜨거움이 울렁거렸고 그 손을 놓치 못한 채 울부짖었다. 애타게 불러도 더 이상 대답은 없었다. 

장례식을 마치고 할머니의 짐을 한두 개씩 정리했다. 아빠는 내게 서랍장을 정리하라 일렀고, 서랍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꺼낼 때였다. 마지막 칸 서랍을 열었을 때, 또다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왔고 주체할 수 없었다. 굳은 눈물 자국은 어김없이 흐르는 눈물로 가려졌다. 마지막 칸에는 아니나 다를까 네 잎 클로버 한 개가 놓여져 있었다. 꽤 오래전 것인지 그 네 잎 클로버는 이미 시들어 비틀어져 있었다. 할머니는 내게 건네고 싶은 순간이 수도 없었을 것이었다. 언제까지 날 기다리고 배려하려던 것이었을 지 가슴이 사무쳐왔다.

이후 몇 해가 지나도 할머니의 기억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명절 때마다 큰엄마가 해주시는 식혜와 찐 만두를 먹을 때면 더욱 할머니의 기억이 아려왔다. 그 맛이 아니었다. 더 이상은 만나볼 수 없는 그 맛. 당연하게 여기던 그 맛은 온전히 없었다. 맛있냐는 큰엄마의 질문에는 씁쓸한 미소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살아가다가도 훅 끼쳐오는 할머니의 기억을 애써 삼켜내려 하진 않았다. 또는 유난히 파란 하늘을 하고 있는 날이면, 하늘을 꼭 쳐다보며 환한 미소를 보였다. 우리 할머니는 그 자리 그곳에 자리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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