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용태] 알츠하이머병에서 행동장애 증상군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20
[곽용태] 알츠하이머병에서 행동장애 증상군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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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9.04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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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용태
효자병원 신경과장/연세대 외래교수

갑자기 할아버지가 눈을 떴다

어느 12월 겨울 토요일 오후 당직 근무를 하고 있는데 당직방으로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선생님 병동인데요, 치매로 입원한 OO 선생님 환자가 난리가 났어요. 빨리 병동으로 올라와 주세요." 이 다급하게 걸려온 전화는 평화로운 토요일 오후를 기대하였던 나에게는 오늘 하루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처럼 들려왔습니다. 병동에 올라가보니 키가 185cm 몸무게가 80kg 이상 되어 보이는 건장한 할아버지가 안절부절 못하고 흥분하여 집으로 가게 해 달라고 합니다. 이를 제지하면 욕을 하고 심지어는 주먹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급히 들어가자 흥분한 할아버지뿐 아니라 병동에 있던 간호사, 간병인 등 모든 사람이 제 얼굴만 바라 보고 있었습니다. 환자 본인 뿐 아니라 주변에 다른 환자, 치료자 모두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망설였습니다. 가서 말리거나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데(멋지게) 솔직히 이 상황에서 잘못하면 제가 이 할아버지에게 맞을 것 같았습니다(솔직히 할아버지가 저보다 세 보였습니다). 순간 손을 내밀며 "할아버지 집에 가시려고요? 제가 현관문까지 바래다 줄 테니 거기서 똑바로 걸어가시면 됩니다"고 말하였습니다. 할아버지는 집에 보내 주겠다는 저의 말을 듣고 그제서야 화를 누그러뜨리고 환의를 입은 상태로 현관 앞까지 뒤따라 오셨습니다. 저는 현관 앞에서 억지로 온화한 웃음을 지으며 “할아버지 현관 밖으로 쭉 걸어 가시면 됩니다. 가세요” 라고 하며 할아버지 등을 밀었습니다. 병원 현관 앞에는 매서운 겨울 찬바람이 불고 있었고, 하늘은 잔뜩 어두워져 곧 눈이 올 것 같은 날씨였습니다. 할아버지는 몇 걸음 걸어 나가시더니 뒤를 돌아보고 "추워. 너무 추워서 못 걸어가겠네. 택시 불러줘." "알았습니다. 제가 불러드릴 테니 여기에서 삼십분 정도 기다리세요." 순간 할아버지 얼굴이 어두워 지셨습니다. "그러면 택시 올 때까지 안에서 기다리게 해줘." "가능한데 얌전하게 있어야 돼요." "알았어." 할아버지는 다시 병실로 들어와 침대에 앉아 있다가 따뜻한 온기에 조용히 잠드셨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입원한지 며칠 되지 않은 환자입니다. 할아버지는 3년전부터 치매진단을 받으셨고 그 때부터 폭력적이어서 다른 요양 병원에 1년전 입원 하였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처음에는 거기에서도 폭력적이었으나 어떤 이유인지 이후 서서히 얌전해 지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비교적 잘 지내시던 할아버지가 왜 갑자기 이 시점, 이병원에서 다시 폭력적으로 되었을까요? 즉 할아버지의 폭력성에 스위치를 올린 것은 무엇일까요?

동요(agitation), 공격성(aggression)은 알츠하이머병 치매에서 매우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그 원인도 뇌의 병태생리에 의한 것, 무엇인가 불편하거나 아픈데 의사 소통이 잘 안 되어서 생기는 것, 환경과 관계된 것 등 매우 다양한 요소가 혼재 되어 있습니다. 특히 알츠하이머병에서는 이러한 공격성이 망상과도 깊은 연관성이 있습니다.1 하지만 제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상당 기간 비교적 잘 지내던 할아버지가 왜 갑자기 공격성을 보였을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아마도 그날 아침에 시행한 수혈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환자가 입원 당시 빈혈 수치가 6.7 밖에 되지 않아 매우 낮은 상태입니다. 최근 환자가 다른 병원에서 비교적 얌전하게 잘 지낸 것은 아마도 너무 심한 빈혈 때문에 폭력을 행사할 정도의 힘도 없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너무 낮은 빈혈 수치에 놀라 응급이라고 생각한 주치의가 토요일날 아침 급히 수혈을 하고 퇴근 하였고 그 결과 조용히 지내던 환자는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저의 평화로운 토요일 오후는 엉망이 되게 된 것이지요.

의사들은 어떤 검사를 하게 되면 병적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려 하고 비정상이 되면 이것을 어떻게 하든지 정상 수치로 돌려 놓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정상이라는 수치는 일반 성인을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나이가 아주 많이 드신 환자들에게도 이 수치가 도움이 되는지는 따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만성적인 스트레스나 치매와 같은 만성 질병에 노출되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정상이라고 불리우는 검사상의 몸 상태가 꼭 그 환자에게 이롭지 않을 수도 잇습니다.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성분 중 하나가 혈액이고 이 혈액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철입니다. 그런데 철은 세균이 자라고 번식하는 데에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따라서 세균에 감염되면 우리 몸은 혈액 중의 철분 함량을 감소시키는 화학물질을 분비하고 철이 든 음식물을 섭취하더라도 체내에 흡수 되는 것을 줄입니다.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이 신체반응은 본질적으로 세균을 굶주리게 함으로써 이를 극복하게 도와 주는 것입니다. 마사이족 아메바 감염 비율은 10% 미만이지만 이들에게 철분 보충제만 복용 시키면 그 비율이 88%까지 올라간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즉 일반적으로 노인에게 나타나는 빈혈 역시 일정 부분 환자가 신체적 스트레스에 적응하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환자와 같이 혈색소가 병적으로 많이 떨어진 환자에게는 분명히 어떤 질환이 숨어 있겠지요(이 환자의 경우에는 위궤양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태가 급격하게 진행된 것이 아니고 오랜 시간에 걸쳐 생겼다면 급격하게 바로 교정하는 것 보다 그 의미를 천천히 판단해도 될 수 있습니다. 외부에서 급격히 주입된 수혈이 환자의 빈혈 증상을 호전 시켰지만 그 후로도 오랫동안 병동에 있는 많은 사람들(물론 환자도 포함해서)을 고생시켰지요. 상황에 따라서는 좋은 게 좋지 않을 수도 있고 의사가 보기 좋은 것이 환자나 환자 보호자에게도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섣불리 균형의 추를 급격하게 변화시키지 마라. 일단 그 균형상태에서 천천히 앞뒤를 보면서 아주 조심스럽게 걸어 나가는 것이 치매 노인을 보는 중요한 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노인 환자를 장기적으로 볼 때 두가지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지금 균형을 이룬다면 그 의미를 파악하고 만약 그 균형이 환자의 현재 증상에 급격히 나쁜 영향이 예상되지 않는다면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두번째 환자가 항상 이 상태에 있다고 환자가 항상 그 상태라고 낙인 찍지 마라. 예를 들어 다른 병원에서 수년동안 치매라고 진단받았거나, 환자가 입으로 식사 못해서 경관식을 사용한다고 해서 그 환자가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 한번은 입체적으로 고려해보자 하는 것입니다. 언뜻 두가지가 상충되는 것 같고 실지로 임상에서 충돌도 일어납니다. 어떻게 보면 사회의 보수(우파)와 진보(좌파)의 개념 같기도 합니다.

알츠하이머병과 빈혈은 연관되어 있다는 보고가 많이 있습니다. 빈혈이 알츠하이머병의 발생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이야기도 있고, 알츠하이머병 자체가 빈혈을 유발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도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알츠하이머병에서 빈혈을 일으키는 다른 병이 없어도 빈혈이 생기는 것이 혹시나 이 병든 뇌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제한된 산소 공급을 통해서 뇌의 대사를 늦추고 그럼으로써 뇌의 퇴행을 최대한 늦추려는….   물론 의학적 근거가 확실하지 않은 저의 생각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후기: 빈혈과 알츠하이머병 발병과의 관계, 빈혈과 공격성과 같은 행동 장애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이번 칼럼은 아주 특수한 경우이고 이와 반대되는 문헌도 많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를 일반화하기는 무리가 있습니다. 이 칼럼의 주요 목적은 환자의 치료는 쉽게 일반화하지 말고 상황별로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환자의 삶의 질이나 증상 관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Reference

Kwak YT, Yang Y, Kwak SG. Clinical characteristics of behavioral and psychological symptoms in patients with drug-naïve Alzheimer’s disease. Dement Neurocogn Disord 2012;11:8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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