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장려상] 내게 남은 마지막 하루⑥
[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장려상] 내게 남은 마지막 하루⑥
  • 천정은 작가
  • 승인 2021.10.11 17: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정은 작가
천정은 작가

Part6. 태식씨의 이기적인 하루

태식씨는 공무원으로 퇴직 후 아늑한 시골마을로 귀농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회복 후에도 편마비로 걸음걸이가 매우 불안정하다.
차를 타고 내릴 때도, 2층인 집에 오를 때도 직원들 두 명이 부축해야만 했다.
태식씨는 내가 오기 전 센터에서 낙상사고로 며칠 동안 병원에 입원했단다.
옆의 직원이 있었는데도, 태식씨의 무게를 혼자 감당하기엔 벅찼던 것이다.
같이 넘어졌는데, 태식씨는 그 때 이후로 다리통증이 더 심해졌다고 했다.
내가 처음 온 날 태식씨는 지팡이에 의존하고 직원이 부축해서 겨우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태식씨는 힘들다는 내색을 했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며 한탄을 했다.
태식씨에게 다가가기 쉽지 않았지만 절룩거리는 다리를 보며 태식씨에게 병원에 가보라고 말을 했다.
괜찮다고만 대답을 들은 후, 내심 걱정이 되었다.
다리의 절룩거리는 게 심해서 허리도, 어깨도 비대칭이였기 때문이였다.
그리고 늘 무거운 가방을 크로스로 메고 다녔다.
그 가방 안에는 뭐가 있을까?
몸도 불편한데 왜 이리 무겁게 뭔가를 담고 다닐까?
며칠 후 담당 선생님께 태식씨에 대해 자세히 설명들었다.
태식씨는 살고 있는 동네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부자였다.
태식씨의 집 뒤로 있는 산과 논, 밭이 태식씨 거였다.
할머니와 두 분이서 살고 있는 태식씨는 한마디로 자린고비였다.
한평생 모은 재산과 물건을 도둑 맞을까봐 가방에 메고 다닌다는 것이다.
가방 안에는 20개 정도 넘은 통장이 들어있단다..
집에 놓고 다니면 불안하기도 하고, 도둑 맞을까봐 무섭다며 본인이 직접 들고 다녀야 했단다.
함께 사는 할머니조차 믿을 수 없다니 기막힐 노릇이였다.
며칠 후 태식씨 송영을 가기 위해 옆에서 부축을 했는데, 어느 날 보다 절룩거림이 심했다.
병원에 가자고 하자, 태식씨는 안 간다며 막무가내다.

어느날 태식씨 집에 송영을 갔는데, 두 분이 사시기에 넓은 주택과 넓은 밭이 눈에 띄었다.
할머니의 허리는 구부정했고 태식씨를 옆에서 부축하기에도 힘이 많이 딸려 보였다.
할머니는 태식씨에게 잘 다녀왔냐는 인사를 했고, 태식씨는 대답이 없다.
센터에서도 태식씨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예민하기도 했고, 약간의 불안감도 있었다.
다른 분들은 자신들이 가져온 가방, 모자를 한곳에 모아놓는 반면, 태식씨는 늘 가방을 자신의 옆에 두고 있다.
기필코 자신이 들고 있겠다며 남을 못 믿는 눈치다.
한번은 결핵 검진을 위해 x-ray를 찍어야 했다.
태식씨가 입고 있는 잠바와 가방을 벗어야만 했다.
태식씨는 끝까지 입고 찍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답답한 마음에 벗은 잠바를 갖고 같이 x-ray실에 가자고 했다.
태식씨의 잠바 주머니에는 현금과 남은 통장 몇 개가 들어 있었다.
묵직한 잠바를 걸치고 있다는 것 자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태식씨는 왜 돈과 물질에 이토록 집착을 할까?
궁금했지만 알 수 없었다.
다만 자신외에는 다른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는 것만 확인할 뿐 이였다.
태식씨가 피 땀 흘려 돈을 벌었다는 사실과 병이 오기 전까지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는 것만 안다.
그렇게 x-ray를 찍고 나자 또 가방과 무거운 잠바를 걸치며 괜챦다는 말만 했다.
남들보다 이동시간도 길고, 다리도 절룩거리는데도 몸에 무거운 가방과 점퍼만은 자신의 보물 1호인 듯 했다.
태식씨의 집은 2층 집의 단독 주택인데 내려서 휠체어로 모시고 집안까지 모셔다 드려야 했다.
차로 집 앞까지 들어가기엔 나무들이 차에 의해 꺾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한번은 할머니께서 차로 집 앞까지 들어오면 좋겠다고 했다.
나무가 부러지고 다쳐도 괜챦다고 말이다.
베스트 드라이버만 운전할 수 있겠다며 우리 직원들은 내심 걱정했다.
그렇게 태식씨의 집까지 가기 위해선 좁은 돌 길 위를 지나쳐서 나무에 차가 긁히고, 나무도 다치게 되었다.
과장님은 나무의 가지를 잘라서 조금이나마 나무가 다치지 않게 했다.
며칠 후 태식씨의 딸이 전화가 왔다.
왜 나무를 잘랐냐며 다짜고짜 따졌다.
상황을 설명하고 집 앞까지 모셔다 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딸은 너무 한 거 아니냐며 화를 냈다.
할머니가 집 앞까지 모셔다 달라고 해서 최선의 방법을 선택한 거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딸은 마음대로 잘랐다며 언성을 높혔다.
노인들 말을 들은 우리들을 무지한 걸로 생각했다.
이기적인 딸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태식씨 역시 자기만 생각하는 행동을 보일 때가 있다.
작은 것 조차도 손해보지 않으려 한다.
한번은 간식으로 고구마가 나왔다.
태식씨는 왜 남들은 고구마 크기가 큰데 본인 꺼는 작냐며 바꿔달라고 했다.
그 뒤로 무조건 크고 좋은 건 태식씨의 차지가 되었다.
인지가 있는 태식씨는 작은 거 하나도 양보라는 게 없다.
어떤 날은 간식으로 옥수수가 나왔는데, 태식씨가 간식을 먹은 후 화장실에 갔다.
직원은 당연히 다 드셨을 꺼라 생각하고 간식 그릇을 치웠다.
태식씨는 화장실에서 나와서 막무가내로 덜 먹었는데 왜 접시를 가져갔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결국 새 옥수수 한 개를 더 드렸다.
식사 시간에도, 간식 시간에도 태식씨는 욕심이 많다.
남들보다 더 많이, 더 좋은걸 바랬다.
다른 어르신들은 내가 안 먹어도 되니, 저분 드리라며 양보한다.
태식씨를 보면서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태식씨는 한 달에 한번 센터에 수납을 할 때도 직접 잠바에서 돈을 꺼내 담당자에게 직접 준다.
직원이 전달한다고 해도 거절했다.
더 놀라운 건 정확한 날짜인 30일에 돈을 납부했다.
태식씨는 내가 있는 1년 동안 정확한 날짜에 담당자에게만 돈을 납부했다는 사실 이였다
태식씨는 한평생 돈에 대한 집착이 심했을 꺼라 생각이 들었다.
돈을 쓸 줄 모르고 모으다 보니 그 돈이 없어지면 어쩌나 걱정만 하는 것이다.
가족인 할머니조차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병원도 가지 않고 자신의 몸도 돌보지 않은 채 통장에 집착하는 자신의 남편을 말이다.
한 번도 할머니에게 통장을 공개한 적이 없다는 것도 놀라웠다.
할머니는 생활비를 주는 대로 받아쓰고 있었고, 나머지 재산은 할아버지가 관리한다고 했다.
태식씨의 딸은 혼자 사는 노처녀다.
노처녀로 살면서 한 번씩 부모님 댁에 오는 거 같았다.
딸조차도 자신의 아버지가 왜 이리 통장을 들고 다니는지 모른다고 했다.
어느 날, 태식씨는 소변을 실수하게 됐다.
센터에서뿐 아니라 집에 이불에다도 실수를 한다며 할머니께서 걱정했다.
본인은 힘도 없어서 이불빨래 몇 개씩 하기도 힘들다고 말이다.
우리는 집에 오는 요양보호사 선생님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지만, 태식씨는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 뒤로 태식씨는 기저귀를 차고 다녔고, 다리의 절뚝거린 상태는 악화되어 가고 있었다.
비대칭으로 지팡이를 짚다보니 어느 날, 허리통증까지 심해졌다.
병원은 거부하고 무조건 침대에 누워있겠다며 떼를 썼다.
보호자들은 지쳐갔고, 고집만 피우니 지친다고 했다.
하루는 내가 태식씨에게 조심스레 이야기를 했다.
병원에 가야하는 이유, 가면 지금의 상황보다 더 나을 것이란 설명을 했다.
집에 가서도 딸이 설득해서 병원 가자며 몇 번의 말을 했던 터였다.

며칠후 태식씨가 집을 나갔다며 보호자에게 전화가 왔다.
병원가자고 했더니, 화를 내며 새벽에 집을 나갔다는 것이다.
역시나 큼직한 가방 하나를 들고 말이다.
태식씨는 병원에 들어가면 다시는 자기가 밖에 나오지 못한다는 생각에 내심 불안했던 모양이였다.
태식씨에게 병원은 치료보다 자신을 감금시키는 감옥과 같은 곳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태식씨는 한나절을 헤매다 그날 오후 집으로 들어왔다.
태식씨의 몸 상태는 점점 안 좋아졌고, 급기야 욕창까지 발생하게 되었다.
상태를 설명 후, 태식씨는 강제로 병원에 갔다.
그날 할머니는 울면서 전화했다.
불쌍해서 어쩌냐, 한평생 고생만 하고 살았다.
병원 가면서도 그 많은 통장을 가방에 들고 갔다고 말이다.
태식씨의 살아온 삶에는 어떤 아픔과 기억이 남아있을까?
그날 태식씨를 생각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태식씨는 그 가방을 놓아야 할 때가 되었다.
태식씨의 목숨 같던 그 가방은 태식씨에게 어떤 의미일까?
왜 평생 돈을 짊어지고 살아야만 했을까?
삶의 고단한 하루가 끝나갈 무렵 나는 돈의 속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죽어서 가져 갈수도, 있어도 쓰지도 못하는 돈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태식씨는 그렇게 병원에 입원을 했다.
가방을 갖고 말이다.
한 번씩 생각이 난다.
태식씨는 죽음 앞에서 그 가방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느꼈을까?
아무것도 없이 태어난 우리의 삶 또한 이제는 아무것도 없이 떠나야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인생..참 슬프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