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장려상] 내게 남은 마지막 하루⑩
[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장려상] 내게 남은 마지막 하루⑩
  • 천정은 작가
  • 승인 2021.10.15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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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은 작가
천정은 작가

Part10. 가난과 소외된 자의 하루

가난과 소외된 자들은 주위만 봐도 쉽게 보인다.
부와 권력자보다 가난과 소외된 자들이 우리 주변에 더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몇 년 전 사회복지사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에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했다.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과 함께 하는 직업이 더 보람될 거란 생각에서다.
그렇게 사회복지사 실습을 나갈 때 나는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일하는 자원 봉사 센터는 집수리, 도배부터 시작해서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곳이었다.
실습 첫날 난방도 안 되고, 따뜻한 물도 안 나와서 추위에 떨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곳이 있다며 그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나는 실습생이라서 큰 도움은 안 됐지만, 보일러 전문가 난방 전문가 등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전문가 봉사단들은 이것저것을 준비해서 1차로 떠났고, 나는 2차로 따라 나섰다.
그 집은 시골의 끝자락에 있는 집이였는데 집에 들어가자마자 깜짝 놀랐다.
집이 그야말로 엉망이였다.
바퀴벌레는 눈에 보일만큼 기어다녔고, 도배를 위해 벽지를 벗기는데 바퀴벌레 새끼들이 떨어졌다.
씽크대에는 음식 조리를 전혀 하지 않아서 곰팡이로 뒤덮여 있었고, 방 마다 짐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이분의 힘든 심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현장이였다.
단란한 가족이 살던 곳이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엄마와 아이들만 남게 되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고스란히 견딘 흔적이 보였다.
전문가들은 도배장판부터 시작했고, 싱크대 수리 및 교체까지 했다.
실습생인 나는 도배 벽지 벗기고, 풀칠을 했는데 그날 몸은 고됐지만, 한편으로 뿌듯했다.
이런 열악한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가난과 소외 속에서 하루를 견디는 이들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그 다음날은 독거노인의 집에 방문 했는데, 냉장고에는 썩은 음식이 있었고, 침대는 몇 년 동안 빨지 않아서 색이 누렇게 바래있었다.
가족 없이 혼자 사는 노인들의 하루는 마지못해 사는 삶인 듯 보였다.
청소 봉사단들과 청소하고 빨래하며 정리를 한 후 뒤돌아서서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고독감의 무게에 눌려 하루를 견디는 삶이 힘겨워 보였다.
무엇보다 봉사하겠다고 오는 사람들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쪽방촌에 사는 집에 방문했고, 다음날은 투석을 받으며 힘들게 살아가는 집 그 다음날은 다 쓰러져 가는 집 등등..
그렇게 실습하는 동안 가난과 소외된 자의 하루를 옆에서 볼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의 시간이 그들에게는 고통의 날들이라는 걸 느끼게 되었다.
그들에게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많은걸 느끼는 실습 기간이었다.
사실 가난과 소외된 자들은 옆으로 눈만 돌려도 많다.
우리 센터에도 혼자 사시는 어르신이 계신다.
자식 며느리가 있지만 찾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사느라 바빠서 안 오는 거야 라고 말하지만, 나는 어르신의 고독함과 외로움을 옆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어르신을 센터로 데리고 와서 현재는 잘 적응하며 지내고 있다.
그 어르신은 입버릇처럼 이야기 한다.
사는 게 뭔지...
그만 살고 싶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자식들의 상황을 이해한다.
자기들도 먹고 살기 바쁜데..
나까지 짐이 되면 안 되지..
그렇게 악착같이 살아온 삶의 세월에 지금은 남은 게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에게 저녁 도시락도 싸서 드린다.
사실 그분 주머니에는 늘 비닐봉지가 들어있다.
남은 반찬을 비닐에 몰래 싸가지고 가기 위함이다.
과거에는 2남매를 키우며 대학까지 열심히 뒷바라지한 평범한 엄마였다.
아들을 서울로 대학 보냈고, 현재는 교수라는 직함까지 달게 되었다.
엄마라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살았는데, 지금은 쓸쓸할 뿐이다.
엄마는 자식을 이해한다.
바빠서 못 오는거야..언제까지 자식편이다.

나 역시도 한 번씩 울컥한다.
내 배는 굶주려도 아이들은 배불리 먹이고, 내 영양제보다 아이 영양제가 먼저였다.
나를 위해 돈쓰는 것보다 아이 학원비가 먼저였고, 내 생일 때는 그냥 지나가면서도 아이 생일 파티까지 해준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지만, 한 번씩 인생 참 쓸쓸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뉴스에 외로운 독거노인,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 쪽방촌 사람들 등의 뉴스가 자주 나온다.
그분들에게 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나 역시도 하루의 시간이 죽도록 견디기 힘든 시간일 때가 있다.
무엇을 위해 사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말이다.
견디다 조금 나아지면 다시 일어서야겠다고 다짐한다.
또 힘들면 이 악물고 견디고, 또 견디고..
이게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 40이 넘은 중년에 느꼈다.
그래서 지금 숨 쉬는 이 순간이 감사할 뿐이다.
삶이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무리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가난과 소외된 자들의 하루가 결코 힘든 시간의 지속이 아니길 바래본다.
사시사철 소나무처럼 푸르지는 않지만 잡초처럼 어디서나 자라는 인내의 시간이길 말이다.
그들이 보내는 하루가 많이 아프지 않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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