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장려상] 마디진 어머니 사랑①
[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장려상] 마디진 어머니 사랑①
  • 이동소 작가
  • 승인 2021.10.26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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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소 작가
이동소 작가

수상 소감

저는 부산대학교를 나와 35년간 동 대학교와 부산 가톨릭재단 등에서 교편을 잡다가 퇴임, 지금은 수필가로 활동 중입니다. 아버지가 일찍 고혈압으로 쓰러져 몸져누우시는 바람에 어머니는 5남매를 키우기 위해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제가 인생에 대해 한창 회의를 느끼던 사춘기 때도 어머니는 장사를 하느라 늘 집을 비우셨죠. 자존심이 강한 어머니는 아무도 자신을 못 알아보는 산골이나 섬으로 장사를 다니셨습니다. 국제사장에서 아기들 옷을 떼다 팔기도 하고, 여자들의 긴 머리카락을 잘라서 사오는 소위 ‘달비장사’를 하셨다고 합니다. 이제 서른 줄의 젊은 아낙네가 홀로 낯선 섬에 들어가 물건을 팔고 끼니와 잠자리를 구걸해서 목숨 줄을 연명했을 걸 생각하면 지금도 목이 멥니다. 자식들을 잘 먹이고 공부를 끝까지 시키겠다는 서슬 퍼런 염원과 꿈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무적함대 같은 그런 어머니 모습을 보고 자랐기에 저 역시 억척스런 기질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세월 따라 장사가 없다고 했던가요. 그렇게도 현명하던 어머니가 5년 전부터 치매에 걸려 이제 정신이 왔다 갔다 합니다. 한 사람의 일생을 돌아보면 보호자가 수시로 바뀝니다. 제가 어릴 땐 당연히 부모님이 제 보호자였죠. 하지만 제가 대학을 들어가면서 부턴 제가 집안을 어깨에 메고 뛰는 가장이 되었어요. 연약한 여자가 학교를 다니며 알바를 하다 보면 때로는 힘이 들고 버겁기도 했지만, 저는 한 번도 제 처지를 비관하고 부모를 원망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흙 숟가락으로 태어나 오늘의 나로 성장하기까지 부모로부터 받은 게 너무 많기에, 어머니가 당신의 목숨까지 걸고 우리를 지키고 키워준 그 사랑을 알기에, 저는 감히 힘들다고 말할 수가 없었답니다. 

다행히 어머니는 아직도 정신이 맑을 때는 책을 읽기도 하십니다. 어머니는 제 수필의 첫 번째 애독자요 팬이십니다. 제가 틈틈이 어머니 간병일지를 적어 두는 것도 언젠간 어머니가 이 글을 읽으시길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당신이 지금 비록 병이 들고 노약하지만 사실은 당신이 얼마나 멋진 분이며, 우리 자식들이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꼭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죠. 당신은 누가 뭐래도 자식들을 위해 일생 동안 당신의 모든 걸 바쳐 용감하고 처절하게 살아온 성공자이며, 그러기에 존경 받아 마땅한 귀한 존재란 걸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자식이 연로한 부모를 모시는 건 당연한 일, 어머니를 간병하며 적은 수기가 뜻밖의 상을 받게 되니 송구한 마음이 앞섭니다. 하지만 이 상이 앞으로도 어머님께 더 잘하라는 격려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싶네요.


마디진 어머니 사랑


1. 어머니가 치매라니

어머니가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한 건 5년 전이다. 처음엔 조금씩 건망증증세가 있다싶더니, 언젠가부터 과거와 현재를 혼동해서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딸들이 갖다드린 먹거리를 누가 가져다 두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하셨다. 예전보단 부쩍 기억력이 없고 같은 이야기를 자꾸 되풀이하곤 해서 걱정을 했는데, 급기야는 혼자 성당에 갔다 오시다가 집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제야 놀라서 병원에 모시고 가서 각종 검사를 받았다. 

치매를 평가하기 위한 도구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경심리검사다. 대뇌의 어느 영역이 얼마나 손상되었고, 어떤 부분이 보존되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집중력과 주의력, 기억력, 언어능력을 알아보는 테스트와 함께, 그림 그리기나 위치 찾기와 같은 시공간 파악능력, 가위를 사용하고 단추를 채우는 일 같은 일상 활동능력도 검사했다. 거의 반나절이나 검사를 한 결과, 어머니는 치매초기단계로 진단이 났다. 순간, 나는 내가 치매에 걸린 것처럼 머리가 멍해졌다. 그렇게 명석하던 우리 어머니가 치매라니, 도저히 그걸 현실로 인정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우리 집안에서 총명하기로 유명하다. 일제시대엔 소학교시절에 여자반장을 하고, 친지들 사이에선 ‘변호사’란 별명을 가졌을 정도니 말이다. 최근까지도 한자로 된 신문은 물론, 일어회화도 능통하게 하셨던 분이다. 게다가 어머니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매순간 맞닥뜨리는 극한 상황과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특출하시다. 그게 바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임기응변이고, 지혜인 게다. 그러기에 아버지가 40대에 고혈압으로 쓰러져 누우시자, 당신이 여가장이 되어 우리 5남매를 거뜬히 키우신 여장부다. 

치매dementia라는 말은 의학적으로 대뇌 신경세포의 손상 따위로 말미암아 지능, 의지, 기억 따위가 지속적·본질적으로 상실되는 병으로 정의된다. 즉, 정상적으로 생활해오던 사람이 다양한 원인에 인해 뇌기능이 손상되면서, 이전에 비해 인지기능이 차츰 저하되어 일상생활에 지장이 나타나는 상태를 말한다. 치매는 인간이 겪어야하는 노화현상의 하나이기 때문에 그 자체를 막을 순 없다. 다만 약이나 영양제로 그 증후가 느리게 진행되게 하는 방법이 있을 뿐이다. 어머니의 경우는 다른 인지능력이나 사고력은 모두 정상인데, 유독 최근에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유한한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길을 걷게 된다. 조물주의 뜻에 따라 푸릇한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서, 부모의 사랑과 보호를 받으며 성장하고, 신록의 청춘기에 짝을 만나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 기르며, 황혼을 맞아 곱게 늙어가고 죽는 게,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인생길이다. 그러니 늙어가는 것은 결코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얼굴에 하나씩 생기는 주름과 희끗희끗 나오는 흰 머리카락은 세상과 맞장 뜨며 당당히 살아온 자랑스러운 자신의 연륜이자 훈장이니 말이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인간이 나이가 들어서 걸리는 ‘치매’란 병은 어쩌면 신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살벌한 전쟁터에서 살아남으려고 항상 새우잠을 자며 녹다운되게 한평생을 보낸 인간에게, 마지막은 다시 아기로 돌아가 천진난만하게 살다가 한 생을 마무리하라는 신의 특별한 은총이 아닐까도 싶다. 이젠 자신을 완전 무장해제하여, 모든 걸 단순하게 생각하고, 아픈 상처는 망각하고 좋은 기억만 안고 이승을 떠나길 바라는 신의 특별한 사랑……. 하지만 그게 내 어머니인 경우 인정할 수가 없으니 이를 어쩌랴.

2. 요양병원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자진해서 들어온 지 보름이 지났다. 오늘도 먹을 걸 바리바리 싸들고 어머니를 뵈러왔다. 선입견과는 달리 건물외관은 산뜻하다. 무엇보다 숲속에 자리를 잡아 공기가 맑다. 하지만 승강기를 타고 입원실 앞에서 내리자, 지린 냄새가 진동을 한다. 여기가 요양병원이란 걸 새삼 깨닫는다.  

세상의 편견처럼 여태 요양병원에 대한 나의 인식도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이승을 떠나기 전, 돌볼 가족이 없는 불쌍한 사람들이 궁여지책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수용소로 생각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고혈압인데다 거동이 불편해 항상 자식들의 가슴을 죄게 한다. 집 앞에 잠시 나갔다가도 순간적으로 길을 잃으셔서 우리들을 혼비백산 시키는가 하면, 화장실에 가다가 엉덩방아를 찧어 꼼짝을 못하고 누워계신 적도 종종 있다. 하지만 어머니는 부모나 자식은 죽음이 서로를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이다. 그러니 당신은 연세 오십이 안 되어 남편을 잃고서도, 홀로 된 시어머니를 돌아가실 때까지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그런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우리 자식들 역시, 어머니를 요양병원으로 모시는 건 불효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가 집에 있으니 갑갑하다고, 요양병원에 한번 가보고싶다고 조르시는 것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미 요양병원에 가 있는 작은 이모가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한번 가서 실습을 해보라고 권했다고 한다. 

어머니 성화에 남동생과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요양병원엘 갔다. 직접 가서 현장을 눈으로 봐야 단념을 하시지 싶었기 때문이다. 남동생 역시 착하기도 하거니와 유교정신이 투철한지라 자식은 어머니를 끝까지 곁에서 모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머니가 병원을 둘러보더니 너무 좋아하며 단번에 입원하겠다고 하셨다. 아무리 말려도 고집을 피우시기에 우선 한 달만 있어보는 조건으로 입원을 시켰다. 그리곤 보름이 지났다.

병실 안은 얼핏 봐도 팔순이 넘은 환자들이다. 대부분이 치매환자라고 한다. 어머니도 팔순이 넘었지만 연세보단 젊어서 그런지 노인들과는 모습부터가 다르다. 노인들을 보면 표정이 거의 없다. 치매가 있어서 그런가도 싶지만, 설령 정신이 온전하다 해도 저 연세에 좋고 싫은 게 있으랴. 인간은 행복을 느껴야 웃음이 나오고, 무언가 억울하고 서운해야 눈물이 나오는 법이다. 그러나 이젠 중앙제어장치인 중추신경과 함께 자극을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기관들이 제 수명을 다해버렸으니, 이성적인 판단이나 희로애락 감정이 제대로 일어날 수가 없는 게다. 그냥 남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정해진 시간에 배급되는 하루 세끼 식사를 몇 술 목구멍으로 넘기는 게 고작일 터. 벽에 걸린 TV에서 들리는 세상소리나 방문객들이 나누는 대화는 이들에겐 공해일 뿐이다. 

어머니 덕에 요양병원을 드나들면서 인생공부를 많이 한다. 노인들은 젊은이들만큼 말도 잘 못하고 표현도 어눌하다. 대신 눈으로 대화를 하고, 미소로 답을 한다. 누군가가 신음소리를 내면 모두들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고, 누구든 방문객이 오면 다들 반가운 눈으로 맞이한다. 죽음을 앞두고 여기 한 방에 있다는 그 자체가 동지애를 불러일으키고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하는 걸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을 나누고 마음을 전하는 게 언어를 통해서만 되는 건 아닌가보다. 어쩜 내가 첫 방문 때 입구에서 느꼈던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는, 내가 이미 입력해놓은 선입관 때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온다는 전화에 어머니는 이미 복도에 나와서 기다리고 계신다. 휴게실에 나를 데리고 가서 소파에 앉히곤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신이 나셨다. 그러고 보니 요양병원에 오고 나서 어머니는 더 건강해지셨다. 어제는 자원봉사대가 와서 춤을 배우고, 오늘은 요리를 배웠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 혼자 있으면 위급한 상황이 생기기도 하거니와, 그로 인해 우울증이나 치매가 오기 쉽다고 한다. 모두가 출근하고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집안구석에서 날마다 골동품처럼 뎅그렁하게 혼자 빈 집을 지키며, 아들을 기다리느라 시계만 보고 계셨던 어머니께 우리 모두는 불효를 한 게 아닐까하는 죄책감이 든다. 말벗이 그리워 이따금씩 거시는 전화도 바쁘다는 이유로 제대로 이야기를 받아주지 못하면서, 정작 어머니가 외롭고 다급할 때 함께 해주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그런데도 단지 ‘불효자’란 소리를 듣기 싫어서, 고작 우리들 마음이 편하기 위해서, 그 동안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시는 걸 거부한 우리들이 너무 이기적인 게 아닐까?    간호사실에 들러 어머니 동태를 물었더니, 환자들 중 어머니가 제일 적응을 잘하고 주변 노인들 시중까지 들어준다고 칭찬을 한다. 모처럼 어머니가 활짝 웃으시는 모습을 본다. 어머니가 저렇게 행복하면 이게 효도하는 길일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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