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장려상] 마디진 어머니 사랑④
[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장려상] 마디진 어머니 사랑④
  • 이동소 작가
  • 승인 2021.10.29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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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소 작가
이동소 작가

5. 노모와의 생이별

60여 년 동안 껌딱지처럼 붙어살던 구순 친정 노모가 서울로 이사를 가신다. 친구들은 다들 일생 돌보던 어머니가 이사를 가니 앞으론 편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내 마음은 그런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이 나는 지금 멍멍하기만 하다. 혹부리가 떨어져나갈 자리에 벌써부터 진물이 줄줄 흐른다.

올케가 5년 전에 서울에서 사업을 벌였는데 남동생은 따라가지 않고 어머니랑 부산에 남았다. 5남매 중 세 딸들이 다 부산에 있으니 노모는 물론 남동생도 고향 같은 부산을 떠나기가 싫었던 게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경기가 안 좋은데다 언제까지나 부부가 떨어져 살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이참에 남동생이 서울로 가서 올케가 하는 일을 돕기로 결심한 모양이다. 

1남 4녀 중 나보다 다섯 살 아래인 남동생은 나랑 코드가 잘 맞다. 감수성이 예민한데다 음악이나 문학을 좋아하는 것은 물론, 현실감이 없고 낙천적인 것도 꼭 닮았다. 내가 생각할 때, 남동생이 5년 전에 아내를 따라 곧장 서울로 가지 않은 것도 실은 나랑 헤어지는 게 싫었던 게 아닐까싶다. 하긴 대학생시절부터 내가 가장이 되어 동생들 공부를 시키고 가정경제를 꾸려나갔으니, 어머니나 동생들에게선 내가 보호자였던 셈이다. 그러니 세월이 흘러 다들 훌쩍 나이가 들어서도, 어머니와 남동생은 집안일은 뭐든 나랑 의논을 했고, 나 역시 그게 당연한 내 일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아버지가 일찍 고혈압으로 쓰러져 몸져누우시는 바람에 어머니는 5남매를 키우기 위해 고생을 많이 하셨다. 내가 인생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을 하고 한참 회의를 느낄 사춘기 때도 어머니는 장사를 하느라 늘 집을 비우셨다. 자존심이 강한 어머니는 아무도 자신을 몰라보는 외진 산골이나 섬으로 장사를 다니셨던 것이다. 국제사장에서 아기들 옷을 떼다 팔기도 하고, 여자들의 긴 머리카락을 잘라서 사오는 소위 ‘달비장사’를 하셨다고 한다. 처음엔 이웃의 친구랑 둘이 다녔지만, 혼자 가야 수입이 좋은 걸 생각해서 나중엔 혼자서 다니셨다. 이제 서른 줄의 젊은 아낙네가 홀로 낯선 섬에 들어가 물건을 팔고 그날그날 끼니와 잠자리를 구걸해서 목숨 줄을 연명했을 걸 생각하면 새삼 목이 멘다. 자식들을 잘 먹이고 공부를 끝까지 시키겠다는 서슬 퍼런 염원과 꿈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무적함대 같은 그런 어머니 모습을 보고 자랐기에 나 역시 억척스런 기질을 가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한 사람의 일생을 돌아보면 보호자가 수시로 바뀐다. 어린아이 땐 당연히 부모가 보호자가 된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조직과 사회에 몸을 담고 살아가면서 기대고 살아가는 보호자는 수시로 바뀐다. 내가 한창 공부를 할 즈음엔 먼저 결혼한 언니랑 형부가 나의 어버이가 되어주었다. 그리곤 대학을 들어가면서 부턴 내가 집안을 어깨에 메고 뛰는 가장이 된 것이다. 연약한 여자로서 때로는 힘이 들고 버겁기도 했지만, 나는 한 번도 내 처지를 비관하고 원망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흙 숟가락으로 태어나 오늘의 나로 성장하기까지 그들로부터 내가 받은 게 너무 많은 걸 알기에, 어머니가 당신의 목숨까지 내걸고 나를 지키고 키워준 사랑을 알기에, 나는 감히 힘들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세월 따라 장사가 없다고 했던가. 그렇게도 현명하던 어머니가 이제 정신이 왔다 갔다 하니 말이다. 대뇌는 인간의 모든 행동과 감정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컴퓨터의 본체에 해당한다. 차라니 몸의 어느 부속 하나가 망가지거나 고장이 나면 교체를 하거나 안 되면 불편함을 감수하면 된다. 그런데 중앙제어장치가 고장이 나니 인격이 흔들린다. 그렇게 품격 있고 고상하던 어머니가 하루아침에 어린아이가 되고 판단력이 흐려지니 이보다 더 큰 벌이 어디 있으랴싶다. 오늘도 당신이 가진 보석들을 누가 훔쳐갔다고 한바탕 소란을 피우다가다가 이제 막 새록새록 잠이 드셨다. 차라리 이 병을 내가 대신 앓을 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저께는 단오절이자 어머니 생신이었다. 형제들이 모여 밖에서 식사를 하고나서 모두 어머니 집으로 가서 이삿짐을 챙겼다. 딸들이 모두 집에 모이자 어머니는 너무 행복해하셨다. 한참 어머니 옷가지를 정리를 하고 있는데 왜들 내 옷을 정리하느냐고, 내가 다음에 천천히 할 테니 오늘은 앉아서 같이 놀자고 하셨다. 하는 수 없어 서울로 이사를 간단 말을 드리자 그때부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내 손을 붙들고, 내가 너를 안보고 어찌 살라고 하느냐고 대성통곡을 하셨다. 올케가 새 집에 어머니 방을 예쁘게 꾸며놓았으니 체면상 잠시 올라가 계시면 내가 다시 모시러 간다고 어린애처럼 달래었더니 그제야 울음을 그치셨다. 순간, 치매증세가 더 심해져 이런 상황도 인지를 못하시면 어머니가 행복하실 텐데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망각이란 때론 좋은 것 같다. 어머니가 정신이 맑다면, 일생 함께 붙어있던 나랑 헤어지는 걸 잠시도 못 견디실 게다. 정신이 돌아왔을 땐 슬퍼하다가도 10분만 지나면 뇌에 DEL키를 누른 것처럼 다 지우고 원상태를 회복하신다. 그게 슬프면서도 이런 땐 얼마나 댜행인가 싶다.

오늘은 어머니를 우리 집에 모시고 왔다. 이사 가기 전에 하룻밤이라도 어머니랑 보내고 싶어서다. 함께 밥을 지어 먹고, TV를 보며 놀다가, 이제 욕조에 물을 가득 받아 몸을 씻기러 들어간다. 어머니 목욕을 시키는데 오늘따라 납작한 엉덩이와 앙상한 다리가 너무 애처롭다. 한쪽으로 계속 누워서인지 한쪽 엉덩이엔 까만 피멍까지 맺혀있다. 차마 못 볼 걸 본 것처럼 가슴이 아린다. 어머니가 정신이 온전할 땐 나랑 자주 목욕을 했다. 그땐 몸이 이렇게 여위지는 않았다. 어느새 마른 갈대처럼 되어버린 어머니 몸을 보며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머니는 아기처럼 재잘거리며 행복해하신다. 어릴 적에 외할머니가 당신 목욕을 시켜주시던 생각이 난다고 하시는 걸 보면, 지금 당신은 아기로 돌아가 있는 게다.

참으로 얼마만이던가. 어머니랑 단둘이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 게…. 내 손을 만지작거리며 엄마 품에 안긴 아기처럼 행복해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사는 걸 핑계로 그 동안 좀 더 함께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울컥하고 밀려온다. 부모님을 모두 떠나보낸 남편이 ‘돌아가시고 후회하지 말고 어머님 살아계실 때 잘하라.’고 하던 말이 새삼 죽비처럼 가슴을 콕콕 찍는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세상파고를 거침없이 돌진하던 전함이, 이제 엔진도 녹슬고 나침반도 고장 난 채 무인도에 닻을 내리고 녹슬어가고 있다. 남편 없이 5남매를 훌륭하게 키워낸 여장부! 그렇게 싱그럽고 곱던 얼굴엔 세월이 할퀴고 간 상흔이 어지럽다. 피부는 마른 버섯처럼 푸석거리고, 푹 패인 주름 골짜기엔 지난한 어머니의 삶의 일기가 빼곡하게 박혀있다. 전쟁 같이 한바탕 장사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에 귀환 장수처럼 의기양양하시던 모습, 내가 일류학교인 K여중에 입학했을 때 세상을 얻은 듯한 뿌듯한 미소로 기념사진을 찍던 모습, 내 첫아이를 등에 업고 버스 정류장에 퇴근하는 나를 기다리시던 모습도 그 속에 있다. 

음악을 좋아하던 어머니가 돈을 벌어 처음으로 장만한 전축에서 듣던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을 들려달라고 하신다. 함박꽃 같은 미소를 지으며 따라 부르시더니 어느새 잠이 드셨다. 그 옛날 철통방어로 나를 지켜주던 울타리, 든든한 바위로 버팀목이 되어주시던 어머니다. 그런 나의 보호자가 이제 다섯 살배기 아기로 돌아와 내 품안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다. 

모 가수의 「인연」이란 노래가 흐른다. 

  약속해요 이 순간이 다 지나고 다시 보게 되는 그날
  모든 걸 버리고 그대 곁에 서서 남은 길을 가리란 걸
  인연이라고 하죠. 거부할 수가 없죠.
  내 생에 이처럼 아름다운 날 또 다시 올 수 있을까요
  고달픈 삶의 길에 당신은 선물인 걸. 
  이 사랑이 녹슬지 않도록 늘 닦아 비출게요. 
                   (중략)

인간의 한 생生은 수많은 인연으로의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 아닐까? 태어나면서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이 시작되고, 세상 속에 나아가 성장하면서 무수히 많은 조직과 공동체 속에서 인연을 가지며 만남과 이별을 되풀이한다. 그러다가 나중엔 이승의 모든 이들과 사슬을 끊고 조용히 떠난다. 그러니 이별을 마냥 슬퍼하고 가슴 아파할 일이 아닌 게다. 유한한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의 삶의 여정이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라면, 조금은 쿨하게 이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언젠간 나와 연을 맺은 세상의 모든 이와 이별해서 홀연히 훌훌 이승을 떠날 그날을 대비해서 말이다. 그런데도 나는 마음이 여려서인지 아직도 이별에 약하다. 잠시라도 나와 연을 맺고 마음을 준 대상은 그게 사람이든 사물이든 헤어지기가 아쉽다. 하물며 일생을 붙박이처럼 함께 살아온 엄마는 말해서 무엇하리. 여태 함께 살았으니 그게 당연한 현실이 되어버린 게다. 한 번도 어머니랑 헤어지는 걸 상상해본 적이 없다. 어쩜 겉으론 내가 어머니 보호자이지만, 기실은 내가 어머니 그늘 아래서 이제껏 힘을 얻고 살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새삼 어머니랑 맺은 모녀의 인연에 감사할 따름이다. 새로 태어난다고 해도, 나는 이 인연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 그 땐 내가 어머니의 어머니가 되어 이승에서 받은 은혜를 원 없이 다 갚아드리고 싶다.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남은 삶, 어머니가 우리와 함께 착한 아기처럼 살다가 평화롭게 돌아가시기를…….

언젠가 죽녹원에 갔을 때 어머니를 생각하며 지은 시를 어머니께 바친다.


마디진 어머니 사랑

죽녹원의 푸른 대숲
바람결에 춤춘다.
하늘을 향해 곧추선 기상,
사군자의 한 자리,
제 잘난 듯 우쭐거린다.

다져진 흙길 위에
볼품없이 불거진 뿌리
숱한 인간과 맹수들의 발자국
온몸으로 버티어온
인고의 세월이
굳은살로 박혀있다.

시린 발 바위땅에 디디고
비바람, 눈보라 맨몸으로 맞으며
자양분 빨아올려
줄기와 잎 살찌우고
찬란한 꽃 피워내는
숭고한 천명天命

마디마디 굵어진 손가락
울퉁불퉁 튀어나온
짙푸른 힘줄,
자식 위한
조건 없는
어머니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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