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부모 돌봄 긴 여정, 사랑보다 중요한 일 뭘까요?"
"치매 부모 돌봄 긴 여정, 사랑보다 중요한 일 뭘까요?"
  • 원종혁 기자
  • 승인 2022.06.2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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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벤져스 2편] 곽용태 효자병원 신경과장/연세대 외래교수

드라마 속 영웅들은 결정적인 순간 신기와도 같은 초능력을 발휘해 박수 갈채를 몰고 다닌다. 어쩌면 사랑하는 이를 지켜내거나 약자를 보호하는 일에는 타고난 비범함이 필수조건일 수 있겠다는 서글픈 생각까지 들게 한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내는 현실, 참 많이 다르다. 타인을 돕거나 보호하는 일로 세간의 조명을 받는 이들 대다수가 소소한 주변 보통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귀감이 되고 '나도 한 번쯤…'하는 자극까지 주는 것 아닐까.

고령화 시대를 사는 동안 치매라는 질병을 더는 외면할 수 없는 사회적 상황이 됐다. 블록버스터 영화 '어벤져스'의 수호자들 마저도 미처 신경쓰지 못한 일, 지역사회 의료 취약자들을 묵묵히 돕고 보살피는 우리동네 '치벤져스'들을 디멘시아뉴스가 대신 찾아 나섰다.

"품위를 지킬 때 이길 수 있어(You only win when you maintain your dignity)." 

인종차별에 대한 실화를 바탕으로 인간의 존엄이란 화두를 담아낸 영화 '그린북(Green Book)'에 나오는 대사 중 하나다. 고용인(흑인)과 피고용인(백인)의 관계로 시작된 영화 속 두 남자의 관계는 짧지 않은 여행을 통해 함께 변화하게 된다.  

치매 전문병원인 용인 효자병원 진료실에 만난 곽용태 신경과장(사진·연세대 외래교수)은 최근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같은 키워드를 꺼냈다.

사진: 진료실에서 곽용태 교수.

곽 교수는 "치매는 삶의 한 과정이다. 환자에 얼마나 잘해 주었느냐보다 '어떻게' 했는지가 중요한 문제"라며 "태어날 때 존경받고 존중받았듯 부모의 마지막 길을 품위와 존엄(dignity)을 가지고 보낼 수 있는지가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랑과 증오는 한 끗 차이다. 사랑을 주다 지치면 증오가 되고 결국 죄의식이라는 상처를 깊이 남기게 마련"이라며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은 힘들게 사랑만 주려 하지 말고 자주 자신을 돌이켜 봤으면 한다. 어느 순간 생긴 증오감으로 인해 되레 환자 치료에 전환점을 맞게 되기도 한다"고 조언했다.

온전한 사랑이라는 힘든 감정적 노력을 강요하기 보다는 치매 환자의 존엄을 되짚는 일이 길고 긴 환자 돌봄에 중요한 역할일 수 있다는 얘기였다. 

20년 넘게 치매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곽 교수는 질병이 가진 다채로운 색깔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다.

그는 "모든 질환이 다양한 증상과 원인을 가지고 있다. 다만 치매가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면 대부분 완치가 불가능한 질병이라는 점"이라며 "심지어 치료적 개입이 이뤄진다고 해도 증상완화나 질병 자연경과의 변화를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치매라는 질환을 단순히 '병'으로만 바라봐야 하는가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곽 교수는 "예를 들어 100세가 넘어 치매가 발생한 경우라면 대다수 사람들은 그저 노화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보다 빠른 60~70대 연령에 발생한 치매 환자는 큰 병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퇴행성 치매를 노화의 한 과정으로 생각할 여지도 있지만, 이 부분은 굉장히 철학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간이 가장 다루기 어려운 뇌의 퇴화를 막는다는 것 자체가 죽음이 없어진다는 말과 동일하게 해석될 수도 있다"며 "치매 환자를 대면하고 사망할 때까지의 전 과정을 마주하는 의료진으로서 여러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그런 그도 지난 십수년 간 치매 진단과 관리 분야에는 눈에 띄는 변화들이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과학적 진보와 엇갈려 진료현장에 환자 스킨십이 줄어들고 있는 부분에는 아쉬움을 표했다.

곽 교수는 "그동안 뇌과학 영역은 엄청난 발전을 보였다. 정작 문제는, 아는 것은 많아졌는데 환자에 해줄 수 있는 일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과거에는 환자 문진과 신경과 전반적인 검진을 통해 환자 개별적인 문제에 집중해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했다"면서 "지금은 검사는 늘었지만 환자와의 스킨십은 줄었다. 극적으로 병의 경과를 바꾸지 못하는 질병에선 이런 접근법이 환자나 보호자 모두에게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치매 환자 관리에는 해당 질환을 바라보는 의사로서 가진 소신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치매 전문가들이 놓치는 부분 중 하나가 치매를 전문으로 한다는 것이다. 마치 정신과 전문의가 우울증을 전문으로 진료를 본다는 것과 같은 이치"라며 "다양한 상황에 놓인 증상을 좁혀 바라봐선 안 된다. 치매 환자 대부분은 고령이다. 치매를 치료하는 게 아니라, 고령 환자를 치료한다는 얘기"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항암치료 분야만 봐도 환자 생존율이 올라간 것은 치료제가 다양하게 개발된 측면도 있겠지만 보존적 치료(supportive care) 환경이 개선된 것도 크다"며 "치매 분야 역시 근본적인 치료법이 없기에 환자와 보호자가 가진 어려운 점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보존치료 환경만 좋아져도 삶의 질이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끝으로 치매 질환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여전히 낮고, 사회적 소통이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도 두 가지 문제점을 언급했다.

그는 "치매 진단이 늘면서 질환에 대한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진 기간이 여타 다른 질환들에 비해 짧았다"면서 "이렇게 환자가 늘다보니 환자나 보호자, 의료진 관점에서 정책을 만들고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표(vote)를 염두에 두고 탑다운 방식으로 일처리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치매안심사업이 대표적이다. 사업의 주된 목적이 치매 환자를 조기에 발견해내자는 것인데 과연 옳은 방법인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환자나 보호자가 실질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언가를 파악해야만 한다. 이 부분이 간과되는 경향이 많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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