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간병의 고독과 공포, ‘고립사’를 막아야 한다
치매 간병의 고독과 공포, ‘고립사’를 막아야 한다
  • 황교진 기자
  • 승인 2024.04.09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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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안심센터 혁신 필요...치매 공생사회 실현이 치매 극복의 길
치매 환자는 존엄성을 유지하고, 돌봄자는 희망을 잃지 않는 사회

어제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90대 어머니가 치매로 자연사하고 불과 몇 시간 뒤 어머니를 돌본 60대 두 딸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보도됐다. 세 모녀가 노모의 치매로 인한 생활고를 겪었는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복지 대상자는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두 딸의 나이가 60대라는 점에서 ‘노노(老老) 돌봄’에 대한 한계와 부담이 사회적 고립감으로 이어졌을 것으로 파악된다.

해당 지역구에 치매안심센터가 있지만, 이 노모는 치매 환자로 등록되지 않았다는 점을 사건을 보도한 매체마다 언급했다. 치매안심센터를 통하면 치매 환자를 위한 돌봄과 지원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데 마치 홍보가 부족해서 혜택을 못 받았다는 인상이다. 그러나 왜 그들은 치매안심센터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을까? 60대 두 딸은 왜 고립된 채로 지내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바로 극단적 선택을 했을까? 근본적 원인과 문제를 살펴보자.

급격한 고령화에 따라 늘어나는 치매 환자 중 상당수는 보호자가 큰 부담을 지고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 치매 가족을 돌보는 가족의 비극은 우리 사회에서 반복 중이다. 상당수는 사회와 관계가 끊어진 상태로 고통의 짐을 지고 견디며 극심한 우울과 고립을 겪고 있다.

이 비극적 죽음은 ‘고립사’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외로운 죽음을 ‘고독사’, ‘독거사’, ‘무연고 사망’ 등으로 칭하지만, 사회적 단절과 고립된 상태라는 측면에서 ‘고립사’의 의미가 타당하다. ‘고립사’는 우리 사회가 당면한 주요 이슈이며 이에 대한 대응책이 절실히 필요하다.

우선 ‘치매안심센터’에 대해 보건복지부 소개 자료를 펴 보면 “치매 예방, 상담, 조기진단, 보건·복지 자원 연계 및 교육 등 유기적인 치매 통합관리 서비스 제공으로 치매 중증화 억제 및 사회적 비용을 경감, 궁극적으로는 치매 환자와 그 가족, 일반시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라는 목적을 가진 곳으로 설명한다.

치매안심센터는 문재인 정부의 주요 공약 중 하나인 ‘치매국가책임제’의 임무를 수행하는 기관이다. 2006년 연구기관의 성격으로 서울시광역치매센터가 설치된 뒤, 실무기관인 치매지원센터는 2007년 4개 자치구 개소로 시작됐다. 2008년 7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전면 실시 후, 2009년 14개 자치구 개소로 확대됐고, 2019년 전국에 256개를 설치했다. 치매 인프라 구축, 치매 서비스 제공 및 관리, 지역 치매 역량 강화 등 3개 영역의 운영평가를 받아왔다.

치매안심센터는 우리 사회 치매 인구의 삶의 질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있을까? 현실은 어떤지 치매안심센터에서 15년간 일해 온 현장 관계자에게 들어봤다.

 

마음산책연구소 제공
마음생각연구소 제공

 


Q1. 이번 세 모녀 고립사의 원인으로 치매안심센터의 홍보 부족을 언급하는 관점이 있다.

지자체 치매안심센터는 현재 백화점식 사업을 하고 있다. 대부분 인력이 치매 조기 발견 사업에 집중돼 있다. 발굴만 하고 대책이 없는데 왜 홍보 부족에 책임을 지우는 것인가. 홍보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치매안심센터의 현재 기능은 치매 검진을 통한 치매 환자 조기 발견과 치매로 진단받은 사람을 치매안심센터에 등록하는 데 있다.

중요한 건 치매 환자 조기 발견을 적극적으로 하고 치매로 진단받은 사람을 모두 등록한 뒤 후속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노인을 비롯한 모든 사람에게 의무적으로 치매 검사를 해서 진단받아 등록하는 것이 치매 해결책인가? 오히려 치매에 관한 두려움과 기피가 더 생기고 있다는 점이 간과되고 있다. 정작 중요한 진단 그 이후에 대해서는 거의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Q2. 치매안심센터는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가?

가장 이상적인 것은 치매안심센터의 인력을 대폭 늘리고 사업비를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것이나, 정부 재원 부족으로 불가능하다. 이에 치매안심센터의 기능을 치매 케어 매니지먼트로 전환하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핵심은 치매 환자와 공존하는 사회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고 본다. 현재의 현판만 붙인 이상한 안심마을사업의 하드웨어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중심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의 치매안심센터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 ‘치매 환자 발굴’에 머물러 있지 ‘치매 환자와의 공존’이 아니다.

Q3. 치매 환자와의 공존을 위해 시급한 것은 무엇인가?

일본의 인지증기본법을 참고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치매 환자와 그 가족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법을 만들었다. 한국은 치매 환자를 마치 정신질환자 발굴 후 안전을 이유로 폐쇄된 시설에서 관리 감독하는 불행한 한계에 머물러 있다.

치매 치료비 지원, 조호물품 지원 등의 복지정책 효능감은 미비하다. 조호물품 품질관리도 부족하다는 이슈가 있어 지원하면서 욕을 먹기도 한다. 치매조기검진사업을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 주도로 바꾸고, 치매 관리 정책은 치매 환자가 살아온 지역에서 진단받기 전과 같은 일상을 유지하고 사람을 만나는 외부 활동이 가능하게끔 돕는 등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반영한 수요자 중심 정책으로 개혁해야 한다.

Q4. 현장에서 들은 치매 가족의 목소리를 소개해 달라.

KBS <시사기획 창>에서 방영된 ‘마음의 흐림과 마주하다 – 치매’에 달린 댓글이 의미심장하다. “치매 환자의 일상을 지켜주세요. 장애인, 비장애인이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하듯이 치매 환자도 똑같습니다. 모든 인간은 같이 어울려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치매 정책은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즉, 중요한 것은 진단과 예방, 치매안심센터 홍보와 환자 등록이 아니라 공존과 지지 기반 마련이다.


현재의 치매안심센터는 치매 가정 한 곳 한 곳을 살피는 체계가 아니다. 한마디로 진단 서비스 위주의 지원센터다. 현장의 의견을 청취한 뒤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는 일본의 고립사 해결 뉴스를 찾아 보았다.

일본에서 고독사 공포와 불안을 떨친 마을로 소개된 곳이 있다. 주민 4천여 명의 도쿄도 다치카와시 오야마 단지로 4명 중 한 명이 65세 이상 고령자로 구성된 마을이다. 그런데 이 마을은 전통춤, 노래 교실, 꽃꽂이 등 노인을 위한 소모임이 180여 개나 된다. 각종 행사가 끊이지 않아 외로운 노인이 없다. 원동력은 마을자치회의 힘이다. 주민들의 자치회 가입률은 100퍼센트로 일본 마을 평균치의 두 배다. 주차장 관리, 공원 청소 모두 고령자 주민 스스로 해결하며 용돈과 건강을 챙기고 친구를 사귄다. 젊은이들과 교류하면서 일을 하는 동안 입과 손발을 계속 사용한다. 우편물이 쌓이는 등 이상한 기운이 감지되면 주민자치회에 바로 연결한다. 신문 배달, 우유 배달 직원과 연계해 있다. 지난 10여 년간 고독사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 명 한 명을 제대로 돌보는 마음으로 아무도 어려움을 겪지 않게 하는 것이 이 마을공동체의 목표다.

오야마 단지처럼 고립사를 관리하는 것은 이웃에 누가 사는지 관심이 없는 아파트 중심 마을의 우리나라에선 적용이 어렵다. 고립이 치매 발병과 중증 치매로 악화하는 주요 원인인데도 우리 사회는 치매 환자의 활동성을 배려하지 않는다. 치매 노인, 건강한 노인, 젊은 세대가 공존하며 함께 지내는 것은 불가능할까? 그런데 돌아보면 우리 과거의 마을은 그렇게 지냈다. 마을에 치매를 앓는 노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으며, 배회하는 모습이 감지되면 누구라도 집에 귀가하도록 도왔고, 밖에서 만나면 안부를 묻고 인사를 나눴다. 과거의 우리 마을에서는 휴먼 터치가 있었지만, 현재 도시와 시골 마을 모두 그런 휴먼 터치가 사라져 갔다. 도시 거주자는 집값에 따라 자주 이사를 다니고, 같은 아파트 주민 얼굴도 모르고 산다. 도시는 마을공동체 개념에 벗어나 있고, 시골은 고령자 위주로 구성된 지역이 대부분이다. 집배원과 배달부를 통해 고립사하지 않도록 미리 감지하는 아이디어가 시행되기도 하지만 서로에게 관심이 적은 현재의 풍토에서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지 의문이다.

 

마음산책연구소 제공
마음생각연구소 제공

현재의 우리 치매안심센터의 한계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일본 치매 정책 사례가 있다. 2022년 10월 일본은 치매 700만 명 시대에 70대 치매 발병을 향후 10년간 10% 줄이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치매 억제책이다. 그 방법은 고독하고 사회 활동량이 적어 치매 걸릴 가능성이 높은 노인의 생활환경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발표는 일본 치매 가구의 큰 반발을 불러왔다. 이유는 치매 환자와 ‘공생’이 아닌 ‘예방’에 담긴 문제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치매 환자의 증가세로 위기의식을 느끼며 매년 급팽창하는 사회보장비를 억제하려는 목적이 앞섰다. 2030년 사회보장비가 210조 원을 넘어설 거란 예측이 나온 뒤 해결책이 치매 환자 억제책이다. 환자 가족들은 “정부의 치매 예방 강조는 편견을 조장한다”고 우려했다. ‘치매 예방’의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채로 목표치만 제시됐다. 예방 중시는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의 책임을 무겁게 한다. 예방을 강조하면 “치매에 걸린 사람은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편견이 생겨난다. 또한 치매 감소 목표치 설정은 예산 절감을 위한 편의주의적 발상이란 비판에 직면하게 했다.

이러한 가운데 대두한 새로운 정책이 치매 환자가 살기 쉬운 사회 건설을 위한 ‘공생’이다. 공생을 위해 표현 하나하나에도 배려했다. 대표적으로 ‘치매에 걸린다’는 표현 대신 ‘치매 진행을 늦춘다’는 표현을 쓰며 치매 가족의 심정을 참작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 2007년 일본에서 가족 모르게 집을 나간 91세 치매 노인이 열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철도 회사는 이 노인을 돌봐온 85세 아내와 아들에게 대체 열차 투입에 들어간 비용 등을 포함해 당시 한화로 7천900만 원을 배상하라고 소송을 냈다. 치매 노인이 선로로 내려가 사고가 났고 가족들이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모두 철도회사 JR도카이의 손을 들어줬다. 1심은 치매 남편과 함께 살던 아내와 떨어져 사는 아들에게, 2심은 아내에게만 치매 노인을 ‘감독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해 배상액을 물었다. 배상액은 철도회사 요구액의 절반인 우리 돈 4천만 원 정도였다.

1, 2심 판결 뒤 일본의 치매 환자 가족들은 치매 노인이 몰래 집 밖으로 나갈까 마음을 졸였다. 한 치매 남편을 돌보는 보호자 아내는 “남편이 숨지면 자책감에 시달릴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내게 ‘잘 돌보지 않은 당신 잘못이야’라고 하면 자살해 버리겠다”라고 말했다.

결국 재판부는 “배우자라는 이유만으로 치매 남편에 대한 감독 의무를 지울 수 없다. 또한 간병하지 않은 자녀에겐 책임을 묻지 않고, 간병을 한 자녀에게 처벌을 내리는 것은 부당하며 이는 사회에 불효를 조장할 수 있다. 철도사 배상은 공적 보험으로 해결해야 마땅하다. 치매 환자가 밖으로 나가게 한 것을 과실로 판결하면 치매 환자를 감금하란 소리와 다름없다”며 아들은 물론 아내에게도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마음산책연구소 제공
마음생각연구소 제공

이 판결은 치매 환자의 가족 간병 비율이 높은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노케어로 극단적 선택을 한 60대 자매의 사례처럼 고립된 상태로 간병하다가 환자가 사망하면 자책감을 비롯해 더는 사회에 들어가 살아낼 희망이 없는 상태에 처한다. 10년 이상 가족을 간병한 보호자의 삶은 경험자가 아니면 헤아리기 어렵다. 왜 치매안심센터에 연락하지 않았냐고 묻기 전에 그리고 치매안심센터는 왜 홍보전략이 없냐고 질책하기 전에 근본적인 문제와 원인이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예방과 숫자 줄이기보다는 공존과 지지 체계 수립이 우선이다. 치매안심센터는 진단 명단 발굴 위주가 아닌, 치매 상담 사업과 사례관리, 치매 파트너와 전문 자원봉사자 양성, 종사자 전문성 강화와 관계기관 종사자 지원사업으로 확장 전환할 필요가 있다.

치매는 진단받지 않은 사람에 비해 기대 수명을 절반으로 줄이지만, 암처럼 급격하게 수명을 단축하지 않는다. 그러나 환자가 정상 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고, 많은 자원이 돌보는 일에 투입하게 한다. 치매 간병으로 가족 중 귀한 노동 자원이 묶이는 사례 증가로 국가 경제의 위기도 초래한다. 일본은 2023년 6월 치매 환자와 공생 방안 확립을 위해 ‘공생사회 실현을 위한 인지증(치매) 기본법’을 제정했다. 치매 환자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희망을 품고 살 수 있도록 치매 시책을 종합적으로 추진한 것이다.

치매 환자의 기본 인권을 보장하려면 치매 이름부터 생각해 봐야 한다. 치매는 19세기 후반 일본 정신의학자인 쿠레 슈우조 교수가 미국의 ‘Dementia’, 독일의 ‘Demenz’를 번역한 것에 유래해 만든 병명으로 ‘어리석다’는 의미다. 일본은 2004년 후생노동성의 주도로 치매 용어를 ‘인지증’으로 변경했고, 인지증의 바른 인식을 위한 대국민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치매에 관한 올바른 지식과 치매 환자의 깊은 이해와 존중을 위한 양질의 보건의료서비스, 복지서비스를 끊임없이 제공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세 모녀 노노케어 사건에서 치매안심센터 홍보를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치매안심센터 존재 목적을 재정비하고, 치매인식개선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국민 개개인이 개성과 능력을 발휘하는 활력 있는 사회가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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