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Brain&Life" 4-5월호, 기억력과 실행 능력 장애가 생겼을 때 운전에 관한 권고
지난 4월 22일 경기 성남시 판교노인종합복지관 주차장에서 90대 고령운전자가 차를 몰다 행인을 덮쳐 한 명이 사망하고 세 명이 다쳤다. 4월 23일에는 경기 용인시의 한 농협 건물로 70대 운전자가 몰던 승용차가 돌진했다. 고령운전자의 교통사고가 연달아 일어나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나이 많으면 운전 못하게 해야 해” 이런 소리가 터져 나오는 현실이다. 그러나 고령자는 “100세 시대인데 벌써 운전도 못하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어야 하냐”는 불만의 소리가 높다.
고령운전자의 교통사고는 급격한 증가세다. 도로교통공단의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에 따르면 2022년 65세 이상 노인 운전자가 낸 사고는 3만 4,652건으로 집계됐다. 2005년 집계를 시작한 후 최고치다. 2023년 노인 운전자 사고 건수 또한 14% 늘어난 3만 9,614건이었다. 2년 연속으로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러한 추세에 여러 지자체가 고령운전자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만 65세 이상의 운전면허증을 자진 반납하는 고령자 면허 반납 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나 성과는 미미하다. 서울시는 올해 3월 7일부터 운전면허증을 자진 반납하는 70세 이상 어르신 2만 9,310명을 대상으로 10만 원이 충전된 선불형 교통카드를 지급하고 있다. 지난 2월 29일 은평구 연서시장 앞에서 79세 운전자가 14명 사상자를 낸 추돌사고를 일으키자 예년엔 4월부터 지급하던 것을 올해 한 달 앞당긴 것이다. 다른 지자체들도 10만~30만 원 상당 교통카드나 상품권을 면허 반납 대가로 준다. 그러나 반납률은 2%대를 넘지 못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 서부면허시험장에 면허 갱신을 위해 찾아온 79세 A씨는 “내 안전을 위해 면허 자진 반납을 권유한 아들에게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고 약속하고 면허 갱신을 받으러 왔다”며, “노인네가 집에만 있으면 우울하다. 심심하니까 콧바람 쐬러 차 끌고 근처라도 가고 싶고, 소일거리도 해야 산다”며, “어떻게 10만 원에 그 즐거움을 반납하겠냐, 100만 원을 줘도 안 한다”고 말했다.
2019년 1월 1일 개정 시행된 도로교통법에 따라 만 75세 이상 고령운전자의 운전면허 갱신 및 적성검사 주기가 기존 5년에서 3년으로 단축됐다. 게다가 면허 갱신 시 치매선별검사와 2시간가량의 고령운전자 안전교육을 받아야 한다. 치매안심센터는 선별검사를 받으러 온 고령운전자의 불만과 하소연으로 시끌시끌하다.
한국리서치는 지난 4월 7일~10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고령자 운전 및 면허 반납 제도에 대한 인식 조사를 진행했다. 대다수는 나이 듦에 따라 운전 능력이 감소한다는 데 공감했다. 응답자의 82%가 ‘운전자의 나이가 많을수록 운전 수행 능력이 저하되며, 주행 시 일어나는 각종 돌발상황에 대처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다만 ‘고령운전자라도 개인마다 노화의 속도나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데 81%의 응답자가 동의했다.
‘앞으로 기준 나이가 되면 반납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이 73%로 고령자 면허 반납 제도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으나, 면허 반납 의향이 없는 응답자들은 ‘운전하는 데 건강상 문제가 없을 것 같아서’(52%)를 꼽아 주관적인 건강 인식이 면허 반납 여부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읍면지역 거주자의 면허 반납 반대 이유로 ‘자가용 외에 마땅히 이용할 만한 다른 이동수단이 없다’(66%)는 점도 높았다. 교통 인프라가 부족한 곳에서 운전면허를 반납한다면 이동할 마땅한 대안이 없기에 면허 반납 제도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신경학적 질환으로 운전을 중단해야 할 때
미국도 고령운전자로 인한 사고가 사회 문제다. 이와 관련해 미국 신경학회 신경과 전문의와 신경학 전문가가 운영하는 매거진 <Brain & Life> 4-5월 호에 “신경학적 질환으로 운전을 중단해야 할 때는 언제입니까?”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이 칼럼에서 치매와 간질 등 신경학적 질환으로 기억력과 실행 기능에 문제가 생겼을 때의 운전 중단 권유에 관해 여러 사례로 제시했다.
자동차 산업의 본고장인 미시간주에서 자란 잭 조지(68세)는 운전을 좋아했다. 승용차나 트럭, 오토바이든 뭐든 타면서, 운전석에 앉아 도로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는 것을 즐겼다. 그의 아내 수잔(62세)에 의하면 잭은 같은 길을 두 번 운행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새로운 우회로를 발견하는 스릴을 즐겼다고 한다.
2004년에 잭은 자동차 품질 시스템 공급업체에서 계속 일하기 위해 정교한 스프레드시트를 만들고 사무실 곳곳에 포스트잇 메모를 붙여야 했다. 그는 시각의 공간감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는데도 계속해 무리하게 일했다. 잭은 행동, 성격, 인지 변화를 드러내는 ‘행동변이성 전두측두엽 치매’를 진단받기까지 몇 년이 걸렸고 오진도 있었다.
이 기간에 수잔은 잭의 운전을 걱정했고, 잭이 안전하게 퇴근하지 못할 것 같으면 꼭 전화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몇 번 더 이 이야기를 꺼냈지만, 잭은 늘 그녀의 걱정을 무시했다. 오하이오주 리마에서 수잔은 잭에게 운전을 그만두라고 강력하게 권유한 의사를 만났다.
그녀는 “잭은 운전을 그만두기 몹시 싫어했는데 의사의 말을 듣고서야 때가 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지못해 열쇠를 넘겨주긴 했지만, 한동안 내가 운전하는 것에 불평했다”고 말했다. 그전까지 잭은 밤에는 운전하지 않고 낯선 지역이나 혼잡한 고속도로는 피해 다녔는데, 이는 모두 안전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비극적 사고를 예방하는 완벽한 방법은 아니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2014년 이후 65세 이상 운전자의 교통사고 사망자가 34% 증가했다. 2020년에서 2021년까지 사망자는 7,902명에서 9,120명으로 15% 이상 증가했다.
운전은 정교한 조작, 인지, 고등 실행 기능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면서 저하되는 반사 신경, 집중력, 공간 지각 능력 등이 복합적으로 필요하다. 치매, 뇌졸중, 외상성 뇌 손상, 말초 신경병증, 파킨슨병, 간질과 같은 신경학적 장애는 이러한 운전 기술의 장애물이다.
미국 노인병 학회지에서 2023년 인지 문제를 겪는 노인 635명을 대상으로 한 운전 현황을 발표했다. 절반 이상(360명)이 여전히 운전하고 있고, 대상자의 간병인 중 36%가 인지 장애 노인의 운전 능력을 우려했다. 고령운전자 연구를 공동으로 진행한 미시간대학교 공중보건대학 신경학 교수 루이스 모겐스턴(Lewis Morgenstern) 박사는 “도로에 나가면 안 되는 사람들이 계속 운전하고 있다고 의심했기 때문에 연구 결과는 특별히 놀랍지 않다”며, “이 연구가 노인 운전 위험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가족들이 우려하는, 안전 운전 여부 판단에 필요한 평가를 받도록 장려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장애의 징후와 운전 중단 권유
파킨슨병이나 알츠하이머병의 초기 단계거나 간질이 잘 조절되는 일부 사람은 당분간 운전을 해도 괜찮을 수 있다. 아이오와 대학교 의료 센터의 운동 장애 부서 책임자 에르군 우크(Ergun Uc) 박사는 “증상은 다양한 속도로 나타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개별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라며, “어떤 사람은 기본적인 운전 능력을 유지하지만 운전할 때 길을 잃거나 빠르게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고 전했다.
다른 문제로는 너무 빨리 또는 너무 느리게 가고, 정지 표지판과 교통 신호에 혼란스러워하며, 차선 변경이나 방향 전환에 어려움을 겪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운전자의 가벼운 접촉사고가 반복되거나 평소보다 많은 교통위반 딱지를 받기 시작하면 이는 위험 신호로 운전을 중단해야 하는 시기로 받아들여야 한다. 모겐스턴 박사는 가족 구성원은 환자의 주치의와 관찰 결과를 공유할 수 있으며, 주치의는 환자를 작업치료사, 자동차 부서 또는 운전 기술을 평가하는 운전 테스트 센터에 의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프레스턴 루이스는 59세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72세까지 운전했는데, 딸 켈시는 그가 도로에서 중앙선을 넘어 켄터키주 프랭크퍼트의 집 근처에서 마주 오는 차와 부딪힐 뻔한 것을 목격했다. 마이클 J. 폭스 파킨슨병 연구재단의 부국장인 켈시는 자신의 차로 아버지 운전사고를 염려해 따라갔다고 한다. 켈시는 “그 사건은 우리 가족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켰고, 마침내 아버지가 운전을 완전히 그만둘 때가 됐다고 확신했다”라고 말했다. “사건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이 아버지의 운전에 대해 필요한 대화를 나누는 데 도움이 됐다”고 부연했다. 이 사건이 있기 전 루이스는 낮에 가까운 장소로만 제한해 운전하던 중이었다.
뉴욕 브롱크스에 있는 몬테피오레 메디컬센터 노인 정신과 게리 J. 케네디(Gary J. Kennedy) 박사는 누군가의 운전을 제한하는 대화는 깊은 이해심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운전은 많은 사람에게 독립의 한 형태이며, 이를 빼앗는 것은 운전자의 통제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선동적이거나 위협적인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신 가족들은 운전자와 도로 위의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위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케네디 박사는 대화에서 다른 이동 수단에 대해 언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가족들은 쇼핑, 약속, 예배에 갈 수 있는 교통편을 제공해 통제받는 억압으로 힘들어하지 않도록 준비해야 한다. 누군가의 손에서 차 키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그 결정의 이유를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잭과 공감의 어조로 대화한 수잔은 “우리는 잭의 운전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고, 잭이 익숙해지는 데 몇 달이 걸렸다. 그는 시니어 버스를 타고 병원 진료에 간다”고 말했다.
노인을 위한 대체 교통수단
전직 세무사 마크 티몬스는 운전을 그만둘 당시 메인주(State of Maine) 시골 25,700평에 거주했다. 한동안은 딸이 운전해 주었지만, 어릴 때 간질과 48세에 치매 진단을 받은 티몬스는 결국 매사추세츠주 로클랜드로 이사를 결심했다. 그는 걸어서 상점에 갈 수 있는 아파트를 택했다. 현재 55세인 티몬스는 “록랜드에서는 온라인으로 식료품을 주문해 배달받을 수 있는데, 메인주에서는 불가능했다”라고 말했다.
앨리슨 쿠클라는 대학 시절 간질 진단을 받았다. 쿠클라는 2010년에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한 후 20대 중반에 운전을 그만두었다.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오던 중 국소 발작을 일으켜 통제력을 잃고 교차로에서 차를 들이받았다.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았지만, 쿠클라는 운전면허를 반납해야 할 때가 됐다는 것을 알았다. 이 사고의 결과로 쿠클라는 남편 프레스턴 라일리와 함께 오하이오주 보드먼에서 시카고로 이사했다. 라일리는 “결혼 후 앨리슨이 일하고 쉬우면서 더 큰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지역으로 이사한다는 데 동의했다”고 말했다.
대부분 주에서 뇌전증 환자는 특정 기간 발작이 없고 의사의 확인서를 제출하면 운전할 수 있다. 뉴욕과 몇몇 다른 주들은 뇌전증 환자의 운전 가능 여부를 의사가 결정한다. 발작의 가능성과 발작 중에 환자의 주변 인식 변화가 있는지를 판단한다. 둘 중 하나라도 문제가 발견되면 환자에게 운전하지 않도록 권고한다. 항경련제를 변경하거나 중단한 경우도 의사는 운전 중단을 권고한다.
뇌전증 재단의 수석 매니저이기도 한 쿠클라는 “뇌전증 지원 그룹의 주요 주제는 면허를 포기한다는 것을 의사에게 말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뇌전증 환자는 일하고, 가족을 키우고, 독립할 수 있는 능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화가 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더 이상 운전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이 가족이나 친구에게 의존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있다. 미국 작업치료협회에서 고령자 운전 문제 해결을 담당한 작업치료사 엘린 숄드 데이비스는 “승차 공유 서비스가 노인에게 할인을 제공하고, 승객의 승하차를 돕는다”고 설명했다. ‘실버라이드(SilverRide)’라는 승차 서비스 파트너가 애틀랜타,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시애틀과 같은 대도시에서 심각한 건강 문제를 가진 노인들을 위한 방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많은 종교 단체, 노인 센터 및 봉사 단체가 무료 교통편을 제공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무료 또는 할인된 요금으로 카풀이나 미니버스 또는 밴 교통편을 제공한다. 이러한 서비스는 사전 예약이 필요하지만, 자원봉사자 지원이 있어야 하는 노인에게는 매우 유익하다.
케네디 박사는 최근 정지 신호와 빨간불을 위반해 딱지를 받은 치매 환자를 진료했다. 그는 자신의 차를 리스 중이라 운전을 그만두고 싶어 하지 않았다. 케네디 박사는 그에게 보험, 주차비, 교통위반 딱지 등 차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보다 안전이 우선임을 설명했고 결국 그 환자는 운전 중단을 인정했다. 그는 리스를 종료하고 지금은 Uber와 택시로 이동하고 있다.
스스로 운전을 그만둘 시기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대화 체계
이처럼 미국은 인지 장애의 징후에 따라 의사와 가족의 권유, 대체 교통수단 마련 등으로 고령자가 스스로 운전을 그만둘 시기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고령자운전 제한을 65세 이상으로 정해놓고 운전면허증 자진 반납을 권유하면서 그 실효성은 매우 낮다. 현재 고령운전자 면허 반납 최소 연령은 지자체마다 다르지만 만 65~75세 사이로 규정하고 있다. 한국리서치 조사에 의하면 ‘면허를 반납하기에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연령’은 평균 만 73세였다.
<Brain&Life> 칼럼의 주요 논점은 한국처럼 고령자운전 연령을 정해놓고 면허증 반납을 유도하고, 면허증 갱신 주기 단축, 치매선별검사 의무 시행 등이 아니라 노인의 인지 건강 상태에 따른 의사의 권고와 가족의 관심, 노인의 생활권과 생활 수준을 고려한 사려 깊은 유인책에 있다. 택시운전으로 생계를 잇거나, 떨어져 사는 자녀와 손주를 보기 위해 운전이 필요한 노인에게 면허증 자진 반납을 권유하는 제도는 현실적인 방안이 아니다.
고령자운전에 대한 불안을 예방하기 위해 의료진과 가족의 세심한 관심과 대화, 대체 이동 수단 제공, 개별 운전 능력에 대한 정확하고 객관적 평가가 따라야 한다. 고령운전자를 사고의 주범으로 보는 사회적 낙인의 시각 또한 문제다. 객관적인 운전 능력 판별은 모든 나이의 운전자에게 필요하다. 운전 능력에 필요한 신체 감각이 떨어지는 정도와 운전 적합성에 관한 판별 기준 제시로 이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려는 사회 분위기가 필요하다.
현재처럼 고령자운전의 부정적 인식이 쌓이면 65세 이상 택시기사의 차를 누가 마음 놓고 타겠는가. 초고령사회 국가들의 택시를 타 보면 65세 이상 기사를 흔히 만난다. 차량에 기술적 장치를 보완하고 고령층 운전의 사회적 신뢰를 쌓는 방향의 대책, 운전을 그만둬야 하는 시점의 의료 권고 체계 수립, 인지 건강의 문제로 운전을 그만둔 노인을 배려한 대체 이동 서비스 등이 따라야 한다.
Primary Source
https://www.brainandlife.org/articles/when-is-it-time-to-stop-driving?utm_source=Informz&utm_medium=Email&utm_campaign=24%20Brain%20and%20Life%20Healthy%20Living&utm_content=%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