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삶의 완성" 웰다잉 문화 확산될까...'유병장수 시대' 해법은?
"죽음은 삶의 완성" 웰다잉 문화 확산될까...'유병장수 시대' 해법은?
  • 이석호 기자
  • 승인 2024.07.01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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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 '간병살인' 등 초고령 사회의 이면...안락사 허용 사회적 요구 커져
연명의료, 호스피스 등 제도 안착 시급...인간 존엄성 고찰로 죽음 대하는 인식 변화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 이석호 기자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 이석호 기자

 

고독사, 간병 살인, 병원 객사...

초고령 사회의 숙명인 ‘유병장수(有病長壽)’ 시대의 현실 이면을 드러내는 암울한 단어들이다. 이에 맞서 수명을 다해가는 인간 존재의 무력함에 주저앉기보다는, 삶의 마지막 한 조각까지 완성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웰다잉(Well-Dying)’ 운동도 널리 퍼지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존엄사, 안락사, 의사조력사 등 생을 마무리하는 방식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 말, 많은 의료인과 관련 전문가가 한 자리에 모여 인간의 생명과 죽음에 대해 철학적 고찰부터 의료 윤리와 정책·제도, 인간의 존엄과 품격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한노인신경의학회는 29일 서울 강남구 삼정호텔 서울 강남구 삼정호텔 본관 2층 라벤더홀에서 춘계학술대회를 열었다.

이날 오후 플레너리(plenary) 세션에서는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가 ‘우리나라의 웰다잉 현황과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좌장을 맡은 석승한 대한노인신경의학회 회장은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 노인 특히 신경계 질환이 있는 노인의 삶 문제와 이와 관련된 돌봄 문제에 대해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윤리적인 고민을 해 봤다”며 “개인적으로 여전히 숙제로 남았다”고 소개말을 전했다.

연단에 오른 윤 교수는 “의사 되기 전에 왜 의사가 됐는지를 생각해 보면 죽음과 관련된 문제가 있다”며 “죽음을 어떻게 바라볼 거냐는 관점에서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라고 서두를 열었다.

그는 “‘라이프(Life)’를 번역할 때 ‘생명’의 관점에서 볼 것인지 ‘삶’이라는 관점에서 볼 것인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것”이라며 “죽음이라는 것이 의사 입장에서는 실패지만 삶에 있어서 보면 완성이라는 시각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이 웰다잉의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의료비 폭증 등 간병 부담과 고독사, 병원 객사 등 요즘 국내 언론에서 자주 접하는 사회 문제들을 들췄다.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 이석호 기자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 이석호 기자

 

이어서 연명의료결정제도와 호스피스 문제에 대해 다양한 통계와 사례를 제시하며 다뤘다.

연명의료결정제도는 지난 2016년 제정된 ‘연명의료결정법(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2018년 2월 국내 시행됐다.

이 법은 76세 할머니(김할머니)가 2008년 폐암 발병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조직검사를 받다 갑자기 의식을 잃고 식물인간 상태가 되자 가족이 세브란스병원에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소송을 낸 사건에서 비롯됐다. 이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의 상태에서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다면 치료를 멈출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후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점차 확산하면서 이른바 ‘김할머니법’이 마련됐다.

이에 따라 의학적으로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사전에 개인의 자유의지로 치료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19세 이상 성인이라면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등록 기관을 찾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제출할 수 있다. 의료기관윤리위원회로 등록된 의료기관에서 말기 환자나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로 진단(또는 판단)받을 경우 담당 의사를 통해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면 된다.

김 교수가 제시한 복지부의 2020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중 대다수인 85.6%가 무의미한 연명의료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가 조사한 결과 2023년 12월 기준 214만 명 정도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실제로 2023년 사망자 중 20%가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을 이행했다. 또 이들 중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따른 연명의료 중단 결정 이해 비율은 14.2%로 조사됐다, 전체 사망자 기준으로는 2.9%에 불과하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자기 결정권이 과도하게 존중되지 못하는 것”이라며 “나머지 80%는 CPR(심폐소생술 시행) 35%, 호스피스 이용 6.2%, DNR(심폐소생술 금지) 58.8%로 추정된다”고 평가했다.

 

호스피스 완화의료 / 중앙호스피스센터
호스피스 완화의료 / 중앙호스피스센터

 

해외보다 호스피스 이용률이 크게 떨어진다는 부분도 한계로 봤다. 특히 암 이외의 사망 환자 중 호스피스 이용이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2022년 국내 호스피스 신규 이용 환자 수 중 2만 266명 중 2만 198명(99.67%)이 암 환자다. 뇌질환 등 신경계 질환은 호스피스 대상에서도 제외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뇌질환과 심장질환이 암보다 더 높은 호스피스 이용률을 보인다. 2016년 실시한 국내 4대 집단(일반인, 의료진, 환자, 환자 가족) 조사에서도 국민들이 암 이외에도 뇌졸중, 치매, 파킨슨병 등 뇌질환에도 호스피스 적용 확대를 희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 교수는 “암 환자는 말기가 명확하게 예상되고 연명하지 않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문화도 의료계에 형성돼 있지만 다른 질환에서는 여전히 연명 중단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서 “연명에 드는 과도한 의료 비용을 호스피스로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호스피스 담당 기관이 조금씩 증가하다가 최근에는 늘지 않고 있다”며 “인구 100만 명당 50개 정도 병상이 있어야만 적절하게 호스피스를 제공하는데 지난해 기준 호스피스 이용률은 25% 정도로 미국 등에 비해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형편”이라고 분석했다.

국내에서도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는 의사조력사와 안락사 입법화에 대해서도 짚었다. 디그니타스, 페가소스 등 스위스 조력사망 단체에 가입한 한국인 수도 요즘 들어 급증하는 추세다.

그는 “2021년 조사했을 때 의사조력자살 또는 안락사 찬성 비율이 76.3%가 나와 놀랐다”며 “이는 10년 내 안락사가 법제화될 것이란 현실적인 경고”라고 해석했다. 이어 “종교계와 의료계에서 생명의 존엄성을 들어 반대가 심하다”며 “이들이 호스피스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제도적으로 정착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아쉬움을 털어놨다.

장례 문화의 변화에 대해서도 제안했다. 김 교수는 “대학병원에서 장례식장을 운영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며 “화려한 장례식장을 완화 의료 병동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호스피스 재원 마련을 위해 유산 기부나 조의금 기부 문화 확산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발표가 끝난 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한 참석자는 “호스피스를 활성화하고 확대하는 건 맞지만 병상을 2,500개까지 늘려도 결국 이용률은 10~13%를 넘지 못할 것”이라며 “나머지 사망자들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도 문제”라고 말했다.

또 “호스피스 비용이 한 달에 1,000만 원가량 드는데 요양병원과 비교하면 3~4배가량 올라간다”면서 “요양병원을 효율화해 나머지 사망자를 돌보는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왼쪽부터) 김선현 가톨릭국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하정화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유수연 계명대동산병원 신경과 교수 / 이석호 기자
(왼쪽부터) 김선현 가톨릭국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하정화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유수연 계명대동산병원 신경과 교수 / 이석호 기자

 

이후 진행된 오후 세션은 ‘신경과 질환에서의 사전 돌봄 계획(Advance care planning, ACP)’을 주제로 진행됐다.

첫 번째 발표는 김선현 가톨릭국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가 ‘사전 돌봄 계획 가이드라인’이라는 내용으로 진행했다. 그는 ACP에 대한 소개와 함께 미국, 유럽 등 해외 사례를 다루고 국내 도입 및 적용에 대한 현실적 문제들을 검토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ACP는 개인이 불치병에 걸려 나중에 스스로 의학적 판단을 내리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미리 본인의 삶의 목적과 가치, 선호도에 맞게 미래의 의학적 처치에 대해 가족, 의료진과 상의해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말한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에는 아직 합의 가이드라인이 없지만 현재 리서치 그룹에서 준비 중”이라며 “국내에서는 연명의료결정법의 적용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경향이 있고 공유 의사결정과 문화적 다양성을 수용하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전 돌봄 계획에 대한 의료진, 정책 입안자, 국민의 인식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 발표를 맡은 하정화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인지기능 저하 및 치매를 대비한 사전 돌봄 계획 모델’에 대한 질적 연구 결과를 공유했다.

하 교수는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한 ACP 연구를 진행하면서 다뤘던 과제와 연구 제약 요인, 실천 방향에 대해 경험적 사례를 중심으로 발표했다. 또 한국형 ACP 코칭 프로그램 개발과 치매 질병 과정에 따른 ACP에 대한 연구 결과를 설명했다.

그는 “연구 참가자가 치매에 대해 ‘지금 건강하고 나이가 많지 않은데 생각하기 싫다.’, ‘너무 가슴이 아프고 두려워서 생각하고 싶지 않다.’ 등 불편한 감정을 느껴서 마음이 쓰였다”면서도 “의료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여러 선택지에 대한 쉬운 설명이 필요하고 가족이나 가까운 친족이 없는 경우에는 지원하거나 대리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할 것”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마지막 발표는 유수연 계명대동산병원 신경과 교수가 맡아 ‘운동기능 저하 및 파킨슨병에서 사전 돌봄 계획 모델’에 대해 강연했다.

유 교수는 신경완화치료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면서 “암 환자나 중증 내과 환자 위주로는 많이 마련돼 있지만 신경계 질환 환자에 대해서는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며 “2018년부터 이 단어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파킨슨병 등 신경퇴행성 질환은 기간이 예측되는 암과 다르게 근치적 치료가 어렵고, 완치라는 개념보다는 대부분 완화 치료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밖에 없다. 또 병의 진행이 길고 예측이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그는 “신경 완화 치료의 사전 의료 계획 수립은 고령화 사회에서 꼭 필요한 요소로 생각하고 신경과 임상 지식을 바탕으로 대화나 소통의 방법이 중요하다”며 “파킨슨병 환자에게는 초기부터 환자가 경험하는 주요 변화가 발생할 때마다 안내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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