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27개국서 레켐비 약제비 196조 5천억 추산...전체 의약품 지출 ‘절반’
수십 년간 불모지였던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개발 역사에서 아밀로이드 베타(Aβ) 표적 단일 클론 항체 신약의 등장은 치매 환자뿐 아니라 간병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는 가족에게 한 줄기 희망이 되고 있다. 바이오산업 측면에서도 이들 약물의 상용화는 자본시장의 막대한 투자금이 업계로 유입되는 마중물이 돼 새로운 치료제 개발을 가속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긍정적인 기류에도 학계와 임상 현장에서는 항아밀로이드 항체 치료제의 효능과 안전성 논란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최근 레카네맙(Lecanemab, 상품명 레켐비 Leqembi)에 이어 도나네맙(Donanemab, 상품명 키선라 Kisunla)이 미국 식품의약품청(FDA)의 승인을 받으면서 항아밀로이드 치료제에 대한 기대감이 더 부풀어 오르던 분위기에 유럽의약품청(EMA)이 찬물을 끼얹었다. EMA의 자문기구인 의약품위원회(CHMP)에서 치료 효능이 위험성보다 더 크지 않다는 판단으로 레켐비의 승인 거부 의견을 내놨기 때문이다
이 같은 흐름에서 랜싯 치매 위원회(the Lancet Commission on dementia, 이하 치매위)가 2020년 이후 4년 만에 <치매 예방, 중재 및 치료(Dementia prevention, intervention, and care: 2024 report of the Lancet standing Commission)>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치매위는 이번 보고서에서 레켐비, 도나네맙 등 항아밀로이드 치료제를 언급하며 이들 약물의 임상시험 결과로부터 도출한 임상적 중요성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짚었다.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효능에 대해서는 인지 기능 개선이 미미하고, 임상적 의미와 효과의 지속 기간이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항아밀로이드 항체 치료제는 근본적으로 ARIA-E(Edema, 부종) 및 ARIA-H(Hemorrhage, 미세출혈) 등 아밀로이드 관련 영상 이상(Amyloid-Related Imaging Abnormalities) 부작용을 유발한다. 보고서는 레켐비 투여 환자의 20%, 키선라는 거의 두 배 수준으로 ARIA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특히, 알츠하이머병 병증인 APOE ε4 유전자를 보유한 환자의 경우 ARIA 부작용 발생률이 높다. 레켐비의 임상 3상(CLARITY-AD) 시험에서 알츠하이머병 유발 유전자로 알려진 APOE ε4 동형접합형인 참가자의 ARIA-E 발생률이 33%에 달하고, 이형접합형인 참가자의 발생률은 12%, 보인자가 아닌 경우 5%로 확인됐다.
키선라에서는 더 심각한 결과가 발생했다. 키선라의 임상 3상(TRAILBLAZER-ALZ 2)에서 APOE ε4 동형접합형인 참가자는 41%, 이형접합형인 경우 23%, 보인자가 아닌 경우 16%의 ARIA-E 발생률을 보였다.
치매위는 치료 효과가 낮아 드러난 ARIA 부작용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 게 어렵다고 꼬집었다.
약값에 대한 논란도 언급했다.
레켐비의 미국 기준 연간 약제비용은 연간 2만 6,500달러(한화 약 3,600만 원)이며, 키선라는 3만 2,000달러(약 4,300만 원)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진료비와 MRI 및 PET 검사비 등이 추가로 든다.
치매위는 이 가격을 기준으로 유럽연합(EU) 27개국에서 환자들이 레켐비를 사용하게 된다면 약제비용으로 연간 1,330억 유로(약 196조 5,000억 원)가 들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치료 관련 비용을 반영하기 전 EU 전체 의약품 지출의 절반 이상에 해당한다.
또 환자는 치료 과정에서 투약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일반적인 치료 기간인 18개월간 매월(키선라) 또는 격주(레켐비)로 병원을 찾아야 한다. 의료 기관도 정맥 투여를 위한 주사실을 갖추고 환자의 모니터링을 위해 값비싼 MRI 및 PET 장비를 들이는 등 인프라 구축에 대규모 투자 지원이 필요하다.
이외에 제외되는 대상이 많다는 점도 논란으로 꼽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임상시험의 엄격한 자격 기준 때문에 연구 대상자의 건강 상태가 일반 알츠하이머병 환자보다 양호한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메이요 클리닉 노화 연구의 데이터를 사용한 지역사회 모집 연구에 참여한 869명 중 237명(27%)만이 A-PET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였고 경도인지장애(MCI) 또는 경증 치매 기준을 충족했다. 이 중 19명(8%)만이 레켐비의 임상 자격 기준을 맞춰 시험 결과를 일반화하기 어렵다고도 분석했다.
다만 보고서는 항아밀로이드 항체 치료제를 개발한 것이 중요한 발전이며 향후 다른 약물을 개발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