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TSD'에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다는데...
'PTSD'에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다는데...
  • 황교진 기자
  • 승인 2024.08.28 18: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애’라는 이름이 주는 낙인효과를 막기 위해 ‘손상’ 혹은 ‘부상’으로 변경
어리석다는 뜻의 '치매'는 왜 이름을 바꾸지 못할까
퍼블릭 도메인

미국에서는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PTSI(외상 후 스트레스 손상 Post-Traumatic Stress Injury)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다. 병명으로 인한 낙인을 줄이고 치료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이 질환을 앓는 환자군뿐만 아니라 임상의사들도 PTSD 명칭을 PTSI로 변경해 《DSM-5-TR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수정판 5판에 넣도록 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용어가 유해하다고 판단되면 명칭을 변경할 수 있다는 것이 미국심리학협회(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APA)의 정책이다.

시카고 일리노이 대학교 임상 조교수이자 시카고 스텔라센터의 최고 의료 책임자인 유진 리포프(Eugene Lipov)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2023년 8월 APA의 DSM-5-TR 운영위원회에 명칭 변경안을 공식 요청한 바 있다. 그러나 2023년 11월, APA 운영위원회는 “설득력 있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명칭 변경 제안을 거부했다. 리포프와 그의 동료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명칭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리포프 박사는 “장애라는 용어는 부정확하고 낙인을 찍는 단어다”라며, “낙인 때문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있는 사람들, 특히 군인들은 도움을 받지 못한다. 이는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고 말한다. 그는 부러진 다리와 같이 진단을 받아들이고 치료가 가능한 부상으로 인식한 환자는 의료진의 도움을 요청할 가능성이 높지만, 치료 지연이나 치료 부족은 자살로 직접 이어질 수 있으므로 낙인은 사망에 이르게도 한다고 덧붙였다. PTSD 이름 변경은 피해 감소 요건을 충족한다고 강조했다.

 

트라우마의 신경생물학

리포프 박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는 퇴역군인 아버지와 우울증을 앓다가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는 누구보다도 트라우마의 영향을 잘 이해하고 있다. 리포프 박사는 ‘리부팅’ 과정을 통해 많은 트라우마 증상을 되돌릴 수 있는 마취 기술인 성상신경절 차단술(Stellate Ganglion Block, SGB)을 적용해 매우 성공적인 PTSD 치료법을 개척했다. 목의 교감 신경절을 마취해 교감 신경계의 활동(투쟁 또는 도피 반응)을 외상 전 상태로 되돌리는 방법이다. 그는 SGB가 PTSD 증상을 개선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연구하면서 PTSD의 신경생물학과 SGB의 작용 기전을 조사했다.

리포프 박사는 PTSD 환자에서 공포 반응과 관련된 뇌 영역인 우측 편도체가 과도하게 활성화되었지만, SGB 투여 후 이 영역이 비활성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연구를 통해 SGB가 PTSD에 미치는 영향을 뒷받침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신 질환이란 실제로 고급 신경 영상 기술로 측정하여 생리학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생리학적 뇌 변화라고 생각한다”고 첨언했다. 이어서 PTSD는 신경생물학적 근거가 있으며 본질적으로 뇌의 실제 손상으로 인해 발생하기 때문에 PTSD에 SGB를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퍼블릭 도메인
퍼블릭 도메인

장애가 아닌 자연스러운 반응

리포프 박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뇌 손상으로 치료하는 임상 연구를 진행하면서 국제 외상 스트레스 학회 창립이사이자 국립정신건강연구소 부소장과 미시간주 정신건강부 국장을 역임한 프랭크 오크버그(Frank Ochberg) 박사와 인연을 맺었다. 2012년 오크버그 박사는 퇴역 육군 장군인 피터 치아렐리와 조나단 셰이 박사와 함께 DSM-5에서 PTSD의 명칭을 PTSI로 변경해 달라고 DSM-5 운영위원회에 청원했다.

치아렐리 장군은 ‘장애’라는 용어가 잠재적으로 개인을 ‘약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낙인은 특히 군인들에게는 취약한 대상으로 인식되기에 치료를 회피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이는 극단적 선택 등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PTSD 개명을 찬성하는 한 옹호자는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에 대한 자연스러운 인간의 반응을 장애로 분류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DSM-5 운영위원회는 명칭 변경을 거부했다. 오크버그 박사는 “‘장애’라는 단어를 다른 단어로 바꾸면 DSM에서 ‘장애’로 분류되는 모든 상태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 운영위원회의 생각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단어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리포프 박사는 정확성이나 낙인 감소를 위해 DSM에서 진단명이 변경된 사례를 들어 반론했다. 예를 들어, ‘정신지체’(DSM-IV)라는 용어는 DSM-5에서 ‘지적장애’로, ‘성정체성장애’는 ‘성별위화감’으로 변경됐다.

리포프 박사는 PTSD 이름 바꾸기에 다시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1,025명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 중 약 50%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은 이들이다. 응답자의 약 3분의 2가 PTSI로 명칭을 변경하면 ‘PTSD’라는 용어와 관련된 낙인을 줄일 수 있다는 데 동의했다. 절반 이상이 의학적 도움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답했다. 명칭 변경을 가장 많이 지지한 이들은 PTSD 진단을 받은 사람들이다.

리포프 박사는 정신과 의사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설문조사를 실시해 잠재적인 명칭 변경에 대한 의견을 확인하고 있으며, 향후 연구 및 DSM-5 운영위원회와 소통해 이 결과를 포함시키고자 한다. 또한 그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있는 개인을 대상으로 한 기존 설문조사를 확장한 새로운 설문조사를 개발하기도 했다. 그가 만든 새로운 설문조사에는 진단받은 적 없는 다양한 사람들이 포함된다. 우선 PTSD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지를 조사하고, 이어서 이 용어에 대한 반응을 묻는 말로 질문을 구성했다.

 

치료의 장벽

뉴욕 허드슨 마인드의 정신과 전문의 마르셀 그린(Marcel Green) 박사는 자신을 ‘중재적 정신과 의사’라고 부른다. 그는 약물 및 심리 치료뿐만 아니라 심각한 불안 관련 신체 증상과 특정 통증 질환에 대한 SGB와 같은 전문 기술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접근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명칭 변경 이니셔티브에 참여하지 않은 그린 박사는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 약물 남용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 정신건강 치료를 심각한 장애로 보는 배경이 있는 사람 등 많은 집단에게 ‘장애’라는 용어가 ‘부상’보다 더 큰 낙인을 안겨준다는 데 동의했다.

상태를 ‘부상’으로 규정하는 것은 생물학적 개입을 사용해 부상을 해결하는 접근 방식과 일치한다. 그린 박사는 SGB가 약물 남용 장애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이는 “PTSD에 수반되는 과잉 활성화에서 벗어나는 일종의 탈출구”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시술 후에는 치료를 더 잘 받아들인다고 덧붙였다.

리포프 박사는 불행하게도 DSM 운영위원회가 제안된 명칭 변경을 거부했으며, “장애라는 개념은 스트레스에 대한 정상적 반응과 구분되는 개념으로, DSM의 핵심 개념이며, 이 용어가 삭제된 적은 거의 없다”고 했다. 게다가 위원회는 “PTSD라는 이름이 낙인을 찍고 실제로 치료를 받지 못하게 한다는 충분한 증거를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퍼블릭 도메인

'존엄성을 위한 길’

미국정신질환연맹(NAMI)의 최고 의료 책임자인 켄 덕워스(Ken Duckworth) 박사는 이 문제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관점은 전달했다.

덕워스 박사는 명칭 변경에 장점이 있을 수 있지만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며, “엄격한 연구가 수행되고 설득력 있는 데이터가 나온 후 ‘부상’이 아닌 ‘장애’라고 부르는 것이 실제로 사람들이 필요한 치료를 받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이 분명하다면 진지한 관심을 기울일 가치가 있다”라고 말했다.

토론토 대학교의 정신의학 및 약리학 교수이자 기분 장애 정신약리학 부서의 책임자인 로저 맥킨타이어(Roger McIntyre) 박사는 명칭 변경 이니셔티브가 “흥미로운 제안”이라고 말했다. Brain and Cognition Discovery Foundation의 회장이기도 한 맥킨타이어 박사는 “PTSI의 ‘부상’이라는 단어는 신체적 부상과 유사한 데 반해, 현재 우리가 ‘PTSD’라고 부르는 '장애'는 치명적인 심리적 또는 정서적 부상”이라고 말했다.

오크버그 박사도 “군대에서 ‘부상’은 존엄성과 훈장을 받는 길을 열어준다. 부상을 당한 뒤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명예로운 사람이 되는 명예로운 일의 일부다”라며 이에 동의했다.

리포프 박사는 자신의 비전을 포기하지 않을 계획이다. 그는 “‘PTSD’라는 단어가 낙인을 찍고 실제로 사람들이 치료받는 것을 방해한다는 증거를 계속 수집할 것이며, 더 많은 설득력 있는 증거를 모아 DSM 운영위원회에 제안서를 다시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리포프 박사는 증거를 더 확보하기 위해 미 육군 특수작전 부대와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자살과 PTSD는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데이터에 따르면 재향군인회 소속 군인의 자살률이 하루 44명에 달한다”고 그는 말했다.

 

치매 정명

어리석다는 뜻의 한자어인 ‘치매’는 보건복지부가 2021년에 실시한 대국민 인식 조사에서 국민의 43.8%가 용어에 거부감을 보였고, 2021년 국립국어원의 조사 결과 과반수(50.8%)가 다른 용어로 대체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또한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이름을 바꾸자는 방안이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발의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병명에 담긴 부정적 인식과 편견을 개선하려는 사례로, 2011년 ‘정신분열증’을 ‘조현병’으로, 2014년 ‘간질’을 ‘뇌전증’으로 바꾼 일이 있다.

국회에서 치매 대신 ‘인지증’ 혹은 ‘인지저하증’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치매 초기 증상 환자들이 센터와 병원을 찾는 데 부담이 적도록 심리적 문턱을 낮추고, 치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고 치매 환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을 헤아리고 보듬어주는 사회가 되자는 취지로 계속 발의는 되고 있지만, 실행은 되지 않고 있다. 

 

Primary Source

https://www.medscape.com/viewarticle/ptsd-needs-new-name-experts-say-heres-why-2024a1000ey2?ecd=WNL_mdpls_240816_mscpedit_neur_etid6752284&uac=113689FX&spon=26&impID=6752284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