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없는 마을] ⑨ 호주의 치매 마을, 코롱지(Korongee)
[한국에 없는 마을] ⑨ 호주의 치매 마을, 코롱지(Korongee)
  • 황교진 기자
  • 승인 2024.09.05 2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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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같은' 경험 제공, 친숙한 지역 동네 모습의 조경
치매 환자의 품위를 돕는 '돌봄 건축 환경'의 표준을 제시한 마을

전 세계 치매 환자 수가 증가함에 따라 특수 목적의 주거형 노인 케어 시설 필요성 또한 높아졌다. 그러나 많은 노인 케어 시설이 치매를 앓는 입소자의 돌봄 환경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의료진 또한 병원의 모습과 유사한 환경에서 진료하며 한계를 느낀다. 치매 환자는 치료와 함께 복지, 장애, 상실에 초점을 맞춰야 하며 이를 위한 치매 맞춤형 환경 개선이 절실히 요구된다.

 

노인 케어 환경 지원의 절실한 필요

치매 치료의 중요한 측면이 장기 요양 시설의 환경적 요소다. 건축 환경이 치매 환자의 능력을 향상하고 강화해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생각은 지난 30년 동안 이어왔다. 특히 건축 환경이 치매 환자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데 역할을 하고 주변 사람들과 지역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자료는 이미 많이 제시돼 있다.

그러나 치매 지원 환경에 대한 지식과 적용에는 지역마다 격차가 존재한다. 동남아시아의 노인 케어 시설 연구에 따르면 치매에 대한 인식과 치매 환자에 대한 긍정적인 케어 환경은 상당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지역에서 치매 돌봄 교육을 받은 직원들은 치매 친화 환경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거나 거의 없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호주의 왕립 노인 케어 품질 및 안전 위원회(Royal Commission into Aged Care Quality and Safety, 2021)는 새로운 노인 케어 시설에 치매 환자가 접근하기 쉬운 디자인을 통합할 것을 권장했다. 목적에 맞지 않는 환경은 양질의 치매 치료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문제를 개선하고자 한 것이다.

호주는 증거 기반 실무, 이론적 토대, 명확한 표준에 의해 뒷받침되는 노인 케어 서비스 디자인을 구축했다. 치매 지원 환경에서 일하는 직원은 치매 관련 전문 지식과 이해를 갖춰야 한다. 이러한 치매 환자를 포용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데 필수적인 핵심 구성 요소로 ▲치매 케어 모델의 정렬 ▲치매 지식과 이해 ▲치매 포용 환경 활성화를 정해 지속 가능한 치매 돌봄 환경을 구축했다.

 

Korongee Dementia Village / fairbrother.com.au/project/korongee-dementia-village

코롱지 치매 마을 기획과 구성

호주의 17개 주거형 노인 케어 시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거주자의 83%가 인지 장애를 겪고 있고, 약 65%가 치매 진단을 받았다.

2020년 7월에 문을 연 호주 최초의 치매 마을 코롱지는 태즈메이니아 호바트시 외곽 10분 거리의 교외 마을인 글레노키에 있는 주거형 노인 케어 시설이다. 전형적인 태즈메이니아 거리 풍경과 함께 지역사회와 거리를 두지 않고 가까이 연결돼 있다.

마을은 비영리 노인 요양 시설 제공 기관인 글렌뷰 커뮤니티 서비스(Glenview Community Service)와 건강과 사회 서비스 분야 근로자를 위한 호주 산업 연금 기금 HESTA, Social Ventures Australia 및 호주 정부의 협력으로 완성됐다.

코롱지는 치매 전문성을 갖춘 직원들의 지원을 받은 주민들이 함께 사는 가정 모델을 중심으로 지어졌다. 마을은 12채의 주택에 96명의 주민을 수용한다. 글렌뷰 커뮤니티 서비스는 태즈메이니아 대학(University of Tasmania)과 협력해 주민의 관심사와 경험에 가장 적합한 주택을 매칭하는 프로세스를 진행했다.

 

Korongee Dementia Village / fairbrother.com.au/project/korongee-dementia-village

12채의 작은 집은 마을을 구성하는 4개의 조용하고 막다른 골목 중 하나에 자리 잡고 있다. 집, 카페, 미용실, 커뮤니티센터, 식료품점을 연결하는 길은 구불구불한 모양으로 펼쳐진다. 치매 환자에게 시각적이고 자연스러운 길 찾기 단서를 제공하며, 작은 집에서의 생활 모델은 치매 환자의 삶의 질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을 계획은 네덜란드 호그벡을 기반으로 태즈메이니아에 맞게 재해석했다. 치매 치료에 대한 주요 접근 방식으로 프라이버시와 자율성을 극대화했고 거주자의 건강과 웰빙이 개선되도록 했다. 치매 거주자의 의미 있는 삶에 중점을 두어 치료 요법에 대한 필요성을 극적으로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설계했다.

마을에서의 전망은 지역의 전형적인 교외 풍경을 반영한다. 낮은 울타리의 판잣집, 공원, 웰링턴산의 아름다운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구불구불한 가파른 경사가 조화롭게 펼쳐져 심리적 안정을 안겨준다.

코롱지는 작은 마을의 맥락에서 맞춤형 주택을 제공하며 편리하게 연결된 거리에는 슈퍼마켓, 영화관, 카페, 미용실, 과수원, 갤러리가 있고, 서로 연결된 정원과 활동 구역에서 힐링 공간이 제공된다. 또한 주민들을 위해 신중하게 계획된 교외 마을이 연결돼 있다.

 

주민들은 자신의 주택 입구에서 일반상점으로 시각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 fairbrother.com.au/project/korongee-dementia-village

디자인의 핵심은 순환과 가독성 해결이다. 경관은 마을 전체에 걸쳐 명확하고 보행자가 통행할 수 있는 순환 시스템을 제공하도록 계획했으며, 이를 통해 주민들은 ‘정문’에 있는 개인 공간에서 커뮤니티 정원과 공유 공간을 거쳐 마을 도심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 치매 거주자의 이동을 위해 단순한 시각적 단서, 주요 목적지 표지, 재료, 식물 디스플레이 및 감각 자극에 이르기까지 미묘한 요소들이 편안한 길 안내 역할을 한다.

단층형 소규모 주택들은 각각 다른 색상으로, 특히 출입문은 식별이 뚜렷한 색을 칠해 놓았다. 주택 외부의 화분에는 거주자가 선호하는 고유의 식물을 심어 자신의 집을 쉽게 알아보도록 했다.

고품질 마감재와 자재가 사용됐으며, 커뮤니티 건물에는 목재와 벽돌 마감재를 조합했다. 마을의 외관이 독특한 것처럼 건물의 내부도 독특하다. 주택은 8명의 거주자가 입주해 있는데 모두 개인실을 사용한다. 각 침실 밖에는 거주자가 자신의 방을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기억 상자'가 있다.

또한 치매 거주자가 식별하기 편하도록 건물 전체에 다양한 색상을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다양한 연령대에 걸쳐 커뮤니티 분위기를 조성해 놓았고 사회적 상호작용, 의미 있는 활동 및 감각적 자극을 위한 기회가 제공된다.

 

거주자는 주택 입구에서 잡화점까지 훤히 볼 수 있다. 카페, 미용실, 커뮤니티센터에 걸어서 갈 수 있지만, 이동 수단을 지원받아 즐겁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도 있다.  / fairbrother.com.au/project/korongee-dementia-village

코롱지 마을 건축의 핵심 요소

노인 돌봄 서비스와 주거형 노인 요양 시설을 운영하는 글렌뷰 커뮤니티 서비스의 CEO 루시 오플래허티(Lucy O'Flaherty)는 치매 마을의 필요성에 주목했다. “호주 돌봄 커뮤니티의 물리적 환경은 더 이상 좋은 케어에 도움이 되지 않아 변화시켜야만 했다. 시설의 대부분은 1960년대에 구매해 증축한 것이다. 커뮤니티를 잘 구성하더라도 치매인을 위한 공간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다른 건물로 이동하는 데 15분이나 걸린다. 이는 긴급한 상황에 대응해야 할 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플래허티는 코롱지가 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과 혜택 면에서 호주 최초의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 마을은 치매 주민의 필요를 중심으로 설계됐으며 ‘품위 있는 치료’를 제공해 치매인의 삶의 질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코롱지는 치매 디자인, 기술, 독특한 케어 모델, 증거 기반 거주자 매칭이 잘 결합해 있다. 환경 디자인은 국제적인 모범 사례로 손꼽는 플레밍-베넷 디자인 원칙(Fleming-Bennett Principles)을 구현해 이 특수 목적 마을을 개발해 냈다.

플레밍-베넷 원칙은 치매 환자를 지원하는 환경을 설계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이다. 호주 울런공 대학교(University of Wollongong)의 리처드 플레밍 교수와 커스티 베넷 교수가 개발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위험 요소는 눈에 띄지 않게 해 감소시킨다: 좌절감이나 동요를 방지하고 안전한 환경을 조성.
2. 인간적인 규모를 제공한다: 건물의 크기와 인원수를 고려해 관리하기 쉽고 압도적이지 않은 환경 조성.
3. 공간은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도록 한다: 주요 구역이 잘 보이도록 공간을 설계해 혼란을 줄이고 독립성을 촉진.
4. 도움이 되지 않는 자극은 줄인다: 불필요한 소음과 시각적 혼란에 대한 노출을 최소화해 스트레스를 방지.
5. 유용한 자극을 최적화한다: 익숙한 물건이나 명확한 표지판 등 환경에 대한 단서를 친절하게 제공.
6. 움직임과 참여를 지원한다: 공간 디자인을 통해 신체 활동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장려.
7. 친숙한 공간 만들기: 친숙하고 익숙한 요소를 사용해 사람들이 집과 같은 편안함을 느끼도록 함.

이 원칙은 서로를 지지하고 지원하는 환경을 조성해 치매 환자의 웰빙과 독립성을 향상시킨다.

 

Korongee Dementia Village / fairbrother.com.au/project/korongee-dementia-village
Korongee Dementia Village / fairbrother.com.au/project/korongee-dementia-village

코롱지는 주민들의 웰빙에 초점을 맞춘 살루토제닉 접근법(Salutogenic Approach)을 채택했다. 살루토제닉 접근법은 건강과 웰빙을 증진하는 데 중점을 둔 것으로, 사람들이 건강을 유지하고 회복하는 데 어떻게 해야 결과를 얻는지, 스트레스를 겪을 때 어떻게 적응하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에 기반을 두고 있다. 1990년대 건축가 앨런 딜라니(Alan Dilani)가 건강 증진을 위해 의료뿐 아니라 의료시설의 건축설계에도 살루토제닉 기법을 적용하자고 제안했다.

딜라니는 물리적 공간 설계를 통한 불안 근절을 위한 틀로 ‘정신 사회학적 지원 설계’(Psychosocially Supportive Design)를 소개했다. 살루토제닉 설계는 사람들을 건강하게 하는 건축으로 생분해성 소재, 탄소 제로의 마감재, 천연 소재 가구 등 자연적인 컬러와 부드러운 질감으로 내부 공간을 연출한다. 환자는 자신의 현재 상황을 이해할 수 있고, 스스로 공간에 대한 인지를 통해 이동이 가능하다. 따라서 설계자가 경로 파악 시스템에 대한 종합 계획을 세워 직관적인 경로를 강조하는 공간을 설계한다. 또한 색상, 랜드마크 및 자연경관을 통해 이해 가능성을 강화한다. 이러한 건축설계로 치매 환자가 자신의 환경을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계획을 수행하는 데 자신감을 얻도록 돕는다

코롱지는 주민들에게 친숙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집과 같은 경험을 제공한다. 지원팀 직원과 결합해 주민들이 품위 있고 포용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살 수 있도록 한다. 마을에는 커뮤니티센터, 웰니스센터, 카페, 미용실, 잡화점, 주민 그룹 활동 공간과 혼자 조용히 보낼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

이 마을에 거주하는 레이몬드 플랜트는 “어떤 요양원처럼 한 방이나 한 단지에 모두 몰려 있지 않다. 매우 다르고 훨씬 낫고 더 편안하다. 마치 집에서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관계는 케어 모델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마을의 직원들은 각자 그들이 잘할 수 있는 영역에 배치돼 치매 환자, 가족, 지원 구조 인력과 돌봄 전문가의 탄탄한 관계를 형성해 놓았다. 긍정적인 관계를 이루어 치매 환자의 정서를 지원하며 지속 가능한 돌봄이 이뤄지도록 중요한 대화를 끌어냈다.

 

숙박을 위한 집은 전형적인 가정집처럼 느껴지며 잘 꾸며진 주방, 식사 공간, 라운지, 세탁실 등을 갖추고 있다. / Glenview Community Service
숙박을 위한 집은 전형적인 가정집처럼 느껴지며 잘 꾸며진 주방, 식사 공간, 라운지, 세탁실 등을 갖추고 있다. / Glenview Community Service
음악을 즐기는 마을 거주민 / Glenview Community Service
음악을 즐기는 마을 거주민 / Glenview Community Service
활동 코디네이터와 춤을 추는 거주민 / Glenview Community Service
활동 코디네이터와 춤을 추는 거주민 / Glenview Community Service
버스 투어, 요리, 콘서트, 댄스, 운동 수업, 빙고, 노래, 드럼 치기, 치료견 방문, 영화 감상 등 다양한 활동 프로그램과 문화 행사 지원 / Glenview Community Service
버스 투어, 요리, 콘서트, 댄스, 운동 수업, 빙고, 노래, 드럼 치기, 치료견 방문, 영화 감상 등 다양한 활동 프로그램과 문화 행사 지원 / Glenview Community Service
코롱지 마을의 2024년 5월 일정표
코롱지 마을의 2024년 5월 일정표

 

코롱지 마을의 목표

코롱지는 존엄성을 유지하는 치메 케어를 가능하게 하는 증거 기반 실천으로 지역사회에서 환영받는 마을이 되었고, 코롱지의 케어는 표준을 뛰어넘는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노인 케어가 마을에만 국한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더 넓은 지역사회를 포용하는 목표를 추진 중이다.

호주는 코롱지 마을의 경험을 치매 관련 지식의 모범 사례 자료를 도출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마을의 잠재력을 끌어올려 앞으로 지역사회와 통합한 사회적 관계망을 구축해 치매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지식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은 전 세계 많은 치매 관련 시설의 한계이기도 하다. 코롱지는 치매 돌봄 관행과 환경에 대한 일관된 인식, 동의 및 채택을 보여줌으로써 실제 사례를 전파하고 있다. 여기에는 증거 기반 치료 개입, 치매 교육 및 치매 치료 적용에 대한 직원의 역량 검토도 포함돼 있다.

 

 코롱지 마을 주민 / Glenview Community Service

지식과 이해의 문화가 마을 공동체에 스며들어야 존엄한 치매 케어가 가능해진다. 거주자, 가족, 직원, 그리고 넓은 지역사회를 지원하고 활성화하는 돌봄 모델과 환경이 필요하다. 치매 환자가 증가하는 우리나라에서도 마을 거주형 치매 케어 환경을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 코롱지 치매 마을처럼 돌봄의 격차를 해소하고 치매를 앓는 주민들이 지역사회의 포용으로 생의 마지막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며 존중받는 사회가 모두를 위한 사회임을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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