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걸리신 부모님들이 먹는 약 이야기[3]
치매 걸리신 부모님들이 먹는 약 이야기[3]
  • 최봉영 기자
  • 승인 2018.04.23 0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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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용태 효자병원 신경과장/연세대 외래교수

Containment?

Contain; 들어있다, 참다, 방지하다

Container; 그릇, 화물용 컨테이너

Containment; ??

1950년 6월 24일 미국 중서부 미주리 주의 작은 마을 인디펜던스에 주말 휴가를 보내기 위해 아내 베스, 외동딸 마가렛과 고향집에 내려와 있던 트루먼대통령에게 밤 10시가 되어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각하, 중대한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북한이 38선을 넘어 남한을 침공했습니다.”(딕 애치슨 국무장관)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 일어난 대규모 재래식 전쟁인 한국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전격적인 공산주의자의 침략 앞에 대한민국은 패배 일보 직전까지 몰렸습니다. 그러나 유엔군의 참전과 맥아더장군의 인천 상륙 작전을 통하여 전세를 일 순간에 바꾸게 됩니다. 이후 유엔군과 국군은 38선 이북으로 진격하게 됩니다. 이때 중국 공산당 정부에서 강력한 경고가 나오게 됩니다. 38선 이북으로 진격하게 되면 참전할 것이라는. 그러나 맥아더는 망설이는 트루먼을 설득 전쟁을 확전 합니다. 곧 평양과 원산을 점령하게 되고 중국은 다시금 심각한 경고를 보내지요. 더 이상 진격하면 참전하겠다는. 하지만 이미 미국이나 유엔군은 북한의 정권변화(rollback)를 염두에 두고 더 진격하게 되고 결국 중국 공산군의 참전이 이루어 집니다.

1850년대 미국은 북부와 남부로 갈라져 있습니다. 당시 북부 사람들에게 있어서 노예제라는 것은 정치이념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받아 들일 수가 없던 것 입니다. 이들은 연합하여 남부에 대항하여 남부를 포위하는 자유로운 땅, 자유로운 국가(cordon of freedom)를 형성합니다. 당시 북부인들은 노예제도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에 노예제도를 고수하는 남부지역을 봉쇄(containment)하기만 해도 스스로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에서 레트선장(클라크케이블 분)은 이 북부의 봉쇄정책에서 밀무역으로 성공한 사람이지요. 그 만큼 봉쇄정책은 남부지역에게는 힘든 상황이었으며 결국 남부지역은 전쟁을 선택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남북전쟁이지요. 미국은 남북전쟁을 통하여 분열의 위기를 극복하고 본격적인 초 강대국으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76세 할아버지가 인지기능 장애, 망상과 심한 성적인 증상으로 저희 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몇차례 뇌졸중과 심혈관질환으로 수술 받은 경력이 있는 환자입니다. 수시로 팬티를 내리고 성적인 요구를 하며 안 들어 주면 화를 내는 등 행동장애가 심하여 이전 병원에서 호르몬 치료와 항정신병 약물 등 많은 약물 치료를 하였으나 큰 호전 없고 오히려 환자는 더 잠을 못자는 등 증상이 악화되었습니다. 병동의 시한 폭탄이었지요. 많은 고민이 있었고, 2주가 지났습니다. 환자는 얼굴도 밝아지고 잠도 잘 자게 되었으며 비교적 안정적인 병실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의 트루만 대통령은 인상적인 연설을 합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세계적으로 세력을 확산하는 전제주의, 공산주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자유진영 방어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하였습니다. 그와 더불어 공산주의 국가를 철저히 봉쇄하는 것을 미국의 첫번째 외교 정책으로 하였지요. 그러한 트루만에게 한국전쟁은 첫번째 큰 시련이었습니다. 자유진영을 방어하기 위해서, 공산주의 세력의 확장에서 방어하기 위해서 한국에 참전하는 것 까지 결단하였으나 38선 이북을 북진하는 문제는 쉽게 판단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국제전이 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유엔군과 한국군이 평양 원산 선을 넘었을 때 중국에서 최후의 경고가 옵니다. 자유한국과 중국공산당이 국경을 맞대는 것은 용인하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자유진영을 지킨다고 하였지만 제한적 개입이나 봉쇄를 선호하였던 트루만에게는 고민이 깊어질 수 밖에 없겠지요. 하지만 맥아더가 이를 밀어 붙이고 한국전쟁은 결국 오늘날 모두가 아는 것처럼 끝났습니다.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가정처럼 무의미한 것이 없지만, 만약 당시 맥아더가 평양 원산 이북으로 진격하지 않고 여기에서 전쟁이 끝나고 북한 정권에 대한 봉쇄정책만 유지되어도 쉽게 통일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Containment 라고 하는 것은 어떤 곳에 넣어두고 빠져나가지 않게 하는 것이지요. 냉전 이후 미국이 자주 쓰는 외교 접근 방법입니다. 전쟁이나 인위적인 정권 교체를 시도 하지 않아도 봉쇄하는 것 만으로 그 정권 자체가 가지는 모순으로 인하여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이 북한에 하는 것도 일종의 containment 정책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의사들은 어떤 병이나 증상을 보면 무엇인가 치료를 하거나 개입하여 병이나 증상의 자연경과를 확실하게 바꾸고자 하는 강박이 있지요. 치매 환자가 기억력 장애나, 신경행동장애가 있다고 하면 어떤 식으로든 이를 개입하여 호전시키려고 합니다. 하지만 어떤 질환이나 증상은 생각처럼 잘 치료가 안 되는 것도 있습니다. 의사는 약을 증량 시키기도 하고, 바꾸기도 하고, 추가하기도 하고, 때로는 투약 방법을 다양하게 바꾸는 방법 등으로 최선을 다하지만, 이상하게 환자는 오히려 악화되는 경우를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이럴 경우 환자가 가진 증상이 환자나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냉정하게 다시 평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신과 환자 경우에는 심한 우울증이나 망상이 있어 자살 위험성이 있거나 타인을 심각하게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약물 뿐 아니라 다양한 방법을 이용하여 이를 확실하게 조정하여야만 합니다. 하지만 치매 노인 환자에서 이런 극단적인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이들을 완전하게 조절하는 것이 많은 부작용과 대가를 치른다면 합의 가능한 범위 내에서 조절하고 허용하는 게 옳을 수도 있습니다. 위에 예를 든 할아버지의 경우에도 망상이나 성적인 증상을 치료하기 위하여 과도한 약이 들어가고 결국 이것은 배뇨장애와 같은 부작용을 일으켰으며 연쇄적으로 불면과 이에 따른 섬망 등이 나타난 것이지요. 일단 첫번째 치료 목적은 감당 가능할 정도로 증상의 수위를 낮추어 놓는 것입니다. 즉 망상이 있어도 무섭지 않고 심하지 않으며, 성적인 행위도 수위를 낮추는 정도로 약을 사용합니다(물론 실지로 행위가 가능하지 않을 정도로). 그 다음 중요한 것은 좋은 간병인을 찾고 간병인을 교육하는 것입니다. 요즘도 할아버지는 성적인 요구를 하고 보채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랑한다고 하면 간병인 아줌마도 사랑한다고 하고 슬쩍 화제를 바꾸면 잊어 버리는 정도로만 증상 조절을 합니다. 즉 어떤 증상을 완전히 좋게 할 수 없다면 그 수준에서 봉쇄하는 것이지요. 봉쇄정책의 기본은 결국 봉쇄하면 봉쇄 당하는 체제는 그 자체의 모순과 불안정성으로 스스로 무너지거나 바뀐다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치매에서 보이는 행동장애는 안정적으로 고착되어 있지 않습니다. 대부분 변화하고 없어지는 방향으로 가지요. 봉쇄는 많은 인내와 시간, 이해가 필요한 정책입니다. 마찬가지로 환자의 증상을 이해하고 어느 정도 그것을 받아 주는 것이 필요하지요. 즉 주변 사람의 도움이 적극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어느 날 제 친구가 우울한 얼굴로 찾아 왔습니다. 주식을 하던 것이 마누라한테 들켜 통장과 카드를 압수당하고 마누라가 준 카드만 사용하라고 통고를 받은 것이지요. 들어오는 돈도, 나가는 돈도 모두 봉쇄당한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제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친구는 변할 친구가 아닌데…   최근 이 친구요? 레트 선장처럼 유유히 마누라의 봉쇄를 뚫고 몰래 비트 코인하고 있습니다. 돈을 벌었는지, 잃었는지는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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