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걸리신 부모님들이 먹는 약 이야기[5]
치매 걸리신 부모님들이 먹는 약 이야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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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5.08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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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용태 효자병원 신경과장/연세대 외래교수

히틀러의 선물(신경전달물질 이야기)

우리 뇌는 신경세포로 구성되어 있으며 얼핏 보기에 이 세포들은 마치 전선줄처럼 규칙없이 꼬여 있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어떤 자극이 오면 신경세포는 전기적으로 자극이 형성되어 다른 부위로 그 자극이 전달 됩니다. 그러면 마지막 전달 부위에서 어떤 변화를 일으키지요. 이것은 뇌 뿐 아니라 신경과 연결된 다양한 몸의 기관, 예를 들면 근육, 심장, 분비샘 등 수많은 신체 조직에서 일어나지요. 20세기 초부터 외부 혹은 내부 변화에 따른 신경 자극이 어떻게 다른 신경이나 기관에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 아주 뜨거운 논쟁이 있게 됩니다. 이것이 유명한 스프와 스파크(soup and spark) 전쟁입니다. 즉 자극이 신경세포에서 전기적으로 변화되어 다른 곳으로 전파되어 갈 때 중간에 화학적 물질이 매개 되어 전달되는지 아니면 전기적 자극으로만 전달 되는지 하는 논쟁입니다.

오토 뢰비(Otto Loewi)는 187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와인 양조장을 하는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납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예술의 역사에 관심이 있었으나 아버지의 설득에 못 이겨 의과대학을 갑니다. 하지만 항상 옆 길을 쳐다보고 있는 뢰비에게 의과대학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뢰비는 의과대학을 졸업하였으나 실습에서 만난 수 많은 환자들이 폐결핵과 폐렴으로 사망하는 것을 보고 환자를 보는 임상의사생활을 포기하고 기초학인 생리학을 전공하게 됩니다. 그는 생리학 실험을 수행하면서 신경에서 다른 조직으로 정보가 전달 과정에 어떤 화학 물질이 매개 되어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을 실험적으로 어떻게 증명해야 할지 고민하였습니다.

1920년 부활절 전날 뢰비는 밤에 꿈을 꿉니다. 그는 그 꿈이 너무 생생하여서 일어나 노트에 적어 놓고 다시 잡니다. 하지만 뢰비가 아침에 일어나 노트를 보니 무엇을 적었는지 본인도 알 수가 없었지요. 너무나 중요한 발견을 놓쳤다고 생각한 뢰비는 안절부절 못하지요. 그러나 다행히도 다음날 그는 같은 꿈을 꿉니다. 새벽 3시에 일어난 그는 꿈의 내용을 정확하게 적고 바로 실험실로 달려갑니다. 뢰비는 신경이 붙어 있는 개구리 심장을 생리 식염수에 넣고 자극합니다. 이 자극으로 심장 박동이 느려지는 것을 관찰하고 심장을 싸고 있던 생리 식염수를 신경이 제거 된 심장에 넣습니다. 그러자 신경이 없는 심장 역시 느려지는 것을 확인합니다. 즉 자극 받은 신경에서 나온 어떤 물질이 심장을 담아 놓은 식염수에 흘러 들어갔고 그 식염수에 노출된 심장이 신경의 자극 없이도 영향을 받는 것을 확인한 것 입니다. 이것으로 신경 말단에서 무엇인가 화학물질이 나온다는 것을 증명한 즉 스프와 스파크 논쟁의 종지부를 찍은 것이지요. 이때가 새벽 5시 였고 이 시간은 그가 노벨 생리학상 수상이 결정되는 시간이기도 하지요.

신경에서 다른 신경으로 정보가 전달될 때도 수많은 신경이 바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시냅스(synapse)라는 아주 얇은 간극이 있고 이를 통해 연결되어 있지요. 그 간극에 어떤 화학 물질이 뿌려지고 그 화학 물질이 다음 신경세포에 어떤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지요. 여기에 작용하는 물질이 신경전달 물질(neurotransmitter)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아세틸콜린, 도파민, 세로토닌, 글루타메이트 등 이며 다양한 물질이 다양한 신경세포에 작용합니다. 컴퓨터를 생각하면 다양한 전기적 연결 방식으로 만도 충분히(그리고 빨리) 작동 되는데 왜 우리 뇌는 복잡하게 전기 연결 방식에 다른 화학물질이 매개 할까요? 뇌는 컴퓨터의 방식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어떤 부분에서는 컴퓨터보다 훨씬 정보전달이나 해석이 느리지요. 하지만 이런 복잡하고 취약한 구조를 채택함으로써 어마어마한 다양성을 확보할 수가 있습니다. 우선 다양한 신경전달 물질로서 다양한 화학물질이 분비될 뿐 아니라 이를 받아 들이는 수용체가 다양하게 존재함으로써 정보를 증폭, 저하 뿐 아니라 분할 할 수도 재 창조할 수도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된 것입니다. 또한 그 수용체는 같은 신경전달 물질에 대해서도 한가지가 아닌 다양한 변형이 존재 함으로써 이에 대한 약물을 개발하면 그 신경계의 역할 중 특정 효과 만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러한 구조적인 취약성은 뇌에 많은 불안정성, 즉 병을 초래하게 됩니다. 즉 어떤 특정부분의 신경전달 물질의 이상과 연관되어 알츠하이머 치매(아세틸콜린), 우울증(세로토닌), 파킨슨(도파민), 정신분열병(도파민) 등 다양한 질환이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뢰이가 심장에서 발견한 신경전달 물질은 아세틸콜린이며, 이러한 혁신적인 발견으로 뇌질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신경전달 물질을 조절 함으로써 다양한 약물을 개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뢰이는 혁신적인 발견을 하였지만 곧바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스프와 스파크 논쟁은 상당기간 지속 되었습니다. 하지만 1936년 노벨상을 타면서 이 논쟁은 역사적으로 종결 됩니다. 그러면 뢰이는 부자가 되었을까요? 안타깝게 1938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유대인이던 뢰이는 구금되게 됩니다. 그러자 전세계 과학자들이 뢰이 구명운동을 하게 됩니다. 히틀러는 뢰이가 노벨상 상금을 포함한 모든 재산을 포기한다는 조건으로 영국으로 떠나가는 것을 허용하게 됩니다. 돌이켜 보면 히틀러는 영국이나 미국에 많은 선물을 주었습니다. 히틀러가 집권한 첫해만 2600명의 과학자들이 독일을 떠나게 됩니다. 이 망명객 중 20명이 노벨상을 받게 됩니다. 히틀러가 집권하기 전에 노벨상 수상자 100명중 33명이 독일에서 배출 되었습니다. 반면 영국은 18명 미국은 6명에 불과했지요. 이렇게 한번 바뀐 과학계의 헤게모니는 아직까지도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즉 인재를 키우고 양성하는 것은 어렵지만 한번 버려지면 순식간에 무너지고 그 영향은 매우 길게 가는 것을 보여 줍니다.

여담이지만 뢰이의 발견이 바로 받아 들이지 않고 많은 논란이 지속 되었던 이유 중 하나는 뢰이가 꿈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다소 황당함이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뢰이는 예술가를 꿈꾸어 왔고 그 삶이나 연구 자체가 드라마와 같기를 소망하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꿈이라는 것을 이용하여 대중에 가까이 가려고 하였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실지로 더 문제가 되었던 것은 실험의 재연성에 있었습니다. 즉 과학이라는 것은 누가 하더라도 같은 실험은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뢰이의 실험은 다른 사람에게서 재현되기도 재현되지 않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뢰이는 1926년 국제생리학회가 열린 스톡홀름에서 공개 실험을 하게 되고 여기에서 그 결과를 성공적으로 재현하게 됩니다. 과연 이 실험에서 키(key)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개구리의 심장이 아니라 겨울 개구리의 심장을 이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개구리가 겨울로 들어가면 생체 내에서 아세틸콜린을 분해하는 효소가 감소하게 됩니다. 따라서 신경에서 분비되는 아세틸콜린이 파괴되지 않고, 즉 감소하지 않고 식염수에 높은 농도로 남아 있게 됩니다. 고농도로 식염수에 남아 있는 아세틸콜린이 심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가 있는 것이지요. 또한 이 실험을 통해서 현재 사용되는 치매 치료제의 가장 중요한 아세틸콜린 분해효소의 존재도 알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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