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걸리신 부모님들이 먹는 약 이야기[6]
치매 걸리신 부모님들이 먹는 약 이야기[6]
  • DementiaNews
  • 승인 2018.05.14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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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용태 효자병원 신경과장/연세대 외래교수

White as snow(Me too)


세계적인 세균학자 에를리히(Paul Ehrlich)의 제자인 골드만은 깊은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그는 에를리히가 개발한 트립토판 블루를 이용하여 동물실험 중입니다. 이 약은 죽은 세포에만 염색이 되는 것으로서 동물실험에서 혈관에 주사하면 서서히 전체 생체조직이 파랗게 염색이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뇌와 척수만은 전혀 염색이 되지 않고 마치 눈처럼 하얗게 빛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스승인 에를리히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 였습니다. 에를리히는 아마도 뇌나 척수와 같은 조직은 예외적으로 이 염색약에 염색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골드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엇인가 다른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몇 차례 실험 후에 토끼의 뇌척수액에 직접 이 염색약을 주입합니다. 그리고 다른 일을 하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는 실험실에 돌아와서 실험용 토끼를 보고 놀라고 말았습니다. 눈같이 하얗던 뇌와 척수가 다른 조직들과 마찬가지로 파랗게 변한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혈액뇌관문(blood brain barrier)을 발견하는 순간 이었습니다.

트립토판 블루를 말초 혈관에 주사(왼쪽), 트립토판 블루를 중추신경계에 직접 주사. 왼쪽 그림에서는말초에서 염색이 되나 중추에는 염색이 안됨. 오른쪽 그림에서는 중추신경계는 염색되나 말초에는 염색이 되지 않음.

1901 과 1903년 사이에 아프리카 빅토리아 호수 북부 지역에서 인간에게 치명적인 수면병이 창궐합니다. 이 지역 주민의 80%가 병에 걸리게 됩니다. 이 병은 체체파리에 물려서 생기는 것으로 단순히 오한, 구토 등으로도 나타나지만 결국 중추신경계를 침범하게 되며 성격변화, 이상행동, 밤에는 잠을 못 자고 낮에 자는 수면 변화, 의식혼탁, 혼수 등으로 사망하는 무서운 병입니다. 당시 식민 지배국인 유럽에서는 이 병을 가진 환자의 혈액에서 트리파노소마라는 원충을 발견함으로써 이 병의 원인을 밝히게 되지요. 하지만 문제는 이 병을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지요. 당시에는 세균이나 기생충 질환을 치료한다는 개념이 없던 시기였습니다. 이때 세계적인 세균학자인 에르리히가 등장하게 됩니다. 에르리히는 단세포 생물인 원충이나 세균은 사람과 다른 세포 구조를 가지고 있을 것이며 이것을 잘 이용하면 사람과 같은 숙주는 해를 주지 않고(좀더 정밀하게 말하면 덜 해를 주고), 기생충은 죽이는 화학요법(chemotherapy)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에르리히는 살아있는 세포와 살아있지 않은 세포를 구분하는 염색법인 트립토판계열의 염색약이 원충을 죽일 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원충에게는 독성이 있고 사람에게는 독성이 적은 물질을 연구한 끝에 그는 트립토판 레드(trypan red )를 개발하고 직접 실험을 하게 됩니다. 인위적으로 이 병에 전염시킨 쥐는 치료를 안 하면 5일이내 사망하지만 3일 이내 이약을 주게 되면 치료가 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모든 게 끝인 해피엔딩일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몇 개월 뒤 치료를 받았던 쥐들에게서 이 병이 재발하게 되었고 이때는 치료하여도 효과가 없었습니다. 실망한 에를리히는 1905년 실험을 중단하고, 그의 관심을 평생의 역작인 매독치료제 개발에 열중하게 됩니다(1909년 살바르산이라는 매독치료제 개발에 성공하게 됩니다).

그러면 왜 처음 치료 후에 혈액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던 원충들이 치료 종료 일정 기간 지난 후에 다시 재발하였을까요? 당시에는 그 원인을 몰랐지요.하지만 골드만의 실험은 이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보여 줍니다. 뇌를 포함한 중추 신경계에도 혈관이 들어가고 각종 필요한 영양공급을 받지만 다른 조직과는 다르게 혈액에 있는 모든 성분이 통과하지 못하도록 아주 단단한 잠금 장치를 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뇌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물질만 선택적으로 아주 까다롭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을 혈액뇌관문이라고 불리웁니다. 즉 트립토판 이라는 약은 뇌가 보기에는 필요 없거나 위험한 물질로 보기 때문에 혈액에서 뇌내로 진입 하는 것을 금지시키는 것이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트리파노소마라는 원충은 트립토판이 통과하지 못하는 이 혈액뇌관문을 통과합니다. 어떻게 이 원충이 단단한 장벽을 넘어가는지(기어 올라가는지, 아니면 여권을 위조하는지 등)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있지만 생략하겠습니다. 이 원충은 일단 트립토판이 작용하지 않는 뇌내에 들어가 숨을 죽이고 있다가 서서히 힘을 회복하게 되면 다시 신체내로 나오게 되고 이때는 내성이 생겨 약에 잘 치료 되지 않습니다. 숨바꼭질이 이 원충의 놀라운 생명력의 원천입니다.

2015년 12월 15일 조계사 주변에는 수 많은 경찰들이 포진하였고 긴장감이 높았습니다. 2015년 11월 14일 민중 총궐기 대회 후 경찰에 수배를 받던 한상균 민주노총위원장이 조계사에 신변보호 요청을 하면서 조계사에 들어가게 됩니다. 경찰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확실한 법적 근거가 있으므로 영장을 보여주고 들어가 검거 하여야 하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은 것이지요. 결국 긴 대치끝에 12월 15일 한상균 민노총위원장이 자진 퇴거함으로써 검거됩니다.

고대 그리스에는 신전(asylum)이 있었습니다. 특히 중요 신전은 신성한 곳으로서 도시 가운데 있으면서 비록 도시에 속해 있지 않지만 일정부분 자신의 규칙을 가지고 독립성을 인정 받았습니다. 즉 이곳은 일정 부분 성역이었고 모든 사람이 인정을 하지요. 《후한서》 《삼국지》 등에서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특별한 기록이 나옵니다. 마한(馬韓), 변한(弁韓), 진한(辰韓)의 삼한에서는 매년 1∼2차에 걸쳐 각 읍별로 제주(祭主)인 천군(天君)을 선발하고 특별 장소를 설치하여 제사를 지내면서 질병과 재앙이 없기를 빌었는데 이 제사 지내는 장소를 소도라고 하였습니다. 소도는 신성(神聖) 지역이므로 국법의 힘이 제한 되는 곳 입니다. 그리스의 신전이나 소도에는 때때로 정치적으로 박해 받는 사람이 들어오기도 하는데 일단 들어오면 돌려보내거나 잡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진짜로 죄를 지은 사람이 와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사회 문제가 되기도 하였지요. 즉 이런 부위는 아주 특수한 지위를 인정 받게 될 정도로 중요성이 인정되는 곳 입니다.

인간의 몸에는 특별히 중요한 장기들이 있지요. 이 장기들은 매우 특별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심장 같은 경우는 몸의 깊숙한 곳에 위치하며 그 심장을 많은 갈비뼈가 보호하고 있지요. 여담이지만 하나님은 그 중요한 갈비뼈를 뽑아서 여자를 만듭니다. 그래서 남녀가 사랑하면 가슴이 아픈 것이지요. 뽑아버린 상처가 상기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뇌는 좀더 철저하게 보호가 됩니다. 심장처럼 듬성듬성 갈비뼈로 보호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완벽하게 두개골로 감싸고 있지요. 뿐만 아니라 몸의 일부이지만 다른 조직과 달리 혈관으로 오는 여러 물질을 아주 엄격하게 통제합니다. 그리고 일단 들어가면 찾기가 힘들게 되지요. 이러한 통제는 반대로 세균이 들어가도 면역세포 역시 들어가기 어렵기 때문에 면역이 잘 이루어지지 않기도 합니다. 이 혈관뇌관문의 존재의 중요성은 뇌에  작용하는 약물은 실험실에서는 효과가 있더라도 물리학적 화학적으로 관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는 것입니다.  치매에 작용할 것 같은 많은 치매 치료제 후보 약들은 기본적으로 이 첫번째 관문을 통과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혈관뇌관문을 좀더 잘 이해하게 됨으로써 더 많은 약제들이 첫번째 관문을 넘어 서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알츠하이머병 치매와 같은 퇴행성 질환이 뇌 자체 퇴행성 변화 라기 보다는 나이에 따른 혈관뇌관문의 기능 저하에 따른 혈관 속 독성물질이 뇌로 진행되어 생긴다는 과격한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알츠하이머병 치매도 우리가 생각하는 퇴행성 질환이 아니라 대사성 질환으로 인식하는 주장이지요. 이쪽 분야는 연구하면 좀더 뇌를 이해하고 치료할 수 있는 중요한 분야입니다.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혈관뇌장벽을 보면서 얼마나 뇌가 특수한 그리고 중요한 조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아 우리 몸에 혈관뇌장벽과 마찬가지로 혈관과 장기 사이에 아주 끈끈하게 막아주는 장기가 한곳 더 있습니다. 어디일까요? 바로 혈관고환장벽(blood-testis barrier)입니다. 즉 생식세포가 있는 곳은 뇌만큼 중요하게 관리되는 곳입니다. 따라서 잘 보호되고 관리되어야 할 것입니다. 제가 혈관뇌장벽을 이야기할 때 아래에서 소리 치는 것 같군요. Me too, 나도 중요해…   특히 공인이면 더 중요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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