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걸리신 부모님들이 먹는 약 이야기[8]
치매 걸리신 부모님들이 먹는 약 이야기[8]
  • DementiaNews
  • 승인 2018.05.2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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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용태 효자병원 신경과장/연세대 외래교수

브레이크쓰르우

Breakthrough
1. 뚫고 나아가다(돌파하다). 
2. (구름 뒤에서) 나타나다. 
-(네이버 어학사전)

1916년 8월 3일 오후 1시 솜강 어느 지역.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레오는 참호에서 총을 겨눈 채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200m 전방에는 독일군 역시 참호를 파고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어제 밤, 그리고 새벽 독일 군은 전격적으로 진격하였지만 프랑스군의 강력한 저항에 막혀 다수의 사상자를 내고 철수한 상태이다. 이 두 전선 사이에는 어제 전투로 인한 군인들의 시체가 널 부러져 있고 어느 누구도 전우의 시체를 가져올 용기가 없다. 양측 모두 이 대치 선 안, 즉 무인지대(no man’s land)에 들어가는 순간 아마 누구도 no man이 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잠깐 쉬면서 레오는 담배를 한 모금 빤다. 너무나 더운 오후 참호안은 축축하고 입은 타 들어간다. 그럼에도 담배는 마른 레오의 입과 목구멍을 감싸준다. 자기도 모르게 레오가 혼자 중얼거린다. “빌어먹을 전쟁, 언제 끝나려나?” 다시 앞을 쳐다보니 뜨거운 햇빛과 멀리서 순간적으로 반짝이는 총구만 얼핏 보인다. 전선은 끝없이 조용하고 영원히 시간이 멈춰져 있는 것만 같았다.

“탕, 탕” 1914년 6월, 발칸 반도의 심장부 사라예보에서 총성이 울립니다. 열 아홉 살 세르비아 청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쏘아 죽인 사건이지요. 이것은 결국 일차세계대전으로 비화하게 됩니다. 이 일차세계대전에서 나타난 특이한 전쟁형태가 참호전이었습니다. 초기에 프랑스를 압박하게 된 독일군은 곧 연합군의 참호전에 전선이 고착되게 됩니다. 양측 모두 땅을 깊게 파고 이 안에서 적을 막는 것이지요. 당시에 화력 수준에서는 이 간단한 참호가 쉽게 뚫을 수 없는 강력한 방어망이 됩니다. 즉 강력한 이동 군사 무기가 발달하지 않은 당시에는 군사적으로 공격 전술의 발달 수준이 수비 전술의 발달 수준을 넘어 서지 못하는 것이지요. 이 참호전은 결국 아주 오랜 시간 대치와 소모 그리고 끊임없는 인명피해를 담보로 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예를 들은 솜 전투에서 4개월 동안 영국군 42만명, 프랑스군 20만명, 독일군 사상자는 65만명에 이릅니다. 하지만 이러한 대가에도 고작 10km 정도 밖에는 전선 이동을 못하였다고 합니다. 어마어마한 소모전이지요. 너무나도 지리멸렬한 전쟁에 모든 전략가는 꿈을 꿉니다. Breakthrough(돌파)!! 돌파는 공격자가 아주 짧은 시간안에(순간적으로) 이 지루한 전선을 부수고 전진하는 것 입니다. 일단 첫번째 수비선을 돌파한다면 주변의 방어선 역시 공포와 전술적 문제로 자연스럽게 붕괴 되지요. 즉 돌파되는 순간 방어선 자체가 사라지는 효과가 생깁니다. 전세가 완전히 뒤집어지는 것이지요. 이 일차세계대전을 통하여 교전당사국인 프랑스와 독일은 서로 다른 교훈을 얻습니다. 즉 프랑스는 참호전 승리에 고무되어 참호전을 더욱 강력히 하는 마지노 요새를 건설하는 쪽으로 전략을 집중하였고(과거에 집착하고) 독일은 이 참호전을 돌파할 수 있는 전격전(Blitzkrieg)을 개발합니다(미래로 나아갔고). 결과는… 여러분 들이 아는 것과 같지요.

1993년 최초로 미국식약청에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서 콜린분해효소 억제재인 타크린(tacrine)을 승인합니다. 저도 1998년부터 이 약을 사용하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약을 통하여 2가지를 느꼈습니다. 첫번째는 Surprise(놀라움) 입니다. 치매도 좋아질 수 있다는. 두번째는 Hard(to deal, 힘듬) 입니다. 다루기 힘든 약이구나 하는 것 입니다. 즉 새로운 세상을 보았지만 새로운 세상에 들어가기가 실질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지요. 이런 생각은 약을 개발하는 제약회사도 마찬가지이겠지요. 그래서 전세계적으로 유수의 제약 회사들이 필사적으로 부작용이 적고 효과가 있는 콜린분해효소 억제제를 찾기 위해서 노력하게 됩니다. 이러던 중 일본에 있는 작은 제약회사인 에자이 연구실에서는 타크린을 기본으로 독성이 약한 변형된 화합물(유도체)을 연구하였지만 계속 실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타크린과 구조가 다른 벤질피페라진유도체를 동물에 투여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물질이 독성이 거의 없고 콜린분해효소 억제 효과가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처음 물질은 효과가 너무 약해서 이 계통의 700개 이상의 유도체를 만들어 시험한 결과 독성, 효과, 약역학이 잘 균형 잡힌 약을 개발합니다. 도네페질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이고, 이것은 곳 치매 치료에 있어 돌파(breakthrough)가 이루어지는 순간이기도 하지요. 돌파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이 약의 개발 이후 치매 치료뿐 아니라 전반적인 사회에도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약은 분명히 알츠하이머 환자에게 어느 정도 효과가 있지만 그 치료 효과가 과연 진정한 의미가 있느냐는 아직도 의학자, 경제학자, 사회학자 사이에 논쟁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 이 약을 처방하였을 때 2/3 에서 효과를 보입니다. 하지만 극적인 효과는 10-20% 정도에 불과하지요. 그리고 한정된 시간 동안 유효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약은 인간이 만들어내 약 중에 랜드마크(landmark)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이 약이 필요한 대상자가 어마어마 하게 많습니다. 노령인구의 기하급수적 증가와 이에 따른 알츠하이머병의 폭발적인 증가에 의하여 이 약을 써야만 하는 대상자가 늘어난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치료약제의 개발은 숨어있는 치매 환자를 더 세상으로 끌어 올리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두번째로는 의료뿐 아니라 사회인식이 급격하게 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1990년대 말 이 약이 나오기 전까지 신경과에서 치매를 전공하는 사람은 극히 적었고, 특별한 사람(공부 못하는 저 같은 사람…, 농담입니다)만이 전공하였지요. 물론 인지기능센터 같은 것은 대한민국에서는 존재 자체가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진단 조차 등한시 하였습니다. 진단을 한들 크게 해줄 게 없다는 생각이었지요. 하지만 무엇인가를 해줄 수 있다는 생각은 개인 뿐 아니라 사회 자체에도 치매를 자연경과가 아닌 때려 잡아야 할 질병으로 인식하게 되었지요. 현재 문재인정권에서 하는 치매 국가책임제도 그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치매에 대한 약물 치료는 인간의 정신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면서 인지신경학이 급속도로 발달하게 됩니다. 이러한 발달은 다시 인공지능과 같은 산업으로도 연관이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이런 혁신적인 돌파로 전선을 한참 전진한 이후 다른 전선에 봉착되었다는 것이지요. 2003년 메만틴이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서 승인 받은 이후 치료제 개발이 없다는 것 입니다. 하지만 조만간 이런 혁신(돌파)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지금도 어느 실험실에서는 무엇인가 만들어지고 있겠지요.

아들 1 “아버지가 얼마나 오랫 동안 병원에 입원 해야 하나요, 요양원으로 갈 수는 없나요?”
딸 1 “ 아버지의 몸에 멍자국이 있어요, 혹시 학대하는 것은 아닌가요? 우리 아버지는 이러실 분이 아닌데…  좀더 큰 병원에서 치료 받아야 겠어요”
딸 2 “ 집에 모시고 가도 되는데 며느리가 안 모시려고 해요. 우리 아버지는 치매가 아니에요”
며느리 1 “……  “
아들 2(오래간만에 외국에서 온)  “식당이 어딘가요?”

위의 경우는 흔히 보는 환자 보호자들 모습입니다. 환자를 보다 보면 되는 것은 되고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도 있습니다. 의사도 인간인지라 할 수 없는 것 진짜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환자는 99% 이상 어떤 식으로든 끌고 갈 수 있는데 환자 보호자와 엉켜 버리면 치료를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더군다나 환자 보호자들 사이에 갈등이 숨어 있는 경우는 더 하지요. 그러면 환자의 치료는 엉망으로 되거나 사고로 이어질 수가 있지요. 벽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요. 가장 쉬운 것은 포기하는 것입니다. 다른 큰 병원이든 요양원이든 보내 버리면 됩니다. 그러면 제 앞에 있는 벽이 다른 사람 앞으로 넘어 가지요. 하지만 한번은 모든 당사자를 부릅니다. 그러면 모든 보호자들은 제각각 이야기 하고 때로는 자기들 끼리 싸우고 또 때로는 의사인 저를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한 마디만 합니다. “저도 이 환자 보고 싶지 않습니다” 보호자들은 무엇인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기대하다가 대 놓고 의사가 보기 싫다고 하면 그만 멍 해집니다. 그러면 저는 순간적으로 말을 합니다. “환자 보호자와 의사가 안 맞으면 사고 납니다. 퇴원도 치료입니다” 보호자들은 당황하지요. 이미 많은 병원을 경험한 보호자가 딱히 선택할 방법도 없는 것이지요. 그러면 저한테 의견을 묻습니다. 저는 완곡하게 말합니다. 어떠 여러 사람이 의견이 다를 때는 제일 약자를 가운데에 놓고 생각하라는 것이지요. 다들 환자를 앞에 내세우지만 결국은 자기의 이해관계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물론 이 이해관계의 대부분이 돈입니다. 필요하면 이걸 수면 위로 올리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환자 치료가 매우 쉬워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이런 상황은 매우 조심스러운 상황입니다. 잘못하면 멱살 잡히기 쉬운.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할 때는 의사도 진짜로 선의를 가진다는 생각이 전달 되어야만 합니다.

한번만 마지막으로 따라해보세요. “저도 이 환자 보고 싶지 않습니다” 때로는 이런 말이 치료가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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