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걸리신 부모님들이 먹는 약 이야기[9]
치매 걸리신 부모님들이 먹는 약 이야기[9]
  • DementiaNews
  • 승인 2018.06.04 09: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곽용태 효자병원 신경과장/연세대 외래교수

코차 혹은 발차

출처: 픽사베이

갑자기 장내가 조용해집니다. 간헐적으로 긴장된 말의 숨소리와 무언인가 탄탄하게 긴장된 공기가 장내에 꽉 차 갑니다. 길 것만 같았던 정적이 ‘탕’ 하는 총소리와 함께 길게 늘어섰던 열 여섯 경주마들이 전력 질주를 합니다. 경마는 불과 몇 분 안에 승부가 결정 납니다. 하지만 격렬하고 아주 빠른 경기이기 때문에 거의 동시에 결정선을 넘어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극단적으로는 경주마들이 결승선에 들어올 때 코 하나 차이로 승부가 바뀔 수 있지요. 이런 경우를 ‘코차’라고 합니다. 그 차이가 너무 미세해 육안으로 확인이 어려울 때는 1초당 1500 프레임을 촬영해 낼 수 있는 초고속 카메라를 사용하는데 이것은 무려 0.01mm의 차이까지 식별한다고 합니다. 이 코차가 극적인 것은 경마장에는 승부에 따라 많은 돈이 걸려 있기 때문에 그 열기와 흥분은 어디 비할 데가 없을 것입니다. 경마장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강세종목인 스피드 스케이팅에서도 이런 일이 생깁니다.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승부는 코가 아닌 스케이트의 날, 즉 ‘발차’로 승부가 결정됩니다. 아주 미세한 차이로 메달의 색깔이 바뀌는 것이지요.

도네페질이 1998년 9월 21일 한국에 발매 된 후 예상 외로 공전의 히트를 하게 됩니다. 이것은 한국만의 일이 아닐 것 입니다. 당시 한국에서는 치매에 대한 두가지 편견이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한국에는 서양과 달리 혈관성 치매는 있어도 알츠하이머병 치매는 없다. 두번째는 설사 알츠하이머병 치매가 있더라도 이것은 의학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없고 결국 심하면 ‘정신병원에 가야 하는 병이다’ 입니다. 하지만 도네페질의 등장은 이 두 가지 편견을 동시에 깬 것이 되었습니다. 일단 치료 약제를 확보하게 되자 기존에는 원인질환 보다는 그냥 치매로 진단하던 의료인들은 좀더 적극적으로 원인에 의한 진단을 하게 됩니다. 또한 도네페질에 대한 약물 반응은 거꾸로 알츠하이머병 진단에 도움이 될 정도로 효과적이었습니다. 심지어 알츠하이머병 치매 환자에서는 약을 한번만 주어도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은, 그리고 좀더 집중력이 강화되는 효과까지 관찰이 됩니다.1

갑자기 전세계 주요 제약회사가 이 시장에 뛰어들게 됩니다. 아세틸콜린분해효소 억제제는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의 전쟁 무기로서, 그리고 종전 후에는 식량 증산을 위한 살충제로서 수 많은 물질들을 합성 시험한 상태이기 때문에 이들 물질에서 혹은 이들의 변형된 물질에서 살충제나 화학무기 성분이 아닌 치매치료제로서의 가능성을 찾아 보게 됩니다. 치매치료제로 개발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는 약제가 혈관뇌관문(blood brain barrier)을 잘 통과해야 하고 말초보다는 중추(즉 뇌 안)에 작용을 해야 하겠지요. 또한 기존에 출시된 도네페질과 차별성을 두어야 하기 때문에 무엇인가 다른 특성을 가져야 하겠지요. 즉 후발 업자로서 선발 업자에 대한 차별성을 두어야 하는데 기본은 효과이지요. 또한 기존의 약제보다 효과가 좋다는 것을 부각하기 위해서는 이론적인 배경도 필요하였지요. 2000년 10월 1일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인 노바티스가 드디어 한국에 비장의 무기 리바스티그민(rivastigmine)을 들고 치매 약 시장에 진입합니다. 치매 약물 시장에 전쟁이 시작된 것이지요. 알츠하이머병에서 결핍을 보이는 아세틸콜린을 분해하는 효소는 아세틸콜린분해효소와 부틸콜린분해효소 2가지가 있습니다. 리바스티그민은 아세틸콜린분해효소와 부티릴콜린분해효소 모두에 작용합니다. 기존에는 아세틸콜린분해효소의 억제만 중요하다고 생각 하였는데 부티릴콜린분해효소 억제제가 알츠하이머병의 병리기전에 중요한 아밀로이드판 형성을 감소시킨다는 장점을 부각한 것이지요. 하지만 이 약물은 환자가 복용하는 약으로서 약점이 있었습니다. 약의 반감기(몸에서 반으로 줄어드는 시간)가 짧아서 하루에 두 번 먹어야 한다는 약점이 있지요. 이것은 이약이 가지고 있는 약물 자체의 특성이기 때문에 어떻게 고칠 방법이 없는 것이지요. 하루에 한 번 먹느냐 두 번 먹느냐가 그렇게 중요할까요? 하지만 이건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될 수가 있습니다. 약을 매일 평생 먹어야 하는 환자에게는 약물 복용에 대한 순응성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더구나 스스로 독립적인 생활이 제한이 오는 치매 환자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이때 이 제약회사는 고안합니다. 약물이 몸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바꾸어 보자. 즉 먹지 말고 붙이자는 것이지요. 2008년 피부에 붙이는 리바스티그민 패치가 개발되었습니다. 실지로 패치 제재가 입으로 먹는 경구 제제 보다 더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마케팅을 진행하지요. 이후 도네페질도 혀 밑에 녹여 먹는 설하형을 개발하는 등 약물에 대한 근본적인 개발보다는 이후 몸으로 약을 전달 하는 방식의 변화인 약물제형의 변화가 시장 변화를 주도하는 양상을 보입니다.

의사나 환자가 진짜로 알고 싶은 것은 그러면 과연 선발 주자와 후발 주자 약물 사이에 효과의 차이가 있을까요? 약이 효과가 있는지를 증명하려면 위약(가짜약)과 비교하여야 하지만 그 경우 너무 많은 돈이 들고 또한 윤리적인 문제도 동반하지요. 선발 주자의 약이 치매에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과연 후발주자약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치매가 진행되고 있는 환자에게 아무런 효과가 없는 위약을 복용하게 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타당할까요? 굉장히 어려운 문제가 생깁니다. 하지만 언뜻 생각하면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기존에 효과가 있다고 여겨지는 약과 비교하면 되는 것이지요.1 만약 효과가 있다고 여겨지는 약 보다 후발주자가 더 효과가 있으면 그 약은 효과가 있을 가능성이 있지요. 최소한 첫번째 약보다는 말입니다. 또한 이것은 소비자에게 아주 큰 장점이 됩니다. 많은 약 중에 어떤 약이 더 효과가 있는지 알려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다국적제약회사가 일반 신약 하나 개발하는데 4조에서 11조 정도 들어 간다고 합니다. 만약 이 약이 충분기간 판매되고 특허가 끝난다면 그래도 문제가 덜 한데, 막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개발한 약이 후발 주자 약 보다 효과가 못하다고 낙인이 찍히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연구 방법의 문제 제기와 수 많은 소송 등 엄청난 후 폭풍이 몰아칩니다. 기존의 개발된 치매 약제들도 이런 저런 이유로 의사나 환자가 알고 싶어하는 명확한 머리와 머리를 맞대는 연구(head-to-head study)를 기피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소비자만 다시 헤매게 되지요.

그러면 의사는 수 많은 약 들 중 어떤 약이 더 효과가 좋는지 알 수가 있을까요? 의사는 사설 경마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다만 공식 경마장에서 있는 것과 같은 첨단 판독 카메라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치매 환자를 지속적으로 보아온 의사라면 숙련된 눈으로 아주 작은 차이도 인지할 수 있지요. 의사는 수많은 종류의 약들을 수많은 환자들에게 사용하면서 각 약들이 어떤 특징이 있는지 어떤 것이 효과가 있는지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약이 더 효과가 있냐 구요? 아 여기는 사설 경마장이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말씀 못 드립니다. 저에게 개인적으로 물어 보시면 가르쳐 드리지요. 물론 제가 요즘 심각한 노안을 가지고 있어서 코차나 발차를 잘 구분하지 못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감안하여야 합니다.

Reference

Head to head comparisons as an alternative to placebo-controlled trials. Vieta E, Cruz N.

Eur Neuropsychopharmacol. 2012 Nov;22(11):800-3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