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손가락 K-ADNI, 실패한 경험이 성공 밑거름 될 것"
"아픈 손가락 K-ADNI, 실패한 경험이 성공 밑거름 될 것"
  • 최봉영 기자
  • 승인 2017.07.17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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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치매국가책임제 시행 발표 이후 치매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사업은 기본적으로 치매에 대한 국민들의 부담을 줄여주고자 하는 목적에서 출발했지만 연구자들도 관심이 많다. 궁극적으로 치매에 대한 발병률을 낮추고, 효과적인 관리와 치료를 위해서는 연구에 대한 투자도 병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치매와 관련한 내년 정부 R&D 예산은 600억원 가량으로 올해보다 70% 이상 늘어날 예정이다.

이런 분위식 속에 다시 한번 되돌아봐야 할 연구가 있다. 바로 K-ADNI로 불렸던 한국 알츠하이머 뇌영상 선도연구 (Korea Alzheimer's Disease Neuroimaging Initiative, K-ADNI)다. K-ADNI는 보건복지부가 2012년부터 추진해 500명 이상의 피험자(정상인 및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뇌 영상자료, 뇌척수액 샘플, 혈액샘플 등을 추적 수집해 DB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야심차게 시작됐다. 원래 K-ADNI는 6년 일정으로 기획됐으나, 실제 연구는 3년만에 중단됐다. 연구를 통해 질 높은 국내 치매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고, 치료제 개발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K-ADNI의 실패는 아쉬울 수 밖에 없었다. K-ADNI 사업을 주도했던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성윤 교수에게 이 연구는 아픈 손가락이다. 하지만 김 교수는 연구 중단이라는 뼈아픈 경험은 향후 진행될 치매 연구의 발판이 될 것이라 자부했다.

다음은 김 교수와 일문일답.

K-ADNI는 어떻게 시작된 사업인가?

ADNI는 치매의 진행을 파악하기 위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기반 연구다. 미국과 유럽, 일본, 호주 등에서 동일한 연구가 진행돼 WW-ADNI (World-wide ADNI)로도 불리기도 한다. 연구 목표는 정상, 경도인지장애, 알츠하이머 치매, 혈관성 인지장애 등 총 500 명의 임상 정보, 신경심리정보, 자기공명과 핵의학 영 상, 유전 정보, 혈액과 뇌척수액 시료를 3 년간 수집, 데이터베이스화해 치매 발병, 악화 및 완화 요인을 파악하고, 향후 새로운 진단법 및 치료제의 유효성 검증에 가장 효과적인 지표를 찾아내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 연구의 취지를 살려 2012년도부터 보건복지부 지원으로 K-ADNI 가 발족됐다. 3+3년 계획으로 총 6년동안 매년 15억, 총 90억원이 투입되는 정부 사업이었다. 여러가지 국내외 여건과 현실적 제약 등 난관을 극복하며 3년간의 인프라 구축을 마쳤으나, 2단계 진입에 실패하고 정부 지원이 중단됐다.

연구가 중단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K-ADNI는 내외부 영향으로 일정이 당초 계획보다 전반적으로 늦어진 면이 있다. 3년동안 2단계 사업을 위한 인프라를 갖춰놨지만, 정부에서는 1단계 연구성과가 미진하다는 이유로 2단계 진입 실패 판정을 했다.  정부 재원이 투입된 사업에는 논문 수 등의 정량 평가를 하는데, 이 부분이 부족하다고 여겼다. 이 부분에서 앞으로의 연구 성과 평가 방식은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미국 ADNI 역시 연구가 진행되어 자료가 쌓이기 시작한 초기 3,4년 보다는 그 이후에 이를 이용한 연구 성과가 훨씬 많이 쏟아져 나와 현재 수백편이 넘는 성과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K-ADNI도 정상적으로 진행돼 데이터 축적됐으면 성공한 연구가 될 수 있었다고 본다.

내외부 영향으로 인한 어려움을 뭘 뜻하나?

당초 계획은 1년 안에 인프라를 구축한 뒤 연구에 참여하기로 한 센터별로 데이터를 모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조율할 부분이 너무 많았다. K-ADNI 데이터 구축을 위해서는 다양한 진료과의 협의가 필요했다. 신경과, 정신과뿐만 아니라 영상의학과, 핵의학과 등의 임상의학 분야 연구자나 생명공학, 노화, 의공학, 의료통계학, 신경심리학 및 기초의학 연구자 등이 협력해야 한다. 또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도 서버라던지 PET, MRI, 심리검사 등 다양한 자료에 대한 표준화 작업도 요구됐었다. 1년 계획했던 인프라 구축이 2년 반으로 늘었다. 이 과정에서 연구환경도 바뀌었다. 2013년 개인정보보호법 및 2015년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만들어져 각 병원 연구 규정이 엄격해졌다. IRB 프로토콜을 통과한 내용도 다시 조율해야 했다. 담당 인력에 대한 수시 교체도 문제였다. 3년간 담당자가 매년 교체됐고, 담당 과장이나 국장도 바뀌어 진행이 늦어졌다. 연구 비용도 넉넉한 편은 아니었다. 3년동안 매년 15억, 총 45억원이 투자된 연 구라면 복지부 사업 중 꽤 큰 편에 속한다. 하지만 일본은  600명의 피험자가 참여하는 연구에 매년 60~70억원을 투자하고 있다. 미국은 800명의 대상자 추적에 연간 600억원을 투자한다. 한국은  500명에 15억으로 상대적으로 예산이 빡빡했다. 또 15억원도 온전하게 사용한 것은 아니다. 여기에 참여 기관에 내야하는 간접비와 세금 등을 감안하면 연구비로 쓸 수 있는 금액은 11~12억 정도에 불과했다.

K-ADNI에 대한 다른 나라의 평가는 어땠나?

WW-ADNI는 미국, 일본, 유럽 등에서도 동일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K-ADNI 는 공통 분모는 유지하면서 한국만의 고유성을 찾기 위해 혈관성 치매를 넣었다. 한국은 젊은 사람들이 식생활이 서구화되면서 대사성 질환이나 고혈압, 비만, 당뇨 등이 많아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노년층의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빨리 증가하고 있는 나라이므로 인지기능변화를 연구하기 좋은 환경이고, 혈관성치매와 밀접하게 연관된 알츠하이머를 연구하기 좋은 환경이 구축돼 있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에서 K-ADNI가 혈관성치매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는 데 반색했다.

연구가 중단돼 아쉬움이 많을 것 같다.

K-ADNI 사업 목적은 알츠하이머 혈관성치매 원인이나 악화요인, 완화요인을 명확히 밝히고, 치매를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제 개발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일례로 현재 신약개발업체가 치매약이나 진단기기를 개발하려면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치매는 느리게 진행하는데다가 정상 노화와도 겹쳐 질병 특성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ADNI 인프라를 활용하면 비용과 개발 기간을 대폭 줄 일 수 있다. 수많은 다국적 기업들이 WW-ADNI에 연구비를 기부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인프라만 구축하고 본격적인 데이터 수집을 위한 2단계 사업을 하지 못한 것은 지금도 아쉬움이 남는다. 미국이나 유럽 등의 연구진들의 연구 수준이 대형마트 수준이라면 현재 국내 연구진의 치매 연구 수준은 구멍가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연구자가 매우 애를 쓰고 열심히 하고 있으나 국내 연구자가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타과와 융합 하고,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마당을 만들어야 한다.

사업이 재추진될 가능성은 있나?

K-ADNI가 정부 주도로 다시 진행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인프라 구축은 이미 마쳤고, 일부 자료는 활용도 가능한 상황이다. 사업을 재추진한다면 민간이나 공익기업, 공익단체가 지원하는 식이 됐으면 한다. 빌게이츠 재단이 말라리아 퇴치 지원을 하는 것과 같은 모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의학연구에 기업이 직접 연구비 투자를 할 수 없다. 미국 ADNI를 보면 정부와 민간이 공공으로 재원을 조 달하고 있다. 미국은 민간연구기금을 관리하기 위한 FNIH 같은 공공기구가 있어 투명하게 운영 이 된다. 한국도 민간연구기금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K-ADNI에 대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K-ADNI는 어쨌거나 실패한 연구다. 실패한 연구에서 오히려 더 많이 배워야 한다. 그래야만 다음에는 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고 시행 착오를 줄일 수 있다. 성공이나 실패가 개인의 경험으로 끝나지 않고 사회적  경험으로 축적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사회가 선진 사회다. 따라서 뼈아프지만 이 실패가 미래에 진행될 연구 등을 위한 발판이 될 거라고 본다.

디멘시아뉴스 최봉영 기자(bychoi@dementia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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