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용태] 알츠하이머병에서 행동장애 증상군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18
[곽용태] 알츠하이머병에서 행동장애 증상군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18
  • DementiaNews
  • 승인 2017.08.21 09: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곽용태
효자병원 신경과장/연세대 외래교수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할까?

바훕이 말했다. "그럼 값은 얼마로 하면 좋을까요?” "우리 마을 땅값은 고정되어 있는데, 하루치 1천 루블입니다." 바훕은 촌장의 말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하루치란 어떻게 재는 것인가요?  그리고 그건 몇 에이커쯤 되는 겁니까?" "우리 마을에서는 그런 식으로 땅을 재지 않습니다. 항상 하루치 얼마로 팔지요. 쉽게 말하자면 그 사람이 하루 종일 걸은 만큼의 땅을 주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루 1천 루블이라는 것입니다." 촌장이 말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만약 당일에 출발점까지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 순간 이 거래는 무효가 되는 것입니다."

중략......

바훕은 해를 보았다. 해는 이미 서녁에 걸려 아치형이 되어 있었다. 바훕은 사력을 다해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발을 이끌며 겨우 넘어지려는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바훕은 가까스로 언덕 아래 까지 이르렀다, 그때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졌다. 보니 해가 지고 있었다. 발을 멈추려고 하는데, 바슈키르 사람들이 쉴 새없이 뭐라고 고함을 질러대고  있었다. 바훕은 용기를 내어 언덕을 향해 달려 올라갔고 촌장 앞에서 쓰러졌다. 그는 그러면서도 두 손으로 모자를 움켜잡았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이제 완전히 땅을 잡으셨소, 당신이 돌아온 모든  땅은 이제 당신의 것이 되었습니다. 정말로 축하합니다." 바훕의 하인이 달려가서 그를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그의 입에서는 피가 쏟아져 나왔다. 그는 쓰러져 죽고 말았다. 하인은 괭이를 집어 들고 머리에서 발끝까지의 치수대로 정확하게 6피트를 팠다. 그가 묻힌 두 평 남짓이 그가 차지할 수 있었던 땅의 전부였다.

이것은 톨스토이의 단편집 사람은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 단편집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과연 인간에게는 얼마나 많은 공간이 필요할까요? 존덴버의 Today 라는 팝송에 I will be a rover 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인간은 과연 얼마나 많은 공간속에서 방황하고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상당히 많은 치매 환자에서 끊임없이 배회 (wandering)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방랑자 (rover) 와 배회자 (wanderer) 모두 장소와 장소를 옮겨 다닌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방랑자가 좀 더 적극적인 느낌이 있는 반면, 치매 환자에서 배회는 좀 더 수동적이고 무목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wanderer 의 경우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정서적으로 불안한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배회는 환자나 환자 보호자 모두에게 매우 힘든 증상입니다. 시부모님 모시겠다고 들어온 며느리가 다음날 짐 싸가지고 나가는 증상이지요. 우리는 길을 걸어가다 보면 심심치 않게 실종 치매 환자 벽보도 보고 방송에서 치매 환자가 실종되었다는 보도도 들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가족들이 부모를 설득 하고, 인식표도 붙이고 하면서 어렵게 모시지만 결국 탈진하여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으로 입소하게 됩니다. 그러면 모든 문제가 끝이 날까요?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입소하는 순간 환자들은 더욱 불안해지고,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탈출구를 찾기 위해 더 많이 배회하게 됩니다. 더군다나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은 대부분 집에 있는 경우 보다는 환자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더 적고, 그러면 환자는 더 불안해지고 더 큰 공간을 찾아 배회하게 됩니다. 물론 대부분의 환자들은 서서히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게 되고 좋던 싫던 낯선 환경을 자신의 환경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때를 잘 보내지 못하면 필연적으로 인지기능 뿐 아니라 일상생활 수행능력이 치명적으로 악화됩니다.

여기서 제가 질문하고자 하는 것은 과연 치매 환자에서 어느 정도의 공간이 필요할까, 바꾸어 말하면 치매 환자가 정서적 불안감을 가지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은 어느 정도 일까 입니다. 불행히 여기에 대한 충분한 연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추론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치매 환자에서 배회를 현상학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치매 환자의 공간 인지 능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치매 환자가 무목적으로 배회하는 것 같지만 이들을 관찰하면 환자들은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옆의 그림에서 보듯이 한 선상을 왔다 갔다 하거나 (pacing), 주변을 크게 우회하면서 돌거나 (lapping), 아니면 무작위적 (random)으로 움직입니다.1 왜 이럴까요? 왜 바훕은 바로 가지 않고 멀리 멀리 돌아갈까요? 굉장히 어려운 주제이지만 최근 저희들은 FDG PET 이라는 첨단 뇌영상검사를 통해서 아주 약간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현재 논문 쓰고 있는 중입니다). 맛만 보면, 바훕이 치매 환자라고 가정하면 시각을 이용한 자기 제어가 안 되는 것입니다. 넘치는 욕망때문에 시각에 의한 자기 제어가 안 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불행이지요. 고전을 너무 비틀었나요?

두 번째로 치매 환자의 공감각에 대해서는 수많은 연구가 있지만 이중 한 가지만 언급하고 가겠습니다. 치매 환자, 특히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인지기능 검사할 때 closing-in이라고 하는 재미있는 현상이 있습니다.2 이것은 A4 용지에 프린트 된 어떤 그림을 그 그림 밑에다 똑같이 그리라고 하면 처음에는 공간을 두고 그리다가 점차 그 원본에 가까워지거나, 바짝 옆에 평행하게 그리거나, 심지어는 그 위에 덫 붙여 그리는 경우를 말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2-3세의 아이들 에서도 치매 환자에서 보이는 closing-in 현상이 관찰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6세가 지나면 이 현상은 없어집니다. 왜 치매 환자에서나 어린 아이들에게서 이런 현상이 생기는지 잘 모릅니다. 다만 발달이 덜된 아이들이나 치매 환자에서는 공간 해석 능력에 어떤 문제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놀 때 넓은 공간보다는 침대 밑이나 작은 상자 안에 들어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마찬가지로 치매 환자들이 비록 배회를 하지만 넓은 공간은 오히려 공포와 불안을 일으킬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치매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공간은 기본적으로 이런 환자가 가진 공간지각 능력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과연 얼마만한 공간이 우리 부모님들에게 필요한 가는 잘 생각하지 않지요. 그냥 자기 눈에 보이는 것만 보게 됩니다. 그래 아주 넓은 공간에 서재도 있고 마당도 있고, 심지어는 마당에 사슴도 뛰놀고... 하지만 실지로는 이런 공간이 꼭 치매 환자에서 좋을 까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바훕에게 촌장으로 변장한 악마가 말합니다. “니가 원하는 땅을 다 가져라”, 하지만 점차 해는 서쪽으로 기울어 가고 심장은 터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바훕은 원하는 큰 땅을 얻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정말로 안식을 주는 것은 그 큰 땅이 아니고 지금 누워 있는 조그만 공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우리가, 그리고 우리 부모님들이 어디에 누울지, 어느 정도의 공간이 필요한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Reference

Kwak YT, Yang YS, Koo MS. Wandering in dementia. Dementia and Neurocognitive Disorders 2015;14(3): 99-105Kwak YT, Closing-in" phenomenon in Alzheimer's disease and subcortical vascular dementia. BMC Neurol. 2004 Jan 26;4:3.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