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벤처에게 치매를 묻다 ③ 호호웍스 박성민 대표
소셜벤처에게 치매를 묻다 ③ 호호웍스 박성민 대표
  • 황교진 기자
  • 승인 2023.12.28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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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기의 인지훈련 가이드라인과 찾아가는 돌봄교육 보급하고파

우리 사회의 교육열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다. 그 뜨거움은 자라나는 세대, 청년 세대에 집중돼 있다. 자기계발서는 서점가 베스트셀러에 늘 자리하고 있고, 남들보다 뛰어나고 더 높은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분투하는 그 열정은 예나 지금이나 식지 않는다. 그러나 시니어세대가 되어 인지능력이 퇴화할 때 인지훈련 교육이 필요하다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다. 인생을 충분히 살았다고 생각한 노인 세대의 정신 건강, 인지재활훈련은 막상 치매 판정을 받은 후에야 그런 교육이 있다는 것을 접하는 현실이다.

디멘시아뉴스는 고령자의 인지재활훈련 프로그램을 핵심 아이템으로 하는 로컬 소셜벤처 호호웍스를 <사업적기업가에게 치매를 묻다> 세 번째 기업에 선정해, 창업가 박성민 대표를 인터뷰했다.


1. 박성민 대표님과 호호웍스를 소개해 주세요. 어르신의 인지훈련을 위한 콘텐츠를 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동기와 배경, 그 첫걸음부터 알고 싶습니다. 특별히 주변에 치매 환자나 고령자 질병으로 고생하신 분이 있으신지요?

저는 사회복지재단에서 10년간 일하며 치매 지원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아파트를 만드는 시행사에서 2년을 근무했습니다. 특히 아파트형 마을공동체를 지향하는 ‘위스테이’라는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면서 도서관, 체육관, 카페 등 커뮤니티 공간의 활동을 입주민들과 함께 정의하고, 그에 맞춰 공간을 조성하는 팀을 이끌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 대부분이 초고령사회에 대한 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노인 세대 공간을 연구하기 위해 후배와 함께 주간보호센터를 운영했습니다. 그곳에서 한 직원이 인지훈련 프로그램 운영이 어렵고 힘들다는 이유로 퇴사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우리 센터만 겪는 문제가 아닌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인지재활프로그램을 개발해 ‘중소벤처기업부 예비창업패키지 지원사업(소셜벤처 부문)’에 지원해 선정됐습니다.

주간보호센터에서 어르신들과 인지재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박성민 대표
주간보호센터에서 어르신들과 인지재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박성민 대표

 

2. 호호웍스는 언제 창업하셨고,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오셨나요? 영상 콘텐츠와 워크북 만드신 과정도 들려주세요.

2021년 11월부터 주간보호센터에 근무하면서 어르신들의 인지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어르신들의 근육과 5감을 자극하기 위해 다양한 교구재를 활용했습니다. 닌텐도 게임기, 다육식물(잎이나 줄기 등에 물과 영양분을 저장하는 식물) 키우기, 신문 및 시집, 플레이콘(옥수수전분과 식용색소로 만든 것으로 물로 붙이는 미술놀이 교구) 등 유아동 교구재를 이용한 수업 등 현장 상황을 고려해 적정비용으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 콘텐츠를 연구했습니다.

2022년에 중소벤처기업부 소셜벤처로 선정돼,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를 위한 인지훈련 콘텐츠를 본격적으로 개발하고자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이후 9개월간 동영상 기반의 고령자 인지훈련 콘텐츠와 웹사이트를 개발하고 2023년 3월부터 시장에 서비스를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고령자 콘텐츠를 만들면서 동영상을 제작한 계기는 미국의 펠로톤 서비스를 모델로 응용하면서였습니다. 펠로톤은 유튜브 영상을 강사로 삼아 자신의 거주 공간에서 자전거 타기를 비롯한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구독 서비스로 코로나 붐을 타고 크게 성공했습니다. 호호웍스의 초기 아이디어는 현장의 돌봄 인력이 인지훈련 수업 진행을 어려워하니까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자체가 전문강사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였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운영해 보니 유아동과 달리 어르신들은 영상 집중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더군요. 아이들이 뽀로로 동영상을 장시간 집중해서 시청하는 것과 반대였습니다.

그래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는 돌봄선생님(생활지원사)을 위한 콘텐츠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동영상을 보면서 돌봄선생님이 어르신들의 보조강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작해 시니어 돌봄 사업을 피보팅(Pivoting, 기존 사업 아이템이나 모델을 바탕으로 사업의 방향을 다른 쪽으로 전환)했습니다.

또 서비스를 시장에 내놓고 많은 기관을 다니면서 홍보했는데요. 대구시 서구에 소재한 노인맞춤돌봄서비스 기관에서 워크북 형태의 콘텐츠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어르신 가정을 방문해 지도하는 돌봄선생님의 불편함을 개선할 수 있는 인지재활훈련 워크북을 제작했습니다.

호호웍스는 어르신 가정의 가사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남은 시간에 어르신과 인지훈련 워크북으로 수업을 진행합니다. 어르신들이 선생님을 가사도우미가 아닌 인지훈련 선생님으로 존중해 주신다는 기쁜 소식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의 권위를 존중하는 세대의 문화를 지닌 어르신들이라 마음을 읽어드리고 눈앞의 필요를 채워드리는 것이 친밀해지는 데 좋은 방법이 되었습니다.

3. 현장에서 어르신을 만나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와드리고 있나요? 특히 치매 어르신 만나신 경험이 있다면 서술해 주세요.

주간보호센터에서 인지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 세 명의 경증 치매어른이 계셨습니다. 매일 온종일 무표정하게 자리에 앉아 한마디 말씀도 없으셨습니다. 인지훈련 수업을 진행하면서 그 어르신들께 대화를 시도하고, 칭찬하면서, 과제를 완수할 수 있도록 옆에서 계속 도와드렸어요. 3개월이 지났을 때 놀라운 경험을 했는데요. 어르신들이 조용히 미소를 짓거나 짧은 대화를 하시기 시작했습니다.

이날의 특별한 경험이 사실 저를 창업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저는 신체근육의 움직임과 정서적 교류에서 인지력이 향상된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수업 자체는 하나의 수단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어르신을 향한 관심과 칭찬, 과제를 완수했다는 성취감 등의 감정적 요인이 어르신을 변화시켰다고 생각합니다.

 

대구 서구 보은재가노인복지센터에서 호호웍스의 워크북으로 수업하는 돌봄선생님과 어르신
대구 서구 보은재가노인복지센터에서 호호웍스의 워크북으로 수업하는 돌봄선생님과 어르신

 

4. 한국의 노인 대상 국가 정책에 제안하고 싶으신 점이 있으신지요? 우리나라 노인 정책의 허점을 새롭게 할 가장 우선적인 노력이 있다면?

만 3~5세 아이들의 표준 교육과정인 누리과정이 있는 것처럼 노년기 어르신의 신체와 인지건강을 위해 치매안심센터와 재가돌봄 인지활동형 등급 환자를 대상으로 활용하는 표준인지훈련 툴과 더불어 인지훈련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세분화해 이를 보급하고 싶습니다.

1915년 출판된 미국 종합 과학 저널인 〈미국국립과학원회보〉에 의하면 인간의 인지능력은 35세에 정점에 이르고, 45세부터 점차 감소한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발달 촉진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면 노년기에는 퇴화 지연을 위한 인지훈련을 포괄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노년기의 교육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무관심합니다. 노년기 신체기능 및 인지기능을 보존하기 위해 표준교육과정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것은 예방적 투자입니다. 어르신들이 건강을 오래 유지할수록 사회적비용이 절감될 것입니다.

5. 사회적기업가로서 치매 분야에서 열심히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대표님은 사회적기업가로서 어떤 마인드와 어떤 목표를 갖고 계신지요?

사회적 자원을 서로 연결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소셜밸류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습니다. 개별적인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더 큰 가치가 창출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예컨대 대구의 한 노인맞춤돌봄서비스 기관에서 저희 콘텐츠를 활용하고 계시는데요. 주 1회 어르신 가정에 방문해서 가사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남은 시간 동안 저희 콘텐츠를 이용해 어르신과 인지훈련 수업을 진행합니다.

어르신과 돌봄인력의 만족도가 높습니다. 어르신은 학교 다닐 때 생각이 난다며 좋아하시고, 돌봄인력은 자신을 선생님으로 존중해 주니 만족스럽다고 하십니다. 기존의 공공돌봄서비스 체계와 민간의 콘텐츠가 결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6. 한국의 치매 가족은 많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가장 시급한 도움책은 뭐라고 보시는지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이용하는 어르신 중에 방문요양은 하루 평균 3시간, 주간보호센터는 하루 평균 9시간 돌봄을 제공합니다. 나머지 시간은 가족들이 감내하며 견디는 시간인데요. 치매환자를 돌보기 위해 직장생활을 포기하거나 각종 사회활동을 포기하는 가족들이 많습니다. 어르신 돌봄시간을 확대하고, 단기간 또는 일시적으로 어르신을 돌볼 수 있는 제도가 활성화되면 이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더불어 위와 같은 이유로 부양자들의 심리상태가 불안정하고 우울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데, 부양가족을 위한 심리정서 프로그램 지원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니어라이프스타일 박람회에서 호호웍스 제품과 서비스를 설명하는 부스
시니어라이프스타일 박람회에서 호호웍스 제품과 서비스를 설명하는 부스

 

7. 한국의 초고령사회 진입이 코앞입니다. 시니어의 건강한 100세 인생을 위해 사회적으로 바뀌어야 할 부분은 무엇으로 보십니까?

내년도 노인일자리 예산을 2조242억으로 대폭 확대해 103만 개의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정부 발표가 있었습니다. 시니어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 활동이 건강과 인지능력을 보존하고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예산 투입임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양적인 확대뿐만 아니라 질적 수준의 향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상 생계지원금 형태로 사용되는 형식적인 일자리 발굴은 지양하고, 민간 영역과 협력해 어르신이 근로를 통해 사회에 기여함으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양질의 일자리를 발굴했으면 좋겠습니다.

8. 박성민 대표님의 올해 가장 큰 성취와 내년도 계획은 무엇인가요?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우수기업, 지역 기반 소셜벤처로 선정돼 저희 서비스를 시장에 선보일 수 있었고 23개 노인돌봄기관과 협업을 통해 시범운영을 진행했습니다.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돌봄선생님들이 사용하기 편하도록 워크북 등 콘텐츠의 다양화를 시도했습니다. 이런 노력이 인정받은 덕분에 올해 12월 충남에서 개최된 임팩트투자 IR 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콘텐츠를 고도화하면서 저희 서비스를 검증하고 알려갈 생각입니다.

더불어 내년에는 우리의 생활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경로당이 지역사회의 커뮤니티 케어 기반 시설로 기능하도록 다양한 시도를 하고 싶습니다. 사실 제가 가장 관심이 많고, 잘할 수 있는 영역이 초고령화사회에 대비한 공간 구성 기획입니다.

9. 박성민 대표님 개인의 꿈,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제가 랠프 월도 에머슨의 싯구 “내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이 진정한 성공”을 좋아합니다. 초고령사회는 ‘정해진 미래’입니다. 예정된 재난의 해일이 닥치기 전에, 제가 잘할 수 있는 영역에서 ‘노아의 방주’를 만들고 싶습니다. 초고령사회를 대비해 가용할 수 있는 사회적 자원을 발굴하고 이를 연결해 우리 주변의 이웃이 덜 고통받도록 다양한 시도를 할 계획입니다.

10. 끝으로 치매 공감 언론 디멘시아뉴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는지요?

사업을 하며 자료와 정보를 찾느라 노력과 품을 많이 들었는데 디멘시아뉴스를 알고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조금 더 일찍 알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 만큼요. 지금처럼 치매와 관련한 각 영역의 동향과 트렌드를 알려주시면 저희 같은 스타트업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디멘시아뉴스가 치매 관련 언론 매체로 활동하면서 축적해 온 데이터와 경험은 중요한 사회적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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