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걸리신 부모님들이 먹는 약 이야기[1]
치매 걸리신 부모님들이 먹는 약 이야기[1]
  • 최봉영 기자
  • 승인 2018.04.09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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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용태 효자병원 신경과장/연세대 외래교수

발을 딛는 글


현대 의학은 유럽에서 태동하였습니다. 현대 유럽을 상징하는 두가지의 큰 사상 즉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주도권 싸움이라는 역사 속에서 태어난 것이지요. 헤브라이즘(Hebraism)은 고대 유대인의 말 “방황하는 자” 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히브리어의 사용, 기질, 헤브라이 문화 또는 헤브라이 정신 모두를 아울러 이르는 말입니다. 반면 헬레니즘이라는 말은 그리스인 자신을 가리키는 “그리스인(Hellen)”이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구스타프 드로이젠은 헬레니즘을 그리스 정신과 동방정신이 융합된 범세계적인 문화로 좁게 특정하였지만 헬레니즘이라는 의미는 원래 말 그대로 그리스인들의 사고 방식과 문화를 통칭합니다. 대개 인간중심주의, 현세적, 자유, 다신교, 디오니소스 등이 중심 의미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반면 헤브라이즘은 신 중심주의, 엄격과 경건, 내세지향 주의 , 일신교 등 헬레니즘과는 상반된 자세를 취하고 있지요.

헤브라이즘이 지배하던 중세에서는 병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며 운명적인 면이 있는 것이지요. 병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징벌적인 요소가 있고 이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집, 혹은 하나님의 대리인이 필요한 것이지요. 당시에는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 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라는 말에 충실히 교회 또는 수도원의 복합시설로서 병원은 존재하였습니다. 즉 신과 인간의 경계가 불분명 하였던 것이지요. 당시 페스트와 같은 역병이 돌면 의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처방은 “최대한 빨리, 멀리 도망가라, 그리고 너무 빨리 돌아오지 마라” 입니다.

하지만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년)가 등장하면서 신과 인간의 영역에 대한 구분을 시도하게 됩니다. 즉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세계와 인간을 정신적인 실체와 물질적인 실체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물질적인 실체를 기계론적으로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즉, 데카르트의 이원론에 의하면 인간의 몸도 영혼을 제외하면 자동차와 다를 바 없습니다. 즉 영혼은 신의 영역으로 남겨 두지만 물질 로서의 몸은 인간의 영역으로 남겨 두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다른 인간의 신체 증상과 달리 인간 정신 이상 증상을 물질의 영역으로 보아야 할지 영혼의 영역으로 보아야 할지 애매하였습니다. 따라서 근대 의학의 발전 속에서도 정신 질환자는 병원이 아닌 먼 시골에 있는 수용소(asylum)에서 치료를 받아야만 하였지요. 정신과 영역의 의사는 다른 영역의 의사와 다른 길을 가야만 하였습니다. 하지만 독일의 정신 의학자인 Wilhelm Griesinger(1817-1868)는 정신 질환은 뇌질환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였으며 따라서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종합병원에서 내과의 한 부분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제야 말로 본격적으로 인간의 정신 질환을 신체질환으로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병이 생기면 할 수 있는 일은 그 원인을 찾거나, 아니면 그 원인의 중간결과 혹은 최종 결과를 찾아서 증상으로서 발현되는 것을 차단하거나, 완화하거나 혹은 예방하는 일이 되겠지요. 정기적으로 자동차의 엔진오일을 가는 것은 예방이며, 오래된 자동차를 손보아 좀더 기능을 낫게 유지하는 것은 완화나 치료가 되겠지요. 이때 자동차 수리에 하는 것은 어떤 화학 물질을 보충하거나 뜯어서 교체하는 일이겠지요. 마찬가지로 의사가 하는 일도 약물 치료 하거나 수술적 치료를 하는 것입니다.

최근 급격하게 늘어나는 수명의 여파로 노인과 연관된 많은 질환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이 치매 입니다. 치매는 병명이 아니고 증상명이기 때문에 원인 질환에 따라서는 수술이 가능한 치매도 있지요(예를 들어 뇌수종, 뇌종양). 하지만 수술이 가능한 치매는 비교적 그 결과가 단기간에 나타나기 때문에 환자 보호자의 부담도 비교적 적은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수술이 불가능한 퇴행성 치매의 경우는 긴 시간에 걸쳐 일어나고 인지기능 장애와 더불어 다양한 정신행동증상, 일상생활기능의 손상 등이 같이 나타납니다. 따라서 이 다양한 이상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서 다양한(때로는 많은) 약물이 처방 됩니다.  치매를 가진 우리 부모님에 대한 오랜 치료 시간과 많은 약물 치료는 환자 보호자 부담을 더욱 크게 하지요. 

힘겹게 하루하루 버티어 가는 보호자 입장에서 환자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지금 어떤 치료가 진행되고 있는지, 앞으로 병의 경과는 어떻게 될지 어떤 것 하나 정확하지 않고 혼란스러운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치매를 가진 부모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짊어 지고 가야 하는지 모르는 자신의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의 질병에 대한 간단한 설명은 의사 선생님이나, 간호사에게 들을 수 있지만 병원 갈 때 마다 수북하게 가져오는 약 뭉치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가르쳐 주더라도 너무 전문적이라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인지기능을 포함한 다양한 정신행동 증상에 작용하는 약물은 종종 윤리적인 문제도 부딪칠 수가 있습니다.

SBS에서 최근에도 인기 있는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는 때로는 “그것을 알려주마” 로 변질될 수 있지요(특정 프로그램이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즉 정의가 사실을 압도하게 되며 말 하는 사람이 뜨거워 질 때 보이는 모습이지요. 실지로 현재 우리 사회에 흔한 모습이기도 하지요. 마찬가지로 이 칼럼은 치매 치료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거나, 약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너에게 알려주마 하는 식의 접근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다만 치매 걸리시고, 여러가지로 힘들어하는 우리 부모님이 잡수시는, 때로는 안 잡수시려고 실랑이 벌리는 이 화학물질이 어디서 왔으며, 어떤 효과를 기대하며, 그리고 그 한계점이나 불가측성이 무엇인지 일면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물론 전문적인 서적의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일부 내용은 논란이 될 수도 있지만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고 논란이 있는 것은 되도록 참고 문헌을 제공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이 칼럼을 통해 치매가 걸리신 우리 부모님, 그리고 처방한 의사 선생님, 그리고 실지로 약을 드리며 그 옆에서 큰 파도를 넘고 있는 우리 자신이 좀더 주변을 크게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18년 4월 어느 날 진료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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