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걸리신 부모님들이 먹는 약 이야기[7]
치매 걸리신 부모님들이 먹는 약 이야기[7]
  • DementiaNews
  • 승인 2018.05.21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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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용태 효자병원 신경과장/연세대 외래교수

시련재판


1846년 의사이자 식물학자인 다니엘(William Freeman Daniell) 이 서아프리카 한 부족을 방문하였습니다. 뜨거운 햇살과 숨막히는 더위 속에서 일을 하던 다니엘은 갑자기 부족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한 장소로 모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니엘은 자기도 모르게 발길을 옮겨 가보니 그 곳은 마을 주민중 한명을 재판하는 장소 였습니다. 젊은 남자가 무릎을 끓고 있었습니다. 그는 옆집 가축을 훔친 죄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보기에 이상한 것이 고발한 사람과 고발당한 사람은 있지만 판사나 배심원 역할을 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재판 시간이 되니 엄숙한 표정으로 마을의 족장이 알 수 없는 즙 한사발을 그릇에 넣어 가지고 옵니다. 고발 당한 사람은 순간 하얗게 얼굴이 질리더니 손을 떱니다. 주변 부족 사람들은 차가운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는 체념 한 듯이 단숨에 이것을 목에 넘기고 맙니다. 하지만 목에 넘기고 돌아서는 순간 피고는 구토와 경련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의식이 혼미 해져 쓰러지고 맙니다. 피고는 입에서 침을 흘리고 가쁜 숨을 몰아 쉽니다. 고통스러워 하던 피고는  땅바닥에 누운 채 꼼짝 못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광경을 숨 죽이고 참을성 있게 피고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 끔직한 더위와 숨막힘이 참을 수가 없을 정도로 시간이 지나가고 나서 갑자기 땅바닥에 쓰러졌던 피고가 손을 음직이기 시작하고 크게 숨을 들이 마십니다. 그리고는 간신히 일어나 앉습니다. 이때 조용히 족장이 다가와 그이 손을 잡아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당신은 무죄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도 됩니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시련 재판(試練 裁判, trial by ordeal) 또는 시죄법(試罪法)은 물, 불, 독 등을 써서 피고에게 육체적 고통이나 시련을 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인류의 아주 오래된 재판 방법입니다. 이런 생각은 죄를 범했느냐 범하지 않았는냐를 넘어서 전쟁과 같은 인간의 다양한 분규에도 그 영향을 미쳤습니다. 중세에 많이 유행하던 결투법이나 서부 영화에서 보는 무법자들이 돌아서며 총을 쏘는 장면에서도 judicium Dei (하나님의 심판) 가 승부를 가른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만약 피고가 이것을 거부하면 그 사람은 유죄로 확정되었지요. 만약 여자를 상대로 분쟁을 일으키다 결투를 신청할때 만약 거부하면 여자를 잃는 것 뿐 아니라 유죄, 즉 명예가 훼손되기 때문에 수 많은 젊은이들이 죽어 나간 방법입니다. 재판의 결과는 신만이 알 수 있다고 주장하였으므로 신명 재판(神明裁判)이라고도 합니다. 시련 재판은 중세 이후 배심원 재판으로 대체되었습니다.

다니엘은 시련재판 그 자체보다는 피고가 먹었던 즙이 무었인가가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 즙에 무엇인가 신비한 성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는 이 즙이 서아프리카 하천에서 자생하는 카르바르 콩을 갈아 만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그 정확한 성분은 1864년 조브스트와 헤세(J. Jobst and O. Hesse)가 이 콩에서 피소스티그민(physiostimine)을 추출하면서 밝혀집니다.

우리 몸에는 많은 신경과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신경세포에서 어떤 정보를 전달할때 신경과 신경사이, 그리고 신경과 근접합부 등에서 특정물질이 방출되어야 하는데 이것을 신경전달 물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신경 전달 물질 중 대표적인 것이 아세틸콜린이고 이 아세틸콜린의 분해를 억제하는 물질이 피소스티그민입니다. 일반적인 신경에서는 주로 신경세포와 근육의 접합부나 자율신경계에 존재하며, 중추 신경계에서는 주로 중앙전대뇌(medial forebrain), 변연계(limbic system) 등 인지기능과 관련된 부위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피소스티그민을 다양한 질환, 다시 말하면 아세틸콜린과 관련된 많은 질환에서 임상적 시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중추 신경계가 아닌 다른 질환의 치료 중에 우연치 않게 피소스티그민이 인지기능이나 정서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들이 보고 됩니다. 또한 치매의 대표적인 알츠하이머병이 초기에 심각한 콜린신경계의 이상과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콜린신경계에 필요한 물질(아세틸콜린)을 직접 주거나 신경계내에서 이 신경전달물질을 늘어날 수 있도록 해주면 되는데 피소스티그민은 이에 적합한 물질로 생각되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결국 아직까지 피소스티그민은 알츠하이머치매에 대한 치료제로는 사용되지 못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많은 이유가 있지만 피소스티그민은 혈액에서 뇌로 침투하는 과정에 혈관뇌관문(blood brain barrier)을 잘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뇌가 이 약에 대해서 선을 긋고 잇는 것이지요. 무엇인가 위험성을 내포하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지요. 결과적으로 피소스티그민은 중증근무력증과 같은 다양한 말초신경계 질환에서는 사용되지만 알츠하이머병 과 같은 중추신경계질환에서는 그 치료 영역을 넓히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피소스티그민의 콜린신경계의 강화효과와 이와 연관된 중추신경계의 변화는 치매의 병태생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피소스티그민의 한계를 극복하는 같은 종류 다른 물질 개발이 확대되었지요. 뇌가 그어 놓은 선을 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 입니다.

서아프리카에서 시행되었던 시련재판은 어떤 결론을 가져왔을가요? 과연 누가 살고 누가 죽었을 가요? 기본적으로 이 즙을 추출하고 만든 족장의 손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련재판의 특징은 그 사회의 전통이나 종교적인 관점에서 아주 쉽게 죄를 저지른 사람과 죄를 범한 사람을 골라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즉각적으로 형을 집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죄가 없다고 생각하며, 신의 뜻을 믿는 사람에게는 이 시련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반면 죄가 있다는 생각하는 사람은 주저하거나 죄를 고백하게 되지요. 마찬가지로 나이지리아에서 시행된 시련재판에서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주저하지 않고 단숨에 약을 먹게 되고 결과적으로 복통, 설사를 포함한 극심한 위장 장애가 일어납니다. 마치 응급실에서 중독환자가 오면 토하게 하거나 설사하게 해서 독극물을 빼내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죄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주저하면서 한번에 약을 먹지 않고 천천히 먹게 됩니다. 이런 행태는 오히려 독극물을 좀더 서서히 많이 몸에 흡수하는 효과를 가져오며 결국 사망하게 됩니다.

인생을 살다 인생의 마지막에 치매라는 시련이 다가 옵니다. 하지만 아리러니컬하게도 이 시련에 가장 처음으로 효과적으로 개발된 약이 시련재판에 사용된 약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유죄냐 무죄냐.  이 결과는 알츠하이머병에도 나타나게 됩니다. 약에 효과가 있으면 무죄(알츠하이머병) 그리고 약에 효과가 없으면 유죄(비알츠하이머병). 우리는 죽을때까지 시련과 극복을 운명으로 가지고 태어난지 모르겠습니다.


**  위의 내용중 삽화의 일부는 이 컬럼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 일부 픽션 적인 요소가 가미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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