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용태 효자병원 신경과장/연세대 외래교수

백신(Vaccine)

 

“저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uman Immunodeficiency Virus, HIV)에 감염된 환자입니다. 이에 저는 레이커스 선수로서 은퇴를 선언합니다.” 1991년 11월 7일, 미국프로농구협회(National Basketball Association, NBA)를 대표하는 포인트 가드 매직 존슨(Magic Johnson)이 CNN과 인터뷰 도중 폭탄 선언을 합니다. 그의 나이 32세였습니다. 후천성면역결핍 증후군(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 AIDS)이 20세기의 흑사병으로 불리며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던 시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곧 매직 존슨을 못 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환갑이 다 되었을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습니다. 어떤 매직이 있어 완치되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약회사에서는 AIDS를 유발하는 HIV를 퇴치하기 위한 약을 개발하기 위하여 사력을 다했습니다. 세균성 감염에 쓰는 페니실린과 같은 완치제는 현재까지 개발되지 않았지만,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여러 가지 항바이러스 제제를 개발했습니다. 이 약제들을 조합하여 사용하면 HIV 바이러스의 증식이 억제되고, 면역체계 교란이 약화되며, 전염력도 현저히 감소합니다. 1996년에 20살인 사람이 HIV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면 예상 수명은 39세였습니다. 2011년에는 70세까지 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당뇨 환자보다 예후가 좋아진 것 입니다. 완치는 안되지만 꾸준히 조절하면 암이나 치명적인 감염으로 이행되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이것은 많은 질환에서 쓰이는 전략입니다. 특효약이 없는 혈압이나 당뇨 같은 질환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는 없지만 2차적으로 치명적인 병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지요. 혈압이나 당뇨로 인해 심장이나 콩팥, 눈 등 주요 장기가 나빠지는 것을 막으면 오랫동안 건강을 유지하며 살 수 있습니다.

알츠하이머 치매의 근본 원인은 아직 모릅니다. 원인을 모르니 원인을 제거해서 병을 완치하는 방법도 모릅니다. 하지만 중간 단계는 어렴풋이 알고 있지요. 어떤 원인으로든 뇌에 독성이 있는 아밀로이드나 타우 등 이상 단백질이 형성되어 뇌의 이곳 저곳을 손상시키는 것입니다. 이 과정이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되면 결국 치매로 진행하지요. 그렇다면 이상 단백질이 생기는 것을 막거나, 빨리 배출시킨다면 뇌를 보호하고 치매로 가는 것을 막거나 호전시킬 수 있다는 가설이 생깁니다. 기존 치매약이 근본적인 병리에 대한 치료라기 보다 중간 단계의 병리 현상과 이에 따른 증상을 호전시키는 것이라면, 이러한 치료법은 원인적 치료까지는 아니어도 상당히 원인에 가까운 치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주 매력적인 이론이지요.

특히 아밀로이드 단백질인 Ab42 는 플라크를 형성하여 뇌에 직접적인 독성을 보입니다. 백신을 만들어 이 물질을 공격하고 용해되기 쉬운 물질로 만들어 뇌 밖으로 배출하려는 다양한 노력이 진행 중입니다. 실험용 쥐에서는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극적으로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인간 대상 임상시험에서는 아밀로이드 단백의 변화는 관찰되었으나 병의 진행을 막거나 증상을 완화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더구나 부작용으로 백신의 종류에 따라 일부 환자에서 뇌수막염이 보고되었습니다. 다국적 제약사인 MSD는 2017년 2월 중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알츠하이머 치매치료제 ‘베루베세스타트’ 임상시험을 중단했고, 이보다 앞서 2016년 11월에는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가 치매치료제 ‘솔라네주맙’ 임상을 중단했습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따르면 1997년부터 최근까지 개발에 실패한 치매 치료제는 100가지가 넘습니다. 이들 대부분이 아밀로이드 가설에 근거한 것이지요. 대규모 임상에서 아밀로이드 단백을 제거해도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에 애초에 치료 목표를 잘못 잡지 않았느냐는 비판도 나옵니다. 지금까지의 수많은 시도가 왜 실패했는지는 정확하게 모릅니다. 하지만 두 가지 가설이 존재합니다. 첫 번째는 알츠하이머의 병태 생리에 대해 많은 것이 밝혀졌지만 무엇이 임상에 영향을 주며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지 아직도 모른다는 주장입니다. 두 번째는 아밀로이드 가설은 지금도 유효하지만 알츠하이머병이 발병하여 뇌손상이 시작되고 증상이 나타난 후에야 아밀로이드를 제거하는 것은 병의 진행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밀로이드 병변은 적어도 15-30년 전부터 진행되므로 발병되기 훨씬 전에 치료를 시작해야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두 가지 가설 모두 일리가 있습니다. 어쩌면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연구를 두 가지 방향으로 접근해야 할 지 모릅니다. 첫 번째는 일단 발병한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증상 및 회복 치료가 되겠지요. 뇌졸중에 비유하자면 일단 뇌졸중이 생긴 환자에서 혈류공급을 늘리든지, 혈관을 뚫어주는 치료가 되겠지요. 두 번째는 근본적인 예방법을 찾는 겁니다. 여기에 아직도 아밀로이드 가설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뇌졸중에서 혈관성 질환은 이미 20-30대에 시작된다고 합니다. 뇌졸중을 근본적으로 예방하려면 이 때부터 해야겠지요. 마찬가지로 치매가 오기 훨씬 전부터 예방적 치료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할 수는 없으니, 어떤 사람에게 해야 하는지가 문제입니다. 아직 치료법으로 정립되어 있지 않으므로 10년 이상 예방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어렵겠지요. HIV 치료에서 보듯 원인을 완전히 없애거나 교정하지 못하더라도 다음 단계 중요 기전을 알면 극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데 알츠하이머 치매는 아직 그 수준까지도 올라오지 않은 것입니다.

백신은 기본적으로 특정 질환에 대한 후천성 면역을 증가시킵니다. 대부분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같은 미생물인데, 알츠하이머 치매에 대한 백신은 이런 생명체가 아닌 특정 단백질을 겨냥합니다. 다른 생명체가 아닌 몸 안에 생긴 이상 단백질에 대한 치료 개념은 일반적인 백신의 개념을 넘어섭니다. 전염성 질환이 아닌 퇴행성 뇌질환, 퇴행성 심장병, 퇴행성 관절염 등 활용 범위가 무한정 넓어질 수 있지요. 극단적으로는 30세 이후 주기적인 백신으로 관절염, 노안, 치매 등에 영향을 주는 물질을 제거하여 모두 예방할 수 있다면 어떤 세상이 될까요? 거대한 퇴행성 치매 질환인 알츠하이머병 연구를 통하여 인류는 점차 그 쪽으로 나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