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 소감
악어 힘줄보다 더 질긴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몸과 마음을 4단계로 겹겹이 둘러쳐진 감옥에 가두어놓아 숨쉬기조차 힘든 날을 보내고 있는데, 시원한 선들바람이 수상 소식을 실어다 주었습니다. 숨이 트이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병이 암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집 식구 중에 치매 환자가 발생하자 사람들이 “암에 걸리더라도 치매만은 걸리지 말라”고 하는 말의 뜻을 알 것 같았습니다.
암은 혼자 앓지만, 치매는 온 가족이 함께 앓아야 하는 고통스러운 병입니다. 아니, 환자 본인은 안갯속 미궁에 빠져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환자 주위의 친인들만 괴롭고 죽을 지경으로 힘들어하는 병인 것 같습니다. 치매 환자 한 사람 때문에 가족 간에 불화가 일어나 가정 평화가 깨지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어디에 하소연할 곳도 없고 떠들고 자랑할 일도 못 되어 당하는 사람만 속이 시커멓게 타서 재가 되고 병들어 갑니다.
귀사에서 이런 속마음을 헤아려 이번 “돌봄 수기”를 응모하여 주셔서 환자 가족과 환자를 돌보는 요양보호사분들의 마음속에 가라앉은 검은 앙금을 털어놓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상까지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1947년 중국에서 태어나 오십 년간 중국에서 생활하다가 이십여 년 전 대한민국에 귀화하여 수원시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릴 적 꿈이 작가가 되는 것이었으나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그런 기회도 주어지지 않아 한이 되었습니다. 꿈이 한으로만 남아 있지 않게 하려고 고희의 중턱에 오른 지금, 마지막 힘과 열정을 다 쏟아 문학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귀사의 “돌봄 수기” 응모 소식을 접하고도 A4 10장 이상 분량의 긴 문장은 써본 적이 없어서 주저주저하다가 용기를 내어 응모하였습니다. 저에게 이런 기회를 마련해 주시고 많이 부족한 글을 뽑아 상까지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똥으로 그린 그림
햇빛이 온 누리를 비추고 있다. 나뭇잎들에 은가루를 뿌린 듯 눈이 부시다. 살랑살랑 바람이 불 때마다 연녹색으로 변했다가는 은빛으로 반짝이기를 반복한다. 흰 구름이 지나가자 나뭇잎은 다시 짙을 녹색으로 바뀐다. 갑자기 천지가 회색빛으로 되었다. 매지구름이 검은 솜뭉치처럼 뭉게뭉게 하늘을 덮고 있다. 빗줄기가 예고도 없이 땅바닥에 수없이 많은 화살을 꽂아 놓았다. 하늘이 두 동강 난다. 금빛 비수가 땅에 깊숙이 박혔다. 꽈르릉 소리와 함께 검은 구름은 사라지고 태양이 금방 세수를 마친 소녀의 얼굴을 하고 해실해실 웃고 있다. 나뭇잎에 매달린 물방울은 유리구슬처럼 아롱지고 하늘에는 무지개가 다리를 놓았다. 누구에게 보내준 하늘다리일까.
거메졌다가 푸르렀다 하는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노라니 변덕 많은 치매 환자를 닮았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쾅, 쾅쾅’ 문 두드리는 소리가 하늘의 조화 속에 빠져들었던 나를 깨워주었다.
초인종을 누르지도 않고 요란하게 문 두드리는 사람은 누구지? 출입문을 열었더니 퉁퉁 부어오른 시뻘건 얼굴을 하고 시누이가 들이닥쳤다.
“이럴 수가 있어요? 올케언니가 어떻게 이럴 수가!”
“무슨 일인데요, 아기씨.”
“우리 엄마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어떻게!”
나를 쏘아보는 시누이 눈에서 불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나 원 참, 웬일인데 이래요?”
“그래도 시치미를 뗄 거요?”
“시치미는 무슨 시치미, 천천히 말해봐요.”
같은 말만 반복해 퍼붓는 시누이 입에서 게거품이 부글부글 밀려 나오고 있었다.
“천천히 이야기해요, 무슨 일인데?”
“몰라서 물어요, 언니가 우리 엄마에게 밥을 주지 않고 굶긴다는 얘기가 온 동네에 파다한데.”
“나 참, 무슨 말씀 그렇게 섭섭하게 하세요. 먹을 것이 넘쳐나는 지금 세월에 굶기다니요. 그렇지 않아도 아기씨와 상의 할 참이었어요. 어머님의 치매 때문에요.”
“뭐요, 치매라니, 깔끔하고 명석한 우리 엄마가 어떻게 치매란 말이에요.”
“내 말 좀 들어봐요, 아기씨”
“듣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요. 하다 하다 이젠 치매로 몰고 갈 거요?”
나는 시누이의 손을 잡아 소파에 앉히고 따뜻한 보리차 한 잔을 따라다 권하였다. 시누이 마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려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머님이 치매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몇 개월 전부터였다. 건망증이 심하여 손에 들고도 찾거나, 찾아 헤매던 물건이 냉장고에서 나타나 웃고 지나쳤었는데 점점 엉뚱한 행동을 시작했다. 금방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도 끝나지 않았는데 밥을 안 주냐고 하는가 하면 가끔 나보고 ‘아줌마는 뉘세요? 우리 집에 왜 왔어?’ 하신다. 모시고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보았더니 치매가 확실했다. 예상은 하면서도 아니라는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렸던 가슴에 “쿵!”하고 무거운 돌덩이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 어머님을 모시고 병원문을 나서는데 하늘이 노랗다. 그날부터 나는 치매에 관한 서적을 찾아보고 먼저 이런 일을 겪은 지인들의 이야기도 들어보았다. 모두 다 암보다 무서운 치매라고 했다. 들을수록 가슴이 답답해지고 찾을수록 더 깊은 심산협곡에 빠지는 것 같았다. 궁여지책으로 요양보호사 자격증이라도 따서 어머님을 제대로 돌보고 싶었다.
“아기씨, 치매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하겠어요. 기본 지식을 알아야 어머님을 병세를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지 않을까요. 아기씨가 하루 반나절만 집에 오셔서 어머님하고 시간을 보내는 게 어때요, 그동안 아기씨는 어머님이 치매에 걸린 것이 확실한가를 확인도 해 보시고요.”
시누이는 그렇게 하는 데 동의하였다.
나는 요양보호사 시험을 보려고 학원에 등록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육십이 넘어 공부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처음 듣는 의학용어가 수두룩한데, 영어로 된 명칭은 더욱 많았다. 가을에 보는 시험을 치르기 위해 삼복 철 무더위에 엉덩이에 땀띠 돋도록 열심히 공부했다. 특히 치매 요양 기술 과목은 더 신경을 써서 배웠다. 집에 돌아와서는 그날 배운 지식과 어머님의 아픈 증세를 비교해 보며 어머님에게 알맞은 요양법을 모색하려고 애썼다.
한 달 남짓한 이론 공부가 끝나고 한 주간의 기본요양 실습이 있었다. 실습이 끝난 후 나는 한 주간의 치매 요양 기술 실습을 더 요청하였다. 첫 주의 실습은 무난히 끝났는데 두 번째 주의 실습은 첫날부터 쉽지 않았다.
환자들의 아침 식사를 도와주고 설거지할 그릇들을 주방으로 가져가고 있는데 휴게실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부랴부랴 달려가 보았더니 휠체어에 앉은 이 노인이 손목을 붙잡고 아프다고 소리 지르고 있었다. 팔을 보니 새빨간 피가 당장 솟아오를 듯, 이빨 한 대 자국이 깊숙이 나 있었다. 이 노인은 손가락으로 김 노인을 가리키며 김 노인이 깨물었다고 말하였다. 나는 김 노인의 손을 잡고 조용히 물었다.
“어르신, 왜 이 할아버지의 팔목을 깨물었어요?”
“나는 아니야, 깨물지 않았어, 나에게 깨물 이빨이나 있어야 깨물지, 봐요, 봐.”
김 노인은 내 손을 뿌리치고 입을 크게 벌려 나에게 보여주었다. 입안을 들여다보니 부서지고 절반 좀 넘게 남은 이빨 한 대가 외롭게 대문을 지키고 서 있었다. 이 노인은 김 노인의 볼에 붙은 밥알을 떼어주려다가 봉변을 당한 것이었다.
이런 시비를 어떻게 가려야 할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떤 명판사도 제대로 판결하지 못할 안건이 분명했다. 나에게는, 요양보호사에게는 그분들을 따뜻하게 보살피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켜주는 의무가 있을 뿐 야단치거나 무시할 권한은 없었다.
일어날 사고를 미리 예방하는 일 만이 나의 일이었다. 나는 김 노인의 손을 잡고 방으로 가서 침대에 앉혀 드린 후 이슥히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김 노인의 얼굴에 어머님의 얼굴이 겹쳐져 내 눈앞에 나타나 영화 필름처럼 돌아간다.
우리 집 거실에서 시누이와 어머님이 과일을 먹고 있다. 시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어머님이 갑자기 손을 뻗쳐 시누이의 손에 든 과일을 빼앗으며 소리친다.
“너 누구야, 내 집에 왜 왔니? 내 금반지 훔치러 왔지? 빨리 나가!”
“엄마, 왜 이래. 나야 나, 엄마 딸 영자 몰라? 내 얼굴 좀 봐봐.”
어머님의 독기어린 눈은 시누이를 쏘아보고 손은 나가라 연신 삿대질이다. 때마침 집에 들어서는 나를 본 시누이는 한걸음에 달려와 나를 껴안고 울음을 터뜨린다.
“언니, 잘못했어요. 엄마가 이 지경인 줄 몰랐어요. 딸인 나도 감당이 안 되는데 언닌 그동안 마음고생이 얼마나 컸겠어요. 미안해요, 언니.”
나는 내 무릎에 엎어져 우는 시누이의 등을 손으로 쓸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