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초음파 기기 사용 무죄 판결에 의료계 강력 투쟁 '예고'
한의사 초음파 기기 사용 무죄 판결에 의료계 강력 투쟁 '예고'
  • 조재민 기자
  • 승인 2022.12.27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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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무책임한 판결로 환자 피해 속출할 것"
자료사진.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해 의료법 위반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의사 A씨에게 벌금형을 선고한 1심과 항소심 판결에 대해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으로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없다"며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 22일 원심 판결을 파기, 사건을 관할 하급심으로 환송했다.

이 같은 대법원 판결에 의료계의 거센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했다가 암 진단이 늦어진 사건에서 대법원이 '보건위생상 위해가 아니라‘고 최종 판시했기 때문이다. 이에 의료계는 대법원이 한의사에게 진단용 의료기기의 계속 사용을 용인함으로써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하는 무책임한 판결을 했다며 강하게 성토했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방사선협회, 그리고 임상병리사협회는 26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집회를 개최해 "해당 한의사는 68회에 걸쳐 초음파기기를 사용하고서도 자궁암 진단을 놓쳐 환자에게 명백한 피해를 입혔다"면서 "'진단수단의 부적절한 사용'이 어떻게 보건위생상 위해를 끼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인지 재판부에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초음파 기기를 통한 진단은 고도의 전문성과 숙련도가 요구되는 의료행위로서 의사의 지도하에 방사선사와 임상병리사가 수행해야 한다"며 "누구나 그 기기를 사용해서 진단을 해도 위해의 우려가 없다는 것은 지극히 단편적이고 비전문적인 시각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대한정맥통증학회는 26일 성명서를 통해 "부인과 질환이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2년이 넘도록 초음파 검사를 시행하고서도 자궁내막암을 발견하지 못해 진단과 치료를 지연시킨 한의사에게 1심과 2심의 유죄판결을 파기 환송해 사실상 무죄를 선고한 대법원에 충격과 경악을 금할 수 없다"며 "오진으로 의한 피해가 뚜렷한데도 대법원의 판결문엔 환자의 피해 사실에 대한 언급조차 없이 한의사가 당해 기기를 진단 보조수단으로 사용하더라도 통상적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궤변이 무죄판단의 근거로 제시됐다"고 성토했다.

이어 "이번 판결로 인해 추후 발생할 환자 피해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대법원의 몫"이라면서 "대법원은 이번 오판을 되돌릴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라"고 촉구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이하 대개협)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인기영합주의에 치우친 판단은 결코 용인할 수 없다"며 "이번 판결로 인한 피해는 결국 오롯이 국민들의 몫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대개협은 지난 2016년 대한한의사협회(당시 회장 김필건)가 기자회견에서 초음파골밀도측정기 시연에 나섰던 일을 상기시키면서 "한의협 회장이 현대 의료기기 사용 시범을 보이다 의료계의 웃음거리가 된 것이 불과 얼마 전이다. 그새 한의학계에 어떤 중대한 발전이 있었기에 그 사용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질타하면서 "서울중앙지방법원(파기환송심 담당)은 현명한 판단으로 최종심의 오류를 바로잡아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대한신경외과의사회와 대한비뇨의학과의사회도 이번 판결이 의학과 의료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의 소치라고 비판했다. 신경외과의사회는 "대법원은 사회적 통념이라는 주관적 논거에 따라 정통의학과 한방을 동일시한 이번 판결로 우리나라 의료를 지옥행 특급열차에 태웠다"고 성토하며 "한의사가 현대 의료기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것 자체도 심각한 문제지만 그 결과를 토대로 잘못된 처방을 내릴 수 있도록 묵인하는 것은 차라리 범죄에 가깝다"면서 "이번 판결은 과거로의 퇴행일 뿐만 아니라 법이 의료를 격하시킨 중대사건"이라고 비난했다.

비뇨의학과의사회도 "이번 판결의 전원합의체 구성원 중 단 하나라도 의료체계는 물론 국민 건강과 생명이라는 대의를 한 번이라도 고민해봤는지 의구심을 감추기 어렵다"면서 "의료행위와 진단의 1차 위해는 물론 부정확한 검사로 인한 오진 등 2차 피해까지도 반드시 고려해야만 했다"고 대법원을 꾸짖었다. 

아울러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 여부는 의료행위 개발과 적용 원리가 한의학의 학문적 원리에 기초해 한의학의 전문성이 내재돼 있는지를 논리적으로 따져본 후에야 판단할 수 있는 사안“이라며 "초음파 검사는 한의사가 전통적으로 수행한 의료행위도 아닐 뿐 아니라 그들이 발전시킨 의료기기를 이용한 것도 아니고 한의학에 입각한 근거 수준을 확보하지도 못했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바른의료연구소는 26일 성명서를 통해 "대법원은 의료행위의 가변성과 학문적 원리, 과학기술 발전과 사회적 제도·인식의 변화 등을 고려해 무면허 의료행위에 대한 '새로운 기준 제시'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의료 환경의 급격한 변화는 물론 최근 10년 내 기존 판결 경향에 영향을 끼칠 만한 사건이나 요인도 없었다"면서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대해 모호한 추정을 근거로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결하면서도 막상 그에 합당할 만큼 명확한 판단근거를 제시하진 못했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더불어 이미 유죄가 선고된 1·2심 판결만 믿고 대한의사협회가 안일하게 대응했다며 그 책임론도 제기했다. 

바른의료연구소는 "이 판결을 계기로 한의사의 초음파 사용이 추후 합법화되면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해가 될 것이 자명함에도 최악의 결과를 막기 위해 재판에 관여해왔다던 의협은 어떤 노력을 했느냐"며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로 전환했을 때조차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1·2심 판결에 안주하며 적극 대응하지 않은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연구소는 "의협은 향후 대책 마련을 위해 국회와 정부를 강하게 압박할 수 있도록 파업까지 불사하는 강력한 투쟁을 즉각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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