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미 칼럼] 경도인지장애는 ‘철학적 죽음’의 옐로카드
[양은미 칼럼] 경도인지장애는 ‘철학적 죽음’의 옐로카드
  • 양은미 대표
  • 승인 2024.02.08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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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는 부모님의 인지 건강을 꼭 살피자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명절에는 부모님과 함께 오랜 시간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친목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부모님 인지 건강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나이가 든 부모님이 계시면 말하는 모습과 행동을 세심히 살펴보자. 부모님의 인지 저하가 느껴진다면 나이 탓이라고 하지 말고, 가까운 치매안심센터나 보건소에서 무료 치매 검진을 받도록 설득해 모시고 가야 한다. 하루라도 일찍 경도인지장애를 발견한다면 ‘철학적 죽음’을 피하거나 늦출 수 있다.

 

‘철학적 죽음’을 경고하는 경도인지장애

셸리 케이건 박사의 저서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읽어 보면 여러 관점에서 죽음에 대한 정의를 생각하게 된다. 이 책에서는 육체적 관점과 인격적 관점에서 죽음의 의미를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태어나서 일정 기간은 a 단계처럼 고차원 인지기능이 일어나지 않고 신체적 기능만 작동하는 시기를 산다. 그리고 성장하여 인지기능과 신체기능을 수행하는 b 단계를 살아간다. *시점부터 인지기능과 신체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시체 상태가 되는 c 단계에 이른다. 인격적 관점에서 본다면 c 단계에서는 자신의 기억, 신념, 욕망, 목표 등 인격적 정체성을 상실하게 된다. 그리고 신체기능도 중단된다. 즉, 죽음 단계에 이른다. 일반적으로 육체적 죽음과 인격적 죽음이 같은 시점에서 일어난다.

마음생각연구소 제공

 

그러나 육체적 죽음과 인격적 죽음의 시점이 일치하지 않는 특수한 경우가 발생한다. 교통사고로 코마(Coma) 상태가 되는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의식불명으로 병원에 실려와 의식이 깨어나지 못한 채 일정 시간을 머물다 죽는다. 이런 죽음의 경우 일정 기간 고차원적인 인지기능이 완전히 마비되지만, 신체기능이 작동하는 d 단계를 겪는다. 의식불명이 되어 *1 시점부터 인격적 죽음을 맞이하고 *2 시점에 이르러 육체적 죽음을 겪는다. 이런 경우 인격적 죽음과 육체적 죽음이 시점이 다르다.

마음생각연구소 제공

 

이런 특수한 경우의 다른 예로 치매를 생각해 보자. 인지 저하는 학습, 기억, 사고, 문제해결 및 일상 기능과 관련된 고차원의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심각한 인지 저하로 인해 일상생활이 불편해지는 상태에 이르면 치매 진단을 받아야 한다. 코마 상태는 한순간 인지기능이 작동하지 않지만, 치매의 경우는 이미 발병하기 7년에서 10년 정도 전에 머릿속에서 치매 씨앗이 심어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인지 저하가 일어난다. 깜박깜박 인지기능 경고등이 울려도 나이 탓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머릿속에 치매 증상을 만들어 내는 수많은 잡초가 자라나고 있지만 알아차리기 어렵다. 그러니 치매 진단을 받는 순간, 이미 치매는 상당히 진행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마음생각연구소 제공
마음생각연구소 제공

치매 치료를 받지 않고 관리를 잘 하지 않으면 급속히 나빠진다. 중기 단계에 이르면 급격하게 인지기능 저하가 온다. 그리고 말기 단계로 빠르게 넘어간다. 말기 단계는 셸리 케이건 박사가 제시한 특별한 경우의 d 단계와 유사한 상태가 된다. 말기 단계에 이르면 가족도 못 알아보고 거울에 비친 자신도 못 알아보게 된다. 의사소통도 어렵고, 음식을 삼키는 방법이나 대소변을 가리는 기본 행위도 잊어버리고 거의 누워서 지내는 상태가 된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른 사람 도움 없이는 혼자서 지낼 수 없다. 거대한 신생아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생을 통해 만들어 온 자아정체성, 가치관, 세계관이 허물어진다. 그래서 필자는 치매를 인격적 죽음이라기보다 ‘철학적 죽음’이라 생각한다.

치매를 예방하고 조기 발견해서 빨리 치료를 시작하면 치매의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다. 즉 *1 시점을 한참 뒤로 미룰 수 있고 d 단계를 짧게 보낼 수 있다. 즉, 치매 말기 상태로 요양병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막아볼 수 있다. 사실, 치매가 두려운 것은 치매 말기에 병상에 누워서 자식에게 부담을 주고, 자기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도 알지 못하는 상태로 오랜 기간 지내는 것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2022년 보건복지부 통계 자료에 의하면 이미 2021년에 80세 이상의 치매 유병률은 거의 60%였다. 이 수치의 의미는 80세 이상 노인 둘이 만나면 둘 중 한 분은 치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도인지장애가 있는 어르신을 빨리 발견하고 두뇌 건강을 위한 생활 습관 실천과 활동을 하시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철학적 죽음’을 피하거나 지연시킬 수 있다.

 

이번 명절에 해야 할 일

많은 사람이 경도인지장애를 치매라고 오해한다. 그래서 인지기능검사를 받는 것이 두렵고 꺼려진다. 경도인지장애는 치매가 아니라 치매에 걸릴 수 있으니 두뇌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옐로카드를 받은 것이다. 경도인지장애를 받은 분들은 치매가 되기 전에 발견해서 예방할 시간을 얻은 것이라고 오히려 기뻐할 일이다. 실제로 치매가 한참 진행되어 검사받으러 가는 분들이 많았고 그분들은 치매가 빠르게 악화되기 때문에 시니어 교육 현장에서 그렇게 위로해 드린다.

마음산책연구소 제공
마음생각연구소 제공

 

만 60세 이상 어르신이면 누구나 보건소 치매안심센터에서 무료 치매선별검사를 받아보시라고 강력하게 권한다. 그리고 경도인지장애를 받았다면 아직 치매가 아니니까 두뇌 건강 관리 잘하시고, 치매로 진단받으면 얼른 치료를 받아서 치매 진행 속도를 늦춰 오랫동안 가족들과 즐겁게 사시라고 한다. 그리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나오면 얼마나 마음이 편하겠냐고 이야기한다. 시니어 교육 현장에 나설 때마다 이런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하는 이유는 고령 부모나 조부모의 건강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치매선별검사를 받도록 설득하는 게 어렵고, 치매 진단을 받았거나 인지 저하가 눈에 띄는데도 주간보호센터에 안 가려고 하고 집에만 있으려고 하여 고민이라는 하소연을 많이 듣기 때문이다. 그만큼 어르신들은 치매가 무섭다. 그래서 검사받는 게 두렵다.

치매 예방 특강을 할 때마다 치매 지식을 알리는 것보다 치매 검사에 대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을 완화하는 데 더 노력한다. 복지관, 노인 교실, 문화센터, 종교기관, 자원봉사센터 등에 자주 나가서 사람들 만나고 재미있게 활동하시는 게 인지 건강을 지키는 데 아주 좋다고 사회활동 참여를 적극 독려한다. 인지가 좋을 때부터 시니어 또래 문화에 참여하고 활동해야 인지 저하가 심해졌을 때도 또래 도움을 받아 가며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실제로 경도인지장애를 겪는 어르신들을 주변 어르신들이 챙겨주는 모습을 필자는 자주 보았다. 복지관과 데이케어센터는 같은 건물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중에 데이케어센터에 도움이 필요한 시기가 왔을 때 거부감을 덜 느끼고 가실 수 있다. 자식들이 설득하기가 쉽다. 그러니 건강한 고령 부모님을 모시고 있다면 복지관 프로그램 참여하시도록 먼저 권하시라. 그리고 다음의 심각한 인지 저하를 의심해 볼 수 있는 경고 증상이 있는지 잘 살펴보자.

①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로 최근 일에 대한 기억력 상실 있음
② 언어 사용이 어려움
③ 시간과 장소를 혼동함
④ 판단력이 저하되어 그릇된 판단을 자주 함
⑤ 익숙한 일을 처리하는 데 어려움
⑥ 돈 계산에 문제가 생김
⑦ 물건을 잘 잃어버림
⑧ 기분이나 행동에 변화가 옴
⑨ 성격에 변화가 있음
⑩ 자발성이 감소함

그리고 보건소에서 인지기능검사를 받아보셨냐고 확인하고, 안 받았다면 한번 다녀오시라고 가볍게 권해 보자. 혼자 가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으실 수 있으니 슬쩍 모시고 간다고 이야기라도 해보자.

 

양은미
(주)마음생각연구소 대표이사
세계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
(사)건강소비자연대 건강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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