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미 칼럼] 잠자는 액션배우? 꿈에서 배달된 뇌 건강 옐로카드
[양은미 칼럼] 잠자는 액션배우? 꿈에서 배달된 뇌 건강 옐로카드
  • 양은미 대표
  • 승인 2024.03.22 1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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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병 예방 위해 7시간 정도 건강한 수면 필요해
마음생각연구소 제공
마음생각연구소 제공

잠을 자다가 가위에 눌리면 몸을 꼼짝할 수 없어서 참 무섭다. 몇 번 눌리다 보면 가위에 풀려나는 나름의 방법도 터득하고, 가위에 눌릴 것 같은 생각이 들면 얼른 몸을 움직여 미리 가위에 눌리지 않도록 하는 예방책도 생긴다. 가위에 눌리는 것은 당사자만 잠을 설치며 옆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지는 않는다. 다만 옆 사람에게 깨워달라고 간절한 눈빛을 보내도 알아주지 않아서 야속할 뿐이다. 그러나 심한 잠꼬대는 옆에서 곤히 자는 사람이 잠을 설치게 된다. 옆에서 자던 사람이 한 대 얻어맞기라도 한다면 “아주 꿈속에서 액션영화를 찍는구나!”하며 아침에 불평을 한 바가지 듣게 된다.

젊은 시절에는 그냥 잠꼬대하는구나, 가볍게 넘길 수도 있지만 50대 이후부터는 수면 건강 문제를 살펴봐야 한다. 가위에 눌리는 것은 ‘수면마비’로 렘수면(Rapid Eye Movement, REM)에 문제가 있을 수 있고, 심한 잠꼬대는 ‘렘수면행동장애(REM sleep Behavior Disorder, RBD)’일 수 있다. “렘수면?” 하고 용어가 낯선 사람이 많을 것이다. 눈 감으면 바로 자고 아침에 개운하게 눈뜨는 사람들은 수면 문제 때문에 정보 검색을 할 필요가 없어 그렇다.

 

잠자는 액션배우의 탄생?

/ ​simplypsychology.org
수면 리듬: 5 Stages Of Sleep (REM And Non-REM Sleep Cycles) / ​simplypsychology.org

사람이 잠잘 때 뇌는 쉬지 않고 활동한다. 얕은 잠을 자는 렘수면 상태에서 뇌는 빠르게 안구를 움직이면서 생생한 꿈을 꾸고, 지식과 기억을 종합한다. 잠들 때부터 깨어날 때까지를 기준으로 할 때 렘수면은 약 90분 간격으로 4회에서 6회 발생하며 짧게는 10분, 길게는 30분가량 진행되는 게 보통이다. 이렇게 얕은 잠을 자는 렘수면과 깊은 잠을 자는 비렘수면 상태를 주기적으로 반복해 잠을 잔다.

수면 장애가 없는 건강한 사람은 일반적으로 잠자리에 들면 5~10분 내 졸기 시작한다. 그리고 비렘수면 상태로 들어가며 깊은 잠을 잔다. 잠이 들면 체온이 떨어지고 뇌파가 느려지며 호흡과 심박수도 느려지고 근육이 이완된다. 깊은 수면 상태에서 몸을 회복하고 면역강화, 호르몬 분비, 에너지 회복 등이 일어난다. 건강한 숙면을 위한 방법으로 비렘수면을 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깊은 잠을 자는 비렘수면 이후 렘수면이 시작되면 심박수, 호흡, 뇌 활동이 활발해진다. 이때 꿈속에서 감정과 감각, 기억 등을 처리하는 뇌 영역이 활발하게 일한다. 만약 팔과 다리 근육이 마비되지 않는다면 꿈에서 하는 행동을 실제로 잠자면서 취할 것이다. 잠자면서 심하게 움직이면 다칠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 몸은 이런 일을 대비해 잠자는 동안 팔다리가 움직이지 않도록 방책을 세워 뒀다.

 

마음생각연구소 제공
마음생각연구소 제공

우리 뇌는 몸통에 길게 뻗쳐 있는 척수와 연결돼 있다. 이 두 부위를 연결하는 부분이 뇌간이다(그림에서 밝게 줄기처럼 보이는 부분). 뇌간은 의식, 호흡, 심장박동 및 대뇌피질의 기능 조정, 감각기능과 운동기능 조정 등을 담당한다. 뇌간이 렘수면 상태에서 팔다리가 움직이지 않도록 근육을 마비시켜 꿈에서 하는 행동을 실제로 옮기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꿈에서 야성적인 액션배우로 활약하더라도 현실에서는 얌전하게 잠을 잔다. 그런데 근육마비가 제대로 일어나지 않으면 꿈속에서 하는 행동이 실제로 실현돼 심한 잠꼬대를 하는 것이다. 큰소리를 지르거나 팔다리를 휘젓기도 한다.

누구나 잠꼬대할 수 있다. 일반적인 잠꼬대는 대부분 자면서 중얼거리고 대화하듯이 이야기한다. 어린아이가 미소 짓고 중얼거리는 귀여운 잠꼬대 모습을 보면 좋은 꿈 꾸나 보다 하고 같이 미소 짓게 된다. 옆 사람이 뭔가 대화하듯이 중얼대면 무슨 말인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돼 깨우려 해도 잘 깨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서 무슨 꿈을 꿨냐고 물어보면 기억하지 못한다. 개꿈 꿨나 보다 한다.

그런데 새벽 3시나 5시 사이에 모두가 한창 잠들었을 때 큰소리를 지르거나 험한 말의 잠꼬대를 하면 짜증이 난다. 팔다리를 휘저으며 공격적인 행동을 하면 무섭기도 하고 걱정스럽다. 놀라서 깨우면 금방 일어나고 자기가 한 행동을 기억하기도 한다. 만일 이런 증상이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나타나고 나이가 50대 이상이라면 렘수면행동장애를 의심하고 얼른 검사받고 조기 치료해야 한다.

 

꿈에서 배달된 뇌 건강 옐로카드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기사 이미지 / scientificamerican.com/article/acting-out-dreams-predicts-parkinsons-and-other-brain-diseases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기사 이미지 / scientificamerican.com/article/acting-out-dreams-predicts-parkinsons-and-other-brain-diseases

오랜 역사의 대중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 2023년 2월호에 실린 기사 “꿈을 실제 행동으로 하는 잠꼬대는 파킨슨병이나 다른 뇌 질환을 예고한다(Acting Out Dreams Predicts Parkinson’s and Other Brain Diseases)”에 렘수면행동장애는 파킨슨병의 전조 증상일 수 있다는 여러 연구 내용이 담겨 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프랑스 신경과학자 미셸 주베(Michel Jouvet)는 고양이 뇌간을 손상시켜 렘수면 상태에서 근육마비가 일어나지 않도록 했더니, 깊이 잠들었음에도 마치 깨어 있는 것처럼 비정상적으로 활발하게 행동하는 것을 관찰해 냈다.

1980년대 후반 미네소타 대학 카를로스 셴크(Carlos Schenck) 박사와 연구팀은 깨어 있을 때 온순한 사람이 잠을 잘 때는 아주 폭력적인 꿈을 꾸며 공격적인 행동을 보인다는 렘수면행동장애 첫 사례 보고를 했다. 이후 1996년 보고 내용에 따르면 50세 이상 남성 렘수면행동장애 환자 29명을 추적했더니 11명이 렘수면행동장애 발병 이후 13년 후 신경퇴행성 질환을 앓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에는 이들 29명 중에서 80% 이상인 21명이 신경퇴행성 질환을 앓았다. 주로 파킨슨병이었다. 이를 뒷받침하는 후속 연구도 있는데 전 세계 24개 센터의 환자 1,280명 중 렘수면행동장애 환자의 74%가 12년 내 신경퇴행성 질환 진단을 받았다.

아직은 렘수면행동장애와 치매의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웰(Howel MJ)과 션크(Schenck, CH) 박사의 연구논문 외에도 여러 논문에서 렘수면행동장애가 종종 파킨슨병, 루이소체 치매, 다계통 신경위축증 등의 전조 증상일 수 있다고 한다. 렘수면행동장애는 단순히 고약한 잠버릇을 넘어 꿈이 보내는, 훗날 치매 발병의 옐로카드일 수 있다. 따라서 진단 시 적극적으로 치료하고 증상을 개선해야 한다. 약물치료와 함께 안전한 잠자리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면 잠자면서 거친 행동이 발현해 부술 수 있는 물건은 주변에 두지 않는다. 심한 움직임으로 침대에서 떨어져 다칠 수 있으니, 바닥에 안전 매트를 깔아두는 것도 좋다. 그리고 편안한 수면을 위해 방안의 쾌적한 습도와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여력이 된다면 잠자기 전에 근육 이완을 위해 반신욕을 하는 것도 좋다.

렘수면행동장애가 아니더라도, 수면 부족 그 자체 또한 치매 위험과 연관이 있다. 렘수면행동장애가 파킨슨병, 루이소체 치매와 연관이 있다면, 수면 부족은 알츠하이머성 치매와 연관성이 있다고 한다. 잠이 부족하면 기억력, 집중력 등 인지기능이 저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알츠하이머병 예방을 위해서라도 7시간 정도 건강한 수면이 필요하다. 특히 잠자는 동안 뇌는 감정, 기억 등 정보처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뇌의 노폐물도 청소하기 때문이다. 숙면은 뇌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하다.

 

양은미
(주)마음생각연구소 대표이사
세계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
(사)건강소비자연대 건강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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