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미 칼럼] 치매를 그냥 '인지저하증'이라고 하면 안 될까?
[양은미 칼럼] 치매를 그냥 '인지저하증'이라고 하면 안 될까?
  • 양은미 대표
  • 승인 2024.01.09 15: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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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명칭은 치매 인권의 문제

어르신 인지 개선 교육을 들어가면 경도인지장애를 겪는 어르신을 종종 만난다. 첫 수업이 끝나면 필자에게 경도인지장애를 겪고 있다고 귀띔해 주신다. 그러면서 자신이 바보가 되는 것 같다고, 그래서 수업을 못 따라가도 이해해 달라고 걱정스럽게 이야기한다. 실제로 “바보 같다”, “멍청해졌다”, “머리가 잘 안 돌아간다” 등 경도인지장애를 겪는 사람들은 기억을 못하거나 실수를 하면 스스로 이런 자조적 표현을 툭 내뱉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상황에 필자가 꼭 해드리는 말이 있다. “못 하면 어때요? 함께 활동하고 재밌으면 그만이지!” 경도인지장애를 겪는 것은 바보라서 멍청해져서 그런 게 아니다. 그냥 인지저하로 인한 것일 뿐이다.

인지기능에 자신감이 있는 어르신은 실수하거나 기억력이 떨어진 것처럼 느껴질 때 “나, 치매 걸려나 봐!”라며 농담처럼 말한다. 반면에 경도인지장애이거나 주관적 인지장애를 느끼는 사람은 ‘치매’라는 단어를 꺼낼 때 조심스럽고 두렵다. 실제 치매를 겪는 사람이나 가족들은 굳이 치매에 걸린 사실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 이면에는 치매에 대한 두려움과 수치심의 정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괴팍해진 노인에게 무시하는 어조로 쓰던 노망(老妄), 망령(妄靈) 등의 단어가 치매로 바통이 넘어왔다. 치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이제는 치매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하지만 그 뜻을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주)마음생각연구소 제공

치매 명칭을 바꿔보려는 노력들

치매는 의학용어로 디멘시아(Dementia)다. Demnetia는 라틴어에서 유래하며 ‘de’(박탈, 상실), ‘ment’(정신), ‘ia’(상태)의 합성어이다. 그래서 ‘정신을 상실한 상태’라는 뜻이다. 치매 증상이 정신 기능이 떨어져서 자신이 조금 전에 한 일을 기억 못 하고, 기억을 잃어버리는 증상을 보이니 단어 뜻에 수긍은 간다. 그런데 치매를 한자로 쓰면 느낌이 확 달라진다. ‘어리석다. 미치광이’ 의미의 ‘癡’와 ‘어리석다, 미련하다’ 의미의 ‘呆’로 치매(癡呆)는 ‘어리석고 미련하다’는 의미다. 이러한 명칭의 의미는 부정적인 사회적 낙인에 영향을 준다.

한자 문화권 국가 중에 치매 명칭을 바꾼 나라가 있다. 제일 먼저 대만은 2001년에 실지증(失知症)으로, 일본은 2004년에 인지증(認知症)으로, 2010년 홍콩 그리고 2012년 중국은 뇌퇴화증(腦退化症)으로 개정했다. 그런데 한국은 아직도 치매(癡呆)라고 한다. 그렇다고 이제까지 치매 명칭을 바꾸는 데 손 놓고 있던 것은 아니다. 2006년부터 명칭 개정에 노력해왔다. 2011년, 성윤환 의원이 ‘인지장애증(認知障碍症)’을 ‘치매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으로 발의했으나 18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014년, 보건복지부에서 제3차 국가 치매관리종합계획(2016~2020)을 수립하기 위해 ‘치매 병명 개정 욕구 조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치매의 부정적 인식이 명칭보다는 질환이 갖는 어려움이며 치료 기술의 개선 없이 인식개선 효과는 지속하지 않는다는 등 여러 이유로 명칭 변경이 보류됐다.

2017년 5월 치매 문제를 개별 가정 차원이 아닌 국가 돌봄 차원에서 해결하고자 ‘치매국가책임제’가 도입됐다. 그리고 사회적 분위기도 치매에 관심이 높아졌다. 2017년 7월 권미혁 의원은 ‘인지장애증’으로 치매 명칭을 변경하는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김성원 의원은 ‘인지저하증’으로 변경해 치매 환자와 가족이 겪는 고통을 줄이고 질병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자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모두 2년 이상 계류되다가 아쉽게도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그래도 정치권에서 치매 명칭 변경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만으로 큰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2021년 보건복지부는 만 19세 이상 일반 국민 1,200명(치매환자 가족 319명 포함)을 대상으로 「치매 용어에 대한 대국민 인식 조사」를 발표했다. 국민 43.8%가 치매라는 용어에 거부감을 든다고 응답했다. 2014년도 38.6%에 비해 그 수치가 높아졌다. 이것은 치매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졌음을 보여 준다.

 

2021년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2021년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치매에 대한 거부감은 높아졌으나 치매 용어 변경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줄었다. 용어 변경에 대해서 ‘그대로 유지하든지 바꾸든지 무방하다’는 응답이 45%로 가장 많았다. 이는 2014년 52,3%에 비해 줄어든 수치다. 여기서 함께 살펴봐야 할 점이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27.7%로 2014년 22.8%보다 높아졌다는 것이다.

 

2021년 보건복지부 보도 참고 자료
2021년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치매’ 용어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로는 ‘현재 사용하는 용어가 대중에게 이미 알려져 있기 때문에’라는 응답이 28.5%로 가장 높았으며, 이는 2014년도 27.6%보다 다소 오른 수치다. ‘용어를 바꾸면 혼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는 22.2%인데 이 역시 2014년에 19.3%보다 약간 올랐다. 무엇보다도 눈여겨봐야 할 것은 ‘현재 사용하는 용어가 익숙하기 때문에’가 21.6%인데 2014년의 14.5%보다 크게 수치가 뛴 것이다.

 

2021년 보건복지부 보도 참고 자료
2021년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2021년에 조사 결과만 봤을 때는 각 문항에 대한 답변 비율이 2014년 처음 조사 결과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 이면을 봐야 한다. 2021년과 2024년 수치의 변화를 비교해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치매 명칭에 대한 변경이 어려워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치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수록 치매가 대중에게 더 많이 알려지고 더 익숙해진다. 그러면 굳이 명칭을 변경해서 혼란을 줄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힘을 받을 것이고, 또한 명칭 변경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비용에 관한 부담감은 커질 것이다. 2025년 초고령화사회에 진입한다. 그만큼 노인성질환인 치매 환자는 급증한다. 그에 관련된 가족들도 폭증할 것이다. 치매 명칭을 바꾸기 쉬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2022년 한준호 의원이, 2023년에는 김주영 의원이 치매 명칭 변경을 골자로 한 치매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물론, 2024년 치매 명칭은 그대로 사용한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행정용어에서는 치매를 대체하는 용어를 쓰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현대 정신의학의 도구적 진단체계인 DSM-IV에서 치매로 지칭되던 진단이 DSM-5에서는 신경인지장애로 바뀌었다. 그래도 치매로 진단한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고 했는데 열 번을 발의해야 치매 명칭이 개정될까?

2021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치매’라는 용어를 변경한다면 가장 적절한 대체용어로는 ‘인지저하증’이 31.3%로 가장 높았으며, ‘기억장애증(21.0%)’, ‘인지장애증(14.2%)’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필자 생각에도 ‘인지저하증’이 가장 낫다고 본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정 상궁 질문에 장금이는 “홍시 맛이 났는데, 어찌 홍시라 생각했느냐 하시면 그냥...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생각한 것이 온대”라고 답한다. 인지저하로 여러 가지 증상을 보이니 ‘인지저하증’이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치매’라는 용어 사용은 자제하려고 한다. ‘인지저하’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려고 노력하겠다. 작은 조약돌을 호수에 던져도 물결은 일어난다. 교육 현장에서부터 변화의 물결을 일으켜 보고 싶다.

 

양은미
(주)마음생각연구소 대표이사
세계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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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2024-01-11 08:52:02
치매를 인지저하증이라고 하면, 경도인지장애는 어떻게 부르나요? 경도인지저하증? 그러면 경증의 치매는 뭐라고 부르나요? 그리고, 같은 인지장애 계통 중 섬망은 어떻게 부르나요? 일시 인지저하증? 의학용어 개정이라, 고려사항이 매우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