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치매 정명(正名): ‘치매’라는 반인권적인 이름을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칼럼] ‘치매 정명(正名): ‘치매’라는 반인권적인 이름을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 양현덕 발행인
  • 승인 2020.11.22 1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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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치매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의사입니다. 가족의 붕괴를 초래할 정도의 돌봄 부담으로 고통 받고 있으면서도, ‘치매’라는 용어로 인해 편견과 차별을 겪고 있는 현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치매’라는 반인권적인 이름을 바로잡아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덜어주시기를 바라며 간곡히 이 청원을 올립니다.

우리나라 치매환자는 이미 70만 명을 넘어섰으며, 노인 4명 중 1명은 치매에 걸리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치매는 이제 더는 남의 일이 아닌 시대가 된 것입니다. 반면, 우리나라 노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환도 바로 ‘치매’입니다.

치매가 두려운 이유는 아직 원인을 치료할 방법이 없다는 점도 있지만, 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여전히 부정적이기 때문입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치매라는 질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 시작은 ‘치매’라는 반인권적 용어를 새로운 말로 바꾸는 것이라고 봅니다.

병명은 질병의 ‘본질’을 잘 드러내야 함과 동시에, 편견과 차별을 불러오지 않아야 합니다. 차별적 ‘병명’은 그 질병을 앓는 환자에게 사회적 낙인을 찍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치매라는 단어는 ‘어리석다’라는 뜻의 ‘치(痴)’와 ‘미련하다’라는 뜻의 ‘매(呆)’가 합쳐진 것입니다. 기억을 잘 못하는 친구들에게 “너 치매 걸렸냐?”라는 말을 쓰듯, 치매라는 말을 장난 같은 말속에서 비속어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어리석음을 뜻하는 치매라는 단어는 치매환자나 가족들에게 큰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실제 치매환자를 돌보는 많은 가족들이나 의료진들은 치매라는 용어의 사용을 피하고 있으며, ‘인지장애’ 등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치매라는 말을 뜻도 모른 채 오랫동안 사용했지만, 의미를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다른 말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아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재, 전에는 ‘치매’라는 단어의 의미를 몰랐던 사람에게 치매가 어리석을 치(癡)와 어리석을 매(呆)로 이루어져 ‘어리석다’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알려주고 ‘치매’라는 병명에 대한 인식을 다시 물으니, 용어의 뜻을 알기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병명에 대한 거부감을 느꼈습니다.

이웃 나라의 상황을 보자면,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대만·일본·홍콩·중국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치매’라는 명칭을 과거에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를 제외한 대만, 일본, 홍콩, 중국은 ‘치매’라는 용어 자체가 가지는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시키기 위해 ‘치매’를 ‘실지증(失智症)’, ‘인지증(認知症)’, ‘뇌퇴화증(腦退化症)’ 등으로 명칭을 바꿨습니다.

또한 부정적 의미를 지녔던 다른 질병의 예를 살펴보자면, 과거 지랄병으로 불리기도 했던 간질은 뇌전증으로 명칭을 바뀌었으며, 정신분열증은 조현병, 그리고 나병은 한센병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로 인해, 뇌전증이나 조현병, 한센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 대한 인식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습니다. 병의 명칭을 바꾼 것이 질환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데 이바지한 것입니다.

더불어, 소수 약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섞인 언어적 표현을 쓰지 말자는 사회적 운동의 영향으로 ‘바보·정신박약·정신지체’를 ‘지적장애’, ‘귀머거리’를 ‘청각장애인’, ‘벙어리’를 ‘언어장애인’, ‘봉사’를 ‘시작장애인’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치매라는 명칭은 바뀌지 않고 여전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치매라는 부정적인 명칭도 바꿔야 할 때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치매라는 명칭을 바꾸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국회나 정부 등에서 인지증이나 인지저하증, 뇌퇴화증 등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수차례 있었습니다.

그러나 치매환자와 가족들의 의견은 반영될 기회조차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점을 이유로 명칭 변경은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정부는 2021년에 국민 인식도 조사를 시작으로 치매 명칭 변경을 다시 한번 추진할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부디 과거의 치매 명칭 변경 보류가 반복되지 않도록, 이번에는 치매환자 가족들의 간절한 바램에 귀 기울여주실 것을 당부 드립니다.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환자와 가족에게 편견과 차별로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는 반인권적인 ‘치매’라는 용어를, ‘포용적이고 친근한 용어’로 바꿔주실 것을 간곡히 청원합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
‘치매 정명(正名): ‘치매’라는 반인권적인 이름을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94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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