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인의 역사에서 현대 의학까지, ‘몸을 나누는 방식’이 남긴 인류의 발자국
프리온이 드러낸 선택의 흔적과 치매의 또 다른 얼굴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세기 3: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창세기 3:16).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세기 3:17~19).

위의 구절들은 성경 창세기의 유명한 장면입니다. 성경 문외한인 제가 이 장면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이렇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불순종이라기보다, 인류가 ‘무엇을 먹을 것인가’라는 선택을 통해 문명의 다음 장을 연 순간처럼 보입니다. 하와는 “보기에도 좋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열매”(창 3:6)를 바라보며 앞으로 수만 년 동안 인류가 반복하게 될 행동 패턴을 충실하게 시연합니다.
“먹어도 되나?”
“안 된다고 했는데….”
“그래도 맛있어 보이는데?”
“먹자.”
솔직히 이 대화는 제가 점심 메뉴를 고르거나 여행지 시장에서 낯선 음식 냄새를 맡으며 망설일 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는 신을 실망시키지 않았고, 하와는 신을 직접 실망시켰다는 점만 다를 뿐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선택 이후, 하나님은 가차 없이 선포하십니다. 출산의 고통 증폭, 평생 노동, 가시덤불, 땀, 흙, 그리고 죽음.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이제 진짜 인생이 시작된다.”

고고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 선언은 놀라울 만큼 정확합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 이후 인류는 실제로 가시덤불(기후 변화), 땀(노동), 고통(전쟁·기근), 흙(사냥·농업)을 만나며 본격적인 생존 모드에 들어갑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란, 약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현생 인류가 6만~7만 년 전부터 아프리카를 떠나 유라시아와 전 세계로 퍼져 나간 과정을 가리키는 학설.

그리고 그 여정의 한가운데에는 듣기만 해도 식욕이 떨어지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바로 서로를 먹으며 살아남는 일입니다. 말 그대로 인간이 인간을 먹는 ‘식인’입니다. 당황스럽긴 하지만 고고학적 증거는 담담하게 말합니다. “네, 그런 일은 반복적으로 있었고, 때로는 매우 정교했습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어떤 의미에서 인간이 에덴동산 밖으로 공식 퇴출된 뒤 시작된 ‘창세기 2.0’이었습니다.

에덴을 떠난 인간은 기후 변화, 맹수, 경쟁적 집단, 기근 등을 만났고 생존을 위해 온갖 전략을 동원했습니다. 그 전략 중 하나가 식인이었습니다. 성경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고고학 유적은 인간이 생존을 위해 상상 이상의 방법을 사용했음을 보여줍니다. “먹을 수 있으면 먹는다.” 인류는 생각보다 단순했습니다. 문제는 그 ‘먹을 수 있는 것’에 다른 인간이 포함되었을 뿐입니다.

식인이 실제로 있었는지 판단하는 기준은 꽤 까다롭습니다. 사람 뼈에 상처가 있다고 해서 “먹었다”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칼자국이 뚜렷하고, 관절이 정육점처럼 가지런히 분리되어 있으며, 골수가 빠져나갈 만큼 산산조각이 나 있고, 불에 탄 흔적까지 있어야 합니다. 이 패턴이 동물 뼈의 조리 흔적과 거의 동일해야 연구자들은 조심스럽게 적습니다. “식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유적은 네안데르탈인, 아메리카 남서부 아나사지, 아프리카·유럽·아시아의 곳곳에서 나옵니다. 그러면 질문이 따라옵니다. “도대체 왜 서로를 먹었을까?”

이유는 단순합니다.
첫째, 생존입니다. 먹을 것이 없으면 문명, 도덕, 에티켓은 가장 먼저 무너집니다.
둘째, 의례입니다. 시신을 먹어 공동체 안에 그 존재를 ‘되돌리는’ 문화가 여러 지역에 있었습니다.
셋째, 전쟁과 복수입니다. 적의 간이나 심장을 먹어 힘을 흡수한다고 믿거나 공포를 통한 정치적 통제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즉, 식인은 소수의 일탈이 아니라 생존·정치·문화가 뒤섞인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식인은 단지 역사 속 이야기에 그친 것이 아니라 인류의 유전체에도 흔적을 남겼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PRNP(Prion Protein Gene 프리온 단백질 유전자)입니다. PRNP는 프리온 단백질을 만드는 설계도입니다. 프리온은 정상 구조에서 벗어나 잘못 접힌 단백질로, 사람과 동물의 뇌에 스펀지처럼 구멍이 생기는 질환(쿠루병, 광우병 등)을 일으키는 원인 물질입니다. 바이러스처럼 DNA나 RNA를 갖고 있지 않으면서도 퍼질 수 있다는 점이 독특하고, 고열·화학 소독에도 잘 파괴되지 않는 높은 저항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프리온병, 가장 낯설고 가장 위험한 치매 이야기" 표지 / 곽용태 지음, 디멘시아북스
"프리온병, 가장 낯설고 가장 위험한 치매 이야기" 표지 / 곽용태 지음, 디멘시아북스

 

PRNP 유전자의 129번 위치(codon 129)에 어떤 아미노산(M 또는 V)이 들어 있느냐에 따라 프리온병의 발병 가능성과 잠복기가 달라집니다. 즉, 이 자리가 프리온병 위험을 결정하는 핵심 스위치 역할을 합니다.

흥미롭게도 이 유전형 분포는 지역마다 크게 다릅니다. 동아시아(한국·일본·중국)는 PRNP 129 MM형이 90% 이상으로 거의 ‘MM 일색’입니다.

반면 유럽·아프리카는 MM·MV·VV가 비교적 균형 있고, 아메리카 일부 집단에서는 V(Val)의 비율이 훨씬 높습니다. 이 차이는 어떤 지역에서는 프리온병이 실제 선택압으로 작용했지만, 어떤 지역에서는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시사합니다.

대표적인 증거가 파푸아뉴기니의 포어족입니다. 포어족은 죽은 사람을 땅에 묻지 않고 먹는 엔도카니발리즘(endocannibalism) 관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잔혹함이 아니라 존중과 애도의 방식이었습니다. 문제는 프리온이 뇌에 특히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뇌를 주로 다루고 먹은 사람이 여성과 아이들이었다는 점입니다. 그 결과 쿠루병은 여성·아동에게 집중되었고, 수십 년 반복된 이 의례는 의도치 않은 거대한 유전학 실험이 되었습니다.

쿠루병을 견디고 살아남은 사람들에서는 PRNP 129 MV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습니다. 즉, 프리온에 상대적 저항성을 가진 유전형만 다음 세대로 이어진 것입니다. 문화가 유전자를 골라낸 셈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농담처럼 말합니다. “인류 최초의 유전체 실험실은 파푸아뉴기니의 장례식장이었다.”

반대로 한국인이 MM에 몰려 있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파푸아뉴기니처럼 강력한 프리온 선택압을 겪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동아시아에서는 큰 전쟁·기근 때의 일시적 생존 식인은 있었겠지만, 유전체 구조를 바꿀 만큼 반복된 문화적 식인은 없었습니다.

이제 시선은 소로 향합니다. 고대 인류는 서로를 먹으며 진화를 통과했다면, 현대 산업사회는 소에게 소를 먹이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가 광우병(BSE)이고, 인간은 그 결과물을 다시 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인류의 식인 역사는 고대와 현대를 넘나들며 기묘하게 반복됩니다.

도축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을 갈아 만든 육분(meat-and-bone meal)은 산업 효율성·재활용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지만, 프리온의 관점에서는 ‘동종 단백질 무한 공급’ 시스템이었습니다. 소가 소를 먹고, 그 소가 다시 도축되어 또 다른 소의 사료가 되었습니다.

파푸아뉴기니의 장례식이 문화적 반복이었다면, 광우병은 효율성이라는 명분 아래 돌아간 ‘공장형 식인 루프’였습니다. 소를 먹은 사람이 변종 CJD(vCJD)에 이르면서 인류는 스스로 설계한 구조에 걸려든 셈이 되었습니다. 프리온은 종도, 국경도 따지지 않습니다. 하나만 봅니다. ‘잘못 접힌 단백질과 가까이 갈 수 있느냐’.

왜 프리온은 ‘먹는 경로’를 타고 이동할까요? 세균·바이러스는 점막을 뚫거나 면역을 속이는 전략을 쓰지만, 프리온은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그저 구겨진 단백질 덩어리가 옆의 정상 단백질을 하나씩 구겨 버리는 반응일 뿐입니다. 그래서 뇌·척수·림프 등 단백질 밀도가 높은 조직 안으로 직접 들어가야 합니다. 식인, 육분 사료, 감염된 뇌척수 이식, 오염된 수술 기구, 경막 이식 등이 모두 그런 ‘단백질 접촉 경로’입니다.

현대 사회의 묘한 모순도 드러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서로를 요리해 먹지 않지만, 장기 이식·수혈·골수 기증·장기 교환 등 ‘극도로 정교해진 형태로 타인의 조직 수용’을 합니다. 철학적으로 보면 고대의 식인과 구조적으로 닮은 지점이 있습니다.

물론 의료 행위를 식인과 동일시할 수는 없습니다. 맥락·의도·윤리가 완전히 다릅니다. 다만 프리온이라는 존재가 둘을 같은 평면 위에서 보이게 만든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경막 이식으로 인한 의인성 CJD, 뇌하수체 유래 호르몬 제제 감염, 오염된 수술 기구 사례는 현대의학에서도 ‘단백질이 단백질 옆에 있을 때’라는 단순 조건만 충족되면 프리온이 전파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고대 인류는 서로의 조직을 그대로 먹었고 현대 인류는 서로의 피와 장기를 나누며 살아갑니다. 형태는 다르지만 어떤 철학자는 이를 ‘식인의 종말이 아니라 식인의 진화’라고 부를지도 모릅니다. 인류는 서로를 씹어 삼키는 존재에서 서로의 몸을 빌려 쓰는 존재로 변해왔습니다. 이것이 진보인지, 단지 방식만 바뀐 것인지는 쉽게 단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프리온이라는 단백질이 이 긴 이야기를 관통하는 조용한 해설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고고학·인류학·유전학·신경병리학을 엮어 보면 인류는 생각보다 더 생물학적이고,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서로를 먹었고, 의례로 먹었고, 산업 효율성을 위해 소에게 소를 먹였고, 이제는 서로의 장기와 피를 나누며 생명을 이어갑니다.

프리온병은 그 과정에서 인류가 어떤 선택을 했고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를 보여주는 독특한 증거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을 떠난 뒤 가시덤불을 만난 것처럼 인류는 아프리카를 떠난 뒤 식인이라는 가시덤불을 만났고, 이어 프리온이라는 더 기묘한 가시를 만났습니다. 그 가시는 고고학의 칼자국, 유전학의 M과 V, 파푸아뉴기니의 장례식, 광우병 사료 공장, 병원 수술실의 스테인리스 기구 위에 조용히 걸려 있습니다.

프리온병은 매우 빠르게 진행하는 치매를 일으킵니다. 이 병은 우리가 ‘치매’라고 부르는 세계가 얼마나 넓고 복잡하며, 얼마나 오랜 진화의 궤적과 닿아 있는지 일깨워줍니다. 치매는 단일한 질병이 아니라 인간의 생존 방식과 문화, 진화의 역사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품고 있습니다.

인류는 여전히 서로의 몸을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 다만 그 방식을 시대마다 다르게 선택해 왔을 뿐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것이 에덴을 떠난 뒤 인류가 계속 써 내려가고 있는 가장 인간적인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곽용태
신경과 전문의, 현 용인효자병원 진료부장, 연세대학교 신경과 외래교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동대학 석·박사 취득
2000년 세계적인 인명사전인 Marquis Who's Who 등재
2006년 대통령직속 산업의학 발달위원회 전문위원
저서 《프리온병, 가장 낯설고 가장 위험한 치매 이야기》, 
《치매 부모님이 드시는 약 이야기》, 《담장 너머 치매》, 《우리 부모님의 이상한 행동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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