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치매 이야기를 그린 《우두커니》의 심흥아·우영민 작가 부부
돌봄의 고단한 날들을 지나, 사랑으로 그려낸 삶의 이야기

이른 추위가 찾아왔지만 가을 햇살이 여전히 따뜻한 날, 청주의 복합문화예술 플랫폼 동부창고에서 ‘심우도’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만화 작가 부부 심흥아, 우영민 두 사람을 만났다.

만화 《우두커니》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는 가족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낸 독특한 작품이다. 부부는 실제 가족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치매 증상 이후 세 명의 가족이 한 집에서 살아가며 겪는 혼란과 갈등 그리고 사랑과 성장의 과정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작품은 치매 가족의 존재와 삶의 의미에 대한 깊은 울림의 메시지를 전달해, 독자들에게 큰 감동과 위로를 선사했다.

‘심우도’는 글을 맡은 심흥아와 그림을 그린 우영민으로 구성된 부부 창작팀을 뜻하며, 서로의 작업에 깊이 관여해 함께 작품을 만들어간다. 두 사람이 아버지의 치매 돌봄 경험을 바탕으로 그린 만화 《우두커니》는 웹툰으로 큰 호응을 얻으며 단행본으로 출간됐고, 2020년 부천만화대상 대상을 받았다.

우영민, 심흥아 작가 부부가 아이 키우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만화 "나의 꼬마 선생님"을 들고 있다 / 황교진 기자 
우영민, 심흥아 작가 부부가 아이 키우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만화 "나의 꼬마 선생님"을 들고 있다 / 황교진 기자 

 

이 만화는 초고령사회에서 많은 가정이 겪고 있거나 겪게 될 치매 돌봄의 현실을 진솔하게 보여주며, 가족 돌봄의 의미와 마음의 준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림체는 단정하게 절제돼 있고 메시지는 깊은 감동의 여운을 안긴다. 만화를 다 읽고 부부의 당시 힘든 심경에 깊이 감정 이입이 된 터라, 심우도 부부를 만나는 시간이 무척 설레고 기다려졌다.

심흥아 작가는 지난 10월 27일 한국장기요양학회 심포지엄에서 치매 가족 사례 발표를 했고, 현장의 많은 의료인 및 연구자와 돌봄 종사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발표를 들은 뒤 심 작가 부부를 꼭 만나야겠다고 생각했고, 치매 보호자로서 겪은 고통과 소회를 어떻게 만화 작품으로 남겼는지, 그림으로 다 기록하지 못한 이야기는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Q. 《우두커니》라는 제목이 인상적입니다. 어떻게 정하셨나요?

심흥아 작가: 제목은 어느 날 문득 떠올랐어요. 아빠를 방 안에서 바라보다가, ‘우두커니’라는 단어가 그냥 마음속에 올라왔죠. 그 단어는 아빠를 바라보던 제 마음 상태와 닮았어요. 치매 진단을 받고 나서, 어느 날은 너무 힘들어 멍하니 앉아 있던 제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우두커니’는 멈춰 있는 단어 같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감정이 있어요. 저는 그 멈춤을 슬픔으로 느끼지 않았어요. 오히려 사랑의 모양 같았어요.

"우두커니" 표지 / 심우도
"우두커니" 표지 / 심우도

 

Q. 아버지의 기억에 이상이 생겼다는 걸 처음 감지한 때는 언제였나요?

심흥아 작가: 청주로 이사하고 난 다음 날이었어요. 그 전에 안산에서 살 때도 약간의 이상한 변화는 있었지만, 청주로 이사 오면서 갑자기 증상이 심해졌어요. 낮에는 괜찮은데 밤이 되면 혼란스러워하시고, 날씨가 흐리면 기분이 확 떨어지셨어요. 온유하셨던 분이 갑자기 화를 내시고 누가 물건을 훔쳐갔다며 오해하시는 일이 잦았어요. 환경이 바뀌면서 더 악화된 것 같아요. 처음엔 그냥 기분이 안 좋으신가 보다 했는데, 2017년 당시 아빠는 85세였고 알츠하이머병이 꽤 진행된 상태였던 것 같아요.

 

Q. 청주로 이사한 배경은요?

심흥아 작가: 언니가 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어서, 가까이서 도와주고 싶었고 저도 조카를 사랑했어요. 그래서 언니 집 근처로 이사온 거예요. 아빠도 손주를 가까이서 자주 볼 수 있으니 내려가 살자고 설득했고요. 남편도 긍정하며 다 받아줬어요.

 

Q. 심 작가님에게 아버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심흥아 작가: 굉장히 점잖고 조용한 분이셨어요. 평생 남에게 폐 안 끼치고 살려고 하셨고, 가난했어도 늘 자식들 걱정을 하셨죠. 그래서 더 힘들었어요. 그렇게 단정하고 강직하던 분이 어느 날부터 달라지시니까 그 낯선 모습이 무서웠어요. '눈앞의 이 분이 정말 내 아빠가 맞나?' 하는 심정이었죠.

 

Q. 만화에서 보면 우영민 작가님은 천사 같은 사위이고 훌륭한 남편으로 보여요. 아내의 뜻에 늘 동의하며 응하셨고요.

우영민 작가: 저희는 자연스럽게 대화했어요. 가족이니까요. 물론 쉽지는 않았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고, 함께 사는 아버님은 점점 예전 같지 않으신 모습이 발견되면서 어려움이 많았어요. 아내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봐야 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고 조금 나아 보이면 안도했어요.

"우두커니" 속 한 컷, 치매 진단을 받은 아버지와 병원에 다녀오는 차 안에서 / 심우도
"우두커니" 속 한 컷, 치매 진단을 받은 아버지와 병원에 다녀오는 차 안에서 / 심우도

 

Q. 아버지 치매 진단 이후 일상에서 달라진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었나요?

심흥아 작가: 제 시간이 없어졌어요. 꼼짝을 못 하는 거예요. 외출도 마음 편히 할 수 없었어요.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아빠를 혼자 두고 나가면 마음이 불안했고, 집 안에서 온통 시선이 아빠에게 집중돼 있었어요. 매일매일이 작은 소동의 연속이었어요. 조용한 날이 없었죠.

우영민 작가: 아내가 몹시 지쳐가는 모습이 힘들었어요. 옆에서 돕고 싶지만, 근본적으로 대신해 줄 수 없는 일들이었죠. 아버지가 밤에 갑자기 소리 지르시거나 문을 열고 나가려 하실 때면 아내는 잠을 못 잤어요. 그걸 지켜보는 제 마음도 무력했죠.

 

Q. 당시 아버지의 치매 증상은 어느 정도였나요? 일상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신다면요.

심흥아 작가: 처음엔 단순히 건망증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차분하고 정이 많은 아빠가 폭력적인 말과 망상으로 인한 행동으로 거칠어지셨어요. 밤에 자주 깨어 불안해하시고, 갑자기 “나 혼자 나가서 살겠다”며 돈을 달라고 하셨어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정말 마음이 무너졌어요. 저를 딸로 인식하지 못할 때도 있었고, 감정이 갑자기 바뀌어서 화를 내거나 큰소리를 지르실 때도 있었죠. 멀쩡한 통장에 돈이 빠져나갔다며 “누가 가져갔다”고 하실 때면, 그걸 일일이 설명하느라 은행에 모시고 다녀오기도 했어요.

그 시기가 되면서 위험한 순간도 많았어요. 갑자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 하시거나, 새벽에 거실 불을 다 켜고 배회하셨죠. 저는 임신 중이라 몸이 무거웠는데 그때마다 남편과 둘이 붙잡고 달래며 버티는 날이 이어졌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일이 반복되니까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완전히 지쳐 있었어요. 정말 ‘돌봄’이 아니라 ‘위기 대응’처럼 느껴졌어요.

우영민 작가: 아버님이 점점 불안이 심해지셨고, 대화가 안 통했어요. 저는 아내가 무너질까 봐 그게 더 무서웠어요. 제가 대신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됐고, 그저 곁에서 같이 겪는 수밖에 없었어요.

"우두커니" 속 컷, 아버지의 낯선 모습에 마음 아프던 날 / 심우도
"우두커니" 속 컷, 아버지의 낯선 모습에 마음 아프던 날 / 심우도

 

Q. 돌봄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보호자는 한계를 느끼죠. 그 시절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심흥아 작가: 아빠와 다툰 날이요. 참다가도 결국 싸우고 나면 죄책감이 몰려왔어요. ‘왜 그렇게 말했을까, 좀 더 참을걸’ 하는 생각이 하루 종일 머리를 떠나질 않았어요. 그럴 때면 정말 바닥까지 내려가는 느낌이었죠.

한 번은 겨울 아침이었어요.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차려드리고 너무 피곤해서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창밖으로 해가 막 떠오르더라고요. 구름이 걷히면서 햇살이 번지는데 갑자기 울컥했어요. ‘아, 내가 아빠를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다. 잠시 구름이 낀 것뿐이야’ 깨달으며 그날 그렇게 울고 나니까 마음이 풀렸어요. 표현이 낯설고 거칠게 나갔어도 사랑은 제 마음에 그대로 있다는 것을 믿으면서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어요.

 

Q. 아버지와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심흥아 작가: 저는 늘 제가 직접 겪은 삶을 만화로 그려왔어요. 가족 이야기, 일상 이야기 다 기록으로 남겨왔죠. 아빠의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이어졌어요. 너무 힘들지만, 언젠가 이걸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남편이 "좋다, 하자"고 해줬고요.

우영민 작가: 심 작가의 콘티를 받았을 때 조금 놀랐어요. 아내의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본 건 처음이었거든요.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제가 모르는 감정들이 있었어요. 종이 위에서 그걸 마주하니까 ‘이 사람이 이렇게 아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죠. 그리면서 저도 많이 울컥했어요.

 

Q. 집에서 아버지의 BPSD(치매의 행동 및 심리 증상)를 돌보며 동시에 창작을 이어가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심흥아 작가: 사실 아빠를 모시던 시기에는 거의 작업을 못 했어요. 집중할 수가 없었죠. 그래서 이 이야기를 만화로 옮긴 건 아버지 돌아가신 뒤였어요. 연재는 그 후였지만 콘티는 조금씩 써놨어요. 그때 당시의 감정을 놓치고 싶지 않았거든요.

우영민 작가: 작업을 하면서 저희 부부도 많이 치유됐어요. 서로를 이해하게 됐고, 갈등도 줄었거든요. 작품을 통해 서로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 거죠.

"우두커니" 속 컷, 절제된 톤의 감정 묘사가 담긴 그림 / 심우도
"우두커니" 속 컷, 절제된 톤의 감정 묘사가 담긴 그림 / 심우도

 

Q. 《우두커니》를 그리며 특별히 어려웠던 점이 무엇이었나요?

심흥아 작가: 어려움보다는 오히려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만화를 그리면서 그때의 감정을 정리했어요. 고맙게도 독자들의 반응이 매우 따뜻했어요. “우리 가족 이야기 같다”, “보면서 많이 울었다”는 댓글을 보면서 저희가 오히려 위로를 받았어요. 만화를 본 해외동포가 부모님을 뵈러 비행기표 끊어 한국에 왔다는 후기도 접했어요.

우영민 작가: 특히 치매 가족들이 보내온 메시지가 많았어요. “이 만화를 보고 우리 엄마 생각이 났다”, “상한 마음에 큰 위로를 받았다”는 말들. 그게 가장 큰 힘이 됐어요.

 

Q. 아버님을 돌보던 시절, 두려움과 죄책감 등 다양한 감정이 공존했을 것 같습니다.

심흥아 작가: 맞아요. 저는 돌봄의 시간 동안 늘 죄책감에 시달렸어요. '내가 왜 이렇게 생각하지?', '왜 이렇게 버거워하지?' 하면서요. 때로는 너무 힘들어서 이 상황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그 생각이 곧바로 죄책감으로 돌아와요. ‘그럼 아버지가 돌아가셔야 한다는 뜻이잖아’ 그게 제일 괴로웠어요. 저는 《우두커니》에 그 감정을 다 담을 수 없었어요. 솔직하게 쓰면 오해받을까 봐, 혹은 너무 무겁게 느껴질까 봐….

 

Q.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갇힌 듯한 간병 기간에 많은 보호자가 겪는 실제 고충이죠. 그런데 아버지를 돌보는 중에 임신하셔서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심흥아 작가: 네, 아빠의 치매로 모두가 힘든 때였는데 임신 때문에 더 힘들어지기도 했고, 아기 덕분에 그 시간을 견딜 수 있기도 했어요. 결국 ‘이제는 나 혼자 감당할 수 없다’는 상황에 이르러 시설에 모실 수밖에 없었죠. 그 결정을 내리기까지 정말 힘들었어요. 사랑하지만, 더는 버틸 수 없다는 현실에 부딪혔죠. 저는 더 예민해졌고 몸이 너무 힘들어 쉽게 움직이기도 어려웠는데 밤새 집을 나가겠다는 아빠를 진정시켜야 하는 날도 있었어요. 남편과 둘이 붙잡고 달래며 버티는 날이 이어졌죠.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일이 반복되고,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었어요. 돌봄이라기보다 생존에 가까웠어요. 요양병원에 모시기로 한 후 죄책감이 가시질 않았어요. 최근에 매거진 <Dementia>를 읽고는 집보다 잘 지낼 수 있는 요양시설도 주변에 있다는 정보를 접했는데, 당시에는 제가 힘들어서 아빠를 시설에 맡기기로 한 결정이 큰 좌절감을 주었어요.

우영민 작가: 그 시기는 우리 둘 다 한계였어요. 임신 중인 아내 곁에서 저는 너무나 무력했어요. 그래도 서로 이야기하면서 버텼죠. ‘이건 우리가 포기하는 게 아니라, 아버지를 더 안전하게 모시는 선택이다’ 그렇게 스스로 다독여야 했습니다.

 

Q. 요양병원에 모신 뒤 아버지의 상태는 어떠셨나요? 그리고 마지막 순간은 어떻게 맞이하셨는지요.

심흥아 작가: 입원하신 뒤 급격히 나빠지셨어요. 집에 계실 때부터 안 좋으셨지만, 훨씬 빨리 몸이 약해지셨어요. 저는 만삭의 몸이어서 직접 찾아뵙기가 쉽지 않았어요. 언니가 대신 자주 가서 살펴봤는데, 그때마다 조금씩 더 말라가고 힘이 없어지셨다고 하더라고요.

어느 날 병원에서 연락이 왔어요. 음식을 삼키지 못하셔서 삼킴장애가 생겼다고요.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너무나 갑작스러웠죠. 준비할 틈도 없었고, 저희는 그냥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어요. 입원 당시 아빠 상태가 이미 많이 나빠져 있었기에 결국 이런 시기가 왔구나 수긍해야 했어요.

우영민 작가: 그때 아내가 많이 힘들어했어요. 요양병원에 모신 첫날 아버지가 지내신 빈방을 보며 울음을 참지 못했어요. 마음은 늘 아버님 곁에 가 있었던 것 같아요. 요양병원에 입원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별세하셔서 저도 슬펐지만, 한편으로는 아버님이 이제 편안한 곳에 가신 거라 믿어요.

"우두커니" 속 컷, 절제된 톤의 감정 묘사가 담긴 그림 / 심우도
"우두커니" 속 컷, 절제된 톤의 감정 묘사가 담긴 그림 / 심우도

 

Q. 돌봄의 시간 동안 부부로서 달라진 점이 있었나요?

우영민 작가: 서로의 내면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됐어요. 아내는 제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인데 작업을 같이하며 알게 됐어요. ‘이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게 많았어요.

심흥아 작가: 맞아요. 《우두커니》를 그리면서 서로에게 치료제가 된 것 같아요. 그때의 감정들을 정리하면서, 저희도 상담받는 느낌이었어요.

 

Q. 남편이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순간을 꼽는다면 언제였을까요?

심흥아 작가: 아빠와 살던 집에서는 하루하루가 버티는 일상이었어요. 그때 남편이 ‘괜찮아, 치매 때문에 그러신 거잖아’라고 말해줬던 게 정말 큰 힘이 됐어요. 별다른 해결책은 없었지만, 그 한마디에 마음이 놓였어요. 밤에 아빠가 불안해하실 때 남편이 함께 일어나서 문을 잠그고, 불을 꺼주고, 같이 달래줬어요. 저 혼자였다면 정말 견디기 어려웠을 거예요. 말보다 행동으로 옆에 있어 준 게 고마웠어요.

우영민 작가: 아내가 임신 중이었기 때문에 몸이 많이 힘들었죠. 그래서 저는 아버님을 혼자 대면해 모시면서 아내가 잠시라도 쉴 수 있도록 시간을 만들어 주려고 했어요. 제가 뭘 해줬다기보다 그때는 그냥 곁에 있는 게 제일 중요한 해결책이었죠.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작품이 세상에 나간 뒤, 가장 기억에 남는 반응은 무엇이었나요?

심흥아 작가: 치매 가족들이 보내준 메시지요. “이 작품을 보고 우리 가족이 위로받았다”는 말에 큰 힘이 됐어요. 또 “우리 집 얘기 같다”는 반응도 많았어요. 그럴 때마다 ‘아, 우리가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우영민 작가: 어떤 분은 “이 만화 덕분에 부모님과 화해할 수 있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저희도 울었어요.

"우두커니" 속 컷, 첫눈으로 아버지의 정신이 맑은 날 / 심우도
"우두커니" 속 컷, 첫눈으로 아버지의 정신이 맑은 날 / 심우도

 

Q. 심 작가님은 사례발표 시간에 “이 만화는 아버지가 남겨주신 선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흥아 작가: 네, 진심이에요. 아빠가 돌아가신 뒤 《우두커니》를 그리며 느꼈어요. '이건 아빠가 나에게 남겨주신 이야기구나.' 아빠가 제게 주신 마지막 선물 같았어요. 그래서 이 작품은 슬픔이 아니라 사랑의 기록이에요.

 

Q. 앞으로 ‘심우도’ 두 분이 그리고 싶은 작품 세계는 어떤 방향인가요?

심흥아 작가: 이제 제 안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다 그린 것 같아요. 그동안은 제 경험을 중심으로 작업해 왔는데, 이 경험이라는 게 한정돼 있잖아요. 제가 또 새로운 경험을 억지로 만들 수도 없고요. 그래서 카카오웹툰에 연재 중인 《중도빌라》라는 작품부터는 제 이야기가 아닌 만들어낸 이야기예요. 현실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웃의 이야기를 창작해서 그리죠. 《중도빌라》는 다양한 이웃들이 겹치며 살아가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어요. 아마 다음 작업도 그 연장선에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사람들의 삶을 그리고 싶어요. 누군가의 평범한 하루, 그 속의 감정이 제겐 여전히 가장 큰 주제예요.

우영민 작가: 저희 둘 다 기본적으로 사람 이야기를 좋아해요. 앞으로도 누가 특별히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쪽으로 가지 않을까 싶어요. 《우두커니》가 아버지의 이야기였다면, 다음 만화 소재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될 것 같아요.

 

Q. 지금도 치매 가족을 돌보느라 애쓰시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은?

심흥아 작가: 완벽하게 돌보려 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누구도 완벽하게 할 수 없어요.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예요. 죄책감은 덜어도 돼요.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 그 자체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우영민 작가: 혼자 감당하려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도움을 청하는 건 약함이 아니에요.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함께 버티는 게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Q. 끝으로 치매 가족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디멘시아뉴스에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심흥아 작가: 치매 이야기를 이렇게 집중해서 진정성 있게 다뤄주는 언론이 없잖아요. 사실 가족의 입장에서 겪는 감정의 무게는 말할 수 없이 무거워요. 그런 부분을 꾸준히 다뤄주셔서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저 같은 보호자들이 자기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공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치매는 질환이지만, 결국 우리 사회의 사람 사는 이야기니까요.

우영민 작가: 맞아요. 가족의 이야기가 다양하게 소개되면 좋겠어요. 돌봄의 힘든 면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의 관계나 회복, 웃음 같은 부분도요. 치매를 ‘두려운 병’으로만 보는 시선이 조금씩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변화에 디멘시아뉴스가 계속 중심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심우도 부부와 인터뷰 하는 내내 서로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넘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황교진 기자
심우도 부부와 인터뷰 하는 내내 서로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넘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황교진 기자

심우도 부부는 《우두커니》 이후 여러 작품을 그리면서 《나의 꼬마 선생님》이라는 육아 만화를 펴냈다. 아버지의 치매 증상이 깊어지던 시기에 부부에게 찾아온 아기를 키우는 이야기다. 그 아기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이 만화에는 아들을 키우며 사랑을 배우고, 자신을 키우느라 고생하신 부모를 다시 떠올리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우두커니》의 마지막 장면에는 “우리도 이제 부모가 되었다”는 문장이 등장한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부녀의 관계에는 여느 가정 못지않게 따뜻한 사랑이 있었다. 심흥아, 우영민 작가 부부는 학부모로서, 창작자로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를 계속 그릴 것이다. 돌봄의 시간 동안 우두커니 멈춰서서 바라본 그 시선으로, 고통 속에서도 잃지 않은 그 사랑의 마음을 작품 속에 담아내며 세상을 조금 더 다정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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