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과 정성이 다른 주간보호센터...“경주의 품에서 편안한 노후를 돌봅니다”
함께 사는 지역, 함께 치매를 돌보는 사회를 향해
주중에는 장기요양기관 센터장, 주말에는 교회 시니어반과 유아부를 담당하는 목사로 일하는 이우섭 경주어르신종합돌봄센터 센터장. 서울 강동구 성내2동 동안성결교회에서 만난 그는 무척 젊은 모습에 청년의 열정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장기요양기관의 기관장은 간호학 혹은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이가 많은데, 이우섭 센터장은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로 경주에서 주간보호센터 업무를 시작하면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했다. 교회의 노화 문화를 바로 세우기 위해 중·노년층의 심리적, 인격적, 영적 성장을 돕는 한국영성노년학을 수료했고, 《시니어 목회 에센스》와 관련 워크북 세 권을 집필했다. 치매로 힘들어하는 분들을 위한 <치매친구 팟캐스트 망고땡79>를 진행하며 유튜브로 송출하는 중이다. 경주 지역을 대표하는 주간보호센터인 경주어르신종합돌봄센터가 성장하는 데 크게 일조한 이우섭 센터장과 현장에서 체득한 치매 이야기들을 나눴다.
Q. 이우섭 센터장님은 목회자인 것이 이색적인데요. 우선 본인을 소개해 주세요.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자로 교단 총회 본부에서 교육 콘텐츠를 제작한 경험이 있습니다. 경주에 내려와 어르신 돌봄 일을 시작한 건 사실 생계 때문이기도 했고, 어렸을 때 본 할아버지의 치매에서 영향을 받기도 했습니다.
‘치매’라는 말보다 ‘노망’으로 불리던 1990년대에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치매 증상이 깊어진 할아버지를 어머니가 집에서 돌보셨어요. 당시 가족들이 감당한 치매 돌봄은 고립과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할아버지를 방에 격리해서 돌보는 방법밖에 없었죠. 돌아가실 때까지 부모님이 많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에 교수의 꿈을 갖고 미국 유학을 알아보던 중에 아버지가 폐암 4기 진단을 받으셨어요. 교련 선생님으로 교직 생활을 한 아버지가 강원도 정선의 탄광촌 인근 학교에서 근무할 때 야외 수업을 하며 석탄 분진을 많이 마신 것이 폐암 발병에 원인이었죠. 저는 셋째가 태어난 상황에서 유학을 포기하고 아버지 투병을 돌봐드려야 했어요. 3년 정도 투병하시다 70대 초반에 돌아가셨어요. 그 3년으로 가족의 생계가 몹시 힘들어졌습니다.
당시 경주보건소에서 간호사로 일해 오신 장모님이 퇴직 후 산모 도우미 파견업체를 운영하다가 2008년 7월 노인장기요양보험 시작을 앞두고 방문요양, 방문목욕, 방문간호를 하는 경주간호노인복지센터를 시작하셨죠. 경주에서 인적 네트워크가 풍부한 강점을 활용해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장인어른과 처남도 목욕 차량을 운전하며 도우셨고요. 일손이 부족해지면서 우리 부부에게 요청이 와서 저와 아내가 사회복지학과 노인복지법 등을 공부하며 힘을 합쳤죠. 현장에서 노인장기요양과 관련된 실무를 진행하다 보니 다양한 지식과 넓은 안목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2020년에 서울신학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에 진학해서 학위를 마쳤습니다.
제가 공부하는 동안에 우리 센터는 경주노인주간보호센터로 이름을 바꿔 확장 이전했고, 현재의 경주어르신종합돌봄센터가 됐습니다. 방문요양, 방문목욕, 간호, 주간보호를 통합 제공하면서 서비스를 이용하는 전체 수급자는 약 200명에 이르렀고, 주야간보호(정원 70명)는 현재 40~45분의 어르신이 이용 중입니다. 1층은 치매전담실, 2층이 일반실로 운영해요. 입소 어르신 중 치매 환자 비율은 전체의 70~80%입니다. 직원은 사회복지사 3명, 요양보호사 10명 등 20명이 조금 넘어요.
경주에는 신라인의 미소(보물 제2010호)로 널리 알려진 문화재 ‘얼굴무늬 수막새’가 있습니다. 센터를 이전하면서 브랜딩의 개념을 떠올렸는데 이 신라인의 미소가 떠올랐어요. 이것을 응용한 센터 로고를 만들어 신라인의 미소처럼 어르신들의 얼굴에 웃음을 드려 경주시를 대표하는 돌봄 브랜드가 되고자 하는 의지를 담았습니다.
2008년 설립 후 본격적으로 주간보호센터를 시작한 것은 2010년이었는데 당시 경주에는 시내 한가운데 있는 우리 센터가 선두 주자였고 입지 조건이 좋았어요. 점차 경주의 노인 인구가 많아지고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현재는 40곳이 넘는 주간보호센터가 생겼죠.
Q. 경주어르신종합돌봄센터만의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다면요?
‘숲 체험 프로그램’이 대표적입니다. 경주는 유네스코 문화유산 도시답게 다양한 문화재가 가까이 있습니다. 도시 곳곳에 첨성대, 천마총, 박물관 등으로 유명한데 안타깝게도 경주 어르신들이 먹고사는 일에 너무 바빠서 가까이 있는 문화유산에 가본 적이 없으세요. 불국사와 석굴암을 못 가본 어르신이 워낙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우리 센터에서 어르신들을 모시고 경주 문화유산 나들이를 계획했습니다.
사실 대다수 주간보호센터는 내부에서만 돌봐드리고 외부에 모시고 가는 프로그램을 안전과 인력 문제 등으로 버거워합니다. 저희는 한겨울과 한여름을 제외하고 치매 어르신께도 숲 체험 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하고 있습니다. 어르신이 가족에게 받는 효를 느끼시도록 하고 있죠. 보호자들도 좋아하시고 지역 사회에서도 우리 센터 프로그램에 관심 가져 주고 있어요.
또한 보호자 자조 모임도 계획 중입니다. 최근 보호자들의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습니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의 고통이 방치되지 않도록 정서적 지원이 꼭 필요하죠. 그리고 어르신들이 센터에서 귀가하실 때 손을 꼭 잡고 보호자에게 친절하고 따듯한 한마디라도 더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이 센터에 오가실 때 따듯한 분위기로 신뢰감을 느끼시도록 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니까요.
Q. 돌봄 시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아직은 미흡합니다. 부모를 시설에 맡기는 것에 대한 죄송함과 언론에 노인학대 관련 뉴스도 잊을 만하면 보도되고 있고요.
네, 보호자들이 어르신께 “노인학교야”, “복지관이야”라며 겨우 설득해서 모시고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인부담금 얘기를 들으면 돈 쓰지 말라며 이용하지 않겠다고 하시거나, 입소해 있는 어르신과 비교하며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도 계시죠. 그러나 이런 인식은 바뀌고 있습니다. 전화로 상담할 때 가급적 어르신과 보호자가 직접 센터에 오셔서 두 눈으로 보고 궁금한 점은 충분히 질문하도록 말씀드립니다.
인지지원등급이나 5등급 어르신께는 다른 어르신을 돕도록 역할을 드리면 좋아하세요. 막상 첫날 하루를 체험하시면 우리 센터의 자랑인 선생님들이 반가워해 주시고 운동도 시켜주시니 심심하지 않아서 좋아하시죠. 또 원하시는 외출도 하실 수 있도록 종사자들이 모시고 나가고, 숲 체험 소풍도 있으니 재미있는 학교나 문화센터로 생각하십니다. 센터에 오신 후 “치매 증상 진행이 늦춰진 것 같다”, “여기 오길 잘했다”고 말씀하십니다. 보호자는 낮시간에 잠시 쉬면서 숨도 돌리고, 개인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어르신을 돌봐드리는 센터가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많이 고마워하시죠.
Q. 돌봄 서비스 퀄리티를 높이면서 수익도 내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운데, 해결 방안이 있을까요?
핵심은 인건비입니다. 방문요양의 경우 수익의 87%는 인건비로 고정돼 있습니다. 심지어 대다수 방문요양 업체는 센터장이 본인의 급여를 가져가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게다가 주간보호센터는 임대료 부담이 큽니다. 서울은 훨씬 더 비싸죠. 필요한 인원을 추가로 채용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인력 추가 배치 가산제도를 이용하기도 하는데 충분하지는 않아 불가피하게 인력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기관 운영을 지원하기 위한 현실적인 정책이 더 필요합니다.
Q. 휴머니튜드 케어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덧붙여서 좋은 돌봄은 무엇인가요?
과거에는 무조건 안전이 중요했어요. 안전 문제로 신체 구속을 하고 억제대 사용을 선택했지만, 지금은 노인 인권이 중요한 시대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노인의 자율성과 잔존 능력을 지키려다 보면 자연스럽게 경미한 낙상 사고가 일어납니다. 어르신들끼리 말다툼도 많이 생기고요. 보호자들도 이제는 아세요. 우리 어머니 혹은 아버지가 사람답게 존중받는 케어를 받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안전에 대한 생각은 양보하고 스스로 움직이시고 조금 위험해도 그 환경이 더 낫다는 것을요. 그래서 저는 안전과 인권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균형이 센터와 보호자들에게 자리 잡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민들이 느끼는 치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마찬가지고요. 요양원이나 주간보호센터 혹은 요양병원까지 돌보는 시설에 대한 안 좋은 시선이 굳어지는 건 언론과 미디어의 탓이 큽니다. 매체에서는 말기 치매에 주로 나타나는 이상 행동(BPSD)의 자극적인 면을 부각하고, 일부 종사자의 학대 사례를 보도하는 데 집중합니다. 천사같이 헌신적으로 케어하는 좋은 요양보호사들의 사례는 좀처럼 뉴스가 안 돼요.
Q. 새 정부가 곧 들어섭니다. 노인 돌봄과 치매 정책에 대해 제안하고 싶은 바는?
대선 후보들의 공약에서 환자와 가족을 위한 정책은 만족스럽지 않지만 간병비 지원 등 언급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돌봄 종사자들은 외면되고 있어요. 우리가 하는 일은 사람이 사람에게 정성과 애정을 담아 서비스를 전달하는 체계인데, 서비스 제공자인 돌봄 종사자의 처우 개선과 인력 수급 문제가 빠져서는 안 되죠. 정부에서 장기요양기관 안전 교육을 엄청나게 하지만 모두 온라인 교육이에요. 온라인 교육은 효과가 떨어지는 데다 교육 효과가 좋을 때는 사고가 일어난 이후예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처음 1년은 뒷걸음질 친 치매 관련 제도를 제자리로 돌려놓느라 쉽지 않을 거라 예상합니다.
돌봄의 민간 의존도를 줄이고, 지역 사회 돌봄을 공공이 주도하는 방향이 더 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 사업자로 주간보호센터를 운영해 보면 국가 지원을 받기 어려운 현실에 놓입니다. 사회적 기업이나 법인화가 쉬워지도록 행정 절차를 간소화하고, 요양보호사와 종사자들의 처우 개선 없이는 돌봄 산업의 지속가능성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제대로 갖췄으면 합니다.
Q. 치매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사회가 돌봐야 한다는 아젠다가 설정돼 있습니다. 이러한 공존의 가치를 어떻게 앞당길 수 있을까요?
절대적으로 동의합니다. “치매는 죄가 아니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치매에 걸린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치료제가 언제 개발될지 모릅니다. 그전까지는 지역 사회와 교회, 시민단체가 함께 돌보는 역할이 중요하죠. 교회가 ‘기도만’ 해주기보다는 “제가 하루 맡아드릴게요. 좀 쉬세요”라고 치매 가족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진짜 돌봄이죠.
치매가 걸린 분들을 우리 사회가 같이 품고 함께 돕는 방법을 배워야 해요. 과거에 숱한 고생을 하신 어르신들 덕분에 현재 우리가 잘 살아간다는 토대 위에 치매 어르신을 따뜻하게 대하는 교육을 유치원서부터 가르쳐야 해요. 그러한 교육 커리큘럼과 함께 종교 기관에서도 노년의 삶을 체계적으로 섬기는 시도를 강화해야 합니다. 다음 세대만큼 지나온 세대의 분들을 잘 돌보는 역할도 중요하니까요.
Q. 치매를 숨기려다 병증이 악화되는 사례가 많습니다. 정보 전달과 사례 관리의 개선책은?
초기 대응과 치매에 대한 바른 정보 공유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지역 치매안심센터는 진단자 발굴에만 열중하다 후속 프로그램은 시행할 여력이 없는 곳이 대부분이죠. 그래서 저희는 자체적으로 보호자 커뮤니티를 만들어 가는 중입니다. SNS, 블로그, 팟캐스트 등을 통해 정보를 나누고 있습니다.
Q. 치매 100만 시대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 병을 걱정하는 이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치매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질병입니다. 걸렸다고 인생이 끝난 것도, 부끄러운 일도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건 ‘치매에 걸려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치매 환자에게도 실수할 권리가 있다는 인식을 모두가 가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정부의 정책과 교육, 종교 기관의 역할이 수반되어야 하고요.
Q. 마지막으로 디멘시아뉴스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치매 전문성을 갖춘 매체가 존재하는 것 자체로 든든합니다. 일반인들에게 필요한 치매 인식 개선 기사부터 치매 전문가나 의학과 산업계 관계자들이 봐야 하는 깊은 내용까지 모두 들어 있는 매체여서 기자 분들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계속 좋은 기사를 잘 풀어서 써주시길 바랍니다. 넓은 스펙트럼을 지닌 만큼 더 많이 알려져서 영향력이 계속 커지길 바라며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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