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구치매안심센터 박람회, 지난 12~14일 용산구청서 열려...600여명 인파
"칠순때만 해도 젊었네!" 파안대소...남편 치매 진단 떠올리며 눈시울 붉히기도
AI 기술로 복원한 '가족애(愛)' 눈길...땀과 열정의 결과물 '인생이 곧 작품'
다양한 기관·민간기업 참여..."지역사회 기반 치매 커뮤니티로 변화 만들 것"

그림책 제작 프로그램에 참여한 노부부가 '치매 안심 케어 로그인(Care Login) 박람회'에서 본인들이 손수 만든 책을 들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 디멘시아뉴스
그림책 제작 프로그램에 참여한 노부부가 '치매 안심 케어 로그인(Care Login) 박람회'에서 본인들이 손수 만든 책을 들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 디멘시아뉴스

치매 환자와 보호자는 ‘늘 힘든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다’라는 고정관념에 갇혀 있다. 하지만 일상에서 작은 성공과 즐거움을 경험하는 순간, 이들의 삶은 더 이상 질병의 그늘에만 머물지 않는다. 더디지만 열정적으로 작품 하나를 완성하고, 함께 웃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일상의 변화가 이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내일을 희망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치매 가족이 움츠러들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 이것 역시 치매안심센터가 지역사회와 함께 풀어가야 할 중요한 과제다. 치매 가족에게 ‘불가능의 목록’만이 아닌 ‘가능의 목록’도 함께 제시하며 희망과 용기를 북돋는 것, 그것이 우리 사회가 담당해야 할 몫임을 확인하는 뜻깊은 자리가 서울 용산구에서 마련됐다.

'치매 안심 케어 로그인(Care Login) 박람회'가 열린 서울 용산구청 지하 1층 홀 / 디멘시아뉴스
'치매 안심 케어 로그인(Care Login) 박람회'가 열린 서울 용산구청 지하 1층 홀 / 디멘시아뉴스

용산구치매안심센터 박람회, 지난 12~14일 용산구청서 열려...600여명 인파

서울 용산구치매안심센터(이하 센터)가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개최한 ‘치매 안심 케어 로그인(Care Login) 박람회’는 치매 환자와 보호자가 만들어낼 수 있는 크고 작은 변화의 순간들을 한데 모아 그 힘을 생생히 보여줬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 열린 이번 박람회에는 사흘 동안 600명 넘는 관람객이 찾아 전시를 둘러보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하는 등 높은 관심을 보였다. 센터는 박람회를 통해 치매 가족은 물론 주민과 기관, 기업, 단체가 참여하는 지역사회 기반의 치매 커뮤니티 모델을 선보였다. 동남보건대와 수원과학대 실습 학생들도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분주한 현장에서 한몫을 맡았다.

관람객들이 큐레이터의 설명과 함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 디멘시아뉴스
관람객들이 큐레이터의 설명과 함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 디멘시아뉴스

용산구청 지하 1층 전시실에는 센터의 역할과 활동을 소개하는 공간과 더불어 치매 가족들이 직접 만든 책과 공예품, 회화, 조형물 등이 자리해 관람객을 맞았다. 전시실을 채운 작품들 사이로는 준비 과정에서 밤낮없이 애쓴 직원들의 섬세한 손길과 묵묵한 노력이 곳곳에 그대로 배어 있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도 첫날 현장을 찾아 전시를 둘러보며 직원들을 격려했다.

특히 치매 가족들이 손수 만든 작품 앞에서는 관람객들의 발걸음이 한참 멈춰 섰다. 동선을 따라 이어지는 큐레이터의 설명에 세심히 귀를 기울이는 표정에는 놀라움과 진한 울림이 교차했다. 작품 속 어르신의 일상과 감정에 자연스레 스며드는 모습도 종종 엿보였다.

관람객들이 용산구치매안심센터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르신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 디멘시아뉴스
관람객들이 용산구치매안심센터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르신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 디멘시아뉴스
한 노부부가 '치매 안심 케어 로그인(Care Login) 박람회'에 전시된 액자들을 보고 있다. / 디멘시아뉴스
한 노부부가 '치매 안심 케어 로그인(Care Login) 박람회'에 전시된 액자들을 보고 있다. / 디멘시아뉴스

"칠순때만 해도 젊었네!" 파안대소...남편 치매 진단 떠올리며 눈시울 붉히기도

전시장 초입에서는 센터 프로그램 활동에 참여한 어르신들의 활기찬 모습을 담은 액자들이 관람객들을 반겼다. 본인 얼굴이나 지인의 모습을 발견한 어르신들은 액자 앞에 오래 머물며 한층 밝아진 표정으로 지난날을 회상하는 듯했다.

센터 어르신들이 직접 만든 그림책에도 관람객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센터는 디멘시아도서관과 협력해 지난 9~10월 그림책 제작 수업을 진행했다. 수강생들은 기획부터 스토리 구성, 채색, 글쓰기까지 제작의 모든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 전체 10명의 수강생 중 한 명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았다.

전시장에서는 완성된 책을 한 장씩 넘기며 기억과 감정을 되새기는 신인 작가들의 흐뭇한 모습도 찾아볼 수 있었다. 한 작가는 책장 속에 담긴 본인 사진을 어루만지며 "칠순때만 해도 젊었네!"라고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다른 작가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치매 진단 소식을 떠올리며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도 보였다. 

이번 프로그램을 맡은 소혜준 강사는 “어르신들이 책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보여주신 열정이 정말 대단했다”며 “처음에는 ‘내가 할 수 있을까’라며 걱정하셨는데, 회차를 거듭할수록 눈빛이 달라지셨다”고 말했다. 이어 “단 한 분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참여해 주신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작가로 거듭난 만큼, 전시회에서 느끼시는 감회가 남다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용산구치매안심센터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르신들이 직접 만든 그림책 / 디멘시아뉴스
용산구치매안심센터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르신들이 직접 만든 그림책 / 디멘시아뉴스
용산구치매안심센터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르신이 직접 만든 그림책을 보고 있다. / 디멘시아뉴스
용산구치매안심센터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르신이 직접 만든 그림책을 보고 있다. / 디멘시아뉴스

AI 기술로 복원한 '가족애(愛)' 눈길...땀과 열정의 결과물 '인생이 곧 작품'

전시 공간의 중심에는 AI 기술로 복원한 어르신들의 생애가 영상으로 펼쳐졌다. 젊은 시절의 모습과 가족과 함께한 소중한 순간들이 스크린 위에서 차례로 재현되자, 관람객들은 자연스레 영상 앞에서 한동안 쉽게 눈을 떼지 못했다. 센터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다 몇 달 전 세상을 떠난 한 어르신의 영상이 상영될 때는, 그를 오랫동안 지켜봐 온 지인들이 조용히 감정을 추스르는 듯한 모습도 눈에 띄었다.

한 젊은 관람객은 화면을 바라보며 “AI 기술이 이렇게 깊은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고 짧게 감상을 전했다. 과거와 현재가 한 공간에서 공존하는 전시장 풍경은, 나이듦이 과거와 단절되는 과정이 아니라 새롭게 재구성되는 삶의 여정이라는 메시지로 전달되기도 했다.

'치매 안심 케어 로그인(Care Login) 박람회' 전시실 내부 / 디멘시아뉴스
'치매 안심 케어 로그인(Care Login) 박람회' 전시실 내부 / 디멘시아뉴스
박미라 용산구치매안심센터 공예반 강사 / 디멘시아뉴스
박미라 용산구치매안심센터 공예반 강사 / 디멘시아뉴스

박미라 센터 공예반 강사가 지도한 냅킨아트 작품들 또한 전시 공간의 한 벽면을 채워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냅킨아트 작품들은 동일한 기법과 패턴을 사용했음에도 작품마다 질감과 색감이 달라, 작업 과정 자체가 참가자의 삶과 감성을 그대로 담아낸 듯한 인상을 줬다. 공예 전문가인 박 강사는 10년 전 어머니가 치매 진단을 받은 직후 센터를 찾았고, 그 인연으로 지금까지 공예반을 맡아 재능기부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퀼트 작품을 전시했던 박 강사는 “박람회에 작품을 출품하니 가족들의 열정이 더 커진 것 같다”며 “정식 회기가 아닌 날에도 모두 100% 참석할 정도로 참여율이 매우 높았다”고 귀뜸했다. 이어 “치매 환자를 돌보시는 분들은 센터에 나오는 시간을 힘들게 쪼개어 오실 만큼 열정이 대단하시다”며 “그 모습을 보면서 강사로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소감을 덧붙였다.

관람객들이 그림책 제작에 참여한 어르신들이 직접 녹음한 오디오북을 듣고 있다. / 디멘시아뉴스
관람객들이 그림책 제작에 참여한 어르신들이 직접 녹음한 오디오북을 듣고 있다. / 디멘시아뉴스

다양한 기관·민간기업 참여..."지역사회 기반 치매 커뮤니티로 변화 만들 것"

전시실 밖에는 용산구가족센터, 서북병원, 적십자병원, 국민건강보험공단 용산지사 등 기관들과 대교뉴이프, 큐컴버스, 포마컴퍼니 등 민간 기업들의 홍보 부스가 마련돼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또한 디멘시아도서관과 용산·남산도서관과 함께 운영한 ‘치매 BOOK 코너’에도 많은 관심이 쏠렸다. 치매 관련 서적이 비치된 책장에는 어르신뿐만 아니라 중장년층 방문객들도 모여 책을 집어들었다. 특히 그림책 제작에 참여한 어르신들이 직접 본인의 책을 녹음한 오디오북은 단연 인기를 끌었다. 청취 공간에서는 이어폰을 벗자마자 눈가를 훔치는 모습들이 보이기도 했다.

서울상담심리대학원대학교가 진행한 체험 클래스 모습 / 디멘시아뉴스
디멘시아도서관이 진행한 체험클래스 모습 / 디멘시아뉴스
디멘시아도서관이 진행한 체험클래스 모습 / 디멘시아뉴스

지하 2층에서는 인지·신체·교육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는 클래스를 운영했다. 체험 클래스는 서울상담심리대학원대학교, 삼육보건대, KT IT 서포터즈, 스프링소프트 등 다양한 기관이 참여해 교육장마다 사흘 내내 참가자들로 북적였다.

방문객들은 30분 단위로 치매 지식 퀴즈, 스마트 뇌 활력 프로그램, 해피테이블 등에 참여하며 치매 예방 및 관리 방법을 체험했다. 일부 수업에서는 참가자가 정원을 넘길 정도로 인기가 높아 책걸상을 추가 배치하는 모습도 펼쳐졌다.

신체 프로그램으로는 시니어 신체 케어, 지압볼 테라피 등이 진행돼 고령층 참가자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상담 프로그램에서는 치매안심병동 소개, 치매 환자 피부 간호법,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법,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 안내 등 실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전달했다.

용산구치매안심센터 직원들 / 디멘시아뉴스
용산구치매안심센터 직원들 / 디멘시아뉴스

이번 박람회는 치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지역사회의 실질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치매안심센터가 수행해야 할 역할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치매 가족이 삶을 멈추지 않고 미래를 향한 소망을 품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는 노력이 지역 곳곳에서 작은 변화를 만들어낼 때, 비로소 치매 친화 사회에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센터 관계자는 “다양한 기관의 적극적인 참여 덕분에 박람회가 한층 더 풍성해졌고, 관람객들도 매우 만족스러운 경험을 했다고 말씀해 주셨다”며 “앞으로도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작은 힘이라도 모아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가는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가운데 오른쪽)과 한상원 용산구치매안심센터장 / 디멘시아뉴스
박희영 용산구청장(가운데 오른쪽)과 한상원 용산구치매안심센터장 / 디멘시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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