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0(k) 허가를 ‘승인’으로 표기하는 보도 확산…산업 신뢰도 흔들
투자자‧소비자 오인 가능성 커져 ‘정보 투명성’ 확보 필요
국내 바이오‧의료기기 기업들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510(k) 허가(Clearance) 절차를 두고 보도자료와 언론 기사에서 자주 ‘승인(Approval)’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 같은 용어 혼용은 투자자·소비자에게 해당 제품이 실제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규제 심사를 통과했다는 과장된 인상을 줄 수 있어, 의료기기 산업의 신뢰도를 저해하는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FDA는 510(k) 절차에서 기기의 시판 여부를 ‘실질적 동등성(Substantial Equivalence)’ 판단을 통해 ‘Cleared(허가됨)’로 결정하며, 이 과정은 PMA 승인(Approval) 절차와 구별된다. FDA는 510(k) 기기에 대해 ‘승인(Approval)’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명확히 안내하고 있다.
이는 ‘승인(Approval)’과 ‘허가(Clearance)’가 규제 수준과 심사 방식에서 서로 다른 개념임을 보여준다.
기업 사례 분석: '허가'를 '승인'으로 오인하게 하는 관행
사례 1: 뷰웍스(Vieworks)
뷰웍스의 영상처리 소프트웨어(VXvue) 및 엑스레이 디텍터 제품군은 FDA 510(k) 허가를 획득했다. FDA 공식 데이터베이스에서도 해당 제품(K122866)이 기존 기기와의 ‘실질적 동등성(Substantial Equivalence)’을 인정받아 허가됐다(Cleared)는 기록이 확인된다.
그러나 다수의 국내 기사 제목에서는 “‘FDA 승인’ 획득”이라는 문구가 사용됐다. 본문에서도 ‘시판 전 허가(510K) 승인을 획득했다’는 식으로 승인과 허가를 혼용하는 표현이 등장한다.
즉, 절차적 의미가 분명히 다른 ‘승인’을 헤드라인으로 사용하는 바람에 독자에게 과도한 규제 통과 이미지가 전달되는 문제가 나타났다.
사례 2: 시지메드텍 (CG MedTech)
시지메드텍의 척추 임플란트 ‘유니스페이스(UNISPACE)’ 역시 FDA 510(k) 허가(K252351)를 획득한 제품이다. 그럼에도 일부 국내 언론은 “FDA 승인”이라는 제목을 사용해 510(k) 절차를 마치 최고 심사 단계인 PMA 승인(Premarket Approval)처럼 표현했다.
PMA는 FDA 의료기기 심사 중 가장 높은 단계로, 심장 인공판막이나 뇌심부자극기처럼 고위험(Class III) 의료기기에 적용되는 절차다. 기업이 직접 임상시험을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해야 하며, FDA가 공식적으로 ‘승인(Approved)’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유일한 심사 방식이다.
'510(k) 허가'를 'PMA 승인'처럼 보이게 한 것은 정보 해석의 혼선을 초래할 수 있는 용어 오용 사례로 꼽힌다.
사례 3: 피플바이오(PeopleBio)
피플바이오의 혈액 기반 치매 진단키트 ‘알츠온(AlzOn)’은 국내 허가와 유럽 CE 인증 등을 받은 제품이다. 그러나 기사 작성 시점 기준 FDA의 PMA 승인이나 510(k) 허가를 획득했다는 공식 발표나 FDA 데이터베이스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일부 기사에서는 “혈액 기반 치매 진단키트가 최초로 FDA 승인을 획득했다”는 표현이 등장했다. 하지만 FDA는 해당 제품을 승인했다는 공식 문구를 발표한 적이 없다.
따라서 심사 단계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승인’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점은 향후 더욱 정확한 정보 제공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510(k) 표기와 ‘승인’ 결합… 또 다른 오인 구조
또한 최근 국내 검색 포털에 노출되는 많은 보도에서 ‘FDA 510k 승인’ 또는 ‘510(k) 승인’과 같은 표현이 제목에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기사 중 상당수가 본문에서는 ‘510(k) 허가’라는 정확한 표현을 쓰면서도, 제목에서는 ‘승인’이라는 더 강한 용어를 배치해 독자의 주의를 끄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허가’와 ‘승인’을 혼용해 표기하면 소비자와 투자자에게 마치 FDA가 제품의 성능·효과·안전성을 정식으로 검증한 것처럼 오해를 유발할 수 있다. 특히 “510(k)”를 분명히 표기하면서도 그 앞에 ‘FDA 승인’이라는 문구를 결합하는 방식은 규제 현실을 흐리고 신뢰를 저해하는 비정확한 관행이라는 점에서 개선이 필요하다.
추가 사례: 저위험 기기(Class I) 등록의 오인
일부 기업들은 Class I(저위험) 기기에 대해 단순히 FDA Registration & Listing(등록 및 등재)을 마친 뒤 이를 ‘FDA 승인’으로 홍보하기도 한다.
그러나 FDA는 “Registration & Listing is not approval(등록과 등재는 승인이 아니다)”라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등록(Listing)은 제조업체가 ‘미국 시장에 제품을 판매하기 위한 정보 신고’에 불과하며,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심사 통과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러한 오용은 ‘승인 오용’의 가장 흔한 형태이며, 업계 신뢰를 훼손하는 요인이 된다.
왜 ‘승인(Approval)’과 ‘허가(Clearance)’ 구분이 중요한가
FDA의 의료기기 심사체계에서 ‘승인(Approval)’과 ‘허가(Clearance)’는 절차의 목적부터 요구되는 증거 수준까지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진다.
PMA 승인은 의료기기 심사 중 가장 높은 단계로, 고위험(Class III) 기기에 적용되는 절차다. 이미 앞서 설명했듯이 FDA가 ‘승인(Approved)’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이 절차를 통과한 기기에 한정된다.
반면 510(k) 허가(Clearance)는 새 기기가 기존 제품과 ‘실질적으로 동등하다(substantially equivalent)’는 점만 입증하면 되는 중위험(Class II) 기기용 절차다. 임상자료 제출이 필수는 아니며, PMA에 비해 요구되는 근거 수준과 심사 강도도 현저히 낮다. 이 때문에 FDA는 510(k) 절차에 대해 ‘승인’을 의미하는 Approved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FDA는 510(k) 절차에 대해 ‘Approve(승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510(k) 결정 문서에 ‘Cleared’라고 쓴다.
결국 '승인'과 '허가'는 규제 목적, 심사 난이도, 임상 근거 수준이 구조적으로 다르다. 그럼에도 '510(k) 허가' 제품을 언론이나 기업이 ‘FDA 승인’으로 소개할 경우, 해당 기기가 최고 수준의 규제 검증을 통과한 것처럼 오인할 가능성이 커져 소비자와 투자자 모두에게 잘못된 기대를 심어줄 수 있다.
정보 투명성 확보는 산업 신뢰의 출발점
국내 의료기기 산업이 글로벌 시장 진출과 고령사회 대응이라는 중대한 과제를 안고 성장하는 지금, 정확한 규제 용어 사용과 정보 투명성 확보는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치매 진단이나 척추 임플란트처럼 환자 안전과 직결되는 분야에서 ‘승인’과 ‘허가’를 혼용하는 관행은 제품의 안전성·유효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낳고, 자칫 과장된 광고나 부정확한 정보 전달로 이어져 소비자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할 수 있다.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제보다 낮은 규제 통과 수준을 갖춘 제품을 기업이나 언론이 'FDA 승인'이라는 강한 표현으로 포장할 경우, 시장은 그 제품의 성장성·기술력·진입 장벽을 과대평가하게 된다. 이는 주가 변동성 확대와 시장 거품 형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따라서 기업은 보도자료·IR 문서에서 ‘510(k) 허가(Clearance)’와 ‘PMA 승인(Approval)’을 명확히 구분해 기재해야 하며, 언론 역시 기업 발표를 그대로 인용하기보다 FDA 공식 문서를 확인해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는 검증 과정이 필요하다.
510(k) 허가를 ‘FDA 승인’으로 표현하는 관행이 반복된다면, 이는 단순한 표현상의 실수가 아니라 산업 전반의 신뢰 기반을 약화시키는 구조적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언론 모두가 정확한 정보 제공과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을 기본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