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환자, 치과 한번 오려면 사설 구급차 타야...이동권·진료권 보장 시급”
전국 2만 치과 중 치매 환자 진료는 50곳 안팎...“대부분 중증돼서야 찾아”
“일본은 40년 전부터 치매-치과 연계,...우리는 정부도 치과계도 관심 없어”
5차 치매관리종합계획에 ‘구강관리’ 첫 반영...“예산·수가 없으면 무의미”

임지준 대한치매구강건강협회장 / 디멘시아뉴스
임지준 대한치매구강건강협회장 / 디멘시아뉴스

“치과 한 번 오려면 사설 구급차를 부르고 여러 명이 동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동 자체가 불가능한데 진료 접근이 어떻게 이뤄지겠습니까”

최근 치매와 구강건강의 연관성을 규명한 연구들이 국내외에서 쏟아지고 있다. 잇몸 질환이 치매 발병 위험을 높이고, 구강 내 염증이 인지기능 저하를 가속화한다는 보고들이 나오면서 구강관리의 중요성이 조명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국내에서 치매 환자가 치과 진료를 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전국 2만여 개의 치과 중 치매 환자를 정기적으로 진료하는 곳은 50곳 안팎에 불과하다. 대학병원조차 "진료가 어렵다"며 치매 환자를 거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임지준 대한치매구강건강협회장 / 디멘시아뉴스
임지준 대한치매구강건강협회장 / 디멘시아뉴스

“치매 환자, 치과 한번 오려면 사설 구급차 타야...이동권·진료권 보장 시급”

구강건강 악화는 흡인성 폐렴을 유발하고, 영양 불량을 초래하며, 통증에 따른 행동·심리증상을 악화시킨다. “치과 치료를 받으면 돌아가시더라”라는 보호자들의 하소연은 치료가 원인이 아니라, 치과를 너무 늦게 찾았기 때문이라는 게 임지준 대한치매구강건강협회장(따뜻한치과병원 대표원장)의 설명이다.

18일 <디멘시아뉴스>와 만난 임 회장은 치매 환자의 구강관리가 더는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25년간 장애인 치과 진료를 해오던 중 치매 환자 치과 진료의 공백을 절실히 느껴 5년 전부터 이 분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재작년에는 이가 빠질 정도로 동분서주한 결과, 전국 요양원에 구강보건실이 설치되기 시작하고, 장기요양 평가표에 ‘구강관리’가 단독 항목으로 포함되는 등 비교적 짧은 기간 내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냈다.

사진=임지준 치구협회장 제공
사진=임지준 치구협회장 제공

전국 2만 치과 중 치매 환자 진료는 50곳 안팎...“대부분 중증돼서야 찾아”

치매 환자의 주요 사망 원인인 흡인성 폐렴은 정기적 구강관리로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 구강건강 관리로 치매 환자의 흡인성 폐렴 발생 위험을 최대 60%까지 낮출 수 있다는 국내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특히 치매 환자는 연하(삼킴) 기능 저하로 구강 내 세균의 기도 유입이 쉬운데, 정기적 구강관리로 이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또한 구강 내 통증과 염증이 줄어들면 치매 환자의 인지기능 저하 속도도 완화된다는 보고도 있다. 치아 통증이나 잇몸 염증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증가시키고 뇌 염증을 악화시켜 치매 진행을 앞당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강건강 개선은 삶의 질 향상으로도 직결된다. 음식을 제대로 씹고 삼킬 수 있으면 식사량이 늘고, 통증으로 인한 수면장애가 해소되며, 공격성이나 배회 같은 행동심리증상(BPSD)도 감소한다는 것이다. 이는 환자뿐 아니라 가족의 돌봄 부담도 크게 덜어준다. 의료비 절감 효과도 상당하다. 폐렴 등 2차 질환 발생이 감소하면서 입원 횟수와 치료비를 대폭 줄일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대학병원조차 전신마취 위험 등을 이유로 고령·치매 환자 진료를 기피하고, 지역 치과도 방문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환자들은 결국 중증·말기 상태에서야 마지막 수단으로 치과를 찾는다.

“가족이 ‘안 하면 죽을 것 같아서’ 데려오지만, 이미 너무 늦은 경우가 많아요. 치료를 해도 1~2년 안에 돌아가시는 사례가 정말 많습니다. 대학병원에서도 ‘치료할 게 없다’며 거부당해 전국에서 우리 치과로 찾아옵니다.”

임지준 대한치매구강건강협회장 / 디멘시아뉴스
임지준 대한치매구강건강협회장 / 디멘시아뉴스

“일본은 40년 전부터 치매-치과 연계...우리는 정부도 치과계도 관심 없어”

임 회장은 일본을 여러 차례 방문해 치매·고령자 치과 진료 시스템을 들여다봤다. 일본은 치매 진단과 동시에 구강관리 패키지가 제공되며, 신경과·치과·방문진료가 하나의 체계로 움직인다. 치매가 의심되는 환자에게는 한 달에 4번까지 구강관리를 보험으로 지원하고, 외래가 어려울 경우 방문치과진료도 이용할 수 있다.

지난해 일본 방문에서는 치매 분야 권위자이자 신경과 의사인 하세가와 요시야 선생을 만났다. 그는 자신의 클리닉에 유니트체어(치과 진료용 의자)를 설치해 2주에 한번씩 직접 구강관리를 시행하다, 나중에는 병원 옆에 치과를 개설해 치매 환자들의 구강관리를 돕고 있었다.

"증상이 심한 치매 환자의 경우 전신마취를 하냐고 물었는데, 이해를 잘 못하시더군요. 초기부터 관리가 들어가니까 환자들이 치과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겁니다."

반면 국내에서는 치과계 내부에서도 치매 환자 진료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고, 정부 역시 구강건강과 치매의 연관성을 정책적으로 다룬 적이 거의 없다. 지난 국감에서는 치매 환자 치과 진료 통계조차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은 현실이 지적되기도 했다.

방문진료의 경우, 위험도가 높고 진료 시간도 길어 치과의사들의 참여가 활성화되기 어려운 환경이다. 전국 4,600개 요양시설 중 유니트체어가 설치된 곳도 7개뿐이다. 계약의사(촉탁의) 제도가 있지만 수가가 너무 낮아 실효성이 없다. 내과 기준으로 만들어진 수가 체계 탓에 20~30분씩 걸리는 치과 진료를 1만 원 수준에 해야 하는 실정이다.

다만 내년부터는 돌봄통합지원법 시행과 더불어 방문치과진료가 제한적으로 허용돼 물꼬가 트일 전망이다. 오는 12월에는 대한방문치의학회가 출범해 관련 논의를 본격화할 계획이다. 임 회장은 접근성이 낮은 환자들을 위해 치과 이동진료차량의 활용도를 높이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사진=임지준 치구협회장 제공
사진=임지준 치구협회장 제공

5차 치매관리종합계획에 ‘구강관리’ 첫 반영...“예산·수가 없으면 무의미”

치과는 노인이 가장 자주 방문하는 기관 중 하나다. 임 회장은 실제로 치과에서 환자의 인지 변화를 가장 먼저 발견하는 사례가 많다고 전했다.

“20년 보던 환자분이 갑자기 예약일을 잊고 행동이 달라지면 우리가 먼저 알아챕니다. 일본은 이 때문에 치과의사와 약사를 치매 발굴 1차 직군으로 교육합니다.”

전국에 256개 치매안심센터가 있지만, 치과와의 협업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중앙치매센터의 8개 직종 교육에도 치과의사와 약사가 빠져 있다.

하지만 내년에 발표될 제5차 치매관리종합계획에는 구강관리가 처음 포함될 예정이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안상훈 의원은 치매 환자 치과 진료의 제도적 공백 문제를 강하게 지적했다. 그는 “장애인 치과 진료의 경우에는 300% 가산이 적용돼 수용성을 높이고 있지만, 치매 환자는 전혀 지원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서길준 국립중앙의료원장은 “제5차 치매관리종합계획에 치과 진료를 반드시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임 회장은 "이러한 정책 변화로 치매 단계별 구강관리가 체계화될 것"이라면서도 “정책에 이름만 올리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교육·방문진료·수가가 동시에 움직여야 합니다. 치과 방문이 어려운 치매 환자에게 방문진료가 허용되고, 장애인처럼 최소한의 수가 보전이 있어야 치과의사들이 움직입니다.”

그는 ▲치매 진단 시 구강평가 의무화 ▲장애인 수준의 치과 수가 신설 ▲방문치과진료 제도화 및 치매공공치과 개설 ▲치과의료인 대상 치매 교육 체계 구축 ▲공공 치매 구강센터 설립 등 구체적 대안도 제시했다.

정부에도 “국무총리 산하 국가치매위원회 같은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며 “부처가 분절적으로 움직이면 치매 환자와 가족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고 제언했다.

사진=임지준 치구협회장 제공
사진=임지준 치구협회장 제공

“천하치평(天下齒平)...누구나 치과 갈 수 있는 나라”

“치매든, 장애든, 이동이 어렵든, 경제적 여건이 어렵든 “나는 원래 치과 못 가는 사람”이라는 말이 사라지는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임 회장이 내건 슬로건은 ‘천하치평(天下齒平)’이다. ‘하늘 아래 치아 건강만큼은 모두 평등해야 한다’는 뜻이다. 장애인 구강건강 증진을 위해 설립된 스마일재단 이사로도 활동 중인 그는 올해부터 건강수명 5080 국민추진위원장을 맡아 보폭을 넓히고 있다.

그는 "치매 환자의 구강 돌봄을 한국이 선도하면 '케이팝'이나 'K푸드'처럼 'K-케어', 'K-돌봄'이 세계 표준이 되는 잠재력을 가질 수 있다"고 자신했다.

마지막으로 치매 가족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구강 문제는 사치가 아니라 반드시 챙겨야 할 건강의 기본입니다. 초기에 구강건강을 잡아놓으면 병의 진행이 덜하고 식사·수면·행동·감정까지 많은 부분이 좋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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