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원 용산구치매안심센터장에게 듣는 ‘치매 친화적 용산’의 현재와 미래
의료·복지·행정 잇는 ‘용산형 통합 돌봄 네트워크’로 사각지대 없앨 것
치매 인식 변화 넘어 능동적 예방 활동으로...경도인지장애 ‘골든아워’ 잡아야
치매는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지역사회 내 플랫폼으로 열린 공간 돼야
용산구는 다양한 세대와 계층, 문화가 공존하는 서울의 대표적인 도심이다. 이러한 복합적인 지역 구조 속에서, 용산구치매안심센터는 의료·복지·행정·민간을 긴밀히 연결하는 ‘지역 밀착형 통합 치매 관리 플랫폼’으로 거듭나고 있다.
‘초고령사회’라는 거대한 흐름과 맞물려 치매는 더 이상 환자와 그 가족만 짊어질 짐이 아닌,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가 됐다. 용산구치매안심센터는 예방부터 진단, 사후 관리까지 빈틈없이 연계하는 지원 체계를 구축하며 주민들의 삶 속으로 한 걸음 더 깊숙이 다가서는 중이다.
특히,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성황리에 마친 ‘치매 안심 케어 로그인’ 박람회는 센터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지향점을 명확하게 드러냈다. 환자와 가족뿐 아니라 지역 주민, 기업, 유관 기관·단체가 함께 어우러져 ‘지역사회 기반 치매 커뮤니티’ 모델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올 초 부임한 한상원 센터장을 만나, 용산구의 치매 관리 현황과 앞으로 그려갈 청사진을 들어봤다.
Q. 용산구치매안심센터장으로 부임하신 후 느끼신 소감과 목표가 궁금합니다.
부임 후 가장 먼저 실감한 것은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돌봄의 힘’이었습니다. 용산구는 풍부한 의료·복지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 치매 관리 사업을 발전시킬 잠재력이 매우 큽니다. 센터의 목표는 치매를 조기에 발견하고, 환자와 가족이 지역사회 어디에서든 끊김 없는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통합적 관리체계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의료·복지·행정기관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용산형 치매 돌봄 네트워크’를 강화해 예방부터 진단, 치료, 돌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환경을 만들고자 합니다. 나아가 지역사회 중심의 지속 가능한 돌봄 생태계를 구축·확장하고, 주민들의 치매 인식 개선과 사회적 공감 확산을 위한 교육과 캠페인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입니다.
무엇보다도 치매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과 그 가족들이 “센터가 곁에 있어 다행이다”라고 느낄 수 있도록, 따뜻하면서도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 싶습니다.
의료·복지·행정 잇는 ‘용산형 통합 돌봄 네트워크’로 사각지대 없앨 것
Q. 용산구는 지역적 특색이 뚜렷한 곳입니다. 센터장으로서 체감하시는 특징과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면요?
용산은 토박이 어르신들과 유입된 젊은 층, 외국인이 공존하는 다문화·다세대 지역입니다. 이 같은 도시적 특성은 치매안심센터가 다양한 기관들과 밀접하게 협력하며 맞춤형 돌봄 서비스를 실현하기 좋은 환경이기도 하죠. 대형병원과 복지시설이 밀집해 ‘원스톱 지원 체계’를 구현하기 좋은 환경이지만, 동시에 지역 내 사회경제적 편차도 큽니다. 가족지지 기반이 탄탄해 조기 검진에 적극적인 분들이 계신 반면, 쪽방촌이나 고립된 주거지에 계신 독거 어르신들은 정보 부족과 심리적 거부감으로 치매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습니다.
기억에 남는 사례도 가족 없이 홀로 지내시던 치매 어르신입니다. 일상생활 수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악화된 상태였지만 돌봐줄 사람이 없었죠. 우리 센터의 개입으로 행정기관·지역사회와 협력을 통해 공공후견인을 선임해 드렸고, 이후 안전한 시설로 입소해서 안정을 찾으셨어요. 지역사회가 손을 내밀 때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절감한 계기였습니다.
Q. ‘접근성’을 말씀하셨는데. 센터는 문턱을 낮추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센터가 특정 장소에 고정돼 있다 보니 거동이 불편하시거나 부담을 느끼는 분들은 방문조차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찾아가는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어요. 주민센터들을 찾거나 집, 경로당, 복지관 등을 직접 방문해 선별 검사를 진행하는 식이죠. 단순히 “오세요”라고 기다리는 게 아니라, 어르신들이 익숙한 생활공간으로 우리가 스며드는 것입니다. 심리적·물리적 문턱을 낮추니 거부감도 줄고, 검사 참여율도 자연스레 높아집니다.
Q. 외부 기관과의 협력 체계는 어떻게 구축돼 있습니까?
현재 용산구보건소와 서울시광역치매센터를 축으로 순천향대서울병원, 용산구의사회 등 의료기관과 복지관, 주민센터 등 복지·행정기관이 긴밀히 연결돼 있습니다. 특히 청파동, 이촌2동, 이태원1동 등을 ‘치매안심마을’로 지정해 지역 상점과 기업, 주민이 치매 환자를 돌보는 환경을 조성 중입니다. 이번 박람회에 20여 개 유관 기관이 참여한 것 역시 센터의 외연이 그만큼 넓어졌다는 방증입니다. 앞으로는 의료기관, 대학 등과의 협업을 통해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치매 예방 프로그램과 돌봄 연계 데이터 관리 시스템을 고도화할 계획입니다.
치매 인식 변화 넘어 능동적 예방 활동으로...경도인지장애 ‘골든아워’ 잡아야
Q. 센터를 찾는 어르신들의 치매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요?
예전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과거엔 치매를 자신과 무관한 일로 여기거나, 진단 자체를 사회적 낙인으로 받아들이는 두려움이 컸습니다. 하지만 치매국가책임제 시행과 꾸준한 홍보 덕분에 치매를 조기에 발견하고 관리해야 할 질환으로 이해하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특히 50~60대 중장년층에서도 인지 건강을 지키기 위해 예방 교육 등 센터 프로그램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긍정적인 변화가 감지됩니다.
Q. 최근 경도인지장애(MCI) 단계에서의 개입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용산구치매안심센터만의 전략이 있다면요?
경도인지장애 단계는 치매로의 진행을 늦출 수 있는 ‘골든아워’입니다. 최근 경도인지장애라는 용어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조기 관리를 위해 센터를 찾는 분들도 많아졌습니다. 이제 센터 프로그램도 환자군을 ‘세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치매 환자와 경도인지장애 진단자를 한 공간에 섞으면 수준 차이로 서로 위축되거나 거부감을 느낄 수 있어요. 따라서 대상자를 분리하고, 경도인지장애 그룹 내에서도 연령과 발병 유형에 따라 반을 나눠 운영하는 전략이 참여율과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Q. 비약물적 치료 프로그램도 활발히 운영 중인데, 실제 효과는 어떤가요?
의학적 근거를 논외로 하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비약물적 개입’의 차이는 분명히 있습니다. 음악, 미술, 산행과 같은 사회적 활동은 환자의 우울감과 불안 등 이상행동증상(BPSD)을 완화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집에 고립되지 않고 밖으로 나와 타인과 교류하는 과정 자체가 뇌 기능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센터는 인지키트 제작 참여나 예술 활동 등 사회적 교류 강화형 프로그램을 운영 중입니다. 이번 박람회에서 센터 프로그램에 참여해 만든 작품을 전시한 어르신들은 높은 성취감과 함께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으셨을 것입니다.
치매는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지역사회 내 플랫폼으로 열린 공간 돼야
Q. 센터 운영상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이나 제도적 아쉬움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치매는 의료적 문제인 동시에 복지·행정·돌봄이 연결된 복합적 과제입니다. 현장에서 만나는 어르신들 대부분이 진단이나 치료보다 일상생활 전반의 돌봄·주거·정서적 지원을 원하십니다. 이처럼 다양한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여러 주체가 협력해야 하지만, 행정 체계의 칸막이 탓에 유기적 연계가 원활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치매 환자 가족의 돌봄 부담 역시 중요한 과제입니다. 가족들이 치료와 간병을 병행하며 겪는 심리적·경제적 어려움은 상당합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우리 센터에서는 가족 상담, 힐링 프로그램, 돌봄 교육 등을 꾸준히 운영하고 있지만, 여전히 지원이 더 확충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치매 환자는 계속 늘어나는데 전문 인력은 늘 턱없이 부족합니다. 지역사회 중심의 통합 돌봄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인력 양성과 처우 개선, 그리고 기관 간 데이터 연계 강화가 필수적입니다.
Q. 우리 사회가 치매안심센터에 요구하는 핵심 역할은 무엇인가요? 치매 예방과 관리에 대한 의견도 듣고 싶습니다.
치매안심센터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치매 예방부터 진단, 치료, 돌봄까지 전 과정을 지역사회 안에서 연속적으로 지원하는 통합 거점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치매는 의학적 질환일 뿐 아니라, 삶의 질과 존엄을 다루는 종합적인 문제이기에 의료적 관리와 함께 사회적 돌봄 체계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치매안심센터는 지역사회 중심의 치매 관리 플랫폼으로서, 주민 누구나 언제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열린 돌봄 공간이 돼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치매의 예방적 접근이 중요합니다. 조기 발견과 위험 요인 관리가 이뤄진다면 치매의 발병을 늦추거나 진행 속도를 완화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센터는 치매로부터 안심할 수 있는 지역사회를 목표로 ▲예방 ▲조기진단 ▲사례관리 ▲가족 지원 ▲지역 협력의 다섯 축을 중심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조기 검진과 인지 건강 프로그램입니다. 60세 이상 주민을 대상으로 무료 인지 선별 검사를 시행하고, 필요하면 전문의 진료 및 감별검사까지 연계합니다.
또 ‘기억키움학교’와 ‘인지강화교실’을 통해 인지 기능 유지와 사회적 교류를 돕고 있습니다. 가족지지 프로그램도 중요한 축입니다. ‘헤아림’, ‘가치돌봄’, ‘가족 힐링 프로그램’ 등은 가족의 돌봄 부담을 덜고, 함께 극복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사업입니다. 아울러 공공후견사업을 통해 법적 의사결정이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실질적인 보호 체계도 제공합니다.
Q. 치매를 품어 안기 위해 우리 사회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치매는 환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짊어져야 할 공공의 과제입니다. 우선 의료·복지·행정이 분절되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촘촘한 인프라가 필요합니다. 치매안심센터를 축으로 방문간호, 주야간보호, 공공후견 등이 연속적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둘째, 시민 모두가 치매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치매 친화적 문화’가 정착돼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고령화 속도에 맞춰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예산과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정책적 지속가능성이 담보돼야 합니다.
Q. 마지막으로, 올해 박람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직원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이번 박람회는 우리 직원들과 관계기관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실이자, 치매를 함께 이해하고 극복하는 ‘공감의 장’이었습니다. 단순히 전시나 홍보에 그치지 않고, 지역 내 다양한 자원과 연계해 실질적인 서비스와 체험 중심 프로그램으로 시민들이 치매를 보다 가까이 이해할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며 주민들과 호흡해 준 직원 여러분이 없었다면 결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주신 덕분에 우리 센터가 주민들 곁에 든든하게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서로 격려하며 ‘치매로부터 안심할 수 있는 용산’을 만들어 가는 여정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직원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