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속 고백이 보여준 돌봄의 현실…공포에서 이해로
TV조선 ‘퍼펙트라이프’, MBN ‘언포게터블 듀엣, 썸씽스페셜 ‘수상한 민박’으로 만나는 치매의 실제
최근 예능과 교양 프로그램이 치매 환자를 둔 가족들의 실제 경험을 소개하며, 치매를 바라보는 대중의 인식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가족이 직접 자신의 감정과 돌봄의 어려움을 밝히는 장면은 ‘감동 서사’가 아니라 ‘현실의 일상’으로서 치매를 나와 우리들의 이야기로 보게 만든다. 초고령사회에 늘어나는 치매 환자와 가족의 고통에 대해 지금 미디어는 어떤 방식으로 조명하고 있을까.
TV조선 ‘퍼펙트라이프’…왕종근·김미숙 부부의 “치매는 가족의 여정” 고백
11월 12일 방송된 TV조선 <퍼펙트라이프>에서 아나운서 왕종근(71) 씨와 아내 김미숙(60) 씨는 치매를 겪던 모친의 별세 이후 일상과 감정을 진솔하게 나누었다.
김미숙 씨는 “어머니 치매로 가족 모두가 지쳐갔다”며, 돌봄 과정에서 우울 증세를 겪었던 사실을 고백했다. 왕종근 씨는 4년을 모시고 산 그 시기를 “돌아오지 않는 시간을 견디는 과정이었다”고 표현하며, 치매가 환자뿐 아니라 가족 전체에게 미치는 영향을 전달했다.
아내가 볼 때는 더할 것 없이 잘한 사위인 왕종근 씨는 가족에게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부탁을 남겼다. “내게 치매가 오면 절대로 집에서 가족이 같이 고통받지 마라. 요양병원에 보내고 면회도 오지 마라”며, 치매 간병으로 인한 직접적인 부담을 가족에게 안겨주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치매 유전자를 보유해 중위험군 판정을 받은 왕 씨는 의료진으로부터 “유전보다 생활습관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설명을 들었다며, 운동과 혈압·혈당·콜레스테롤 관리 등 일상적 예방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그의 발언은 치매를 ‘예측 불가능한 재난’이 아닌, 미리 대비할 수 있는 건강 문제로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MBN ‘언포게터블 듀엣’ 2화…직장암 4기 이사벨라와 치매 남편
2025년 11월 12일 방송된 MBN 〈언포게터블 듀엣〉 2화에서는 직장암 4기 치료 중인 가수 이사벨라 씨와 10년째 치매를 앓는 남편 이호만 씨의 사연이 소개됐다. 이호만 씨는 단어를 찾기 어려워하고 기억이 흔들리는 모습이지만, 아내의 이름 ‘이건애’를 기억하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 떠올렸다.
과거 건축 사업 실패와 옷 장사를 함께한 기억을 더듬으며 “미안하다”를 반복하는 장면도 전해졌다. 이사벨라 씨는 “몸이 아픈 건 괜찮지만, 남편이 나를 잊을까 봐 가장 두렵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무대에서 임영웅의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를 함께 불렀고, 이호만 씨는 멜로디와 가사를 또렷하게 따라가며 아내와의 정서적 연결을 보여줬다.
짧은 무대였지만, 치매가 진행 중이어도 감정과 관계의 기억은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뭉클하게 보여준 순간이었다.
예능 ‘수상한 민박’...치매 가족 일상과 지역사회 돌봄의 접점
유튜브 채널 '썸씽스페셜'의 〈수상한 민박〉이라는 리얼리티 예능에서도 돌봄과 치매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치매가 있는 노인과 민박집을 운영하며 겪는 일상을 선보였고, 그 과정에서 지역 주민과 방문객이 자연스럽게 돌봄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치매 어르신들이 민박집 매니저로 활약하며 손님들과 교감하는 과정을 흥미로게 담았다. 기억은 흐릿하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손님을 맞이하고, 민박집을 운영하며 예상하지 못한 일상적 상황을 만들어낸다. 때로는 새벽에 노래를 부르거나 갑작스러운 행동으로 웃음을 자아내지만, 그 안에는 진심 어린 교감과 감동이 담겨 있다.
충남 태안의 한 민박집에서 촬영했으며 가수 출신 배우 고우리가 사장으로, 개그맨 박경호가 부사장으로 출연해 어르신들과 함께 민박집을 꾸려가며, 시청자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인간적인 유대와 치매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를 마련한 예능으로 주목받고 있다.
일본의 인지증 대책에서도 강조했듯, 경증 치매 단계에서는 환자가 일상 속에서 ‘사회적 역할’을 유지하도록 돕는 것이 증상 진행을 늦추는 핵심 전략이다. 지역사회 안에서 스스로 기여할 수 있는 활동을 지속하는 것이 뇌 기능 저하를 완화하고 삶의 의미를 지키는 가장 효과적인 접근이라는 점을 치매 정책의 근본으로 제시했다.
〈수상한 민박〉은 이러한 관점에서 치매 돌봄이 가정에 머무르는 문제가 아니라 지역사회와 연결된 과제임을 보여준다. 방송은 치매 사례를 개인의 고백에 그치지 않고, 돌봄의 주체가 가족에서 지역사회까지 확장되는 구조적 시선을 제시했다.
방송이 던진 메시지: 치매를 ‘낙인’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보는 시선
두 부부와 민박 운영 사례에서 방송이 공통으로 강조하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1. 치매는 ‘가족 전체의 경험’이다
돌봄으로 인한 우울, 갈등, 죄책감 등 가족의 감정은 치매 관리의 중요한 부분이다. 왕종근·김미숙 부부의 경험은 이 현실을 드러내 알려주었다.
2. 기억이 흐려져도 ‘감정·관계’는 끝나지 않는다
이사벨라 부부의 사연은 치매 진단이 결코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치매 환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을 ‘단절’에서 ‘관계 중심’으로 이동시키는 메시지를 전했다.
3. 돌봄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의 책임으로 확장이 필수다
〈수상한 민박〉은 돌봄이 가정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사회와도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돌봄 공간과 자원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안겨주었다.
4. 치매는 준비하고 대비하는 질환이다
생활습관 관리, 조기검진 및 맞춤형 관리, 가족 간 사전 논의 등이 실질적인 대응요소임을 방송이 자연스럽게 드러냈다.
두려움을 넘어 이해로…방송이 만든 새로운 대화의 장
치매는 여전히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질환이다. 그러나 가족들이 솔직한 목소리로 자신들의 경험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서 더는 숨기거나 회피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함께 논의해야 하는 초고령사회 일상의 한 부분이 되고 있다.
이 방송들은 치매를 ‘끝’이 아닌 ‘삶의 과정’, ‘고립’이 아닌 ‘공감의 출발점’, ‘절망’이 아닌 ‘준비와 지원의 필요성’으로 보게 하는 변화의 시작을 창출하며 치매를 ‘감춰야 할 비밀’에서 ‘말할 수 있는 현실’로 전환하고 있다.
복잡하고 무겁게 여겨지던 치매 돌봄이 사실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변화의 과정이라는 점을 사회는 주목해야 한다. 치매는 기억을 지울 수 있어도 사람을 지우지는 않는다. 가족의 목소리가 드러나는 순간, 치매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이해하고 준비해야 할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