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보탬이 되는 직업으로 변호사 택한 후 취약계층 주목
치매 노인에게 ‘공공후견인’을, 자립준비청년에게 ‘사회적가족’을

노인법 전문 변호사로 10년 넘게 일한 송영신 변호사는 저소득 독거 치매 노인에게 관심이 깊다. 1인가구 시대에 사회적으로 연대해야 할 대상으로 독거노인과 자립준비청년의 고통에 공감한 것이다. 취약계층으로 분류되는 이 외로운 이웃의 법률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가족을 만들어주어 홀로여도 같이 사는 가족의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는 데 보탬이 되고 있다.

송영신 변호사는 심각한 고독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건복지부 고독사예방협의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그 외에도 국가치매관리위원회, 장기요양등급판정위원회, 성년후견특별지원위원회, 공공후견법률지원위원회, 서울시 자살예방센터 운영위원 등 여러 공적 영역에서 활동했다. 따뜻한 체온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변호사로 살아가는 계기와 서사가 궁금하다. 법무법인 다빈치 사무실에서 만났다.

 

송영신 변호사 / 황교진 기자
송영신 변호사 / 황교진 기자

 

Q. 보건복지부 고독사예방협의회, (사)시니어희망공동체 대표 등 여러 일을 역임하고 계신데요. 우선 변호사님이 만든 시니어희망공동체는 어떤 단체인가요?

2013년 7월에 설립했고 2022년 6월에 누군가 계속 이어가길 바라며 일단 해산한 단체입니다. 출발 당시 이름은 ‘한국1인가구연합’이었어요. 고독사 방지를 위한 단체를 만들고자 시작했는데, 고독사를 공부하면서 1인가구가 고독사 위험군임을 알게 됐고, 소외된 1인가구에서 일어나는 인권 보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설립해 활동해 왔어요. 1인가구 중에 가장 돌봄이 필요한 취약한 수요층이 어딜까 고민하며 살펴보다가 저희가 주목한 대상자가 저소득 독거 치매 노인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네 가지 고통을 견디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의 권익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공공후견제도를 도입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2017년 보건복지부 지원을 받아서 첫 시범사업을 단독으로 진행했고, 사업 결과를 보건복지부에 전달했습니다.

또한 현재는 자립준비청년이라고 칭하지만, 한국1인가구연합 설립 당시에는 보호시설 퇴소아동(보호종료아동)으로 불리는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같이 고민했습니다. 아동복지시설에서 만 18세가 되면 사회에 홀로 던져지고 그때 받는 자립준비금이 지자체마다 다른데 기껏 100만 원에서 500만 원입니다. 미성년자 홀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경제적 지원도 법적 보호도 받을 수 없는 환경에 노출되는 것이죠. 그 친구들에 대한 인식부터 잘못됐다는 생각에 퇴소아동을 1인가구 자립준비청년으로 쓰기 시작했어요. 자립준비청년들에게는 지지해 줄 사회적가족이 필요해요.

여러 지원사업을 진행하다 2017년에 업무가 넘쳤고, 2018년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서 일을 모두 해 낼 수 없어 다른 분께 부탁드리려던 중 코로나가 터지며 다들 위축되는 상황에 들어섰어요. 사회 운동은 첫 씨앗을 뿌리고 여러 노력을 기울인 만큼 반드시 결과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힘은 여기까지여도 누군가 이어갈 수 있길 바라면서요. 누군가 우리가 성취한 유산을 받아 새롭게 시작하게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시니어희망공동체의 역사는 그렇습니다.

 

Q. 건강은 괜찮아지셨는지요? 변호사인데 열정적인 사회복지사 일을 하신다는 생각도 듭니다.

예, 지금은 일하는 데 무리는 없습니다. 사회서비스는 사회복지사 업무에 한정된 것은 아닙니다. 노인장기요양기관을 보더라도 간호사,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상담사 등 여러 직업군이 모여 공공서비스를 제공하죠. 변호사 일이 따로 나뉘어 있지는 않아요. 법률문제 해결은 당연히 변호사가 하지만, 사회 운동은 직업을 한정 짓지 않죠. 사회복지 분야의 인력들과 현장에서 소통하면서 느낀 건 법률에 대해 잘 아는 분들이 이쪽에 관심을 많이 가질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도움이 필요한 분들과 접촉했을 때 복지 정책과 시스템을 바꿀 필요가 보이는데 이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법입니다. 법 전문가가 참여해서 단절감이 없도록 하여 실제 현장에서 필요한 것들을 잘 융합해야 하죠.

고독사를 해결하는 단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도서관에서 많은 자료를 살폈는데 논문 중에 고독사 방지를 위한 인공지능 워치 시스템 연구 등의 주제가 있었어요. 결국 우리의 삶이 윤택해지는 데는 여러 학문이 융합해야 효과 있는 결과가 나온다는 생각이 들어요.

 

Q. 변호사님은 사회 문제 해결에 감수성이 큰 분이란 생각이 듭니다. 사회 약자를 돕는 일에 남다른 관심을 두는 맥락이 궁금하네요.

인터뷰할 때마다 받는 질문인데 그냥 '그게 저'라고 생각해요. 법대 4학년 때 법철학 과목을 수강했는데 마지막 시간에 교수님이 ‘그래서 결국 사랑이다’라고 하셨어요. 법이 존재하는 이유의 근원으로 들어가면 결국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귀결한다는 것이 법철학의 본질이라는 거죠.

스무 살 갓 넘은 어느 날 등굣길에 따뜻한 햇살이 들어오는 버스 안에서 운전기사 아저씨가 너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사님이 운전해 주신 덕분에 내가 안전하게 학교에 가는구나, 하고요. 햇살이 버스 안으로 들어오는 풍경은 너무나 평화로웠고, 내가 평화롭게 학교에 간다는 게 감사했어요. 그래서 ‘나도 직업을 갖는다면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헌법을 전공한 이유도 인권에 대한 관심 때문이에요. 사람은 누구나 사방이 막혀 있는 힘든 시기가 오기 마련이고 그 힘듦의 원인이 법률문제일 때 이를 해결하는 사람이 변호사죠. 그 연장선으로 마흔에 변호사가 됐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일에 제 리듬에 맞춰서 제 춤을 추고 싶었어요.

 

송영신 변호사 / 황교진 기자
송영신 변호사 / 황교진 기자

 

Q. 20대부터 법을 전공했는데 마흔이 돼서 변호사가 된 데는 어떤 사연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극심하게 가난했어요. 사방이 막혀 있고 아무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던 시기에 필사적으로 장학금을 받으면서 중고등학교, 대학, 대학원까지 마쳤어요. 졸업 후 주독야경하며 학원 강사로 오후 3시에서 자정까지 아이들을 가르치고, 새벽녘까지 공부했죠. 해가 거듭될수록 주변 친구들은 합격하는데 저는 계속 낙방하면서 공부밖에 희망이 없었는데 그 희망이 사라지니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생의 전반부를 그렇게 고시 준비하며 견딘 시기에 헤르만 헤세의 시 <8월 말>의 시구가 제 삶에 터닝포인트가 됐어요.

 

8월 말

_헤르만 헤세

이미 단념하고 있었는데
여름은 다시 한번 그의 위력을 찾았습니다.
여름은, 점점 짧아지는 나날에
압축된 것처럼 그렇게 빛나고 있습니다.
구름 한 점 없이 따갑게 내리쬐는 태양을 자랑하며.

이렇게 인간도 살아오며 노력한 끝에
절망하고 은퇴해 버렸다가는, 갑자기
다시 한 번 파랑에 몸을 맡기고, 과감하게
삶의 나머지를 걸어보는 일이 있습니다. (...하략...)

 

다시 파랑에 몸을 맡기고 작은 것부터 해보자는 심정으로 운전면허를 준비했어요. 택시 기사 일을 해서 굶진 않겠다는 심정으로 도전해 기능 만점으로 합격하면서 목말랐던 합격 통지서에 해갈을 느꼈죠. 면허를 따면서 불안과 두려움을 떨쳤고, 이어서 공인중개사 시험에 도전해 합격했어요. 이렇게 할 수 있는 시험에 왜 겁을 냈을까, 용기를 내어 변호사시험에 도전해 봄에 피지 못한 꽃을 여름에 피웠습니다. 백 척 높이의 장대 위에서 허공에 한 발을 내딛는 심정으로 새로운 세상을 향해 성취감을 얻은 뒤로 제가 출중해서 변호사가 된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토록 간절히 원할 때는 변호사가 안 되다가 다 포기했을 때 변호사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라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한 비보를 접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2012년 7월 강릉에서 69세 할머니와 10개월 된 갓난아기가 사망 보름 만에 발견된 사건이에요. 그 죽음은 보호가 필요한 사람인 노인과 아기에게 벌어졌고, 참담한 것은 사망 장소가 화장실 앞이었어요. 할머니는 1년 전 위암 수술을 받은 분이었고 화장실 앞에 쓰러진 할머니 곁으로 돌도 안 된 아기가 기어가 굶어 죽은 것으로 사인 판정이 됐어요. 최소한의 네트워크라도 있었다면 병약한 할머니와 갓난아기가 아사하는 끔찍한 일은 없었을 테죠. 빈소도 차려지지 않은 고독하고 슬픈 죽음이었어요. 더는 물질적인 제약이나 돕는 손길의 부재로 고통받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한 사람이라도 구하자, 우리가 가다가 말면 더 선량한 사람이 이어가겠지, 하고요.

 

Q. 치매 어르신을 위한 공공후견제도는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제가 고독사 문제를 해결하려고 2017년에 서울시 25개 자치구의 구청, 주민센터, 치매안심센터에 방문하며 치매 독거노인의 사례를 수집했는데 구청 직원들이 협조적이지 않았어요. 당시만 해도 저소득 독거 치매 노인을 위한 공공후견제도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내용이었으니까요. 이걸 왜 우리가 해야 하냐, 우리가 왜 피후견인을 발굴해야 하냐고 하는 분들이 많았죠. 주민센터에 계신 분들은 조금 달랐는데 이유는 직접 어르신들을 상대하기 때문이에요. 특히 사회복지사분들은 지역 내 어르신들에게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병원에 모시고 가서 서명해야 하는데 보호자가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없었어요. 복지사님 본인들이 한계를 많이 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그때 만난 분 중에 강동구치매안심센터 홍종석 사회복지사가 있었고, 제가 2개월가량 공공후견인 60명 정도를 양성했어요. 후견인들의 기본 교육, 심화 교육과 실습까지 거쳐 양성한 후 구청, 주민센터, 치매안심센터를 찾아다니며 피후견인을 발굴해서 저소득 치매 독거노인들과 매칭해 직접 가정법원에 심판 청구하고 후견인 결정까지 받았어요. 그렇게 공공후견서비스를 지원하면서 저는 자조 조직을 만들어서 계속 지원했죠. 그 일련의 과정으로 치매공공후견사업이 시작됐어요.

 

Q. 치매공공후견사업이 있기 전에 이 제도의 역할을 해온 법적인 제도나 프로그램은 없었나요?

치매 노인 대상으로는 전무했어요. 2017년 시니어희망공동체에서 시작한 것이 처음이죠. 2013년 7월 1일에 성년후견제도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시행됐어요. 제가 한국1인가구연합의 창립일을 2013년 7월 1일로 잡았거든요. 공공후견제도를 성년후견제도가 시행되는 날을 기념해서 하자라는 의미 부여를 한 것이죠. 2013년 성년후견제도 시행 당시에 발달장애인 부모님들 중심으로 발달장애인을 위한 공공후견제도가 거의 같이 시작됐어요. 치매 노인에 대한 공공후견인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죠.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처럼 부모에 대한 사랑도 필요하단 생각에 공공후견인 대상으로 저소득 독거 치매 노인을 생각했어요. 이 어르신들의 가정은 과거에 파탄이 났거나, 오랫동안 혼자 계신 분들이다 보니 사회의 관심이 적었어요. 이분들을 이해하는 교육과 관심이 필요해 보였죠. 언론에서 노인은 젊은 세대가 책임져야 할 부담으로 비치는 보도가 많은데 저는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며 단절시키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Q. ‘사회적가족’을 만들어 드린다는 해결책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일단 ‘사회적가족’이란 명칭은 1인가구 자립준비청년을 어떻게 돕고 법률 지원을 할 수 있을까 고심하다가 제 뇌리에 박힌 것은 ‘가출팸’이었어요. 가출 청소년들이 그룹을 지어서 일으키는 사회 문제에서 그 아이들에게만 책임을 돌릴 문제인가라는 반성적 고려에서 ‘소셜팸’을 쓰자고 한 거죠.

소셜패밀리, 즉 사회적가족이라는 개념을 창안했고 혈연처럼 끈끈한 유착 관계는 갈등을 양산하지만, 그렇지 않은 느슨한 연대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적가족으로 조부모 세대와 자립준비청년의 세대가 연결되는 가족을 매칭했고, 서울에서 2기까지 진행했고 3기는 부산에서 출범했습니다.

 

Q. 자립준비청년에게 사회적가족을 맺어준 실제 사례를 들려주세요.

스무살 갓 넘은 남학생이었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보호 종료된 뒤 바로 입대했어요. 그런데 이런 아이들은 입대하면서 관심사병으로 분류돼요. 진짜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 친구들이 군대에서 심한 모멸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 친구가 군대에서 후임의 하극상으로 폭행을 당했어요. 소심한 성격에 얼굴이 찢어졌는데 제대로 말을 못하고 보상도 받지 못했어요. 도리어 가해자 부모에게 거의 몇 개월 동안 끌려다니며 어디에도 도움을 청하지 못하던 상태였어요.

저희가 그 친구의 사회적가족을 만들면서 가해자 부모에게 전화 한 통으로 문제를 해결했어요. 정말 전화 한 통으로! 심지어 그 가해자의 아버지는 변호사였어요. 그 청년은 손해배상을 받아 얼굴에 남은 흉터를 성형으로 깨끗하게 지웠어요. 처음 만난 당시 그 친구의 얼굴은 말도 걸 수 없을 만큼 무겁고 힘들어 보였는데, 지금 성격이 아주 밝아져 직장생활도 잘하고 있어요. 이처럼 고립감을 견디고 사는 우리 이웃에게 사회적 지지 체계가 있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Q. 치매 어르신을 위한 공공후견인 매칭에도 감동적인 사례를 소개해 주신다면?

2017년으로 기억해요. 지금은 돌아가신 분인데, 그 어르신은 일제강점기에 해외에서 출생해 한국에 오셨고 가족이 아무도 없었어요. 저는 이분의 삶이 어땠을까 감히 상상이 안 돼요. 어르신이 치매 증상이 심해지면서 동네에서 배회하며 집을 못 찾으셨어요. 지역 내 사회복지사가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요양원으로 모셨죠.

그런데 살던 집을 비우게 됐잖아요. 임대 보증금 3천만 원이 있었어요. 어르신이 요양원에 계실 때 저와 연결이 됐어요. 이 어르신께 공공후견인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후견인 진행을 하면서 임대인이 보증금을 가로챈 사실을 알게 됐어요. 어르신이 요양원에 계시더라도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있고, 의류비와 간식비도 내야 하는데 보호자도 돈도 없었죠. 그래서 후견인으로 하여금 임대인에게 3천만 원을 반환받아서 어르신이 사용하시도록 했어요.

 

Q. 그 어르신의 경우 공공후견인은 어떤 분이 나섰나요?

제가 양성한 공공후견인 후보자 60명 중 한 분으로 사회복지사였어요. 후보자 중엔 사회복지사가 제일 많고 주부도 있고 학생도 있어요.

 

Q. 공공후견인이 받는 대가는 어떤 수준인지도 궁금합니다.

공공후견인 지원기금이라는 적은 금액의 실비 수당이 있어요.

공공후견인 활동비 지원: 월 20만 원(월 최대 40만 원)
후견심판청구 비용 지원: 실비 1인당 최대 50만 원
출처: 치매안심센터 ->사업안내 -> 치매친화적 지역사회 -> 치매공공후견사업
https://ansim.nid.or.kr/introduce/custodian_service.aspx

수입을 따진다면 아무도 후견인을 안 할 거예요. 후견인을 한다고 하더라도 돈을 따지면 제대로 된 후견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죠.

 

Q. 이렇게 유용한 공공후견제도의 활용도는 높아지고 있나요?

제가 듣기로는 굉장히 저조해요. 첫 모델을 치매안심센터 사회복지사가 담당토록 했는데 센터에 한두 명 있는 사회복지사가 수행하기에는 무리였죠. 공공후견제도는 법과 제도에 좀 더 초점을 맞춰야 하거든요. 독일은 후견제도를 담당하는 독립적인 정부 기관인 후견청이 있어요. 성년후견법원, 성년후견청, 성년후견법인이 유기적인 협력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죠. 1992년에 체계를 갖추고 시작한 독일에 비해 우리나라는 2013년에 도입하면서 전담 기관이 없는 거예요.

치매안심센터에서는 치매 환자를 선별하지만, 공공후견제도는 별개거든요. 센터의 사회복지사가 진행할 수 없는 구조에요. 전국 256개 치매안심센터의 센터장은 의사와 보건소장이 맡는데 공공후견제도까지 관심을 두지는 않아요. 결국 잘 모르니까 엇박자가 나면서 활용도가 저조하죠.

 

송영신 변호사 법무법인 다빈치 사무실 / 황교진 기자
송영신 변호사 법무법인 다빈치 사무실 / 황교진 기자

 

Q. 그러면 가정법원이 맡아야 하지 않을까요?

가정법원은 후견심판청구가 들어오면 결정을 내려 후견인을 선임하고, 후견인이 잘하고 있는지 지휘 감독하는 권한을 가져요. 가정법원은 일단 심판청구가 들어와야 움직이는 기관이죠. 심판청구 이전에 가정법원이 먼저 나설 수는 없어요.

일반적인 성년후견은 배우자나 자식이 심판청구를 할 수 있는데 공공후견이 필요한 어르신은 독거노인인데다 심판청구는 지자체장이나 검사가 신청할 수 있어요. 공공후견제도를 시행하는 지자체별로 예산도 다르고, 지자체장이 얼마나 관심이 있느냐에 따라 진행 절차도 천차만별로 일관성이 없어요. 독일은 공공후견인 심판청구를 누구나 할 수 있고 절차도 간소화돼 있어요. 그러면 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인권과 재산을 갈취하며 악용할 우려도 있는 거 아니냐? 질문할 수 있는데 그래서 법원이 있는 거죠. 법원에서 사회 조사도 하고 후견감독도 진행해요.

 

Q. 성년후견제도가 제대로 시행되려면 임의후견 비율이 높아야 한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임의후견 비율이 낮고, 법정후견 위주로만 돌아간다는데 이 문제는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요? (임의후견: 미래에 질병, 장애, 노령 등 사유로 인한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해질 상황에 대비해 후견인을 지정)

어르신 중에 후견인이 뭔지도 모르는데 임의후견이라고 하면 복잡해서 이해를 못 하실 거예요. 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 임의후견 등이 있다는 것이 제대로 홍보가 안 돼 있어요. 일단 너무 잘 모른다는 게 문제고, 성년후견은 그나마 좀 알려져 있는데 다른 후견은 있는지도 몰라요. 개념을 안다고 해도 내가 언젠가 치매에 걸린다는 건 상상도 하기 싫어하죠.

치매가 두렵고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자신의 미래를 대비해서 임의후견을 해둬야 한다는 인식은 접근조차 못 해요. 설사 내가 미리 후견인을 세운다면 누구한테? 요즘 같은 세상에 자식도 믿을 수 없는데 등등. 임의후견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정보도 부족하고요. 두려움은 무지에서 오잖아요. 정보가 부족하니까 임의후견 계약을 잘못했다가는 큰일 나겠다는 상상에 신뢰가 부족해 활성화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싱가포르의 경우 임의후견과 신탁 계약 등이 굉장히 활성화돼 있어요. 우리와 다른 도시 국가여서일 수 있지만, 공공후견청 관할 아래 법정후견보다 임의후견이 큰 비중을 두고 있어요. 특별수요신탁 수수료의 90~100%를 정부가 지원해요.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자율성도 존중하는 분위기가 마련돼 있죠.

 

Q. 한국은 노인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모든 세대의 행복지수가 낮고 자살률이 높은 편입니다. 변호사님은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는지?

너무 급진적인 현대화와 경제 발전에 치중한 부작용이 드러나는 거 아닐까요? 결국 그 급진적인 현대화와 경제 발전의 원동력에 물질 중심 문화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누군가 만날 때 ‘어디 살아?’라고 묻는 배경에는 진짜 그 사람이 어디 사는지가 궁금해서인데 요즘은 함부로 묻지 못하는 분위기가 됐죠. 자기가 어느 지역에 산다라고 하는 것이 현대판 계급을 나타내는 것처럼 이야기하곤 하니까요.

거기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 저는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옛적부터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 하며 차별을 싫어했는데 어느 순간 상대적 빈곤은 못 견디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경제 발전의 부작용으로 물질 중심의 시대에 서로를 지나치게 비교하니 행복보다 자신의 불행이 더 많이 보이는 거란 생각이 들어요. 사실 행복지수가 낮다는 것은 주관적인 평가 지표가 들어갈 수밖에 없잖아요. 결국은 정신문화 중심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노인요양시설 내 학대 문제 현황에 대한 토론회가 국회에서 열리기도 했습니다.

노인장기요양기관으로 요양원, 주간보호센터, 방문 요양 등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 하의 여러 기관이 계속 진입하고 있는데 정부가 이 제도를 도입하면서 시장에 역할을 넘긴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조치에서 계약으로 바뀌면서 컨설팅업체가 생기고 돈이 된다고 해서 많은 사람이 이 사업에 들어왔죠. 문제는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도대체 뭔지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조차 없이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고, 이걸 계속 시장에 맡긴 것이 노인 학대 문제가 일어나는 배경이 됐다고 생각해요.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는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들어서며 필요한 제도인데 지금 현장의 문제를 제대로 살펴보고 노출된 문제점을 개선해야 할 시기가 됐죠. 인구 5명 중 1명이 장기요양기관에서 생을 마쳐야 하니 그 누구도 시설 입소 노인 대상에 예외일 수 없잖아요.

 

Q. 디멘시아뉴스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치매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 가는 데 앞장서 주시면 좋겠어요. 치매에 걸려도 두려워하지 않고 암 진단을 받는 때처럼 스스럼없이 오픈하며 사회 안에서 자연스럽게 함께 생활하는 세상이 오는 데 기여하는 언론사로 역할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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