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어른과 그 가족이 절실히 원하는 행복한 공동생활가정의 실재
일본의 소규모 다기능형 재택개호 시설을 닮은 선진형 작은 요양원
정원과 텃밭이 있는 편안한 전원형 시설에 가족 이상의 돌봄 콘텐츠
“저희 요양원은 정원 아홉 명의 작은 요양원(노인요양 공동생활가정)으로서 1인실과 2일로만 되어 있어 어르신들이 가정과 같은 편안한 환경에서 안심하고 생활하실 수 있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용인해바라기요양원의 입소 상담 문구다. 영동고속도로 용인IC에서 7분 거리에 있는 이 요양원은 입구부터 모든 시설이 신선하고 새롭다. 동화에 나오는 아기자기한 집이 연상되는 주택형 시설이다. 병원 공간의 모습인 일반적인 요양시설과 달리 전원주택의 모습이면서 일본, 유럽, 미국의 개성 있는 작은 치유 공간 요소를 배치했다.
치매 어른을 돌보는 보호자가 시설로 모시면, 환자는 장소 변화로 인한 ‘트랜스퍼 쇼크(Transfer Shock)’를 감수해야 한다. 게다가 아직은 우리 정서상 집에서 돌봐온 치매 어른을 시설로 옮길 때 고려장 하는 듯한 죄송한 느낌을 떨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집과 같은 시설이면서 친부모 이상으로 사랑과 정성을 다해 치매 어른을 돌보고 투약을 비롯한 영양 관리, 활동, 일상생활을 전문적으로 돕는 곳이 있다면, 얼마나 고맙고도 다행일까?
치매 어른이 생기면 가족 중 한 사람은 자신의 일상과 사회생활을 포기하고 무지막지한 부담에 시달린다. 그 부담을 편안하게 덜어내려면 집과 비슷한 시설이면서 돌봄 콘텐츠가 전문적이고 환자를 대하는 사랑과 관심이 풍부한 콘텐츠가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 자연환경이 어우러져 있으면서 따뜻하고 편안한 가정과 같은 요양원이 우리나라에 있다. BPSD(행동심리증상)가 심한 치매 어른도 1주일이면 자신이 있어야 할 집으로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요양원이다. 용인해바라기요양원(배정은 원장), 여긴 어떤 곳일까?
배정은 원장과 인터뷰하기 전에 어르신들이 거실에 모여 쉬고 계신 장소에 안내받았다. 아홉 분의 할머니가 손을 흔들며 반겨주시는데 모두 표정이 살아 계시다. 거동이 편한 할머니는 “잘생긴 총각들(?) 오셨네” 하시며 우리 편집국 기자 두 명을 반기며 악수를 청하면서 입에 사탕도 넣어주셨다. 모두 치매를 앓는 분이라고 미리 알려주지 않으면, 재밌는 경로당에서 쉬고 계신 분들로 보인다. 이곳에 치매 어른을 모신 가족들은 걱정할 게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치매 어른과 함께 꽃과 여러 식물을 키우는 작은 정원을 감상하며 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 건물도 있다. 배정은 원장과 인터뷰했다.
Q. 디멘시아뉴스 독자들에게 배 원장님을 소개해 주세요. 어떻게 용인해바라기요양원을 설립해서 운영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원래 간호사였어요. LG연수원에서 간호 업무를 하다가 남편을 만나 사내 결혼을 했어요. 사회복지사가 된 과정은 용인시청에서 사회복지과 관련 일을 하면서부터였어요. 기초생활수급자 의료상담과 의료급여 관리 일을 하다 보니 사회복지학 공부가 필요했죠.
현재의 용인해바라기요양원 부지는 신혼 초부터 우리 부부가 나이 들어 시골의 마당 있는 곳에 집 짓고 살자고 소망해 아끼고 아껴서 1996년에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작됐을 때 요양보호사교육원에서 강의를 하다 보니 제가 직접 어르신들을 모셔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2012년에 요양원을 지어 개원했고요. 처음에는 시골집을 짓고 전원생활을 할 계획이었어요. 아토피를 앓고 교통사고를 겪어 보살핌이 필요한 딸을 잘 먹이기 위해 농사를 짓고 곁에서 돌봐야 했고요. 자연 속에서 소소하게 살려고 하다가 작은 요양원을 만들어 소수의 편찮은 어르신은 제가 돌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지의 절반은 농사를 짓고 컨테이너가 있던 자리를 개조해서 단층형 요양원을 지으니 아홉 분의 어르신이 입소하실 만한 시설이 됐습니다. 건축비가 충분하지 않기도 했지만, 1층만 짓고 위로 올라가는 층은 전혀 계획에 없었어요. 처음부터 치매 어르신들만 돌본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고 편찮은 어르신들을 받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치매 어르신을 위한 전문 요양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Q. 용인해바라기요양원은 일본의 소규모 개호시설의 장점을 닮아서 우리나라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 하고 놀랐어요.
그런데 제가 미리 알고 일본의 앞선 시설을 따라서 디자인한 게 아니에요. 어르신에게 자기 방과 같은 공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침실에 반드시 창이 있어야 하고 개인 취향과 병증의 상태에 따라 맞춤형 사생활 공간이 필요할 거로 생각했어요. 그리고 집과 같은 시설이 되려면 각자 방이 따로 있으면서 휴식을 즐기는 거실이 있고, 주방도 따로 구획돼야 하죠. 공간이 넓지 않아도 어르신들이 편안해야 하고요. 그래서 침실의 창에 빛이 잘 들어오도록 큰 창호를 달았어요. 제 딸이 아토피를 앓았어요. 그래서 저는 어르신들 방에 각질이 쌓이는 걸 절대로 못 봐요. 깨끗한 상태로 관리하고 피부 보습과 채광, 통풍에 많은 신경을 쓰죠. 우리 아이를 돌보는 심정으로요.
Q. 정부가 추진 중인 유니트케어와 얼마 전 치매케어학회에서 소개한 일본의 택로소(宅老所) 장점을 이미 그대로 구현한 모습이네요.
제가 어르신에게 필요하다 싶은 가정집 공간으로 구축해 요양원을 지었는데 소규모 시설이면서 가정과 같은 편안한 모습이 만들어졌어요. 점차 치매 어르신들로 채워졌고요. 제가 아는 간호사 원장님들은 용인에서 요양원은 그 숫자도 많고 운영하기 어렵다고 했어요. 누가 1인실, 2인실로만 구성된 곳에 오겠냐며 부정적이었죠. 그래도 저는 어르신들에게 개인실을 드려야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을 놓지 않았어요. 부부 환자가 같이 오실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했는데 초기에 할아버지 다섯 분이 계신 적이 있었고요. 지금은 할머니들만 입소해 계세요. 입소 상담도 많아졌어요. 아홉 분의 정원이 꽉 차서 대기하고 계신 분이 많고, 다른 요양원에 계시다가 자리가 날 때 오시는 분도 계세요. 건강한 노인 부부가 여기가 실버타운인 줄 알고 방문하신 일도 있어요.
Q. 용인해바라기요양원은 트랜스퍼 쇼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집에 오신 느낌일 것 같아요. 이곳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계신 분도 있나요?
우리 요양원에 오신 할아버지 다섯 분은 모두 돌아가셨어요. 마지막 분은 여기서 11년을 같이 생활하시다가 작년 말에 많이 안 좋아져서 보호자 아드님이 오가기 좋은 위치이며 병원 가까이에 있는 시설로 가셨어요. 남자 환자는 여자 환자와 좀 달라요. 답답한 것을 아주 싫어하고 특히 여자들의 잔소리를 싫어하세요. 그래서 할아버지를 대할 때는 단순해야 해요. 필요한 것만 딱 해드리면서 마음만 읽어드리면 충분하죠. 뭔가를 하시라 하지 마시라 하면 그 어르신들은 화를 내세요. 이러한 특성은 치매와 상관없이 똑같거든요(^^). 이처럼 환자 한 분 한 분에게 맞춤형 돌봄이 필요해요. 특히 치매 어르신은 일반 요양원에 가기가 너무 어려워요. 가족들도 크고 낯선 시설에서 견딜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하죠. 어르신 당사자도 집에 가야지 내가 왜 여기서 살아야 해, 하시는 분이 많아요. 처음 우리 요양원에 오신 분들도 모두 집에 가야 한다고 하세요. 그분들 가족은 요양원처럼 생기지 않은 곳을 찾아 우리 요양원에 오셨음에도 불구하고요.
어르신이 자신이 살던 집을 옮기는 건 매우 힘든 일이에요. 저는 그냥 솔직하게 어르신께 말씀드리도록 상담해요. “엄마, 여기 방이 좋은데 어때? 우리 방 하나 얻자. 그리고 한번 지내보자.” 하숙집 얻듯이 그렇게 설득하는 게 맞아요. 그래서 방 구조를 함께 보시도록 하고 여기서 좀 지낼 만하다는 인식이 들도록 하는 준비 과정을 거쳐요. 그렇게 결정해도 맨날 나가신다고 하는데 다행히도 1주일이면 여기가 편안하다고 받아들이시는 편이에요.
작년에 마지막까지 계신 할아버지 환자를 끝으로 할머니 환자만 받고 있어요. 단층 시설에 남자와 여자를 모두 받기는 어려워졌어요. 정원이 모자라면 2인실 방에 할아버지 두 분을 모실 수도 있지만, 이제는 여건상 어려워졌어요. 입소 문의도 대부분 할머니고요.
Q. 한국뿐 아니라 일본이나 유럽도 할아버지가 치매에 걸리면 할머니가 돌보는데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면 할아버지들이 못 돌보시니까 결국은 시설에 할머니 환자가 대부분이라는 분석이 있어요. 가정집처럼 생긴 용인해바라기요양원에 입소 후 빨리 적응하신다고 하는 데 비결이 있나요?
치매 증상이 심한 분의 경우 최대 3개월까지 적응기를 잡는 때도 있어요. 망상을 지닌 분들이 매일 집에 가겠다고 하셔도 한 일주일 정도면 싹 바뀌세요. 여기 어르신들은 저희를 굉장히 좋아하세요. 자신이 지내는 공간을 마음에 들어 하고 저희는 사생활을 존중해드려요. 자기 침대 자리와 식탁 테이블을 비롯해 바깥 공기와 꽃, 곁에서 도와주는 요양보호사 모두 자신과 잘 맞고 여기가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세요.
가장 최근에 오신 분이 한 일주일 정도 됐을 때, “여는 내가 자는 덴데” 하며 생각이 바뀌셨어요. 그분도 매일 “나, 집에 가야 된다”고 하셨죠. 저희와 함께 계시면 금세 제어가 되세요. “어르신, 오늘 여기서 자고 가요. 어르신 방에 이부자리 마련해 놨는데 방 한번 보세요” 하면 “여서 자면 되나?” 이렇게 변하시며 방에 바로 누우세요. 이런 컨트롤의 기본은 그 어르신의 마음에 들어야 하는 거죠. 당신이 좋아하는 느낌과 사람과 공기와 주변 환경이 다 맞춰지는 신비한 경험을 자주 해요.
Q. 아시다시피 치매는 자녀들이 몹시 힘들어합니다. 부모가 치매에 걸려서 계속 같은 질문을 하시고 못 알아들으시고 자꾸 어디 가겠다고 하시면 자녀도 짜증 나고 속상하며 한계를 겪기 마련입니다. 원장님과 여기 계신 직원들은 어떻게 어르신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는지 특별한 노하우가 있나요?
제가 늘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데, 자녀이면 엄마한테 안 좋게 대할 수 있어요. 저희는 치매 어르신을 잘 이해하고 돌보는 게 일이잖아요. 우선은 저도 저희 선생님들도 모두 사람 대하는 일을 좋아해요. 그러니까 요양보호사, 간호사, 사회복지사는 어르신을 돌보는 이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치매 어르신도 개개인의 특징이 제각각이에요. 성향에 따라 너무나 어려운 분도 계시고요. 사회생활을 할 때 이런 분 저런 분과 잘 섞여 살아가야 하듯이 어르신을 돌보는 이 일에서 이상행동이 심한 치매를 겪고 계시면 더욱 잘 대해드려야 해요. 배회를 하는 분도 그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해서 잘 해결해 드리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이 일을 잘할 수 있죠.
Q. 원장님의 남편분도 여기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고 아드님도 돕고 있더군요.
네, 처음에 남자 어르신들이 계실 때 남편의 도움이 컸어요. 남편은 어르신들과 잘 놀고 편하게 대화 나눠요. 어르신들과 교감이 잘 되는 사람이고 여기저기 수리와 꾸미는 일도 잘 도와주고요. 요양보호사는 어르신 세 분당 한 명의 비율로 있어야 하는데 저희는 어르신 아홉 분에 요양보호사 네 명이에요. 그 외 행정 직원을 따로 두고 제가 전체를 컨트롤하고 있어요. 밥은 저희가 직접 밥솥에 짓고 반찬과 국만 외부의 맛있는 업체에서 공급받아요. 아들도 친환경 기업에 다니면서 틈틈이 협력하고 있고요. 딸은 분당제생병원 간호사로 일해요. 딸이 죽음의 문턱까지 간 큰 교통사고를 겪었는데 잘 이겨냈어요. 당시 받은 교통사고 보상금을 여기 카페 공간을 짓는 데 기꺼이 내주었어요. 저는 매일 아침 여기서 커피 향과 쿠키 냄새를 풍겨서 우리 어르신들도 이쪽으로 건너와 교제 나누고, 마을 이웃들도 지나가다 들어오셔서 함께 휴식하는 시니어 카페가 되길 소망해요. 이곳에서 어르신들이 먹고 마시고 놀며 편안하게 지내시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는 것이 제 삶의 기쁨이고 보람입니다.
Q. 함께 일하는 요양보호사들에게 용인해바라기요양원만의 특별한 교육을 하실 것 같아요.
저는 매일 ‘인간 존중 돌봄’에 대한 얘기를 강조해요. 우선은 여기 계신 선생님들은 모두 제 강의를 들은 분들이에요. 저는 사람을 구할 때 되게 어렵게 구해요. 구인 사이트를 이용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전부 제가 직접 만나서 인터뷰하고 교육했어요. 개인적으로 저를 다 알고 있는 분들이기 때문에 저와 호흡이 잘 맞아요. 저희 선생님들이 좀 젊거든요. 연세 드신 분들로 인한 힘든 일이 많이 생기는데 선생님들이 미리 알고 잘 해결해 주세요. 선생님들의 어투는 달라도 마음은 모두 같아요.
저는 우리 선생님들을 사랑해요. 어떤 일이 발생하면 어르신이 왜 그랬을까, 분명히 마음 상하는 일이 있었을 텐데, 밥 먹으면서 선생님들이 투명하게 얘기하고 의논해요. 선생님들과의 친밀한 접근 방식이 잘 이뤄지고 있어요. 선생님들 자체가 기본적으로 인간 존중 돌봄에 자질이 있는 분들이고요. 그 외에도 능력이 출중하고 태도 또한 좋아요. 물론 공동생활이기 때문에 제가 크고 작은 규칙을 정해줘야 하고요. 서로 지켜야 할 것이 있어야 모두가 편안해져요. 화해도 필요하고 자신이 포기해야 할 일도 있어요. 또 어르신 가족들과 자주 소통하면서 가족들이 수긍하셔야 하는 부분의 이해도 구하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Q. 현재 지내고 계신 할머니 아홉 분의 증상은 비슷한 수준인가요?
네, 많이 비슷해졌고요. 입소 전에 치매 증상이 몹시 심했다가 이곳 환경에서 지내며 나아진 분이 많아요. 1등급 어르신도 계셨고 치매 말기 환자도 계셨어요. 저희는 좀 버라이어티하죠. 지금은 거의 3~4등급 정도예요. 전반적인 신체 기능은 좋은데 대소변 조절이 안 되는 분도 있고, 집에 가야 한다는 두 분 중에 한 분은 최근에 완전히 괜찮아지셨고요. 한 분은 이제 조금만 적응하시면 되는 상태예요.
Q. 그러면 결국 환경적인 요인으로 치매 진행이 멈추거나 나아지기도 한다고 볼 수 있네요. 약보다는 환경이 더 중요한 현실임을 입증해 주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신경과 약은 반드시 드셔야 하고요. 보호자들은 약 복용을 가장 걱정하고 두려워해요. 그다음으로 낙상과 같은 사고죠. 많은 요양원이 어르신 환자를 일일이 대응해 드리기 힘들어서 수면제를 쓰는 현실이에요. 여기 처음 오셨을 때 기본적으로 약을 많이 드시는 분이 대부분이에요. 그런데 제가 컨트롤해서 약을 조금 줄여보고, 점차 생활에 적응하며 활발하게 잘 지내시는 어르신 사례가 많아요. 어르신 증상을 살피면서 약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 분도 있지만, 저희가 살펴보면 약을 먹으나 안 먹으나 똑같은 분도 있어요. 약을 줄여야 할 때라고 생각되면 그렇게 해보고 괜찮아지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환경이 증상을 호전시킨 경우죠. 사람마다 조금씩 달라서 잘 살피고 파악해야 해요. 우선은 우리가 한 가족이며 아군이라는 것을 알게 해드리는 게 중요하죠.
Q. 입소 상담하는 보호자들의 비슷한 패턴이 있나요?
집과 같은 환경이면서 자연 속에서 농사 짓는 활동을 연계할 수 있는 시설을 찾다가 우리 요양원을 아시고 상담하는 분이 가장 많아요. 그리고 진짜 힘든 치매 어르신인데 현재 요양원에서 힘든 부분이 있어서 연락 주시는 분도 계시고요. 엄마가 계속 집에 가고 싶다고 해서 매주 자신이 요양원에 내려가 엄마를 모시고 외출하는데 면회가 30분밖에 안 된다고 해요. 이런저런 이유로 다른 시설로 옮기고 싶어 연락을 주는 분들이 계세요. 저희가 정원이 꽉 차서 받을 수 없으니, 시간 닿는 대로 상담해 드리면서 다른 요양원으로 연결해 드리기도 해요. 현재 우리 요양원 입소를 대기 중인 분이 많고, 그중에 다른 시설에 임시로 계시면서 기다리는 분들도 계세요.
Q. 기억에 남는 사례를 들려주세요.
손에 꼽기 힘들 만큼 많은데요. 다른 시의 요양원에 계시던 분이었어요. 꽃이란 꽃은 다 꺾고 또 휴지는 다 가져가는 분이었죠. 치매 어르신 중 휴지를 가만 안 두는 분이 꽤 많아요. 큰 요양원에 계시다가 이곳으로 오셨어요. 그분의 치매는 의심이 많고 도무지 협조가 안 되어 규모가 큰 요양원에서 적응하지 못하셨다고 해요. 말씀도 한마디 안 하는 분이었어요. 당연히 표정도 없고 늘 경계하는 눈빛이었죠. 저희는 출입문을 잠그지 않아요. 그 어르신은 정원에 나오시면 꽃을 모두 꺾어놓아요. 매번 휴지도 모두 자기 방에 가져다 놓으시는데 혹시 이런 행동의 원인이 궁핍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 아닐지 생각했어요. 보호자 아드님 통해 어르신의 인생 스토리를 들어보니 몹시 힘들게 살면서 아들을 키우셨단 것을 알게 됐죠. 그래서 휴지 30롤을 방에 가져다드렸어요. 그랬더니 더는 휴지를 가져가지 않으셨어요. 어르신 방에 꽃도 자주 가져다드렸더니 어느 순간 말씀도 많이 하시고 행동이 바뀌셨어요. 문제 행동의 원인을 추적해 자연스럽게 해결한 것이죠. 이처럼 여러 과정을 거쳐야지 한 번에 바로 해결되진 않아요.
어르신들이 반복해서 하시는 이상행동에는 모두 이유가 있어요. “뭐 필요한 게 있으세요?” 여쭤보면 한결같이 아니라고 얘기하셔도, 저희는 그 행동 원인을 찾아 도움을 드리려고 노력해요.
Q. 치매 어른의 행동심리증상의 원인을 찾으려 노력한 점이 감동적입니다. 이상행동이 심한 환자를 가두고 수면제 쓰고 침상에 묶인 상태로 지내게 하다가 결국 사망해야만 그 시설에서 나오는 비극적 현실이 보통인데요. 디멘시아뉴스가 해외 치매 마을을 소개하면서 ‘한국에 없는 마을’을 타이틀로 쓰는데 용인해바라기요양원 같은 곳이 보편화되면 ‘한국에도 있는 마을’로 곧 기사가 나올 것 같습니다. 현재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시설 등급을 받으면 요양원 입소에 60~70만 원 정도를 본인이 부담합니다. 1인실, 2인실로 운영하는 용인해바라기요양원의 이용료는 어느 수준인가요?
저희 홈페이지에 소개돼 있는데요. 1인실과 2인실의 차이는 근소해요. 일반적인 요양원 입소 비용에서 62만 원 정도 추가 부담이 있어요.
Q. 장기요양 실무 법령보다 요양보호사를 한 분 더 쓰고, 어르신 위한 다양한 시설과 콘텐츠를 구현하려면 빠듯하실 것 같습니다.
몇 년 전까지는 제 인건비는 물론 추가 대출까지 받아서 빠듯하게 운영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요양시설 운영이 자선사업이나 자원봉사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이윤을 창출해야 많은 사람이 더 좋은 요양원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그런 노력이 쌓여야 어르신들이 편안하게 생활하고 보호자도 극심한 돌봄 부담에서 벗어나 안심하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시설이 많아지기 때문이에요. 저희 어르신들은 자녀들에게 수시로 말씀합니다. “얘들아, 우리는 여기서 재밌게 잘 살 테니 아무 걱정 말고 너희는 너희끼리 재밌게 살아라. 그렇다고 엄마 잊어버리지는 말고 전화는 자주 해라.”
정부도 모든 요양시설을 하향 평준화할 것이 아니라, 민간요양시설은 민간의 자율과 창의를 존중해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독려하고, 공공요양시설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표준화된 서비스를 제공해 민간요양시설과 공공요양시설이 각자의 역할을 상호 보완하면서 기능해야 어르신들의 개성을 존중하는 다양한 돌봄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Q. 용인해바라기요양원을 구석구석 살펴보면 일본 같기도 하고 유럽 같기도 하고 또 미국식처럼 보이기도 해요.
처음에 저는 개인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2인실도 구획을 확실하게 나눠서 개별 공간을 만들었어요. 그랬더니 여기 오신 분들이 일본의 소규모 개호시설 같다고 하세요. 침대도 치매 어른마다의 특성에 맞게 안전성을 높이려고 고정하고 자르고 수선했어요. 야외에 치유 정원의 모습으로 꽃을 심고 가꾸었더니 유럽식이라고 한 분도 여럿 계셨죠. 그리고 저희가 자재 살 돈이 충분치 않아 튼튼하면서 저렴한 파렛트를 활용했는데, 한 할머니의 미국 사는 손자가 와서 보더니 미국식이라는 거예요. 미국의 놀이터에 파렛트를 활용한 디자인이 많다고요.
Q. 원장님이 치매 노인을 특별히 사랑하고 관심을 두게 된 배경이 있나요?
제가 그 포인트는 잘 모르는데요. 제게 어르신들은 모두 똑같거든요. 치매를 염두에 두고 어르신을 뵙지는 않아요. 저는 상대방 입장을 좀 많이 생각하는 편이고 사람에 대한 감수성이 높은 것 같아요. 어르신을 보면 지금 이분이 필요한 게 무엇인지 빨리 파악되고 생각하기 전에 움직여요. 그러다 보니 치매와 상관없이 모든 어르신의 행동이 이해돼요. 원하시는 것이 보이면 바로 빠르게 해결해 드리려고 합니다.
Q. 치매라는 질환 이전에 한 사람의 인생과 그분의 삶을 보시는군요. 용인시 처인구의 이곳 전원마을에 특히 마을회관 앞에 자리 잡은 이런 특별한 요양원에 대해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보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지금 마을 분들과 매우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제게 요양보호사 교육을 받으러 오는 분들과 마을 어른들은 다르게 보이지 않아요. 용인에서 오래 살기도 했고요. 제가 시골과 농사를 좋아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지금 제가 이 마을의 반장이에요. 이웃 어르신들을 좋아하고요. 앞집의 할머니와도 친해서 제가 할머니 건강도 살펴드리고 있어요.
Q. 시댁과 친정에 치매 어른이 계신가요?
아빠가 치매를 만나셨어요. 경북 예천군의 국립요양병원에 계시다가 여기 빈자리가 생기면서 옮겨와 지내셨어요. 이곳의 정원이 꽉 차 있어서 아빠를 바로 모실 순 없었어요. 알츠하이머성치매였는데 언어 쪽으로 증상이 좀 심했어요. 뇌경색도 있었고요. 아빠는 뭔가 말씀을 하고 싶으셔도 단어가 입에서 안 나왔어요. 저는 아빠가 뭘 원하시는지 아니까 가까이서 잘 챙겨드렸는데 결국 여기 계시다가 돌아가셨어요.
Q. 친정아버지를 곁에서 모시고 싶어도 결원이 생길 때까지 모셔 오지 못했다는 점이 감동적이고 안타깝네요.
그 때문에 다른 어르신을 내보낼 수는 없으니까요.
Q. 용인해바라기요양원과 원장님의 꿈은 무엇인가요?
어르신들은 갇혀 있는 것 자체를 싫어하세요. 어르신들과 우리는 함께 놀아야 하고 가족들이 다 모여서 살면 더 좋고요. 우리만 사는 게 아니라 자식과 손주들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안전한 마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기엔 작은 마당이면서 다양한 놀거리를 만들었어요. 신나는 가족 잔치도 진행했고요. 어르신이 야외에 나오셔서 할 수 있는 게 많도록 구성했어요. 구석마다 있는 테마 공간에서 놀 수도 하고 음식을 해 먹기도 하고 책도 읽고 보드게임도 할 수 있어요. 우리 요양원 입구는 일부러 버스 정류장 느낌으로 만들어 놓았어요. 독일의 한 치매 노인이 버스 정류장에서 집에 가시겠다며 하염없이 기다리는 뉴스를 보고는 우리 어르신뿐만이 아니라 가족들도 와서 편안하게 자유롭게 방문하고 놀고 갈 수 있는 정류장 모습으로요.
더 나아가 여기서 커피 향기와 빵 굽는 냄새를 전하면서 마을 사람들이 언제든 들어와 빵도 가져가시고 커피도 마시며 대화하는 곳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이처럼 카페를 만들었는데 제가 가족 상담을 즐겨하니까 이 지역의 서른 가구가 모두 여기를 이용하면서 치매 안심 마을이 되는 게 소망이에요.
우리 요양원을 벤치마킹하러 오는 분이 많아요. 저는 큰 곳은 큰 곳대로 작은 곳은 작은 곳대로 각각 유기적으로 필요한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정부에서 저희처럼 작은 데를 좀 든든하게 밀어주시고 도시에서 접근하기 좋은 곳에 많은 작은 요양원이 재정 문제없이 운영되면 좋겠고요.
9명 이하의 요양시설을 노인요양 공동생활가정이라고 합니다. 규모가 작으니 투자 비용도 적어 초창기에는 큰 요양원보다 숫자가 많았어요. 그런데 운영이 어려워 문을 닫은 데가 많습니다. 용인시 내에도 이제 몇 군데 남아 있지 않아요. 직원 다섯 명이 주 40시간 일하면서 365일 24시간 시설을 운영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죠. 저희가 아홉 분 정원인 소규모 요양원이라 빈자리가 자주 나지 않아요. 시설 규모를 늘려서라도 모셔달라고 요청한 분도 계셨고, 심지어 몇 년 전에는 옆에 집을 지어 줄 테니 돌아가실 때까지 모셔달라는 분도 계셨어요. 저희는 아홉 분만 모시는 것으로 용인해바라기요양원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어요. 만약 오십여 분을 모시는 시설이 되면 지금의 용인해바라기요양원과는 이름만 같고 전혀 다른 요양원이 됩니다. 우리 요양원이 어르신들과 보호자들이 원하는 요양원이라면, 전국 방방곡곡에 용인해바라기요양원과 같은 시설이 생겨나길 바라요.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어야 해요. 보호자들도 그동안 고생하신 우리 부모님을 위해 어느 정도 비용은 감수하겠다는 생각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Q. 끝으로 디멘시아뉴스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치매 주제가 과거보다 훨씬 다양하게 다뤄지고 있더라고요. 저는 좋은 이야기를 많이 소개해 주셨으면 해요. 제가 요양보호사 보수 교육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알고 못 하는 것과 모르고 안 하는 데는 큰 차이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저는 여러분이 일단 꼭 알아야 할 것을 알고 가면 치매와 공존하는 더 나은 세상이 올 거라고 믿어요. 많은 사람에게 치매에 대한 올바른 정보와 따뜻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암을 일찍 발견하고 자신이 암 진단을 받은 사실을 스스럼없이 말하는 것처럼 치매도 조기에 발견하고 치매 진단받은 것을 받아들이고 알리는 데 두려워하지 않는 시기가 앞당겨지길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는 치료와 돌봄의 대응책이 적절히 세워지는 것이 중요하겠죠.
요양원에 대한 사회 일반의 인식에 대해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용인해바라기요양원뿐만 아니라 한국의 모든 요양원이 어려운 환경과 제약에서도 최선의 돌봄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일부의 행동으로 인해 부정적으로만 비춰지는 게 안타까워요. 가족이 모시기 힘든 치매 어르신을, 요양기관이 대신해 모시는 덕에 가족이 사회구성원으로서 열심히 일할 수 있고 평온한 일상을 누릴 수 있다는 고마움을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픈 내 부모님을 모시고 섬기는 또 따른 형제자매라는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시기를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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