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요양원 생활 ②
모든 짐을 지려고는 하지 마세요

우리는 달팽이처럼 자식은 자식의 짐을, 부모는 부모의 짐을 지고 살아간다. 아침 7시도 안 된 이른 시간에 전화벨이 울려 받아 보면, 다급한 목소리로 “요양원이죠? 자리 없어요?” 하고 다짜고짜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은 빈자리가 없습니다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끊어버린다. 처음에는 해도 뜨지 않은 시간에 또 한창 바쁜 시간에 이런 전화로 자기 말만 하고 끊는 무례한 사람들에게 화가 났다.

그러다 어르신들과 한동안 생활하고 난 요즘 드는 생각은, ‘이분들이 밤새 아침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숙직하는 날이면, 요양원 생활에 적응이 안 된 어르신이 밤새 안 주무시고 배회하거나 집에 간다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시는 모습을 접한다. 혼자서 감당하다가  '빨리 아침이 되어야 하는데…. 그래야 응원군이 올 텐데, 그제야 잠시라도 주무실 텐데…' 하며 한시라도 빨리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며 기도한다.

마찬가지로 집에서 망상에 시달리는 치매 부모님과 밤새워 씨름하며 ‘어떻게 해야 하나…’를 고민하는 자녀(아들, 딸, 며느리)가 도움받을 곳이라고 생각한 곳이 바로 요양원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렸다가 다급한 마음으로 걸어온 전화가, 다소 무례하게 비치는 전화였을지라도 절박한 심정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런 동병상련의 마음이 생기고 나니 이제는 무례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힘들면, 얼마나 절실하면 이 시간에 전화를 다 할까?’ 하는 안쓰러운 마음으로 응대하게 된다.

입소문으로 알려져 보호자 전화를 받아 보면 한결같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심경이 고스란히 전달될 때가 많다, 보통 사람들은 요양원이란 부모님을 보내지 말아야 하는 곳이라고 여긴다. 그러니 상담 전화를 걸기 전까지 보호자들은 얼마나 많이 고민했을까? 부모님을 시설에 보내는 것이 불효라는 죄책감에 얼마나 시달렸을까? 그 자책감의 무게는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용인해바라기요양원 담벼락 / 배정은 원장
용인해바라기요양원 담벼락 / 배정은 원장

 

뉴스에서 치매 어르신을 모시던 자녀가 어르신과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종종 본다. 기사 댓글에 사람들은 이렇게 묻는다. “그렇게 힘들면 요양원에 모시지. 왜 그랬대?” 하지만 그런 선택을 한 자녀가 요양원이라는 방법을 몰라서 그렇게 함께 생을 마감하는 선택을 했겠는가.

물론 요양원에서 치매 어르신들을 모시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우리들은 근무 시간이 지나 교대해서야 잠시나마 힘든 돌봄의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집에서 치매 어르신을 모시는 자녀는 24시간 긴장 상태로 교대 없이 365일을, 끝을 알 수 없는 기간 동안 상황이 계속된다는 생각에 숨이 막힐 것이다.

요즘은 입소 상담 문의를 받으면, 보호자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드리려고 한다. 그 자녀들이 죄책감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좋은 요양원에 부모님을 모시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저희는 지금 빈자리가 없어 바로 모실 수는 없지만, 보호자께서 너무 힘드시면 우리 요양원만 기다리지 마시고 다른 요양원에라도 모셔 주세요. 가끔 뉴스에서 보시는 것처럼 모든 요양원이 나쁜 곳은 아닙니다.

다른 요양원에서도 어르신을 정성껏 모시고 있어요. 그리고 너무 힘들어하지 마시고 더 나은 방법이 있으니, 서로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애써 보아요.

사람들은 달팽이처럼 저마다의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어르신의 짐은 어르신이, 보호자가 져야 할 짐은 보호자가 져야 합니다.

어르신이 내려놓아야 할 부분과 가족들이 내려놓아야 할 부분이 있어요. 어르신의 짐을 도와드릴 수는 있어도 모두 지려고는 하지 마세요. 우리는 모두 달팽이들이잖아요!”

 

배정은
용인해바라기요양원 원장
간호사/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
용인시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노인분과실무위원
용인시 장애인 수급자격심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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