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치매인을 이해하고 치료와 삶의 질을 돕는 환경 계획은?
[현장] 치매인을 이해하고 치료와 삶의 질을 돕는 환경 계획은?
  • 황교진 기자
  • 승인 2024.06.16 1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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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매케어학회, “치매인을 위한 공간과 환경” 주제의 학회 개최
사회복지와 의료를 결합한 치매인 돌봄 공간 디자인
‘가정과 같은 주거’ 소규모 다기능 요양시설 사례 발표

14일, (사)치매케어학회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해 늘어나는 치매인을 위한 환경친화적 돌봄에 중점을 둔 공간 개선 방안에 관한 학회를 열었다. 뇌신경학 주제의 치매 학회들과 달리 치매인의 단계별 증상을 이해한 돌봄 기반의 공간 디자인에 초점을 맞춘 학회다. 치매인의 생활환경 개선을 위해 각계 전문가의 고견과 현황을 듣고, 비대면 줌으로 동경도립대학 타케미야 겐지 교수와 연결해 일본 소규모 다기능형 거택개호 시설의 사례도 접할 수 있었다.

 

'장기요양 실무 법령 해설'을 교육하는 정경환 (사)치매케어학회 회장
'장기요양 실무 법령 해설'을 교육하는 정경환 (사)치매케어학회 회장

오전에는 특별 교육 강연으로 장기요양 실무 법령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강사는 정경환 치매케어학회 회장으로 《2024년 장기요양 실무 법령해설》을 엮었다. 법학을 전공한 11년 차 데이케어센터 센터장으로 법 전문 지식과 장기요양 현장의 다양한 사례를 접목해 전국에서 온 요양시설 현장 활동가들에게 요약해 전달했다. 정 회장은 법령해설집의 중요한 대목을 짚어 같이 읽어가며 전달해 주었다.

우리나라 장기요양은 ‘의료’와 ‘사회복지’가 함께할 거라고 기대하지만, 장기요양기관은 사회복지법의 규정을 따르며 의료법에 따른 의료기관이 아니다. 이에 따라 발생하는 한계와 맹점을 살펴보며, 장기요양 실무자들이 기억해야 할 인권 보호, 등급 판정 등 관련 법령을 숙지하는 교육이었다.

이날 교육 강연에는 전국에서 온 주간보호센터 시설장과 노인복지시설, 건축학 교수 등이 함께했다. 부산에서 참석한 김현숙 케어링 주간보호센터 지점장은 “치매 전문인력과 시설 종사자가 꼭 알아야 할 법규들을 이해한 유익한 시간”이라고 장기요양 실무 법령 교육을 받은 소감을 말했다.

 

"키워드로 살펴보는 치매인을 위한 물리적 환경"을 발표하는 김성룡 한경국립대 디자인건축융합학부 교수
"키워드로 살펴보는 치매인을 위한 물리적 환경"을 발표하는 김성룡 한경국립대 디자인건축융합학부 교수

오후부터 시작한 본격적인 학술대회에는 사회복지사, 작업치료사, 치위생사, 건축사와 법학·사회복지학·간호학·보건의료학·건축학 교수 등 40여 명의 각계 전문가와 현장 실무자가 참석해 한국 치매 케어 발전을 위한 통섭적 다학제간 교류가 이뤄졌다.

정경환 회장은 “이번 학회 주제가 치매 노인의 환경이다. 공간에는 우리의 경험과 삶, 애착이 녹아 있다. 치매인이 단절되지 않고 위로를 얻는 집을 알아보는 데 도움이 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개회사를 전했다.

1부 섹션으로 사회복지와 건축이 결합한 치매인을 위한 공간 구성 발표가 진행됐다.

첫 번째 연자는 김성룡 한경국립대 디자인건축융합학부 교수 “키워드로 살펴보는 치매인을 위한 물리적 환경”이라는 제목으로 프라이버시, 유니버설디자인 Aging in Place, 주거환경, 유니트케어의 5가지 키워드로 치매 돌봄 환경을 다뤘다. 프라이버시가 단절된 국내 요양병원 현실과 일본 다인실의 안락한 공간 차이를 비교해 전달했고, 다기능 서비스가 제공하는 중간 영역의 가치를 강조했다. 치매인과 같은 약자를 위한 배려가 깃든 디테일 설계, 자신이 살던 집과 유사한 환경의 시설을 만들어 지역사회에서 계속 거주하며 살아가는 치매인, 그리고 정부가 총선 전에 발표한 유니티케어가 실제로 일본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살펴보았다.

김 교수는 특히 똑같은 침상에 일단 눕혀 놓고 보는 다인실보다는 개인실 구성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인실에서는 수면 부족 등 여러 건강 문제가 발생하나 개인실은 신체 리듬을 안정적으로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다. 치매 노인시설은 개인실 위주의 공간 설계가 필요하다.

 

"치매전문병동 설치 현황 및 운영 사례"를 발표하는 전용일 국립중앙의료원 연구원
"치매전문병동 설치 현황 및 운영 사례"를 발표하는 전용일 국립중앙의료원 연구원

두 번째 연자로 전용일 국립중앙의료원 연구원이 “치매전문병동 설치 현황 및 운영 사례”를 발표했다. 정부의 치매관리종합계획과 치매 전문병원 설치 현황, 리모델링과 증축으로 치매전문병동으로 지정된 사례로 현재 전국에 20개소를 저정했고, 치매인의 가치관과 생활의 연속성을 고려해 유연한 공간 구성 계획이 중요함을 설명했다.

 

배정은 용인해바라기요양원 원장(좌), 최정은 청풍호노인사랑병원 센터장(우)
배정은 용인해바라기요양원 원장(좌), 최영희 청풍호노인사랑병원 뇌건강증진센터장(우)

2부 섹션으로 치매 어른과 일상을 함께하는 요양시설 현장 이야기배정은 용인해바라기요양원 원장최영희 청풍호노인사랑병원 뇌건강증진센터 센터장이 발표했다.

용인해바라기요양원은 ‘가정과 같은 주거 여건’을 표방해 일본의 소규모 다기능 개호시설의 장점을 지니고 있고 9명의 치매 어른이 유대감을 느끼며 함께 살아가는 시설이다. 무엇보다 요양원을 설립해 운영하는 배정은 원장의 치매 노인에 대한 사랑과 진정성이 전해진 발표로서 우리나라에도 치매 친화 마을 같은 요양원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탄하게 했다다.

이어서 치매 친화적 환경 조성 사례로 청풍호노인사랑병원을 소개한 최영희 센터장은 전국에서 다섯 번째이며 충청북도 최초의 치매안심병원에 지정된 과정, 치매여도 행복한 노후를 맞이하는 노인 병원 디자인의 스토리텔링 등을 전달했다.

 

타케미야 겐지 동경도립대학 교수의 “일본 소규모 다기능형 거택개호 시설의 현황” 비대면 강연
타케미야 겐지 동경도립대학 교수의 “일본 소규모 다기능형 거택개호 시설의 현황” 비대면 강연

이번 치매케어학회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타케미야 겐지 동경도립대학 교수의 “일본 소규모 다기능형 거택개호 시설의 현황”이 비대면 강연으로 이어졌다. 일본은 고령자 복지시설로 생활거점을 옮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트렌스퍼 쇼크(Transfer Shock)로 치매 증상이 심해지고 대규모 시설에서 발생하는 집단 처우 문제를 일찍이 고민했다. 그 결과 지역사회에서 독자적으로 소규모 다기능 개호시설을 만들었다. 규모가 작아서 주거 기능이 포함돼 있지 않았지만, 점차 거주 기능의 요구가 많아짐에 따라 병설시설로 거주 기능을 디자인했다. 도심형의 경우 소규모 다기능 시설과 이용자 거주지와의 거리는 1킬로미터 이내가 많다.

 

토론자로 나선 신수경 교수, 나경락 교수, 김성룡 교수, 배정은 원장, 전용일 연구원, 최정은 센터장
토론자로 나선 신수경 교수, 이경락 교수, 김성룡 교수, 배정은 원장, 전용일 연구원, 최영희 센터장

마지막 토론 시간에 “치매인을 위한 물리적 환경 개선 방안”이란 주제로 이경락 유원대 명예교수이며 치매케어학회 부회장이 좌장으로, 신수경 가톨릭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이자 학회 교육이사가 사회로 수고했고, 발표자가 모두 토론 위원으로 나섰다.

신수경 교수는 토론의 모두 발표로 “치매인의 자기다움을 잃지 않는 환경 만들기”란 제목으로 노인이 머무는 공간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확인하고 삶의 의미를 부여받는 ‘이바쇼감(居場所感 장소안도감)’을 전했다. 노인이 안심할 수 있고 나답게 있을 수 있는 곳으로서 요양원이 노인에게 일상의 생활공간이며 심신 안정감과 교류와 소통이 있는 환경이 되기 위한 척도를 소개했다.

이경락 부회장은 “환경은 치매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다. 과거에는 대규모 시설에 모아 놓는 집단생활에 머물렀고 개별적인 케어와 개인 맞춤형 프로그램은 매우 부족했다. 시설 속에서 온종일 배회해도 그러려니 하는 대응이 치매인에게 좋았을까? 최근에서야 소규모 시설로 치매인의 개개인의 생활과 행동 특성을 고려하는 흐름에 이르렀다. 치매인의 본능적 필요는 자기 공간에서 얻는 안도감이다. 사적인 사회인 침실과 공적인 사회인 거실이 필요하다. 치매인이 배회하고 물건을 모으고 고함을 치는 등의 행동이 나타나는 개별적 원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 불만을 공간적으로 해소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문제행동을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을 찾아 공간적 해결로 대응해야 한다. 단지 화장실을 가깝게 배치해 찾기 쉽게 해주는 식 이상의 연구가 필요하다. 속박하고 약물로 재우기보다 인간적인 삶을 살도록 하는 방향이 요구되며 치매인의 일상이 정상 환경에서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부회장은 유원대 건축공학과 명예교수로 1994년 도쿄대에서 고령자 거주환경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의료와 복지가 결합한 노인시설 건축계획을 연구하며 국가의 치매 환경 개발에도 함께해 왔다. 공저로 《요양병원 공간읽기》, 《치메케어 텍스트북》, 《노인시설 공간읽기》 등을 썼다.

김성룡 교수는 “치매인을 위한 공간으로 이번 학회의 주제를 정해 보았다. 민간의 사명감 있는 분들이 주도하는 적극적인 시도가 필요하다. 일본의 ‘택로소’도 그렇게 시작한 시설이다. 치매 가족이 상담할 수 있는 곳이 적다. 우리나라 치매인의 실태를 확인하고 개선 방향을 찾는 데 도움이 됐길 소망한다”고 소감과 제안을 전했다.

전용일 연구원은 “비전공자도 환경을 통해 치매 환자의 치료 가능성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정 공간의 치매인 행동 패턴 데이터를 늘려서 공간에 대한 개선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제도 안에서도 인간다움의 기본에 대한 적용과 발전이란 숙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정은 원장은 “작은 공동생활가정을 운영하면서 치매 어르신을 위한 다양한 소규모 시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호자와 치매 당사자가 힘든 상황,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시점에서 큰 시설로 가기 전 집과 유사한 중간단계가 있어야 한다. 민간의 노력으로나마 치매인과 살아가는 경험을 갖고 치매 어른에게 행복한 기억을 쌓아드려 현재 행복을 누리며 사시는 데 도울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최영희 센터장은 “치매 환자에게 가장 좋은 환경은 내가 살던 집이다. 치매인을 위한 건축디자인을 하시는 분은 뇌과학 공부도 같이해야 한다. 국가 기관에 계신 분들도 유니버설디자인에 대한 이해가 높았으면 좋겠다. 공간 활용에 대한 자문이 필요하다”며 현실적 제언을 전했다.


치매 관련 학회는 신약 소식과 뇌과학 연구 결과 발표가 대부분이다. 다학제적 학회로 치매 돌봄에 관해 통섭적으로 교류하는 곳은 치매케어학회가 독보적이다.

나이 들수록 주거 공간을 바꾸는 것을 싫어한다. 치매 노인의 존엄성을 보장해 줄 공간 선택권이 없다. 지역사회 중심으로 소규모 돌봄 시설을 지은 일본에 비해 우리 현실은 어떤가? 돌봄 대상자가 받는 안정감보다는 시설 운영 측면의 계획이 우선이다. 치매 가족이 선택할 만한 좋은 요양시설과 돌봄 콘텐츠의 논의가 필요하다. 고령자 돌봄의 중요한 주제는 치료제 개발 이상으로 공간 계획을 논의해야 한다.

치매 케어의 본질이 무엇일까? 이번 학회에서 치매인이 안심할 수 있는 생활환경은 ‘표정이 있는 치매인의 얼굴’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했다. 치매 노인도 자신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하지만, 국내 대다수 요양시설은 표정 없는 치매 어른들이 하염없이 삶의 마지막 때까지 수용돼 있다. 천만 노인 시대가 코앞으로 누구나 치매를 만난다. 높은 치매 유병률로 많은 인구의 뇌에 아밀로이드 베타가 쌓이고 있어도, 정작 우리는 치매에 대한 두려움만 쌓아놓고 있는 게 아닐까. 치매케어학회에서 치료제 이상으로 중요한 치매인을 위한 시설 환경과 공간 계획을 다루니, 한국에 없는 치매 마을의 등장을 앞당겨 볼 수 있으리란 기대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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