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약물, 의지의 대상이 아니라 증상 관리의 보조 수단
학교에서 시작된 치매 인식 교육…당사자와 함께 만드는 치매 친화 도시 오무타시

참석자 단체 사진 / 황교진 기자

 

26일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열린 치매케어학회 아카데미는 ‘치매인을 위한 약물요법과 BPSD 대응 방법’을 주제로 진행됐으며, 현장과 온라인을 통해 40여 명이 함께했다. 학계와 돌봄 현장 전문가들이 온오프라인으로 모여 치매 치료와 돌봄의 현실을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첫 번째 발표는 가혁 은혜요양병원 진료원장이 맡아 ‘치매인의 상황과 상태에 따른 바른 약물치료의 이해’를 주제로 치매 약물의 효능과 한계를 짚었다. 이어 두 번째 발표에서는 일본 후쿠오카현 오무타시 치매라이프서포터 연구회 대표 오오타니 루미코가 ‘치매인의 심리행동증상(BPSD) 대응과 실타래 요법’을 소개하며, 약물보다 태도와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가혁 은혜요양병원 진료원장 / 황교진 기자
가혁 은혜요양병원 진료원장 / 황교진 기자

 

약물은 완치제가 아닌 관리 도구

가혁 진료원장은 도네페질(Donepezil), 리바스티그민(Rivastigmine), 메만틴(Memantine) 등 현재 널리 사용되는 치매 약물의 효능과 한계를 소개했다. 그는 “치매 약은 완치제가 아니라 증상 악화를 늦추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근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항아밀로이드 표적 항체치료제인 레카네맙과 도나네맙은 발표에서 다뤄지지 않았다. 질의응답에서 디멘시아뉴스 기자가 관련 질문을 던지자, 가 원장은 “효과와 부작용 모두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데 동의하며, 1차 의료 현장에서 바로 적용하기는 현실적으로 논란이 많은 치료제”라고 답했다.

가 원장은 자신에 이어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선 오오타니 루미코 대표의 발표가 끝난 뒤 질의응답 시간에, 한국 돌봄 현장에서 적용해야 할 지점을 짚어 질문을 던졌다. 그는 “치매인을 대할 때 거짓말하지 말라, 약에만 기대지 말라, 그리고 단 30초라도 기다려라는 실천적 원칙을 지키고 있다”며, 돌봄 현장에서 흔히 나타나는 선의의 거짓말이나 불필요한 약물 사용이 오히려 치매인의 불안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을 공유했다. 즉, 불편한 상황에서도 잠시 멈추고 기다려 주는 태도가 치매인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신뢰를 쌓는 데 더 효과적이라고 강조하며, 약은 어디까지나 보조 수단일 뿐 치매 돌봄의 핵심은 돌보는 사람의 태도와 환경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발표자 오무타시 치매라이프서포터 연구회 대표 오오타니 루미코와 통역하는 황재영 박사 / 황교진 기자
발표자 오무타시 치매라이프서포터 연구회 대표 오오타니 루미코와 통역하는 황재영 박사 / 황교진 기자

 

오무타시의 경험, 실타래 요법과 교육의 힘

이어진 발표는 일본 현지에서 줌으로 접속해 통역과 함께 진행됐다. 후쿠오카현 오무타시에서 활동하는 치매라이프서포터 연구회 대표 오오타니 루미코가 화면에 등장했다. 그는 치매인의 심리행동증상(BPSD)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실타래 요법’을 소개하며, 문제행동을 억누르지 않고 그 배경과 맥락을 차분히 이해해 풀어가는 태도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오오타니 대표는 “돌봄 현장에서는 환자가 왜 불안해하는지, 왜 저항하는지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빠른 해결을 강요하기보다 시간을 들여 기다리고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 자체가 치료이자 돌봄”이라고 말했다. 그는 치매 당사자의 존엄성을 지키는 태도가 돌봄의 기본이며, 이는 약물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오무타시가 치매 친화 도시가 된 이유

질의응답 시간에 기자가 오무타시의 경험에 대해 물었다. “한국은 치매 환자가 주변에 많음에도 불구하고, 치매를 미리 공부하고 대비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반면 오무타시는 초등학생에게도 치매 교육을 하고, 치매 친화적 환경을 지역 내에서 확산시켰는데 어떻게 가능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이에 오오타니 대표는 오무타시의 교육 확산 과정을 상세히 들려주었다. 그는 “처음에는 학교에서 치매 교육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림책을 만들어 학교에 배포하고, 전문가 그룹이 교육위원회에 직접 참여하면서 조금씩 문이 열렸다”고 설명했다.

“중학교에서 소규모로 시작한 교육이 교장 선생님들의 입소문을 타고 확산했다. 결국 시 교육위원회가 나서면서 초·중·고 전 학년에 치매 이해 교육이 정규 과정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는 치매 당사자가 학생들과 함께 교실을 찾아가 직접 이야기를 나눈다. 학생들은 치매인을 실제로 만나며 두려움을 거두고,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오오타니 대표는 “아이들이 치매인을 있는 그대로 만나는 경험이야말로 치매 친화적 도시를 만드는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사전 질문의 사례 청취와 응답 / 황교진 기자
사전 질문의 사례 청취와 응답 / 황교진 기자

 

우리 돌봄 현장에 주는 메시지

학회 현장에 모인 돌봄 종사자들은 오무타시 사례가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메시지에 공감했다. 치매를 단순히 노인의 질병으로만 보지 않고, 아이들부터 배우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치매 당사자가 배제되지 않고 직접 참여해야 한다는 점을 핵심으로 제시했다.

이번 아카데미는 치매 약물의 한계와 가능성을 다시 짚는 동시에, 일본 오무타시의 사례를 통해 치매 돌봄을 사회적 환경과 관계망으로 우선 확장해야 한다는 사실을 현장에 각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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