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주 우리동네노인주간보호센터 센터장이 경험한 ‘돌봄의 본질’
치매 노인의 평범한 일상이 생동하는 특별한 곳
제26회 치매케어 아카데미의 두 번째 발표자인 이혜주 우리동네노인주간보호센터 센터장은 '일본 노인복지시설 요리아이(よりあい) 답사기'를 전했다.
이 센터장은 사회복지사들과 함께하는 독서 모임에서 일본 후쿠오카의 노인요양시설 ‘요리아이의 숲’의 소장인 무라세 다카오가 쓴 《돌봄, 동기화, 자유》라는 책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아 5개월간 책 내용을 학습한 게시물을 SNS에 올렸다. 이를 계기로 치매케어학회에서 1월에 요리아이 현장을 다녀오는 연수 기회에 초대를 받았다고 전했다.
(편집자 주)
1991년 후쿠오카에 ‘다쿠로쇼 요리아이(宅老所よりあい)’라는 범상치 않은 요양원이 설립된다. ‘다쿠로쇼’는 집처럼 편안한 노인요양시설, ‘요리아이’는 모임, 집회, 회합이라는 뜻이다. 시모무라라는 간병 전문가가 받아주는 곳이 없어서 곤경에 빠진 중증 치매 노인 한 명을 돕기 위해 사찰의 다실에서 시작한 데이 서비스가 기원이다. 일본 최초의 작은 가정형 요양원은 3호까지 문을 열며 《정신은 좀 없습니다만 품위까지 잃은 건 아니랍니다》라는 책에 소개돼 치매 노인 돌봄의 본질에 관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다쿠로쇼 요리아이의 돌봄 철학을 계승해 확장된 형태가 ‘요리아이의 숲(よりあいの森)’으로 2014년 설립됐다. 가정형 요양원에서 자연 친화적 시설로 넓혀 정원, 숲, 자연과 함께하는 환경을 조성했다.
이 센터장은 요리아이에서 본 특이한 하드웨어와 프로그램이 없는 운영 콘텐츠에 주목했다. 먼저 치매케어 아카데미 현장에서 발표를 듣는 요양시설 관계자들에게 질문했다.
“대한민국 노인복지시설에 CCTV가 없고, 안전바가 없고, 프로그램 일정표가 없고, 식단표가 없고, 직원들의 유니폼이 없고, 공단이나 지자체의 평가가 없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우리가 너무나 바라는 모습 아닙니까? 네, 정말로 그렇게 자유롭게 해놔도 잘 운영할 수 있을 텐데요. 그런데 사실은 지금 이런 항목이 있어야 우리가 잘 운영한다는 평가 점수를 받습니다.”
신체적‧정신적 자유를 보장하는 공간
“그런데 제가 다녀온 요리아이에는 이런 것들이 없었습니다. 없는데도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요리아이의 가구들은 매우 낡았습니다. 오래전부터 쓰던 가구를 자연스럽게 비치해서 쓰고 있었습니다. 시설에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 집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걸 느끼게 해드리려고 어르신이 자기 집에서 본 가구의 그 낡은 모습 그대로의 익숙함으로 안정감을 드리고 있습니다.”
“요리아이의 거실과 주방은 제가 이번 연수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모습입니다. 거실과 조리실이 마주하고 있는데 조리실 위치가 거실 중앙입니다. 우리나라 시설의 조리실과 식당은 보이지 않아야 해요. 공단에서 평가할 때 어르신이 왔다 갔다 하지 않게 잠금장치가 잘 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지표가 있습니다.
요리아이는 조리하는 공간이 거실의 중간에 있어요. 음식 냄새가 어르신들에게 기대감을 안겨드립니다. '오늘 점심 뭐지?' 하면서요. 조리원이 중간에서 조리하며 시야가 사방으로 개방돼 있으니까 거실에서 어르신이 뭘 만드는지 살펴볼 수 있고, 반대편 공간에서도 어르신과 조리원이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눕니다. 공간이 분리돼 있지 않고 평범한 가정집처럼 느껴지게 하죠. 우리 집에서는 조리실을 따로 외진 곳에 두지 않으니까요.”
존엄한 임종케어는 장소가 아닌 '관계'
“기존 공간 배치의 틀을 깨는 이런 가정집 구조의 열린 공간을 통해 ‘내가 시설에 있는 게 아니구나’ 하는 안정감을 느끼고 이 안에서 좀 더 건강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습니다. 사실 여기가 내게 편안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임종을 준비할 수 있고 그 관계 안에서 존엄한 임종케어도 가능하니까요.
내년 3월 27일부터 시행되는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의 주요 내용이 어르신이 시설이나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게 아니라 내가 살아온 공간인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Aging in Place’를 지원하는 것입니다.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요. 꼭 집이 아닌 병원이나 요양시설에서도 나와 주변 관계에서 곁에 있는 사람들이 가족이라고 느끼는 곳이면 거기가 내 집이라는 확장된 개념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해봅니다.
반드시 집에 계시다가 돌아가시는 게 축복이 아니라 집이 아닌 다른 공간에 있더라도 나를 사랑하고 위해주는 사람의 곁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우리가 정말 꿈꾸고 실천해야 하는 돌봄통합지원법의 목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생각은 요리아이를 다녀와서 더 굳어졌습니다.”
자기다움의 공간인 개인실
“한 어르신의 방입니다. 벽에 야구 선수인 손주의 굿즈가 걸려 있어요. 내가 가족과 떨어져 있지 않다고 느끼게 해줍니다. 제가 10년 전에 독일의 한 장애인 그룹홈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서도 비슷한 모습이 있었어요. 1인실 유니트케어 공간에는 자기 물건들로 꾸며 놓을 수 있습니다. 개인실 공간을 통해 여기가 내 집이라고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게 됩니다.”
CCTV와 안전바가 없는 곳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요리아이에는 CCTV와 안전바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이어서 물어봤어요. 없어도 괜찮은지, 어르신의 낙상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지. 예전에 저희 센터에서 어르신이 넘어지신 사고가 있었습니다. 저희가 어르신을 열심히 섬겨도 사고는 피할 수 없습니다. CCTV가 있고 안전바가 있고 미끄럼 방지 매트가 있는데도 사고는 납니다.
요리아이에서도 사고가 있죠. 그런데 어르신이나 가족들이 대처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사고는 우리 집에서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데 여기라고 안 일어나겠어요?’라는 거예요. 도대체 이런 마인드는 어디서 올까요? 일본의 노인복지가 우리보다 10년은 앞서간다고 합니다. 우리가 노인 관련 정책이나 서비스를 개발할 때마다 일본을 벤치마킹하잖아요. 일본이 앞서 있는 것은 요리아이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마인드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다른 차원의 마인드에서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집이라는 개념을 요양시설로 가져왔고 얼마든지 넘어지는 사고가 있을 수 있고 이것이 어르신을 함부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사고의 하나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직원들과 어르신과 가족들이 합의한 시기가 1990년대 초반부터였습니다. 그렇게 운영하는 방식이 소문이 나서 사회적 합의로 인정한 과정으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만의 돌봄 가치에 확신을 가지고 운영하는 것 그리고 그 가치를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동의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켜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습니다.”
당신은 프로그램대로 살고 있나요?
"아침에 요리아이의 어르신들이 이렇게 거실에 모여 앉아 차를 드세요. 어르신 한 분 한 분이 ‘오늘 뭐 할까요?’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누십니다. ‘나 오늘 자고 싶어’ 그러면 그 어르신은 주무시는 거예요. ‘나 오늘 병원 가야 되는데’ 하시면 ‘몇 시쯤에 같이 갈까요?’ 여쭙고요. 그리고 ‘오늘 점심에 만두를 빚어 먹고 싶은데’ 그러시면 만두 재료가 있는지 찾아보는 거죠.
이런 식으로 프로그램 없이, 어르신들이 어딘가에 매여 있다는 느낌 없이 각자 하시고 싶은 것들을 집에서처럼 누리실 수 있습니다. 어르신들을 답답하게 하거나 자유를 속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촘촘하고 세세한 프로그램을 어르신들을 위해 하는 필수 요소라고 생각하지만, 어떻게 보면 어르신을 숨 막히게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족이라면서 유니폼은 왜 입고 있나요?
“제가 요리아이에서 또 인상으로 본 것은 누가 직원인지 모르게 모두가 일상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에요. 우리는 센터에 출근하자마자 유니폼으로 갈아입습니다. 그것도 평가 지표에 있어요. 유니폼을 입어야만 평가 점수를 받을 수 있는데 어느 날 어떤 보호자님이 저한테 말씀하셨어요. ‘센터장님, 나도 이렇게 우리 아버지 모시기 힘든데 어떻게 매일매일 웃으면서 우리 아버님께 그리 잘해드릴 수 있어요?’ 제가 한마디로 말씀드렸습니다. ‘가족이 아니라서 가능해요’라고요. 제가 가족이었으면 이렇게 못한다고 하자 그 보호자님이 ‘맞네요’라고 하셨어요. 노인복지시설을 홍보할 때 ‘저희는 가족같이 모십니다’라고 합니다. 사실 저는 그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모실 수가 없거든요.
우리는 유니폼을 입습니다만, 그것이 당신은 돌봄을 받는 사람이고 나는 돌봄을 제공하는 자로 구분하게 합니다. 유니폼을 입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우리는 상위 개념에 속하고 어르신들은 하위 개념으로 즉, 유니폼을 통해 ‘당신은 나 없으면 위험해’라는 인식을 어르신께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리아이에 다녀와서 직원들과 얘기했습니다. 우리 평가 시즌에는 유니폼을 입고 평상시에는 일상복을 입자고요.”
나는 먹고 싶지 않음을 선택했다
“요리아이에 오시기 전 한 어르신은 병원에서 거의 두 달 가까이 식사를 거부하셨다고 합니다. 식사해야 약을 드시고 회복의 기미가 보일 텐데 병원에서 어떤 노력을 해도 식사를 거부하셨다고 해요. 그래서 병원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저분 돌아가시겠다고 판단했고, 가족들도 돌아가실 날을 준비하며 마지막 끈을 붙잡는 심정으로 요리아이를 이용하도록 해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어르신이 요리아이에서 식사하기 시작하신 거예요. 희한한 일이죠.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밥 안 먹어’라고 했는데 요리아이에서 식사 드시면서 회복하셨으니까요. 의사는 몇 달 안에 돌아가신다고 했는데 몇 년을 더 사셨습니다. 그래서 종사자분이 여쭤봤대요. ‘아니, 어르신, 이렇게 잘 드시면서 왜 병원에서는 식사 안 하셨어요?’ 하니까 ‘병원에서는 밥이랑 반찬을 다 섞어서 주잖아. 얼른 먹으라고. 그리고 거기 나 몰래 약도 섞고. 난 그렇게 밥을 먹고 싶지 않아. 그렇게 먹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라고 하셨답니다.
그 어르신은 인격적으로 대우받지 못하느니 차라리 거부하겠다고 생각하신 거예요. 이렇게 어르신이 밥을 거부하거나 목욕을 거부하는 건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이유에 관심을 두지 않고 역할 수행에만 급급하니까 묻지도 않고 하고 있죠. 밥을 안 드시면 약도 못 드시니까, 그래서 컨디션 나빠지면 귀가 후 보호자로부터 ‘왜 우리 엄마가 이렇게 아프냐’ 하는 원망을 듣게 되니까. 전후 따지기보다 어떻게든 한 숟가락이라도 더 드시게 하고 있죠.
저희 센터에서 목욕을 거부하신 분이 왜 거부하셨는지 제가 몇 달 만에 알게 됐어요. 어르신이 치매로 씻기를 거부하신 게 아니라 집에서 자녀분들이 한계를 느끼고 요청한 방문요양센터의 직원이 목욕차 안에서 어르신 몸을 들어 강제로 옷을 벗기신 거예요. 사실 그분들도 다음 스케줄이 있으니까 얼른 씻기고 가야 하는데 어르신이 막 욕하며 거부하시니까 세 명이 달라붙어서 옷을 벗겼다고 하더라고요. 거기서 어르신이 목욕은 나를 수치스럽게 하는 거로 인식하신 겁니다.
저희 센터에서 비슷한 연령의 요양보호사 세 명이 다가와 목욕을 시키려 하니 당시 트라우마가 떠오르신 거예요. 굉장히 조심스럽게 목욕시켜 드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나는 먹고 싶지 않아, 나는 씻고 싶지 않아, 고집하는 어르신의 선택이 인지 저하로 인한 것인지 어떤 트라우마가 있는 것인지 우리가 궁금해하며 알아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자신의 일상을 회상하는 활동
“요리아이에서는 어르신들께 자기 역할을 부여해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도로 하는 시간을 자주 제공합니다. 여기서 제가 퀴즈를 드릴게요. 우리나라 노인시설에서 어르신들께 고구마 줄기를 다듬게 하고 이를 조리해서 식사하시도록 하면 노인 학대일까요? 아니라고요? 우리나라는 학대로 봅니다. 저희 센터에 텃밭이 있어요. 봄이 되면 온갖 작물을 심어요. 고구마도 엄청나게 심었단 말이에요. 그래서 제가 고구마 줄기를 어르신께 가져다드리면 잠만 주무시던 어르신도 일어나세요. 거동도 불편하신 분이 줄기를 다듬고 싶어서 성큼성큼 오십니다. 그러고 열심히 다듬으시는 거예요. 왜일까요? 내가 평생 했던 일이거든요. 몸이 기억하는 일을 좋아서 하세요.
하시라는 말씀을 안 해도 모여서 다듬고 줄기가 완성되면 저희가 조리실에 가져다드립니다. 바로 그날 반찬 하나가 늘어나죠. 점심시간에 어르신 덕분에 맛있는 걸 먹어요. 너무 감사해요, 라고 하면 말씀을 못하시는 어르신들 눈빛에 뭔가 충만함이 채워지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제가 행복해서 이 모습을 SNS에 올렸더니 다른 센터의 센터장님이 전화를 주셨어요. ‘사진 빨리 내려. 노인 학대로 신고당해’ 하시는 거예요. 제가 사진을 내리고 이게 왜 노인 학대인지 관련 법을 찾아봤어요. 노인복지법 제1조의2 제4항에서 ‘노인 학대란 노인에 대하여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성적 폭력 및 경제적 착취 또는 가혹행위를 하거나 유기 또는 방임하는 것’을 말한다. 즉, 경제적 착취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르신들이 무임금으로 일하신 거라는 거죠. 조리원이 해야 할 일을 하신 거라는 것이 법 규정입니다. 어르신들을 지키려는 법이지만, 시설에서 어르신들이 행복해하는 활동을 하는 데 제약이 되는 상황도 발생합니다.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깻잎 다듬기, 고추 빻기 등은 비밀리에 해야 합니다.”
관계를 단절시키지 않는다
“앞의 발표에서 김성룡 교수님이 자택(自宅)이냐 재택(在宅)이냐 말씀하셨는데 요리아이는 주간보호 프로그램이건 입소 요양원이건 ‘관계를 단절시키지 않는다’를 핵심으로 두고 있습니다.
시설 옆에 마을 주민들이 무료로 쓸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아이들이 공부하거나 주민들이 담소를 나누거나 노인복지 실무자들이 회의하는 공간이 있습니다. 지역 주민들이 요리아이의 열린 공간을 찾고 다녀가니 자신이 시설에 격리된 것이 아니라는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제가 인상 깊었던 건 죽은 자와의 관계도 단절시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시설 내부에 현재 살아계신 어르신과 돌아가신 어르신의 사진이 함께 진열돼 있습니다. 돌아가신 분을 가까이 기억하며 추모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그리워하고 애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나의 일상입니다.
사실 저희는 함께 지내온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남겨진 어르신께 어떻게 말씀드릴까, 가장 고민이거든요. 충격받으시고 다운되실 수 있어서 제가 잘 쓰는 표현은 ‘서울의 딸 집에 가셨어요. 부산의 아들 집 가셨어요’입니다. 그렇게 대응하며 죄책감이 듭니다. 그래서 한 공간 안에서 함께 지낸 관계를 단절하지 않는 요리아이의 노력이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답사한 분들과 찍은 사진이고요. 요리아이에서는 이런 다짐을 합니다. ‘늙거나 몸이 흐려져도, 익숙한 마을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도록 돕는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라는 이 다짐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요리아이에 다녀와서 그럼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까. 안전바를 없앨 수도 없고 하다못해 고구마 줄기 다듬는 것도 몰래몰래 하고 있는데 도대체 나는 요리아이에서 배우고 느낀 것들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하다가 작년에 저희가 한 시범사업을 확대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바로 ‘우리 동네 마실 가기’인데요. 센터가 닫힌 공간이 아니라 열려서 어르신도 마을을 다니시며 이웃들을 만날 수 있게 하는, 그러니까 집에서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관계 확장을 좀 만들어 드려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저희 센터 부근이 좀 시골 분위기인데 작은 식당, 도서관, 카페, 미용실이 있어요. 제가 분식점, 카페, 미용실에 찾아가서 사장님께 부탁을 드렸어요. ‘제가 어르신 한 분과 여기 석 달에 한 번 와서 일대일 데이트를 할 겁니다. 그러면 사장님께서 저희 어르신이 화장실을 자주 가시기도 하고 잘 안 들리셔서 목소리가 커도 이해해 주세요. 제가 어르신하고 같이 밥을 먹을 건데 제가 먹은 건 제가 계산할게요. 어르신이 드신 건 사장님이 섬기는 마음으로 후원해 주세요’라고 부탁드렸어요. 그러자 가게 사장님들이 기꺼이 응해 주셨어요. 석 달에 한 번 어르신께 대접하는 건 큰 부담이 아니라고요. 아예 제 밥값도 안 받겠다는 거예요.
사실 제가 그 가게의 단골이기도 했습니다. 제 거는 제가 내겠다고 말씀드리고 작년 6월 처음으로 어르신 한 분을 모시고 센터 근처에 있는 분식점에 갔습니다. 어르신이 국수를 드시고 저는 떡볶이를 먹는데 갑자기 어르신이 제 시나리오에 없는 행동을 하셨어요. 사장님을 부르신 거예요. 조리하고 있는 사장님을 불러 옆에 앉히시더니 기도하재요. 어르신이 뭐라고 하셨냐면 ‘하나님, 이 가게에 개미가 들끓게 해 주세요’ 하신 거예요. 그러고는 아차 싶으셨는지 ‘개미 떼가 들끓듯이 손님 많게 해 주세요’라고 정정하셨어요. ‘우리 사장님 건강하고 이런 좋은 마음으로...’ 하시면서요. 사장님도 어르신의 기도를 기뻐하셨습니다. 그 사장님은 교회를 다니지 않으셨는데 어르신 기도 중간중간에 ‘아멘’을 하시더라고요.
저희가 센터에 돌아온 뒤 사장님이 피드백을 주셨어요. ‘나는 국수 한 그릇을 대접했을 뿐인데 건강과 경제적인 부분까지 축복해 주신 어르신 기도를 들으면서 하루 종일 행복했어요’라고요. 이렇게 우리 어르신이 관계 안에서 뭔가 드릴 수 있다는 게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이처럼 어르신과 카페도 가고 식당도 가면서 마을 가게 사장님들과 관계를 쌓아가고 있습니다. 동네 마실 가기 경험을 통해 어르신께 충만한 시간이 이어지고 있고요.
요리 아이를 다녀와서 부러운 마음이 컸지만, 부러워만 할 게 아니라 현재 우리의 한계에서 새로운 형태의 무언가를 시도해 보자고 동료들과 나누었습니다. 지금은 미약하지만, 이런 시도를 통해 돌봄 제공자와 어르신이 좋은 관계 안에서, 속한 마을 안에 서 두루두루 존경도 받고, 상호 간에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존재로 살아가시도록 저희가 도와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준비한 건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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