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공주, 패셔니스타, 홍보부장인 P어르신과의 이별식
나는 노인주간보호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몸과 마음이 예전 같지 않아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하지만, 약간의 손길만 있으면 여전히 가족과 함께 집에서 하루를 이어갈 수 있다는 안정감을 드리고 있다. 이 단순한 진실이 어르신들에게 조금씩 전해지면서 예전보다 센터의 문턱은 한결 낮아졌다. 어르신 본인도 가족들도 센터의 기능을 고마워하신다.
인지기능과 신체기능이 비교적 나은 분들은 재가 장기요양기관을 찾는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어느새 노화가 빨라지고 질병이 깊어지면, 걸음이 무거워지고 가족들의 돌봄 부담이 커진다. 그러면 가족들은 요양시설 입소라는 무거운 결정을 놓고 고민한다.
노인주간보호센터에서 어르신들과 이별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거나 요양시설 입소를 결정해야 할 때다. 전자는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안타깝고 속상해도 마음을 추스르는데, 후자의 경우 이별 과정에서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바로 요양시설 입소 과정에서 주도권을 갖고 있는 가족들이 당사자인 어르신과 그동안 성심껏 돌봐드린 우리에게 입소 사실을 숨기는 경우다.
물론 이전보다 요양시설 입소에 대한 어르신의 거부감, 가족들의 죄책감이 많이 줄었어도 여전히 불편한 마음을 갖는 것이 사실이다. 어르신은 내가 버림받았다는 상실감, 가족으로서는 부모에 대한 효를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양시설 입소가 어르신에게 불행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 아니며, 가족들에게 불효라는 무게를 지우는 일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더 전문화된 서비스를 통해 모두의 삶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머리로는 알아도 여전히 가슴 한쪽에 저릿함이 있으니, 보호자 가족이 어르신의 요양시설 입소 결정을 내린 후 우리에게 비밀로 하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허탈감과 자괴감은 노인주간보호센터 종사자들에겐 큰 상처가 된다.
참 고맙고 다행스럽게도 최근 요양시설 입소를 결정하게 된 P어르신과는 서로를 축복하는 이별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P어르신과의 인연은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센터에 처음 오실 때만 해도 참 아슬아슬했다. 당시 퇴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관절염, 신장질환, 낙상 우려 등 아차 하는 순간 와장창 깨질 듯한 유리공주님 같았다. 혹여나 넘어지실까, 드시는 음식이 소화가 잘될까 늘 불안한 마음이었다. 우리의 불안감을 눈치채셨는지 내가 얼마나 멋쟁이 할머니인지 보여주겠어, 라고 결심하신 듯 센터에 오실 때 늘 1~2벌의 옷을 더 챙겨 오셨다. 오전에 입고 있는 정장(어르신은 센터에 오실 때 곱게 화장하고 정장을 입으셨다)이 오후에는 원피스로 바뀌어 있었다.
사람의 회복력은 함부로 가늠할 수 없나 보다. 매일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그 하루하루가 쌓이면서 어느 틈에 구멍 송송 뚫린 뼈를 메우고, 주름진 살에 틈을 채우고, 허한 마음에 사랑이 흐르게 한다. 특히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P어르신은 나와 동료들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며 축복기도를 해주시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셨다. 센터에 적응하지 못하는 어르신 옆에서 손을 잡고 “할머니(할아버지), 우리 여기서 재밌게 행복하게 지내요. 사랑해요”라고 말씀해 주셔서 불안한 마음을 덜고 다정하게 바꾸셨다. 본인이 사시는 아파트의 경로당이나 정자 그늘에 나가 “우리동네센터에 같이 가요”라며 좋은 소문도 내주셨다. 그래서 나는 한 때 P어르신을 ‘홍보부장님’으로 불러 드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슬프게도 하루하루 잘 메워졌던 뼈에 다시 구멍이 생기고, 채워지던 살이 허물어졌으며, 사랑으로 흘렀던 마음에 분노(속상함)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저녁에 미용실에 가신다고 혼자 집을 나섰다가 넘어지시는 사고가 연달아 일어나 골절이 발생했다. 드시면 안 되는 음식을 몰래 드셨다가 염증 수치가 폭발적으로 높아져 그 조그마한 손에 몇 날 며칠 고름이 흘렀다. 몸이 계속 아프니 마음도 팍팍해지셨다. 축복기도를 해주시던 감사의 마음은 사라지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어 비수를 꽂거나, 헌신적으로 살펴드리는 딸과 사위, 손주들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일이 반복되어 결국 곪아 터졌다.
결정적으로 압박 골절을 치료하기 위해 입원한 일주일간 그 병실을 지옥으로 만드셨다. MRI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소리를 지르고 우셔서 결국 의사가 포기했고, 잠시라도 주 간병인인 딸이 자리를 비우면 분노를 삭이지 못하셨다. 그래도 수년간 센터에서 ‘우등생’이셨기에 이런 모습은 잠시 스쳐 가는 거로 생각했지만, 가족들의 고통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고, 속으로만 삭히던 중에 결국 요양원 입소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P어르신이 병원에 입원한 지 3일째 되는 날, 그 밤에 따님이 전화를 주셨다. “아무래도 우리 어머니, 이제 요양원에 모셔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죄를 짓는 것 같아 마음이 괴로워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흐느끼는 고통에 “조금만 견뎌봐요”나, “그래도 곧 지나갈 거예요”라는 식의 위로는 이제는 지칠 대로 지친 딸에게 또 다른 폭력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요양원에 입소하는 것이 왜 죄를 짓는 건가요? 절대 아니에요. 다만 어머님이 상처받지 않게 퇴원 후 상의하시면 좋겠어요. 저도 도울게요”라고 절반은 진심으로, 절반은 맘에 없는 소리를 했다. 요양원에 입소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 아니다. 그건 사실이다. ‘저도 도울게요’ 이 말은 거짓말이다. 돕고 싶지 않았다. P어르신과 이별이 자신 없기 때문이다.
보호자 가족들은 P어르신과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 가족들과 떨어져 사는 것이 서로를 위한 것임을 깨달은 P어르신은 요양원 입소에 대해 조건을 말씀하셨다. “원장이 운영하는 요양원 아니면 안 간다.” 아, 이건 입소하시지 않겠다는 표현이다. 나는 요양원을 운영하지는 있기 때문이다. 다시 가족회의가 열렸다. P어르신의 조건이 완화되었다. 집과 멀지 않을 것, 주말마다 가족을 만날 수 있을 것, 원장이 찾아와도 문제 되지 않는 요양원일 것. 다행히 따님과 내가 알아본 요양원 중 P어르신 조건에 딱 맞는 곳을 발견했다. 따님과 함께 요양원을 다녀오신 후 마침내 P어르신의 센터 이용 종결 날짜가 정해졌다.
며칠 동안 이 엄청난 소식을 우리 동료들에게, 다른 동무(P어르신은 이렇게 부르셨다) 어르신들께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속이 탔다. 언제나 함께할 것 같은 P어르신이 떠나면 우리 직원들 마음도 허탈해서 힘들 것 같고, 분위기 메이커인 P어르신이 떠나신다는 소식에 다른 어르신들도 가슴앓이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갑자기 돌아가시거나 요양원에 입소하시는 어르신이 계시면 다른 어르신들께 거짓말을 해왔다. “서울에 사는 아드님 집으로 이사가셨어요”, “부산에 사는 막내 따님 집으로 이사가셨어요” 등 먼 곳에 사는 자녀들을 만들어 내어 언제 다시 볼 수 있으리라는 일말의 기대감도 모조리 없애버렸다.
그런데 P어르신은 사실 그대로 알려드리고 싶었다. 오랜 기간 서로에게 의지해 온 그 마음을 거짓으로 마무리하면 정말 우리 관계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것 같았다. P어르신다운 이별식을 준비했다. 애창곡 <내 나이가 어때서>를 필두로 트로트 열창과 춤판이 벌어졌다. 모든 어르신이 흥겹게 노래 부르고, 춤을 추셨다. 이어서 P어르신은 동무 한분 한분의 손을 잡고 축복의 말씀을 하셨다. “건강해야 해요, 원장 말 잘 들어야 해요.” 센터 직원들과도 모두 끌어안고 서로 감사해했다.
이별식이 끝난 후 나와 P어르신이 따로 만났다. 우리만의 이별식이 시작되었다. 어르신의 마음과 웃음과 기도 덕분에 센터를 잘 운영할 수 있었고, 사회복지사로 더 성장할 수 있었다고 진심으로 감사드렸다. 그리고 멋쟁이 P어르신이 요양원에서도 최고 멋쟁이가 되시도록 생활복 한 벌을 선물로 드렸다. 바로 그 자리에서 갈아입으시고 사진을 찍어달라 하셨다.
그렇게 P어르신을 위한 이별식이 모두 끝났다. 거짓 하나 없이 이별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P어르신이 끝끝내 이별의 이유를 요양원 입소가 아닌 이사로 해달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울고, 웃고, 축복하고, 감사해하는 그 모든 마음은 한 톨의 거짓이 없었다.
P어르신과 만나는 6년 동안 돌봄 현장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 어르신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 모습, 삶 자체가 나에게 인사이트가 되었다.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에 모금 활동을 벌여 복지기관에 기부했고, 다른 분들 칭찬을 아낌없이 하시는 모습에 감동해 어르신들의 강점을 기록한 그림책을 출간했다. 사람을 좋아하고 만나며 의지하시는 그분의 삶 자체에서 센터 어르신과 마을 이웃이 만나 서로 환대하는 마실 가기 활동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P어르신은 그렇게 우리를 성장시켰다. 이별식을 통해 마음을 정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크고 값진 행운이라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분 중 주간보호센터나 방문요양센터를 이용하는 부모님을 이제는 요양원에 모셔야 하는 선택의 순간에 머뭇거리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또는 요양원 입소로 어르신과 어떻게 이별을 마주해야 할지 고민하는 돌봄 종사자도 있을 수 있겠다. 첫 만남도 중요하지만, 삶의 한 여정에 함께한 사람과의 이별에서 감사와 축복으로 마무리 짓는 것은 서로에게 복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이별에 대처하면 좋을까.
첫 번째, 어르신의 요양원 입소는 대부분 주 보호자인 자녀들에 의해 결정되는데 그 과정에서 어르신께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인지가 저하되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으실 텐데 상의가 무슨 소용인가? 혹은 말씀드리면 강하게 거부하실 게 뻔하니 소통을 생략하고 보호자와 요양원 측과만 대화하며 어르신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입소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강하게 거부하시더라도 그 과정은 꼭 필요하다. 불편하여 회피하면 반드시 어려움이 발생한다. 어르신이 배신감과 절망감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요양원 적응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거나 결국 적응이 어려워 퇴소하시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건강이 악화되고 관계가 더욱 힘들어진 부모님을 어떻게 수발들어야 할지 더 큰 어려움이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두 번째, 그동안 이용했던 돌봄기관(주간보호센터나 방문요양센터)과 충분히 상의하면 좋겠다. 돌봄기관에서 어르신의 모습과 가족들이 집에서 경험하는 모습은 다를 수 있다. 그렇기에 종합적인 상황을 살피고 어르신께 더욱 맞는 입소 시설을 함께 찾아보는 것이 유익하다. 아울러 그동안 일방적인 돌봄 관계가 아닌 인간적인 관계를 맺은 어르신과 종사자가 서로에게 충분히 감사해하는 시간을 갖는 건이 올바른 예의다.
세 번째, 돌봄기관 종사자들은 가족들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상담을 꼭 해야 한다. P어르신 따님이 요양원 입소에 대해 죄책감을 가질 때 솔직히 나는 더 견뎌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주 보호자에게 또 다른 부담과 책임을 지게 하고, 곪아 터진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행위다. 그동안 최선을 다해 부모님께 애쓴 그 노고를 격려하고, 모두를 위한 선택에 위로하는 상담으로 상처에 새살이 돋게 하는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다.
네 번째, 어르신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이별식을 하면 좋겠다. 트로트와 막춤을 좋아하신 P어르신과는 흥겨운 시간으로 진행했다. 다른 어르신들과 웃으며 노래 부르고 막춤을 추면서 슬픔을 다 털어 버리셨다. 서로에게 가장 즐겁고 아름다운 모습을 마지막으로 선물했다. 이렇듯 어르신이 평소 좋아하시는 성향에 맞춘, 소박하지만 의미 있는 이별식으로 모두에게 한 자락 추억을 드리면 좋겠다.
다섯 번째,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어르신들을 위로하는 마음도 중요하다. 혹여 이별식이 다른 어르신들께 슬픔이 되고 건강을 상하게 하진 않을까 염려하는 경우가 있다. 나 역시 그런 걱정으로 이별식은커녕 이별 자체를 말씀드리지 않고 거짓말을 해왔다. 그러나 희로애락은 누구든 피할 수 없는 삶의 순간이다. 슬퍼하고,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그 권리를 우리가 어르신들에게서 뺏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
끈적한 더위가 지나가고 풀벌레 소리 가득한 선선한 가을이 오면 P어르신이 계신 요양원에 방문한다. 최고 멋쟁이 P어르신은 늘 그러셨듯 나를 꼭 껴안아 주시겠지!
이혜주
우리동네노인주간보호센터 센터장
경기도사회복지사협회 부회장
(사)치매케어학회 이사
(사)한국주야간보호협회 이사
전, 안성종합사회복지관 총괄팀장
전, 안성시동부무한돌봄네트워크팀 센터장
전, 안성시사회복지사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