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현장, 행동을 언어로 받아들이는 배움의 시간
“장기요양 3등급 65세 남성, 5년 전 초로기치매 진단받았고 증상 악화 속도가 빠름, 언어소통이 어려우며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소리 지르고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주변 사람을 밀치는 폭력성 보임, 대소변 조절이 어려워 기저귀 착용이 필요하나 스스로 찢어 버림, 현재 다른 노인주간보호센터에서 퇴소 요청 받음.”
동료로부터 센터 이용 상담을 원하는 보호자의 전화 메모지를 받고 가장 마지막 문장에서 숨이 턱 막혔다. 다른 곳에서 퇴소 요청을 받은 분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이전의 경험들도 스쳐 갔다. 내가 만난 초로기치매 어르신들은 악화하는 속도가 유난히 빨랐다. 가족들도, 우리도 그 속도를 따라잡기 어려워 센터 이용 1년 정도 흐르면 대부분 요양원에 입소하셨다. 더군다나 폭력성을 가진 분이라니, 실제 어르신을 뵙기도 전에 선입견과 편견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며칠 뒤 당사자 J어르신과 배우자, 딸 이렇게 3명이 센터를 찾아왔다. 현재 J어르신에 대한 상황을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며 제발 우리 센터가 받아주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J어르신께 이런저런 질문을 드렸는데 대답은 하지 않으신 채 나를 보시는 눈빛이 얼마나 매서운지 베일 것만 같았다. 체구도 크셔서 만약 폭력적인 모습을 드러내시면 감당하기 어렵겠다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그 순간, 내가 포기했던 어르신 두 분이 떠올랐다.
노인주간보호센터를 운영하는 8년간 나는 어르신 두 분을 포기했다. A어르신은 센터에서 하루 종일 고함을 지르는 탓에 다른 어르신들께서도 무척 고통스러워하셨다. 결국 센터 이용 한 달 만에 보호자에게 종결을 요청했고, 감당이 어려운 가족들은 요양원에 바로 입소시켰다. 그러나 요양원에서도 적응이 되지 않아 퇴출 통보를 받았다. 그렇게 요양원 입소와 퇴출이 반복되다 결국 요양병원에 입원하셨다. 폭력성을 진정시킬 약물 투여와 때때로 신체억제대까지 사용하고 있다며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보호자 이야기를 듣고 혹시 어르신의 악화와 고통에 내가 일조한 건 아닌가 괴로웠다.
B어르신도 그랬다. 센터에서 소리 지르고 욕하며, 물건을 집어 던지는 바람에 원활한 프로그램 진행이 어려웠다. 다른 어르신들께 피해가 생기기 때문에 다수를 위해 B어르신을 포기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다른 센터와 요양원에서도 받아주지 못한 B어르신은 현재 집에서 보호자와 단둘이 계신다. 얼마 전 보호자와 통화할 때 한마디가 가슴을 후벼 판다. “제가 술이 없으면 잠을 못 자요….” 요즘도 그 집 앞을 지나칠 때마다 술에 기대어 겨우 버티는 보호자의 삶이 겹쳐 나 또한 숨을 고를 수가 없다.
두 분을 떠올리며 J어르신을 섣불리 포기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보호자와 이용 계약서를 작성했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두렵기도 했지만 울면서 여러 차례 감사 인사를 하는 가족들 모습에 마음을 달랬다. 모두 떠나고 자리를 정리하는데 J어르신이 앉았던 자리에서 순간 멈칫했다. 테이블에 놓여있던 물티슈가, 그 두꺼운 비닐이 산산조각 나 있었다. 언제 이렇게 다 뜯어 놓으셨을까? 과연 우리 잘 지낼 수는 있을까? 등골이 서늘해졌다.
J어르신 이용 첫날, 센터는 그야말로 똥과의 전쟁을 치렀다. 아침 송영 차량에 탑승한 뒤 변을 본 J어르신. 바로 목욕실로 직행하여 씻겨 드렸는데 오후에 다시 변을 보셨다. 하반신은 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손으로 만지려는 통에 목욕실이 전쟁터가 되었다. 어르신의 자존감을 지켜드리고 진정한 사람 중심 케어(Person-Centered Care)를 위해 돌봄 현장에서 기저귀 착용은 최후의 보루다. 그러나 우리가 살기 위해서라도 J어르신은 기저귀를 착용해 주셔야 했다.
보호자 역시 기저귀 착용을 시도했으나 어르신이 찢어 버리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도저히 못 하겠다고 한다. 그렇게 일주일을 아침마다 총칼보다 더 무섭고 괴로운 똥과의 전쟁으로 시작했다.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테이블에 함께 앉아계신 다른 분께 큰소리를 내거나 활동지를 뺏어가는 일이 벌어지며 J어르신은 두려움과 기피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센터에서 상대적으로 젊은 층에 속하는 J어르신이지만 보행이 불안하여 잠시라도 눈을 떼기 어려웠다. 넘어질 듯 절뚝거리셨는데 무릎 관절이 많이 손상되어 보였다.
한 분을 위해 2~3명의 요양보호사가 더 신경을 써야 하고, 거기서 오는 동료들의 체력 소진과 스트레스가 눈에 보여 내가 세 번째 포기하는 어르신이 되겠구나 싶었다. 그때, 한 동료가 별 기대 없이 센터에 여분으로 있는 특대형 기저귀를 어르신이 착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렸다. 바로 찢어 버리겠거니 싶었는데 웬걸, 어르신이 마치 면 팬티를 입은 것처럼 편안해하신다.
우린 깨달았다. 그동안 착용하려던 기저귀가 몸에 너무 딱 맞아 답답하셨구나. “더 큰 기저귀가 필요해”라고 말씀하기 어려우니 기저귀를 찢어 버리신 것인데 가족들도 우리도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J어르신이 기저귀를 착용하신 후 똥과의 전쟁은 휴전이 되었다.
이 경험을 토대로 동료들과 모여 회의했다. 포기 대신 어르신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해 보자, 어떤 생각이신지 동기화해 보자고 결론이 났다.
이후 어르신이 다르게 보였다. 옆자리 어르신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니라 나름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신 것 같아 중간에 다리 역할을 해드렸더니 베일 것 같은 눈빛에서 다정한 미소가 보였다. 자신의 마음이 이해받았다고 느끼셨는지 말씀 대신 혀로 입천장을 치며 “똑똑” 소리를 내셨다. 우리는 J어르신이 기분 좋을 때 “똑똑” 소리를 내신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유난히 다리를 절뚝거리셔서 의아했는데 가슴 아픈 사연도 듣게 되었다. J어르신은 거동이 불편하고 중증의 치매가 있는 어머니를 모시고 사셨다. 병원을 가거나 마을에서 걸으실 때도 J어르신은 모친을 늘 업고 다니셨다. 어머니가 아들 등을 가장 편안해하셨기 때문이다. 자신의 등이 필요하다 싶으면 일하다 말고 집으로 뛰어가셨고, 그렇게 10년을 업고 다닌 결과 무릎 관절이 모두 닳게 되었다. 자기 무릎이 닳건 말건 상관없이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던 J어르신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2년 뒤인 60세에 치매 진단을 받았다.
이 사연을 듣고 나는 어르신을 만나기 전에 전해 받았던 메모지를 버렸다. 내 안에 선입견과 편견도 사라지길 바라며 갈가리 찢어 버렸다. 돌봄 현장은 끊임없는 인생의 배움 현장이다. 어르신들과의 관계 안에서 매일 깨지고 채워지는 삶이다.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은 그 모든 소통의 방법을 폭력성으로 간주해 버린 나의 무지에 자신을 포기하지 말라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포기하지 않고 말씀해 주신 J어르신.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하실지 기대된다.
이혜주
우리동네노인주간보호센터 센터장
경기도사회복지사협회 부회장
(사)치매케어학회 이사
(사)한국주야간보호협회 이사
전, 안성종합사회복지관 총괄팀장
전, 안성시동부무한돌봄네트워크팀 센터장
전, 안성시사회복지사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