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노인이 사라지면 마을 전체가 관심을 가지고 찾는 곳
국내 65세 이상 치매 환자 수는 약 93만 명이다(중앙치매센터 통계 2022년 기준). 올해 1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치매 환자가 많은데도 우리나라는 치매 환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노인 시설과 집안에 꼭꼭 숨겨 두거나 숨어 지낸다. 뉴스에서 치매 노인의 배회 사고 소식 혹은 요양시설 안전사고와 불행한 간병 소식만 들릴 뿐이다.
일본은 2022년 기준 65세 이상 치매 환자를 443만 명으로 집계했다. 6년 뒤인 2030년에는 523만 명으로 65세 이상 고령자 7명 중 1명이 치매를 겪을 것으로 예상할 만큼 치매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최근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일본 치매 인구 통계로 경도인지장애 환자까지 포함하면 2030년에 총 1,1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전했다. 일본은 2006년 인구의 20% 이상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가족 없이 홀로 지내는 1인 가구 치매 환자도 늘고 있어 정부와 지자체는 실효성 높은 정책 개발에 힘써 왔다.
도쿄의 ‘스가모 상가’는 세계적인 노인 특화 상권지역이다. 평일 전체 방문객 중 30%가 고령자를 위한 편의시설과 서비스를 보고 배우려는 젊은 층이다. 원래 스가모는 형무소 등 기피시설이 있던 곳으로, 노인 특화 상권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1970년대 말 형무소 철거를 계기로 정부와 지자체, 주민이 한데 뭉쳐 노인 특화거리를 조성했고, 그 결과 지금의 스가모 모습이 탄생했다.
이처럼 일본은 노인에게 특화한 거리, 복지 시설 등이 잘 갖춰져 있다. 우리나라는 어르신이 요양원에 입소한 뒤 가정으로 복귀하는 사례가 매우 드물지만, 일본 치매 요양원은 요양원의 목적 자체가 ‘치매 환자의 가정 복귀’다. 한 번 들어가면 사망해야 나오는 곳이 아니다. 환자 중심의 안전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이 구축돼 있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많다. 일본은 2004년부터 ‘치매’라는 용어을 공식적으로 쓰지 않기로 하고 '인지증'으로 대체했다.
일본의 치매 정책 변천사
일본의 치매 정책은 2010년 이전의 골드플랜형과 2010년 이후의 오렌지플랜형으로 나뉜다. ‘개호(介護)’는 법원 용어로 ‘간병’을 뜻한다.
1989년 발표한 골드플랜은 홈헬퍼 10만 명 양성, 단기 입소 생활 개호 5만 병상 확보 등 재택복지 대책 긴급 정비를 비롯한 7개 정책을 담고 있다. 1994년 신골드플랜을 발표했는데 이는 골드플랜을 상향 조정한 것으로 개호 기반을 재정비해 재택서비스, 시설서비스, 인재 양성·확보 서비스를 담은 정책이다. 2000년 발표한 골드플랜21은 새로운 개호서비스 종합 계획을 설정해 활력 있는 고령자상 구축, 고령자 존엄성 확보와 자립 지원, 서로 지지하는 지역 사회 구축, 신뢰받는 개호서비스의 내실화 등의 목표를 담았다.
2012년 발표한 오렌지플랜은 치매 노인 급증과 국가 재정의 부족 등으로 시설 개호에서 재택 개호로 초점을 조정한 정책이다. ‘오렌지’는 일본의 치매 서포터가 지닌 오렌지색 팔찌에서 비롯됐다. 오렌지색은 밝음과 즐거움을 상징해 치매로 인한 고통을 완화하고 치매 이해와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의미로 채택됐다. 치매 환자가 지역 사회에서 생활하도록 지역지지 기반을 만든 것이 특징이다. 2015년 발표한 신오렌지플랜은 치매 고령자에게 좋은 지역 환경을 만들기 위한 종합전략으로 치매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고 살던 지역에서 스스로 살아가는 치매 친화 사회 실현을 지향하는 정책이다. 지역 사회에서의 '공생'을 강조하고, 치매 주치의와 시민 서포터 양성을 추진했다. 이어서 2019년 치매 발병을 늦추고 치매에 걸려도 희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도록 치매 환자와 그 가족 관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해 ‘인지증 시책 추진 대강’을 발표했다.
정리하면, 골드플랜형 치매 정책은 고령자 복지정책의 한 부문으로서 노인 문제 대책으로 치매를 다뤘다. 이후 진화한 오렌지플랜형 치매 정책은 치매 인구 급증에 따른 독자적인 정책으로서 비중 있는 전략적 차원에서 인지증 기본법까지 제정해 환자 중심, 지역 사회 중심 기반으로 다룬 치매 정책이다.
일본 치매 정책의 유연한 적용 방식
일본의 치매 정책은 개호 즉 돌봄 중심이며 치매 환자 입장의 정책이다. 우리나라의 치매 환자 발굴과 시설 중심 관리와 다른 차원이다.
일본은 후생노동성 중심으로 12개 부처가 참여하는 범정부 국가전략으로 치매 정책을 추진한다. 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인지증 시책 추진본부를 설치에 운영하며 행정수반이 곧 치매 정책 책임자일 만큼 치매 문제 개선에 적극적이다.
일본 치매 정책은 고령화와 노인복지 상황을 고려해 주기적으로 개선해 왔다. 1989년 골드플랜 책정 이전에는 고령자복지의 한 분야로 접근하다가 골드플랜부터 신오렌지플랜 책정 이전까지는 후생노동성 중심 대책으로, 신오렌지플랜 이후부터는 국가전략 차원의 접근으로 단계가 올라갔다. 따라서 치매라는 특정 상황의 원활한 대처로 시작한 초기 정책을 그대로 고수하지 않고 상황에 맞게 변경하고 조정해 유연한 스텝업 방식을 추진해 온 것이다.
정책의 기조는 유지하면서 보완이 필요할 때 과감한 변화를 도입해 치매 돌봄의 본질을 강화해 왔다. 또한 오렌지플랜 후 치매를 노인 건강 문제에만 국한하지 않고 전 국민 대상으로 확대해 예방부터 중증 단계까지 전 단계에 걸친 종합 대책으로 추진했다. 미국은 예방과 경도인지장애, 영국은 경증 치매와 중간 정도 치매에 초점을 둔 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니, 일본이 커버하는 치매 정책이 더욱 현실적이다.
지역포괄케어시스템 “전략은 국가에서 실행은 지역에서”
정책 운용 측면의 일본 치매 정책을 ‘지역포괄케어’라고 부르는데 이는 “전략은 국가에서 실행은 지역에서”를 의미한다. 즉, 지역 실정에 따라 고령자가 가장 익숙한 지역에 거주하며 그가 가진 능력에 따라 자립할 수 있도록 의료, 개호, 예방, 주거 및 일상 지원을 포괄적으로 공급하는 시스템이다. 치매 환자는 지역 사회의 노인클럽, 자치회, 자원봉사, NPO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다.
지역포괄케어의 모범, 오무타시
이러한 지역포괄케어가 잘 되어 있는 대표적인 곳이 오무타(大牟田)시다. 규슈 지방의 소도시인 오무타시의 슬로건은 “치매에 걸려도 안심하고 외출하며, 살 수 있는 지역 만들기”다.
탄광 마을로 1959년 인구 20만 명이 넘던 이곳은 2024년 4월 추산 10만 4,803명으로 크게 줄었다. 젊을 때 정착한 이들이 노인이 되면서 고령자가 4만 명이 넘어 고령화율이 35.7%나 된다. 일본 내 인구 10만 명 이상의 도시 중 2위를 기록할 정도로 높다. 2025년이면 고령화율이 40%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치매 추정 인구는 6,000여 명이다. 2007년 포브스지가 ‘세계의 가장 깨끗한 도시 Top25’에 오무타시를 선정한 바 있으며, 7월 하순에 행해지는 여름 축제 ‘다이자야마’에 매년 40만 명 정도가 방문한다.
오무타시는 도시 주요 정책 방향을 치매 환자에게 맞췄다. 치매에 걸려도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치매 맞춤 대책으로 사회 시스템을 정비했다. 주민 만족도가 크게 늘었고, 240여 지자체가 ‘치매 정책 우수도시’로 오무타시를 방문해 배워갈 정도로 유명한 치매 친화 지역이다.
오무타시가 치매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2002년이다. 지역민 전체가 치매를 이해하고, 치매 환자가 되어도 누구나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마을 만들기에 착수했다. 시 전체 세대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했고, 시민들로부터 1,500여 개의 의견을 받아 다음과 같은 치매 대책을 세웠다.
1. 치매 지원을 위한 초등학교 단위의 지역 네트워크 조성: 2004년 하야메 미나미 교구를 중심으로 ‘하야메 미나미 인정 네트워크’라는 주민 활동을 시작했다. 배회하는 사람을 지역에서 돌보는 '치매 환자 실종 모의훈련'을 시행했고, 이 훈련을 2010년 오무타시 전체로 확대했다.
2. 초중등학교에 치매 이해 교육 실시: 지역 전체의 치매 인식 개선을 위해 아동기부터 학습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반영해 2004년부터 그림책을 제작해 초중등학교 대상으로 ‘찾아가는 치매 교실’을 진행했다. 지난 15년간 8,000명이 넘는 학생이 치매 이해 교육을 받았다. 학생들 자신이 곧 치매 환자를 돕는 중요한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3. 치매 케어 전문가 육성: 2년간 400시간이 넘는 ‘인지증 코디네이터 양성 연수’를 수료한 전문가가 지역과 직장에서 치매 지원 리더로 활동한다. 그 밖에도 건망증 상담, 초로기 치매 환자 자조 모임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삶의 마지막까지 존엄성 유지
오무타시는 치매 환자를 요양원이나 요양병원 등 시설에 격리하지 않고, 집과 지역에서 안심하고 살면서 삶의 마지막까지 존엄성을 유지하도록 주민 모두가 치매 어르신을 돕는 환경을 조성했다.
2003년 일본에서 처음 도입한 ‘인지증 코디네이터’ 제도에 따라 2년간 교육을 받고 전문 자격증을 딴 이수자가 노인 의료 돌봄 시설에서 치매 환자를 관리하는 전문 인력으로 활동한다. 이들은 건강상담부터 주거지원 등 치매 환자가 지역 사회에서 편안하게 지내도록 돕는다.
오무타시 지역 치매지원팀은 이들 코디네이터와 치매 관련 신경과 전문의, 6개 지역포괄지원센터(노인 의료부터 장기요양, 주거지원 등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기관)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치매 예방을 위한 정기 건강검진을 시행하며, 치매 전문 상담실을 운영한다. 치매 환자나 가족이 궁금한 점이 있으면 전문 상담을 통해 즉각 해소할 수 있다. ‘치매 카페’를 운영해 어르신이 차를 마시고 수다도 떨면서 치매 관련 대처법을 익히고, 치매 환자 가족 모임도 정기적으로 개최한다.
또한 100명 이상을 수용하는 노인주간보호시설(데이케어센터)이 10곳, 치매 노인 주거지원시설인 그룹홈 45곳이 운영 중이다. 시내 25곳에 ‘소규모 다기능 노인요양 주택사업소’를 개설해 집 가까운 곳에서 맞춤형 치매 서비스를 받도록 했다. 기존 요양시설보다 접근성과 편의성을 높인 20명 이내의 어르신 돌봄 시설이다.
배회 어르신의 무사 귀가 위한 ‘SOS 네트워크’
매년 9월에는 ‘치매 환자 모의훈련’을 시행한다. 치매 환자 역할을 하는 어르신이 거리를 배회하면 시민은 말을 걸고, 가까운 경찰서나 관공서로 연락해 가족에게 인계하도록 하는 모의훈련이다. 기억을 잃고 집을 찾지 못하는 어르신을 보면 바로 경찰서로 모시고 가도록 치매 노인 대처법을 시민에게 교육한다. 매년 3,000명 정도의 시민이 참가할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오무타시 건강복지추진실 이케다 타케토시 실장은 “모르는 이와 말하는 것조차 힘든 세상에 말을 걸어본 사람만이 남과 쉽게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경험을 쌓아 위기 상황에 대처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실제 상황에서는 시와 경찰서, 소방서, 교통기관, 학교 등이 연결된 ‘SOS 네트워크’가 이를 지원한다. 치매 노인 실종 신고가 들어오면 경찰서는 20분 이내에 SOS 네트워크를 발동해 시와 소방서, 학교, 지역병원 등 각종 기관에 실종자 정보를 동시에 전달한다. 문자로 정보를 전달받은 시민이 실종자로 의심되는 노인을 발견하면 곧바로 신고하도록 하는 체계다. 실종에 대비해 SOS 네트워크에 사전 정보 등록을 한 치매 어르신이 300명에 이른다.
우리의 치매 인식은 어떠한가? 내 집 일이 아니면 관심이 없고, 내 집 일이 되면 정보가 없다. 초고령사회가 코앞인데도 일본처럼 초등학교부터 공교육 차원에서 교육할 생각을 갖지 못한다. 오무타시와 같은 치매 친화 마을을 만들려면 ‘치매 이해 교육’부터 필요하지 않을까? 어려서부터 치매에 대한 오해와 불신이 없어야만 ‘치매 사회’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여전히 치매 환자를 시설에 가두거나 고립으로 인해 중증으로 악화되면 침상에 묶어놓고 약을 먹여 조용히 시키는 방식을 취한다. 국민소득이 높아졌고 시민의식과 민주화의식이 발전한 지금은 “그럴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인식은 있지만, 정책은 둔하고 시간이 흘러도 시설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역포괄케어의 핵심은 ‘자립’이다. 도쿄 주택가에는 ‘집으로 돌아가자’ 병원이 있다. 장기 입원이 흔한 요양병원과 달리 어떻게 하면 환자들이 하루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 생활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병원이다. 일본은 노인 환자가 퇴원 후 집에서 진료와 간호를 받을 수 있는 돌봄 환경까지 구축했다.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사회복지사, 지역 돌봄 매니저 등이 자연스럽게 연계해 일한다. 건강한 노인은 자원봉사로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지원이 필요한 노인은 지원받으며 사회 안에서 교류한다. 서로를 잇는 역할로 사회 활동의 연속성을 제공한다. 오무타시 관계자는 “최고의 노인 요양 서비스는 치매 환자라도 인간 존엄을 인정받고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이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 공동체가 함께 치매 어르신을 돌보고 관리하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일본은 치매 환자를 지역 사회에서 보듬고 있고, 우리는 요양시설에 맡기고 있다. 일본 요양원은 치매 환자의 재활을 목적으로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돌봄을 지향하는데, 우리는 요양원에 입소하면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머문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행된 지 17년 차다. 오무타시와 같은 공적 서비스 추진 협의회, 치매 코디네이터, 치매 교육, SOS 네트워크 등의 역할이 완비된 치매 친화형 도시는 언제 만날 수 있을까?